260524 효신교회 중고등부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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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오신다(계22:20)복음의 기초10
반드시 오신다(계22:20)복음의 기초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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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물어볼게요.
요즘 제일 기다리는 게 뭐예요?
(잠깐 대답 받기)
다들 기다리는 게 있구나. 근데 있잖아요, 기다리는 게 다 똑같은 기다림이 아니에요. 기다림에는 온도가 있어요.
예를 들어볼게요. 좋아하는 모바일 게임에 새 캐릭터 업데이트가 뜬다고 해봐요. 아니면 마인크래프트에 새 버전이 올라온다고 해봐요. 시험 끝나고 드디어 못 봤던 드라마 다음 화를 틀 수 있는 날이라고 해봐요.
그 기다림, 어때요? 설레죠. 빨리 그날이 왔으면 싶고, 시간이 안 가는 것 같고.
근데요, 딱 하나만 바꿔볼게요.
그 게임에서 내가 핵을 쓰고 있었어요. 그 업데이트가 "이번 패치로 불법 계정 전부 영구 정지합니다"라는 내용이에요.
드라마 다음 화가 너무 기다려지는데, 어제 친구한테 그 드라마 결말을 내가 먼저 스포해버렸어요. 근데 오늘 그 친구가 같이 보자고 연락이 왔어요.
(살짝 웃음 유도)
같은 날이에요. 같은 업데이트, 같은 드라마, 같은 순간인데, 기다림의 온도가 완전히 달라졌죠?
오늘 우리가 이야기할 게 딱 이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이 있어요. 그날을 두고 어떤 사람은 인생에서 가장 설레는 날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장 피하고 싶은 날이에요. 같은 날인데 온도가 달라요.
그 차이가 뭔지, 오늘 같이 생각해 봐요.
C1.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벧후 3:4; 계22:20)
솔직히 한번 물어볼게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말, 진짜 실감 나요?
머리로는 알겠는데, 뭔가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당연할 수 있어요.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게 2천 년도 넘었으니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있어요. 이 느낌, 지금 우리만 느끼는 게 아니에요. 2천 년 전 초대교회 때도 똑같이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베드로후서 3:4 에 이런 말이 나와요.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쉽게 말하면 이거예요. "세상이 그냥 돌아가고 있잖아요. 오신다고요? 언제요?"
근데 여기서 딱 하나만 생각해 봐요.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오시기 전에도, 오실 거라는 약속이 있었어요. 수백 년 전, 이사야 같은 선지자들이 예언했어요. 그때도 사람들은 반신반의했어요. "그게 진짜 이루어지겠어?" 근데 어떻게 됐나요?
예수님이 정확하게, 약속대로 오셨어요.
이미 한 번, 불가능해 보이던 약속을 지키신 분이에요. 그렇다면 두 번째 약속인 재림도 반드시 이루어져요. 이건 우리 기분이나 감이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이미 한 번 증명된 분의 약속이에요.
요한계시록 22:20 에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세요.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그러자 요한이 바로 이렇게 대답해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게 초대교회 성도들의 기도였어요. 핍박받고, 감옥 가고, 순교하면서도 이 기도를 붙들었어요. 왜냐면 주님이 반드시 오신다는 사실이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었거든요.
여러분, 이 기도가 마냥 먼 이야기처럼 들리나요?
이 기도가 진심으로 나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오늘 2대지에서 이야기할 그 차이가 있어요.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 이건 협상 가능한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믿음의 핵심이에요.
C2. 그날은 같은 날, 두 개의 얼굴이다(계21:1-5)
자, 그럼 예수님이 실제로 다시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성경은 같은 날에 대해 완전히 다른 두 장면을 동시에 보여줘요. 한 장면은 너무 아름답고, 한 장면은 너무 무거워요. 그런데 이 두 장면을 같이 봐야 재림이 제대로 보여요. 하나만 보면 반쪽짜리예요.
첫 번째 얼굴 — 새 하늘과 새 땅
첫 번째 얼굴 — 새 하늘과 새 땅
요한계시록 21장 1- 5 이에요. 같이 읽어볼게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잠깐 멈추고 이 장면을 한번 진지하게 상상해 봐요.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것들 있잖아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풀리는 것들, 이유 없이 상처받는 것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아픔들. 고3이면 지금 이 순간도 수능 압박이 있을 거고, 관계에서 상처받은 것들, 가족 때문에 힘든 것들, 아무한테도 말 못 하는 것들.
그게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와요.
그냥 좀 나아지는 게 아니에요.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완전히 없어져요.
그리고 더 놀라운 게 있어요. 하나님이 친히 우리 눈물을 닦아주신다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친밀한 장면인지 아세요?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직접 손으로 우리 눈물을 닦아주시는 거예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걸었던 그 관계가, 새로운 창조 세계에서 영원히 완성되는 거예요.
이게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친히 약속하신, 반드시 이루어질 미래예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심판이 목적이 아니에요.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려는 거예요. 이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 재림은 가장 기다리던 날이에요.
