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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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별된 삶
제목: 구별된 삶
본문: 사도행전 18장 18-23절
본문: 사도행전 18장 18-23절
찬송: 422장 거룩하게 하소서
찬송: 422장 거룩하게 하소서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 우리는 고린도에서의 1년 6개월이라는 긴 사역을 마치고, 새로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길을 떠나는 바울의 여정 앞에 서 있습니다. 고린도는 바울에게 있어 대단히 치열하고도 고단한 선교지였습니다. 끊임없는 유대인들의 비방과 박해가 있었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밤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바울을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밤에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로마의 총독 갈리오가 유대인들의 고발을 기각함으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은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여러 날'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히카노스(ἱκανός)'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며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에 '충분하게 많은 날'을 뜻했습니다. 소스데네 사건 이후 바울은 유대인들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고 충분한 기간 동안 복음 전도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박해가 몰아칠 때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법정의 판결을 통해 전도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고 바울은 그 은혜 안에서 충분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렇듯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며 대단히 신비롭습니다. 이제 고린도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떠나는 바울의 발걸음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별된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에 사로잡힌 구별된 삶
말씀에 사로잡힌 구별된 삶
바울이 고린도를 떠날 때, 그의 곁에는 그림자처럼 동행하는 아름다운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 이들은 본래 로마에서 살다가 유대인 추방령 때문에 고린도로 쫓겨온 난민들이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천막을 만들던 그들은 마찬가지로 천막 기술을 가졌던 바울을 만났고, 1년 6개월 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기술을 나누는 동업자를 넘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영적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이들이 보여준 가장 놀라운 구별됨은 그들의 가치관에 있었습니다.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고린도에 머물 때 오늘날로 치면 올림픽 같은 이스타미아 대회가 고린도 근처에서 열렸습니다. 그리스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선수와 관객들이 머물 수 있는 천막의 수요가 상당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남부럽지 않은 경제적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이 수리아로 떠나려 할 때, 고린도에서 일군 모든 기반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바울을 따라나섰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가장 힘든 일은 바로 어렵게 쌓아 올린 경제적 안정과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세상의 유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들의 소유와 재물을 움켜쥐려다 탐욕에 눈이 멀어 파멸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바라볼 때 자기중심적인 이익의 눈으로 보았기에 거룩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았습니다. 내가 어디에 사느냐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떻게 서 있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인생의 참된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터득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인생관이 새로워지는 것을 뜻합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산다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유한한 것들을 생의 목적으로 삼는 세속적 가치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주일마다 교회에 다니는 교인일 뿐 주님을 믿는 성도는 아닙니다. 우리가 육체를 지니고 살아가는 한 이 세상의 것들도 필요하고 또 중요합니다. 그러나 영원을 약속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의 것들은 수단이요 도구일 뿐, 결코 생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브스길리와 아굴라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은 참된 그리스도인이요, 이 세상 그 무엇에도 속박당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또한 성경은 이들의 이름을 기록할 때마다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었습니다. 남편 아굴라보다 아내 브리스길라의 이름을 먼저 적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이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는 아내 브리스길라의 믿음이 더욱 출중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남편 아굴라가 영적으로 앞선 아내를 시기하지 않고 돕는 자로서 그 그릇이 얼마나 컸는지를 증명했습니다. 두 사람은 주님 안에서 한 마음을 이루어 각자의 자리에서 구별된 삶의 본을 보였습니다.
잠언 9장 10절 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참된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 지혜가 그들로 하여금 세상의 유한한 것들에 속박당하지 않게 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들처럼 말씀에 사로잡혀, 세상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나 성공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얻는 영적인 명철함을 소유하는 구별된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구별된 삶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구별된 삶
본문 18절 하반절을 보면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바울은 배를 타기 직전, 고린도의 외항인 겐그레아에서 장발로 길렀던 머리를 잘랐습니다. 이는 그가 고린도에서 지냈던 기간 동안 하나님 앞에 자신을 구별하여 드렸던 나실인의 서약이 끝났음을 의미했습니다. 히브리어로 '구별하다'라는 뜻을 지닌 '나지르'에서 유래한 이 서약은, 일정 기간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헌신이었습니다.
