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시리도록 그립다 가족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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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이혼한 그대에게

망가진 사람들의 결합

과거에는 국가나 가정과 같은 공동체의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현대에는 개인의 행복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행복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신만을 위하는 삶을 살 때 획득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관계성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어른들은 삼남 이녀가 가장 이상적인 자녀의 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남인가 되었고 둘만 나아 잘 기르자고 하였다가 나중에는 하나면 충분하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고 결혼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형제들이 많은 가정에서 자한 사람들이 사회생활에 잘 적응합니다. 다른 형제 자매들과 함께 어울려 잘하는 동안에 양보와 자기 꺾음을 자연스럽게 배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는 자면서 모든 것을 다 누리며 자기 뜻대로 사는 아이가 많은 형제들 속에서 결핍을 느끼며 자한 아이보다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향이 입던 옷을 물려받고 누나로부터 공부도 배우면서 인간으로 사는 법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 결혼해서도 배우자와 가족을 배려하며 잘 살아갑니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함께 해결하려 하고 자기를 내세우기보다는 꺾으면서 가정의 평화를 유지해 가려고 합니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를 꺾으며 양보하는 삶을 살 때 더욱 행복해집니다. 그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의 길을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자기를 꺾고 기가 죽는 경험 안에서 자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가 죽은 뒤에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인간관계를 이루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교육을 받고 자한 젊은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을 위해 자기를 꺾어 본 적이 없고 더더욱 남을 위해서는 기가 죽어본 적이 없는 젊은 남녀둘이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게 되니 사사건 두 사람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이다. 그리고 가정에 어려움이 올 때 함께 힘을 모아서 그것을 극복감에서 인내하지 못합니다.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좋은 배우자를 만난 것 외에도 몇 가지 필수적인 조건이 요구됩니다. 첫째는 좋은 부모입니다. 인간의 도리가 무엇이고 가정이 무엇인지를 알고 열심히 살아가는 좋은 부모를 만나야 합니다.
인간은 부모로부터 처음 교육을 받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도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또한 부모로부터 배운 것들은 배우자와의 관계를 자우합니다. 둘째는 좋은 목회자입니다. 좋은 목회자를 만나 그에게 가정과 신앙의 도리를 배워야 합니다. 부부의 점된 영향을 위해 필요한 태도를 성경을 통해 배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에게는 꺾이지 않던 마음이 목회자에게서 배운 성경의 진리에는 꺾여야 합니다. 체는 좋은 신앙입니다. 거룩한 은혜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포기하고 깨어진 사람은 배우자 때문에 고통을 받을 때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진 상태에서 참으면 마음에 병이 생기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으면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남편을 오히려 불쌍히 여길 수 있습니다. 그 고통을 십자가 삼아 자신도 더 거룩해집니다. 신앙이 그것을 가르하게 합니다. 네.