두 번째 얼굴 — 심판
두 번째 얼굴 — 심판
그런데 같은 날, 마태복음 25장은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줘요.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모든 민족을 앞에 모으시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나누듯 사람들을 둘로 나누세요.
오른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왼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세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6절에서 예수님이 정리해 주세요.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여기서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와요. "그 기준이 뭐예요?"
주린 자를 먹이고, 목마른 자에게 마시게 하고, 나그네를 영접하고, 병든 자를 돌보는 것. 그리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여기서 잠깐 짚어야 해요. 이거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럼 착하게 살면 구원받는 거예요? 믿음으로 구원받는 거 아니었어요?"
맞아요,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믿음으로 받는 거예요. 이건 성경 전체가 분명히 말하는 거예요.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어요.
진짜 믿음은 반드시 삶으로 드러나요.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리는 게 당연하듯이, 예수님을 진짜 믿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사는 삶이 나와요.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은 그날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보세요. 우리 삶이 믿음의 증거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짚을게요. 이 심판이 불신자들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로마서 14장 10-12 을 보면, 신자들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이 땅에서 행한 모든 것을 직접 설명해야 해요. 물론 영원한 형벌의 심판은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전부 드러나요. 내가 믿는다고 말했던 것과 내가 실제로 살았던 것이 하나님 앞에서 그대로 펼쳐져요.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이 사실이 각성이 되는 사람에게, 재림은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날이에요.
두 얼굴을 같이 보면
두 얼굴을 같이 보면
자, 이 두 장면을 같이 놓고 보면 결국 이 질문이 남아요.
"예수님이 오늘 오신다면, 나는 어느 쪽인가?"
노아 때를 잠깐 떠올려봐요. 홍수 오기 직전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그냥 평소처럼 살았어요.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홍수가 왔을 때 이미 늦었어요.
우리도 그럴 수 있어요. 매일 공부하고, 게임하고, 유튜브 보고, 자는 거 반복하다 보면 재림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요. 그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근데 그게 위험한 거예요.
그날이 소망인 사람과 두려움인 사람의 차이는 결국 지금 내가 어떤 믿음으로 살고 있느냐가 만들어요.
적용
서론에서 제가 이런 말을 했었죠.
같은 업데이트인데, 같은 날인데, 기다림의 온도가 달라진다고요.
그 차이가 뭔지 이제 알겠죠?
내가 그 게임 안에서 어떻게 살았느냐가 온도를 결정하는 거예요. 재림도 똑같아요. 그날이 설레는 날인지, 피하고 싶은 날인지는 — 지금 내가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결정해요.
지금 여기 있는 우리, 다섯 명한테 솔직하게 물어볼게요.
(천천히,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보면서)
"예수님이 오늘 오신다면, 나는 괜찮은가?"
이 질문에 "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소망을 오늘도 붙들고 살아가면 돼요. 재림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이 땅에서 낙심할 이유가 없어요. 수능이 힘들어도, 관계가 힘들어도,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근데 만약 이 질문 앞에서 뭔가 걸리는 게 있다면, 모르겠다 싶다면 — 그 느낌을 무시하지 마세요. 그게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한테 주시는 은혜예요. 아직 돌아올 시간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기도가 있어요.
예수님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니까, 요한이 이렇게 대답해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기도가 진심으로 나오는 사람은, 그날이 기다려지는 사람이에요.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이에요.
오늘 이 자리에서, 이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길 바라요.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합심기도
방금 우리가 같이 이 질문 앞에 섰어요.
"예수님이 오늘 오신다면, 나는 괜찮은가?"
이 질문을 머리로만 듣고 지나가지 않았으면 해요. 지금 이 자리에서, 각자 그 질문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면 좋겠어요.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소망에 감사하면서 기도해요. 뭔가 걸리는 게 있는 사람은, 그걸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내놓으면 돼요. 하나님은 다 아세요. 꾸미지 않아도 돼요.
같이 기도해요.
마침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림의 소망과 그날의 무게를 함께 붙들 수 있도록 말씀으로 이끌어 주셨음을 감사드려요. 오늘 들은 이 말씀이 한 주를 살아가는 동안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붙들어 주세요.
오늘 이 예배 가운데 드려진 헌금도 주님 앞에 올려드려요. 이 작은 드림이 주님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게 해주세요.
하나님,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을 기억해 주세요. 예배의 자리에서 멀어진 그 친구들이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주님이 먼저 그 마음을 찾아가 주세요.
함께 이 아이들을 섬겨주시는 선생님들에게도 은혜를 더해 주세요.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자리로 서 주시는 선생님들을 주님이 붙들어 주시고, 그 수고와 헌신을 주님이 기억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드린 우리 한 명 한 명이 살아갈 한 주를 주님 손에 올려드려요. 공부로, 관계로, 각자의 자리에서 버거운 순간이 찾아올 때, 오늘 들은 이 말씀이 — 주님은 반드시 오신다는 이 소망이 —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주시길 간구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려요,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