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1장 6-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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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끝까지 지킨 충성
제목: 끝까지 지킨 충성
본문: 사무엘하 11장 6-13절
본문: 사무엘하 11장 6-13절
찬송: 449장 예수 따라가며
찬송: 449장 예수 따라가며
오늘은 사무엘하 11장 6-13절 말씀을 가지고 끝까지 지킨 충성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한다.
오늘 본문은 밧세바의 임신이라는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힌 다윗이,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전선에 있던 충신 우리아를 불러들여 벌이는 기만적인 회유와 이에 맞서는 우리아의 순진한 영성을 보여준다. 이 말씀을 통해 세상의 달콤한 타협에 길들여지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 곁을 지키는 참된 신앙의 길을 발견해야 한다.
6-8절은 '죄를 은폐하기 위해 베푸는 세상의 간교한 평안과 호의'를 말한다.
6-8절은 '죄를 은폐하기 위해 베푸는 세상의 간교한 평안과 호의'를 말한다.
"7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8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다윗은 밧세바의 임신 소식을 전해 듣고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비열한 시나리오를 가동한다. 그는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던 용사 우리아를 예루살렘 왕궁으로 불러들여 독대한다. 다윗은 자신의 진짜 목적을 숨기기 위해 요압의 안부, 군사의 안부, 싸움의 상황을 거듭 묻는다. 성경에 반복되는 세 번의 안부 질문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선뜻 꺼내지 못해 시간을 끌고 있는 다윗의 비겁한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어 다윗은 우리아에게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고 명령하며 왕의 음식을 하사한다. '발을 씻는 것'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고단한 여정과 전쟁의 걱정을 내려놓고 집에서 편안히 쉬라는 기만적인 휴가 명령이었다. 다윗이 하사한 특별한 음식은 우리아의 욕정을 자극하여 아내와 동침하게 함으로, 배 속의 아이를 우리아의 아이로 위장하려 한 사악한 조작 작전이었다. 세상은 이처럼 우리의 영적 눈을 감기기 위해 때로 달콤한 평안과 물질의 호의를 들고 찾아와 타협을 종용한다. 오늘 하루, 세상이 베푸는 가짜 샬롬 뒤에 숨은 죄의 덫을 예리하게 분별하는 영적 예민함을 가져야 한다.
9-11절은 '왕궁의 안락함을 부끄럽게 하는 들판의 거룩한 야성'을 말한다.
9-11절은 '왕궁의 안락함을 부끄럽게 하는 들판의 거룩한 야성'을 말한다.
"9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11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다윗의 사악한 기대와 달리,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않고 왕궁 문전에서 사울의 다른 부하들과 함께 노숙을 감행한다. 우리아가 노숙한 '왕의 문'은 억울한 자들이 왕에게 무언의 시위를 벌이는 공적인 광장(Public Square)이었다. 게다가 성서 학자들은 이미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을 한 것이 이미 소문이 났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아의 이 행동은 단순히 순진한 충성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내를 범하고 가정을 파괴한 왕을 향한 침묵 어린 강력한 항의와 저항이었다.
우리아의 저항은 다윗의 거듭된 추궁 앞에 선포된 위대한 고백 속에서 절정에 달한다. 우리아는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는데, 자신만 편히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외친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임재(언약궤)와 형제들이 들판의 거친 움막(수콧)에서 피를 흘리고 있을 때, 가장 높은 백향목 궁전 침상에 편히 누워 남의 아내를 유린했던 다윗의 영적 태만과 추악한 간음을 정면으로 꾸짖는 비수와 같은 고발이었다.
성도의 진짜 정체성은 왕궁의 안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궤가 머무는 들판의 야성에 있다. 우리는 세상의 화려한 백향목 침상을 부러워하느라 하나님의 언약을 잃어버리는 본문 속 다윗의 길을 걷지 말아야 한다. 비록 고단하고 거친 광야의 움막일지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내 인생의 가장 무거운 가치로 모시며 사명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12-13절은 '세상의 달콤한 취함에 길들여지지 않는 신실함'을 말한다.
12-13절은 '세상의 달콤한 취함에 길들여지지 않는 신실함'을 말한다.
"13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우리아의 신념을 꺾지 못한 다윗은 마지막 최후의 간계를 사용한다. 우리아를 왕의 잔치에 불러 진수성찬을 베풀고 술을 마시게 하여 취하게 만든 것이다. 사탄이 세상을 통해 사명자를 무너뜨리는 전형적인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좋은 음식과 화려한 장식, 그리고 독주를 먹여 영혼의 예리한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다. "이 정도는 타협해도 괜찮다, 적당히 취해 은혜를 누리라"며 타협안을 끊임없이 들이민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우리아는 완전히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한 중에도 결코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아내가 누워 있는 침실로 향하지 않고, 동료들과 언약궤가 있는 들판의 전초기지인 왕궁 문으로 되돌아가 몸을 누였다. 다윗은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했으나, 세상의 달콤한 술잔에 타협하지 않는 우리아의 끝까지 지킨 충성 앞에 그의 가짜 권세는 무참히 잠식당하기 시작한다.
오늘 하루, 우리를 유혹하는 세상의 달콤함을 거절해야 한다. "남들도 다 타협하며 산다"는 안일한 취기에 취해 사명의 전선을 이탈하지 말고, 어떤 순간에도 내 영혼을 흔드는 죄의 음성 앞에 길들여지지 않는 거룩한 신앙의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가 내 실력과 소유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신실한 보혈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이 거친 일터 속에서도 능히 지키시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전리품으로 세워주실 것이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죄를 덮기 위해 기만적인 안부(샬롬)와 세상의 떡을 내어주며 주님의 법을 가벼이 여겼던 다윗의 사악함을 거울삼아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봅니다. 밭과 일터, 그리고 치열한 생업의 현장에서 일할 때 우리가 "이 정도는 타협해도 괜찮다" 속삭이는 사단의 교묘한 술잔에 취하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어떤 달콤한 샬롬 뒤에 숨겨진 죄의 덫도 예리하게 분별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우리아가 가졌던 언약의 신실한 야성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왕궁의 백향목 침상보다 하나님의 궤가 머무는 들판의 움막을 더 무겁고 존귀히 여기는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남들이 모두 다윗의 권세 앞에 눈을 감고 귀를 막을 때, 하나님의 성소와 군사들을 기억하며 왕궁 문전에서 침묵으로 정직하게 저항했던 우리아처럼, 우리도 세상의 불의한 타협에 길들여지지 않는 단단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땀 흘려 일구는 도초중앙교회 모든 성도의 일터와 가정을 지켜주시옵소서.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은 무기와 돈을 가져야 안전하다 말하지만, 우리는 오직 우리를 위해 앞서 싸우시는 만군의 여호와 이름을 유일한 무기로 삼고 나아가게 하옵소서. 육신의 연약함과 말 못 할 경제적 시련으로 홀고 은밀한 방에서 눈물짓는 환우들과 성도들을 주님의 강한 손으로 안수하여 주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가 세상의 정죄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 안에서 마음이 강하고 담대한 세대로 자라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의 모든 시작과 끝을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오며, 우리 인생의 영원한 수복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