이혼의 십자가를 지고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제 친구의 아버지는 군인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부인이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다른 남자를 따라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친구 아버지는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에 저녁을 하게 되었는데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국가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하면서 산내 아이셋을 직접 키우셨습니다.
그분이 아이들만 바라보고 하셨습니다. 아침이면 연어 주부처럼 아이들을 깨워 손수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보냈습니다. 또 저녁이면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 친구도 자신의 아버지가 그렇게 사는 것을 몸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에 아버지의 선택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절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자라서 어른이 되어 보니 아버지가 했던 힘 희생과 헌신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인생을 살면 살수록 아버지를 더 존경하고 사랑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비록 이혼을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정을 훌륭 훌륭히 지켜으로써 이혼 후에 자신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었습니다. 누구도 그렇게 그런
삶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인생은 짧지만 사람들마다 수많은 사연을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남녀가 사랑해서 결혼하고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이혼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둘이서 살다 보니 갈등과 고통이 생겨났고 이원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끝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 못한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혼인 서약을 깨고 이혼했습니다. 그렇다면 이혼 후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에 대해서 하나님과 교회 가정과 자기 자신이라는네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첫째로 하나님 앞에서의 삶입니다. 이원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이 행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깊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잘 살아보려고 했었지만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배우자는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버리거나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또 어떻게 살든지 하나님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시인의 고백과 같습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수월에 내 자리를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 139편 7절에서 10절. 인생은 결혼보다 그 의미가 더 크고 살아갈 세월은 더 깁니다. 여러분이 이혼을 했다고 했더라도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깨어진 가정의 상처로 인해서 때로는 살기 싫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분 앞에 펼쳐진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를 비롯한 가족과의 깨어진 인간 관계는 당장 회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혼을 하고 나면 그 사람이 남편이든지 아내이든지간에 모두 상대방을 일방적인 가해자라 생각하고 자신은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먼저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여러분은 결코 가정을 깨뜨린 것에 대해 회개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이혼이라도 어느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잘못해서 가해자가 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물론 더 많이 책임을 져야 할 쪽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가해자이고 다른 쪽이 일방적인 피해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한때는 그렇게 사랑스럽던 배우자가 왜 마음에서 멀어졌을까요? 그 사이에 정신적인 연합이 깨어진 것이 어떻게 한 어느 한쪽만의 책임일까요? 그러나 이혼으로 이미 많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돌아보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혼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을 이혼의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상처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입은 상처가 너무 아파서 상대방의 처 상처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혼을 한 후 복수심에 불타는 마음으로 상대방이 매우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자신의 영혼을 더욱더 곤고하게 할 뿐입니다. 자신이 상처를 입었듯이 상대방도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부분에 대해 하나님께 회개하여야 합니다. 또한 자신이 준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을 상대방에게 용서를 빌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그리고 자신에게 상처를 남긴 상대방에 대해서도 마음깊이 용서하여야 합니다.
물론 이혼의 아픔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당사자에게는 이러한 요구가 가혹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외친 것을 풀어야 할 풀어야 자신의 영혼이 삽니다. 자신의 이혼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또한 다른 결혼을 꿈꾸는 것은 두 번째 이혼을 준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의 인간됨이 그리고 지나간 괴적입니다. 그의 인간됨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삶을 시작한들 그것이 어찌 새로운 삶이겠습니까? 그 사람이 바뀌지 않았는데 어떻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혼했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이온 후에는 현실적으로 헤쳐 나가야 할 인생의 난관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필요합니다. 그리고 오직 회개와 믿음만이 그동안 맡겼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열고 다시 은혜가 그에게 부어지게 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교회 앞에서

둘째로 교회 앞에서의 삶입니다. 사람들은 이혼을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목회자가 말려도 자기의 일이라고 말하면서 이혼을 결행합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욕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에베소서 5장 29절부터 33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우주적 연합의 비밀이 결혼 관계에 예시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은 개인적인 일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 모두 상대방의 배우자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접붙진 지체입니다. 그것을 기초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영적인 연합인 부부 관계가 생겨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혼인의 연합을 깨는 것이 어떻게 개인적인 일일 수 있습니까? 그것은 교회의 몸에 고통을 주는 일입니다. 목회자의 주례로 결혼하여 함께 교회를 섬기며 살아가는 한쌍의 남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치 못할 이유로 이혼했습니다. 그리고도 두 사람이 한 교회에 출석하며 주님을 사랑할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은 찢어졌습니다. 더욱이 그렇게 그 가정이 깨지는 것을 그들의 자녀뿐만 아니라 교회의 다른 가정의 아이들도 보았습니다. 그들이 경험한 가치관의 혼란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혼은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문제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성도가 이혼을함으로써 교회의 몸은 상처를 받고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이혼을 통해서 교회가 상처와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서름과 아픔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미 이혼을 하고 아파하는 여러분을 정죄하여 더욱 힘들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이혼했다고 할지라도 그 때문에 교회도 하나님도 멀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신자인 여러분이 이혼을 해서 가정이 깨어진다면 그 자체가 교회에 큰 상처를 입힌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자신들의 가정이 깨어짐으로 인해 받은 교회의 상처를 기억하면서 그 상처를 보듬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교회 앞에서 죄 의식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아픔은 교회의 아픔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속히 회복하고 이제는 여러분이 교회의 다른 아픈 지체들을 위로하고 고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자신은 그리스도의 몸에 상처를 준 사람임을 항상 기억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그리스도의 몸을 보호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더 이상 아픔을 주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일평생 살아야 합니다.

