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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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
자녀 교육
요즘에 아이를 키우면서 참 정신이 없게 시간이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낮에는 놀아주고 먹고 자고 싸고 하는거 봐주고, 또 저녁에는 어찌나 울어대는지 저보다도 이주혜 전도사님이 참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아기가 울 때 달래주고 해야 하다보니까 특히 잠을 길게 못자게 되는게 제일 힘든 부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에 수면 교육이라는 걸 하고 있습니다. 뭐냐면 그냥 아기가 울어도 눕혀놓고 처음에는 5분, 10분 15분이렇게 걸쳐서 잘 있나 봐주기만 하고 잘때 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처음 할 때는 거의 30분이나 으아앙! 하면서 강성으로 울어댔는데, 수면교육을 시작하니까 이제는 15분이면 금방 잠들고, 또 한 번 잠들면 몇시간을 통으로 자는걸 보면서, “아, 아기가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는게 좋은게 아니라, 좋은 걸 해주기 위해서 조금은 싫은 일도 할 수 있어야하는 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자녀를 교육할 때는 해달라는거, 원하는 거만 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원하지 않는 것을 주어야할 때도 있고, 원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해야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줄 수가 있습니다.
무엇을 구하느냐(9-11)
무엇을 구하느냐(9-11)
하나님과 저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는 아마 여러분도 익히 들어보셨을 법한 말씀인데요, 구하면 주실 것이고, 찾으면 찾을 것이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이후에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본문말씀 9절 말씀부터 보시면요 예수님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는 부모가 있느냐?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주는 부모가 있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11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요, 함께 본문말씀 11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줄 아는데,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냐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떡과 생선을 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저희에게 좋은 것으로 주고 싶어하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반대로 생각해볼까요? 만약에 자녀가 떡이 아니라 돌을 달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지금 배가 고파서 생선을 먹어야 하는데 뱀을 달라고 말하는 상황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자녀가 좋은 것을 구해야하는데 나쁜 것을 구하고 있으면 부모님은 그것을 주어야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달라고 하는 것을 막고, 때로는 싫다고 하는데도 주어야만 하는 것이 있을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문말씀 7절에 구하면 주실 것이고, 찾으면 찾을 것이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말씀은 그냥 내가 하고 싶은거 갖고 싶은거 원하는거를 하나님께 달라고 싹싹 빌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돈도 주시고 집도 주시고 애인도 주시고 부자되게 해주신다는 말씀이 아닌 겁니다.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게 해주시고, 두드리면 열어주시는데,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찾고, 무슨 문을 두드리냐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2026년 신안교회 표어가 전임 목사님이 “구하라 그리하면 얻으리라”라고 정하셨는데요, 올 한 해 동안 저희가 하나님께 구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기전에, 무엇보다도 “무엇을 구해야만 하는가?”를 짚고 넘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함(마 6:33)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함(마 6:33)
본문말씀 8절 말슴을 함께 읽어볼까요?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본문말씀에는 세 가지 다른 동사가 등장합니다. “구하다” “찾다” “두드리다”라고하는 세 동사인데요, 가장 먼저 “구하다”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저희는 대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야만 할까요?
본문말씀 앞에 있는 6장 33절 말씀을 보시면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께서 이미 무엇을 구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 말씀이 나오게 된 계기는요 바로 앞 구절에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두려워 하지 말아라, 이런건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들죠. 사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물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고, 옷 입는 것도 특히 겨울에는 따뜻한 옷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서는 또 돈이 필요하기도 하죠. 그럼 예수님은 돈 버는 것도 걱정하지 말고, 먹고 마시고 입는 걸 다 제쳐놓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시는 걸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문제는 먹고 마시고 입을것 “만” 구하는게 문제인 겁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당하셨을 때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죠. 반대로 사람이 떡으로“만” 산다고 하면 어떤 문제가 있나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입고 또 돈도 벌고 하는 문제만 신경쓰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 일어납니다. 밥을 먹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할 때” 사람은 악해집니다. 가장 극단적인 예시로는 전쟁이 있죠. 이란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 것, 그 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땅과 돈, 그것을 필요 이상으로 갖기 위해서 벌이는 것이 전쟁 아닌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구하고 바라는 것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사람의 욕심으로 먹고 마시는 것을 구하는 것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먹고 마시는 것을 구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냥 내가 먹고 마시기 위해서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먹으려고 하는 것과, 내가 먹고 마시지만, 우리 이웃 중에 먹고 마시지 못하는 사람을 찾으면 함께 나눌 수 있는 것. 내가 입고 있지만 입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의 입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7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할렐루야! 하나님께 가장 먼저 구할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필요한 것, 그냥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구하며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찾음(히 11:6)
하나님을 찾음(히 11:6)