바울이 왜 굳이 고린도에서 이런 힘겨운 서원을 했을지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혈혈단신 찾아갔던 척박한 고린도 땅에 주님께서 이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동역자를 예비해 두셨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앞서 일하시고 예비하시는 '먼저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압도된 바울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더 온전히 주님께 드리고자 결단했던 것입니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은혜를 확인한 자만이 드릴 수 있는 자발적인 고백이었습니다.
나실인의 서약을 지키는 1년 6개월 동안, 바울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나실인 법의 제1원칙은 포도주와 독주를 입에 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팔레스타인과 유럽의 수질 환경은 대단히 열악했습니다. 지하수 대부분이 희뿌연 석회수였기 때문에, 물을 그대로 마시면 위장에 돌이 생기거나 심한 복통을 유발했습니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에게 포도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석회 성분을 가라앉혀 수분을 안전하게 섭취하기 위한 식탁의 필수 음료이자 생존을 위한 물 대용품이었습니다.
바울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는 것은 갈증을 해소할 깨끗한 물 자체가 없는 환경에서, 매일 몸에 해로운 석회수를 맹물로 들이키는 육체적 희생을 치렀음을 뜻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딜 가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고, 물 인심도 좋습니다. 그런데 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예전에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식당에서 커피나 탄산음료는 정말 저렴하거나 공짜로 주는 곳이 많았지만,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생수만큼은 음료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러야만 마실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물은 석회질이 많아 마실 수 있는 순수한 물이 그만큼 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경험을 하고 나니 바울의 결단이 제 마음에 더욱 깊이 다가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건강과 편안함을 위해 포도주를 마실 때, 바울은 거룩한 구별을 위해 기꺼이 1년 6개월 동안 그 텁텁하고 독한 석회수를 감내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구별된 삶의 실체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너무나 컸기에, 자신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불편함과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바울의 영적 아들이었던 디모데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디모데 역시 에베소 교회를 섬기며 스승 바울을 본받아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고자 오직 맹물만을 마셨습니다. 훗날 바울이 디모데전서 5장 23절 에서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면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디모데가 거룩한 구별을 지키려다 그 독한 석회수 때문에 위장을 심하게 버렸던 것입니다. 디모데의 상해버린 위장은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일상의 가장 기본적인 편안함까지 얼마나 철저하게 포기했는지를 보여주는 영광스러운 헌신의 흔적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을 위한 구체적인 불편함이나 희생 앞에서는 머뭇거립니다. 구별된 삶은 입술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과 디모데처럼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와 편안함을 기쁨으로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땅에서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그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별된 삶을 살기로 결단할 때,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우리를 통해 이 세상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바울의 삶은 멈추지 않는 순종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삶이 그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말씀으로 생각이 바뀌고, 그 변화된 생각이 삶의 거룩한 습관과 행동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구별된 삶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은둔의 삶이 아닙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일하면서도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는 삶입니다. 바울과 디모데처럼 육체적인 고통과 불편함을 무릅쓰고서라도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소망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인생관이 영원하지 않는 세상의 가치에 인생을 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 가장 선한 것을 예배해 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며 일상의 작은 자리에서부터 하나씩 구별되어진 삶을 살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전히 세상은 혼탁하고, 또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 석회수 같은 물을 마시는 손해를 감내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별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시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또 바울과 디모데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하고 귀한 일에 우리를 들어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구별된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고 영광을 들어내는 복된 삶을 사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척박한 고린도 땅에서 사도 바울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신실한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미리 예비해 주셨던 주님의 그 신묘막측한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완전히 사로잡히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 나의 이익과 안위만을 챙기는 탐욕의 눈을 거두어 주시고, 오직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세상을 품는 구별된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세상 것을 움켜쥐려다 거룩함을 잃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주님만을 경외함으로 얻는 참된 지혜와 명철로 우리의 삶을 견고히 세워가게 하옵소서.
바울과 디모데가 거룩한 구별을 위해 희뿌연 석회수를 마시는 육체적 고통까지 기꺼이 감내했던 그 눈물겨운 헌신을 기억합니다. 우리 역시 입술의 고백만 화려한 성도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나의 편안함과 기득권을 과감히 내려놓을 줄 아는 참된 나실인의 삶을 살게 인도하여 주십시오.
힘겨운 삶의 현장 속에서도 주님을 경외함이 우리 지혜의 근본이 되게 하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이 우리의 모든 삶의 자리마다 흘러넘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주님의 부활 생명으로 우리를 굳건하게 하실 것을 믿사오며,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