깨어진 가정 앞에서

셋째로 깨어진 가정 앞에서의 삶입니다. 이혼을 했습니다. 삶 자체가 모두 찢어졌습니다. 껍데기뿐이던 가정은 바게 되었고 가죽도 못 터졌습니다.
그렇게 깨어진 가정 앞에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이것이 매우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지체들에게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환경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상황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어쩌 어쩌면 돌아갈 자리가 아예 없어 아예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깨어진 가정에 대한 책임감을 완전히 패하게 하는 명제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돌아갈 자리가 없으니 나도 이제 자유로운 몸이라 여기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고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를 시도를 하려고 할 때 여러분에게 질적으로 많은 고난이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비해 별가 적을 수도 있습니다. 막상 가정으로 돌아간다 해도 깨어진 배우자와의 관계가 양과 가족과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있다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서 그 사람을 완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기입니다. 이것이 이미 이혼을 한 공사자에게 얼마나 가혹한 요구인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가장 고통스러운 가시바길이 생명의 길이 길인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깨뜨린 가정에 대해 가족의 용서를 빌고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제는 자신이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가정을 꾸였지만 이제는 주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가정을 이루는 것이 진정으로 옳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족을 위한 아래 미랄이 되겠다는 심정을 가지고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못하였기 때문에 흔들리 흔들린 가정과 상처받는 자녀를 위하여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고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돌아가지만 앞으로 저의 만족은 배우자도 자신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이 저의 만족입니다. 주님만 저와 함께 계시면 충분합니다. 가정으로 돌아가십시오. 남편이 무시한다 해도 아내가 용서에 아 주지 않는다 해도 자신의 잘못을 빌고 가정으로 돌아가십시오. 그 길이 가장 울바른 길이고 결국은 승리하는 길이기에 여러분이 나게 될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내다보면서 가정으로 돌아가는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현재 미리는 행복도이 금도 모두 지나는 것입니다.이 세상도 지나고 그 정욕도 지납니다. 그 사람을 다시 사랑하기가 어렵게 느껴질 때마다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를 적대하고 그분을 용서로 대하던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 빛을 바라보면서 남은 인생을 이제는 주님을 위해 가정을 꾸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비밀 >>

자기 자신을 향하여

넷째로 자기 자신 앞에서의 삶입니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이 어떻게 자신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떠나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무 아무리 멀리 여행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항상 자기 안에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삶의 사태들을 만나든지 나는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냅니다. 여러분은 이혼한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큰 은혜를 받고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려 할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요인으로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에게 공고하고 싶은 것은 경순한 마음으로 육신을 위해서 두 번 세 번 결혼하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결혼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난 이혼이라는 엄청난 사건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한 후에 상처받은 자신의 자녀에게 대한 진지한 고려와 성찰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깊은 성찰과 변화의 가정이 없이 가정이 깨어지자마자 육신의 생각으로 또다시 결혼한다면 그것은 정욕을 따라 사는 삶일 뿐입니다. 다시 새로운 가정을 이룰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가정이 불행하게 끝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충분한 성찰과 반성, 은혜에 의한 변화가 먼저 필요합니다. 하고 나면 이제 현실적인 문제들이 생깁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정을 깨뜨렸다는 정제감이 들게 되고 주의 사람들로부터 도덕적인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깨어져 버린 자녀와의 관계, 자녀 앞에서 잃어버린 부모로서의 당당 당당함을 생각하며 이제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타일를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원한 사람들 가운데 양심적인 사람들은 일평생 아이들 앞에서 죄인의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앞으로 혼자 살아야 하는데 경제적인 상황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때로는 정욕의 길들려진 육신은 어떻게 제어해야 할지 등이 모든 것이 십자가로 남습니다. 요원하기 전에는이 모든 것들이 뱃속에 있는 아이와 같았는데 이혼을 하자마자 이것들이 태어난 아이처럼 밖으로 뛰쳐 나와 현실이 문제가 됩니다.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을 간절히 붙들고 의지하며 사는 길 외에 무슨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앞으로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남편은 여러분을 버렸으나 하늘 아버지는 여러분을 버리지 버리시는 법이 없습니다.이 세상에 있는 아내는 여러분이 가장 힘들 때 배신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배신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한번 이혼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지만 이제는 마음을 온전히 지키면서 주님을 깊이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