두번째로, “찾는 것”에 대한 말씀인데요, 저희는 무엇을 찾고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찾게 하실까요? 히브리서 말씀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저희가 찾아야할 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이라고 하는 말씀을 히브리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을 무슨 탐색해서 찾아야한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교회에 열심히 나오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라고 하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신명기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라고 하고 있구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말슴에서도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면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찾고 또한 만나게 되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먼저 방금 읽은 신명기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 직후에 나온 것입니다.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백성들이 먼저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이 있을 것이지만, 다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찾게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또한 예레미야의 말씀의 경우는 이미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에게 보내는 예레미야의 편지에서 등장한 말씀입니다. 유다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우상숭배한 일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그 곳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면 만날 것이라는 말씀을 예레미야가 전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찾지 않는 상태에서 돌아오는 것,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것, 바로 회개가 하나님을 찾는 행위라고 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저희가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24시간 내내 하나님을 찾으랍시고 계속 기도만 하고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말과 행위는 우리를 점점 하나님을 찾는 것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도 만나야하는데,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으면 점점 우리는 하나님과는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운전할 때, 제일 하나님을 찾기 힘든 것 같아요. 칼치기로 고속도로에서 바짝 끼어들어서 사고가 날 뻔한다든지, 집채만한 트럭이 추월차선으로 끼어들어서 빨리 못갈 때 등등 그런 화가 나는 순간이 닥치면 옛날에는 정말 막 욕의 욕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제가 화를 내면 옆에서 이주혜 전도사님이 혼내가지고 이제는 점점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마는 바로 그런 것처럼 하나님과 멀어지는 행위가 우리 삶가운데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7절 말씀을 다시 한번 함께 읽어볼까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예수님께서 찾으라고 하신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것,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죄를 내려놓고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제가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일들이 있다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위해서 애쓰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생명의 문을 두드림(13-14)
생명의 문을 두드림(13-14)
마지막으로 저희가 알아볼 것은 바로 “두드리다”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것, 노크라고 하죠? 어느 집에 볼일이 있어서 찾아가면 저희가 벨을 누르거나 노크를 하는 것처럼 문을 두드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럼 문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문은 대체 무슨 문일까요?
본문말씀 이후에 등장하는 13-14절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어떤 문을 두드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예수님께서 여기서 두가지 문에 대해서 말씀하시죠, 하나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다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험해서 찾는 사람이 적다는 말씀까지 하고 계십니다. 왜 그럴까요?
기본적으로 이 두 가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서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갈라디아서에는 이런 말슴이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인간의 육체의 욕심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의 욕심을 거스른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둘이 서로 대적하려 서로 상대방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육체의 소욕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육체가 원하는 욕구, 욕망, 욕심에 속하는 것이다 보니까 사람이 살면서 갖고 싶어하는 것들, 원하는 것들, 바라는 것들이 여기에 속할 거에요. 물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모든 인간의 욕구들, 이를 테면 식욕과 같은 게 다 성령에 거스르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만 먹으려고 하는 것” 또 “저 사람것을 빼앗아서라도 먹으려고 하는 것”등은 성령에 거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은 이러한 욕심에 얼마나 자주 노출됩니까? 저만 해도 제가 밥을 먹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더 맛있고 비싼 것을 먹는 걸 보면, 참 부럽고 뺏어먹고 싶을 때가 간혹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성령을 거스를 수 있기 때문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험한 길에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말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라고 하는 말씀은요, 아무거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 인간의 욕심을 따라서 하나님께 복 달라고 비는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욕심으로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거슬러 돌아가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아무 문이나 두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대로 두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두드리고 싶은 문들, 우리의 욕심을 따라서 욕망하고 원하는 것들을 오히려 피하고,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생명으로 향하는 문을 두드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육체의 욕심을 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생명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구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라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구할 수 있지만 그냥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구하는 것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먹고 또한 나눌 수 있는 “구함”이 곧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그리스도인의 구함입니다.
둘째, 우리가 찾을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 외면하는 일들, 죄를 짓는 순간이 우리에게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다시 하나님께 돌이켜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이 회개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저희가 삶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두드릴 것은 생명의 문입니다. 아무 문이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의 육체의 욕망을 따라서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욕심을 거슬러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두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지고 싶은 것, 원하는 것, 바라는 것들이 과연 예수님께서 인도하셔서 우리가 바라게 되는 것인지 스스로를 점검하고,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문을 두드릴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그저 바라는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죄 가운데에서도 다시 돌이켜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문을 두드리며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