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게 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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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린도전서 3장 1절~9절
새벽기도회 설교
1. 들어가는 말
1. 들어가는 말
18세기 영국에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라는 한 가난한 구두 수선공이 있었습니다. 그는 목회자도 아니었고, 부유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인도 땅의 영혼들을 향한 불타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1793년, 그는 가족과 함께 인도로 떠났습니다. 그가 인도에 도착해서 처음 7년 동안, 그의 사역의 열매가 몇 명이었을까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7년 동안 한 영혼도 회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그는 사랑하는 다섯 살 아들을 잃었고, 아내는 정신병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1812년에는 11년 동안 번역한 성경 원고와 사전이 화재로 다 타버렸습니다.
그러나 캐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41년 동안 인도를 떠나지 않고 성경을 6개 언어로 완역하고, 29개 방언으로 부분 번역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그의 묘비에는"가련하고 가난하고 무력한 벌레 같은 나, 당신의 친절한 팔에 안깁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졌습니다. 그는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그저 심는 자, 물 주는 자에 불과했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고린도전서 3장 1절부터 9절은 바로 그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2. 본문 해석
2. 본문 해석
당시 고린도 교회는 큰 분쟁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파"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나는 아볼로파"라고 하면서 서로 자기가 따르는 사역자를 자랑하고 다투었습니다. 고린도는 본래 헬라 철학과 수사학을 숭상하던 도시였고, 사람들은 자기가 따르는 선생을 자랑하는 것이 일종의 자기 정체성이었습니다. 그 문화가 그대로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어떻게 진단합니까? 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바울은 그들의 분쟁을 "육신의 일"로 진단합니다. 헬라어로 시기는 '젤로스', 분쟁은 '에리스'인데, 이는 갈라디아서 5장의 육체의 일 목록에 그대로 나오는 단어입니다. 영적 은사가 풍성했지만 그들의 속사람은 여전히 어린아이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처방합니까? 5절부터 7절을 함께 보십시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여기서 헬라어 시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심었고"와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는 모두 부정과거 시제로, 한 번 일어나고 끝난 행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는 미완료 시제로, 계속해서, 끊임없이 자라게 하시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바울과 아볼로의 수고는 일시적이고 한정적이지만, 하나님의 자라게 하시는 역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그리고 9절에서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칼빈은 이 구절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대등한 동료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종으로서 서로 함께 일하는 자들이다." 바울도 아볼로도, 모두 한 밭에서 일하는 종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심는 것도 물 주는 것도 우리이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충성스럽게 심고 물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는 다면, 결과 보다는 매일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모든 것을 결과와 숫자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8절입니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결과로 평가하시지 않으십니다. 충성으로 평가하십니다. 자녀의 회심도, 동료의 구원도, 학생의 변화도, 자라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늘 만나는 그 사람에게, 오늘 맡겨진 그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심고 물을 주는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깁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두번째 적용입니다.
여러분, 자리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비교와 시기를 멈추고 동역자로 살아갑시다. 9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라 동역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섬기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장 큰 위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라게 하시는 분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심으셨고, 성령께서 그 생명을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이듯이, 우리의 사역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