이혼 그것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당사자는 어둠 속에서 남이 알지 못하는 고통을 겪었겠습니까? 여러분이 오죽 했으면 살을 찢는 아픔 속에서 이혼하였겠습니까? 양심은 끊임없이 마음에 송사하고 속의 걱정, 밖에 근심이 홀로된 외로움의 고통을 더합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가정을 깨뜨린 자신을 발견합니다. 세상은 여러분에게 이용한 남자, 이혼녀, 가정도 못 지킨 사람, 자식을 버린 부모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선하시고 자비로우십니다. 역대아 5장 13절.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상처받은 한 마리 어린 양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자기 안목에 좋은 대로 결혼을 하겠다고 할 때에도 주님께서는 허락하셨습니다. 이혼을 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재산을 나누어 떠날 때도 아버지는 탕자를 사랑하였고 모든 것을 허의하고 빈 털털리로 돌아올 때도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1절에서 24절.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도 타국에서 화랑 방탕하게 모든 재물을 탕진한 후 비참하게 된 때에도 탕자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이 세상 모든 사람이 여러분을 버린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당신을 찾는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시편 9편 10절. 여러분이 이혼을 했어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깊이 사랑하시는 당신의 자녀입니다. 단지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부족하여 그것을 못 느낄 뿐입니다. 하나님 밖에서의 행복을 꿈꾸다가 행복 대신에 고통을 겪고 있는 여러분을 볼 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아파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더 많이 아파하시지 않겠습니까?는 >>

맺는 말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선지자 나단에게 그가 겪을 미래의 일에 대해 예언을 받았습니다. 사무엘하 12장 10절부터 11절.이 이 때문에 다윗은 왕의 지위에 올랐지만 일평생 고통 속에서 지내야 했습니다.이는 모두 다윗이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은 다의 영혼을 더욱 아름게 하였습니다. 그는 고통 중에서 하나님만 바라보습니다. 그의 삶에 안식이 없었기에이 세상의 왕국보다는 사모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쁨보다도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성도의 기쁨을 찾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죄의 대가로 주어진 징계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다을훌륭드는 훌륭한 성화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 땅에 살아 있는날 동안 이혼의 십자가는 벗어버릴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어둠 속에서 헤매던 그 많은 날들 은혜의 말씀에 빛을 바꿔도 돌이킬 수 없는 과거 때문에 흘렸던 죄의 참회의 눈물도 하나님께서는 모두 보셨습니다. 여러분이 혼자 버려진 것처럼 느낄 때 사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가장 가까이에 계십니다. 신학자 몰투마는 인간이 극심하게 고통받을 때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만 바로 그때 주님께서는 그들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의 고난에 동참하고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이혼의 아픔을 안고 두려움과 괴로움 속에서 홀로 울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거기 계셔서 여러분의 눈물을 씻기십니다.
사람들의 편견이나 구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좋은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하지도 마십시오. 이제 불완전한 남편이 아니라 완전하신 주님을 남편으로 모시고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인생에 대한 또 다른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기다리십시오. 이혼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변함 없이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인간인 부모도 자신의 자녀가 이혼했다고 해서 자녀를 버리지 않는데 하물며 우리 아버지신 하나님께서 이혼한 당신의 자녀를 더욱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을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남편으로 아버지로 연인으로 모시고 삶의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지간에 온전히 의지하십시오.
참된 행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시편 73편 28절. 아멘. >> 김중구 목사님 마치는 이야기 읽어 주세요. >>

마치는 이야기.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저에게는 쌍둥이 형이 있었습니다. 형은 단순한 사람이 사람이라서 막무간로 행동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저보다 형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려던 축복을 형에게 주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아니었더라면 저에게 돌아올 유산을 모두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결혼 생활도 그리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사기꾼 같은 장인 어른과 이간질에능한 천남들이 버티고 있는 가운데 질투심이 질투심 강한 두
자매와 그녀의 몸종들을 아내로 맞아들렸습니다. 그는 많은 아내를 바란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사랑하는 한 여자와 결혼하여 화목하고 안정된 가정을 누리고자 하였을 뿐인데 인생은 제 제 뜻대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한낮에 살인적인 더위 살이 애인이는듯한 바람 반바람을 무릎으며 눈일도 없이 장인 어른의 양떼를 지켰습니다. 그렇게 고단한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제가 그리던 것은 따뜻함과 심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왔어도 저는 쉴 수 없었습니다. 아내들의 질투와 원막 시기심 가득한 쟁쟁 그림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한 명 한 명 태어나는 아이들은 제게 기쁨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아이들이 저의 든든한 버티목이 되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하자 저의 괴로움도 커져갔습니다. 첫째 아들은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둘째, 셋째 아들은 다른 민족을 살육하고 약탈함으로써 멸문지화를 초래할 뻔하였습니다. 어 금지 오겹이었던 딸은 가장 예쁠 때 간간 당하여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두군다나 위의 아들들 여은 작당하여 제가 가장 사랑하던 아들을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내 라해를 제일 많이 닮았던 아이. 일찍 어미가 죽었기에 엄마의 정을 알지 못했던 아이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준다고 한 것이 화를 조례하였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그 아이를 무섭게 시기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앞에 섰을 때 이렇게 어 말하였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300 아 130년이다 내 나이가 얼마 되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에 연주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세기 47장 9절 만약이 험악한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부모의 집을 떠나 외삼촌 집으로 갈 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함께 하실 것 하실 것이며 저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창세기 18장 13절에서 15절.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 그대로 언제나 제게 신실하셨습니다. 작이 20년간 저를 속여 삭을 열번이나 변경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막으셔서 저의 몫을 챙겨 주셨습니다. 창세기 31장 7절에서 9절. 자신의 재산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장인 어른이 저를 공격하려고 쫓아왔을 때도 하나님께서 그를 막으셔서 저의 가족을 지켜 주셨습니다. 창세기 31장 24절. 제 상둥의 형이 저에게 복수하기 위해 장정 400명을 동원하여 달려나왔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극적인 방법으로 형과 제가 눈물로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창세기 33장 4절. 그리고 가나안 민족에게 온 가족이 살육당할 위기 가운데서도 저희 가족을 지켜 주셨습니다.
창세기 35장 5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아버지 이삭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창세기 35장 27절 무엇보다도 종으로 팔려갔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46장 29절에서 30절.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저를 돌보셨기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생육하고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애가 내게서 나오고 왕들이 내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내게 주고 내가 내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창세기 35장 11절에서 12절는 약속에 신실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음을 앞두 때에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느니와 창세기 48장 21절라고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앞에 이야기는 야곱의
생애를 조금 각색하여 풀이한 것입니다. 형의 보복이 두려워서 도망칠 듯 혈년 단신으로 바딴 아람으로 갔던 야곱이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야곱을 어 반길 반길지 언제쯤이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어머니를 만나게 될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약속은 있었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볼 때 그 약속은 성취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서 야곱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살아살아보려고 몸부림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민족 믿음의 조상이라는 어 이름에는 글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이제 이스라엘의 12 지파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결합하는 야곱과 그의 가족을 택하셔서 당신의 위대한 구속 역사를 이루시는 일의 징금 다리로 삼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가족에게서 한 민족이 한 나라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야곱의 후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나셨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상처투성입니까? 차라리 아버지가 없었 없었으면 더 나을 뻔하였다고 생각합니까?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습니까?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재빠른 형들이 얄미기만 합니까? 수십년간 온갖 희생으로 자녀를 길렀는데 이제 다 컸다고 부모를 무시합니까? 우리의 가족 안에 사랑이 흘러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습니까? 가족 단계가 회복되리라는 꿈은 지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은 항상 성경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하셨던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동일하게 하십니다. 일어나 베렐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여 내가 내 형 에스의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내게 나타났던 하나님께서 거기에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창세기 35장 1절이 말씀은 너는 내 앞에 서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고단함은 하나님을 등진돼서 등진돼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이제 성경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이제 우리도 야곱과 같이 고백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일어나 베렐로 올라가자. 내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창세기 35장 3절. 그때 우리가 꿈꾸었던 꿈은 현실이 될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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