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속의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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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는 계속해서 하나바이블을 따라서 창세기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오늘의 설교제목은 도시속의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도시에 살고있죠? 그런데 이 도시라는 공간은요. 신학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은 도시를 중요시여깁니다. 미국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팀 켈러 목사님께서는 21세기에 기독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사역 중 하나로 도시선교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도시라는 곳은 성경에서도 중요시 여깁니다.
자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사람들이 성읍과 탑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개역개정 성경은 성읍과 탑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영어성경과 새 번역 성경을 보면 이 부분을 도시와 탑을 쌓았다고 표현했습니다. 영어성경 4절 읽기, 새 번역 성경 4절 읽기, 그리고 8절 읽으면 그 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지금 도시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당시 도시는 오늘날 도시처럼 막 아파트나 학원이 많은 게 아니라 성읍으로 둘러쌓여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 들은 도시를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본문은 오늘날 도시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도시속의 그리스도인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볼까 합니다.
1.도시를 세운 이유
2. 도시를 세운다는 것
3. 하나님의 개입
도시를 세운 이유
4절을 봅시다. 4절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4절 읽기
자 여기서 중요한것은요. 이것은 이렇게 받아들이면 더 정확합니다.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이름을 낸다.
자 봅시다. 온 땅위에 흩어짐을 면하자 이게 무슨뜻일까? 이것은요. 우리가 창세기 1:28절과 창세기 9장 1절을 한번 봐야합니다. 이거 읽기
자 이거 기억나시나요? 생육하고 번성하라 . 이 말을 최초의 아담과 하와한테 일단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죠? 그리고 둘째로 노아의 홍수로 온 인류를 쓸어버린 후 다시 명령하셨죠.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처음에도 그리고 홍수로 쓸어버리신 후에도 다시 명령하실 정도로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중요한 명령이었습니다. 그죠? 즉 이것은 제가 그때 설명드렸죠? 세상의 어두운 곳에 빛된 삶을 살고, 그리고 세상의 필요를 채우는 역할을 하라. 이렇게 설명 드렸죠? 그리고 이 것이 점점 퍼지려면 흩어져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삶을 살려면 세상에 흩어져야하듯이 이 당시는 막 인류가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자손들이 점점 퍼지면서 하나님 나라가 점점 세계 곳곳에 확장되기를 원하셨어요. 즉 이 명령은 선교적 명령입니다. 근데 여러분 이 생육하고 번성하려고 하면요. 흩어져야합니다. 흩어져야해요. 그리고 이 흩어지려면요. 어느정도 리스크를 감수해야합니다. 모험을 감수해야해요.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서 선교를 가려면요. 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하죠? 우리나라에도 선교사님들이 들어와서 많이 죽었죠. 그 당시 절망적인 조선의 상황에 그 어둠가운데 빛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복음들고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셨기에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죠. 그리고 뿐만 아니라 제가 아까 생육하고 번성하라에 그 필요들을 채우는 역할이 있다고 했죠? 그런데 오늘 우리나라 수 많은 대학과 병원들은 선교사님들 오셔서 지으신거에요. 그 분들은 우리나라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고 우리나라의 수 많은 필요들을 채우셨죠. 학교와 병원등을 세우고 그 외에도 수많은 도움을 한국에 주셨죠. 그렇게에 오늘날 한국은 실제로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최초의 인류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선교의 명령을 주신겁니다. 너희끼리 모여있지 말고 흩어져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라. 그런데 이들은 그러지 않았죠? 왜냐 자신들의 안전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죠?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성읍 즉 도시와 탑을 건설합니다. 나는 내 안전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명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도시와 탑을 건설하겠습니다. 나는 오히려 내 안전을 더 강화하기 위해 도시를 건설하겠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하나님의 사명을 거절한 후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보입니다. 2절을 한번봅시다. 이런 표현이 있죠.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이 표현은 어ᄄᅠᆫ 의미냐면. 일단 성경에서 동쪽은 많은 경우에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담과 하와가 에뎀에서 쫒겨난 후 에덴을 지키는 불과 칼도 에덴 동쪽에 있었구요. 가인도 하나님을 떠나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했었죠. 이처럼 동쪽은 성경에서 부정적으로 적힌 의미가 있습니다. 자 그러면 동방으로 옮기다가 는 무슨 의미일까요?
이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는 방식을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 시날 평지를 발견하고 그곳에 도시와 탑을 건설하죠.
이들이 도시를 짓는 이유는 바로 본문 4절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붙들고 내 모든 안전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안전 삼아야 하는 인간이 하나님의 사명을 거절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어 자신의 안전을 삼는 것. 이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여기서 이름을 낸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유명해지고 싶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들은요.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이름을 낸것입니다. 즉 이들은요. 자기 자신이 안전하기 위해서 이름을 내었습니다.
이 당시 고대시대에 이름 권력과 영향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도시와 탑을 건설하여 이름을 낸다는 것은 더 강한 집단을 만들어 힘을 가져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하늘에 높이 닿는 탑을 쌓아 내 정체성을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여러분이 예를들어 공부를 열심히해서 스카이 대학을 갔다고 해봅시다. 혹은 의대생이 되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여러분은요. 아 나는 서울대 생이야 라는 정체성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의대생이야 라는 정체성을 얻습니다. 그리고 이 정체성은 그 자체로 나를 안전감을 줍니다. 그죠? 이 타이틀만 있어도 먹고사는데 훨씬 유리합니다. 그리고 자존감을 높게하는 영향도 있죠. 그리고 굳이 내가 나를 증명하려고 안해도 보통 타인들이 인정을 해주죠. 이 정체성을 얻기위해 탑을 쌓고 도시를 건설하기도 합니다.
2. 도시가 갖는 의미
자 그런데 여기서 질문입니다. 이 성경에서 도시와 탑을 세우는 자체가 나쁜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이런 오류를 피해야 합니다. 어떤 나쁜 이야기가 있으면 그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것이 나쁘다고 보는 것이죠. 예를들면 사울이 나쁜 인물로 묘사되기 때문에 사울이 한 모든 행동을 나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근데 그렇지 않아요. 성경에서 사울이 잘한 일도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것도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물이 한 일은 다 괜찮은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근데 그렇지 않죠. 아브라함, 다윗, 요셉 등 다 결점이 많은 인물들입니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와 모든 인물들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지요.
이 바벨탑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시를 건설하고 탑을 쌓는 것 자체가 나쁜 행위는 아닙니다. 실제로 성경에서 도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성경에 나오는 도피성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복수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죠. 그 외에도 도시는 폭력을 억제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많이 발달한 도시일수록 오히려 더 안전하죠. 시골이나 섬보다 도시가 더 안전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죠? 치안도 훨씬 잘 되어있고, 위험한 상황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많습니다.
이처럼 도시는 성경이 쓰인 그 당시나 오늘날이나 우리에게 안전을 제공해줍니다. 그리고 성경은 결국 인류가 발전해서 도시를 세우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도 도시의 형태를 띕니다. 따라서 도시를 짓는 자체가 나쁜 행동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일까요? 바로 도시를 건설하는 이유가 문제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안전과 정체성 문제입니다. 성경은 우리들 보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라고 말합니다. 즉 오직 하나님만을 내 안전과 정체성으로 삼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인간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은 거절하고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안전과 정체성을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로 대입해야 더 이해가 쉽고 또 말씀을 적용하기 쉬울 거 같습니다. 자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자신의 안전과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시를 건설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맞죠? 그럼 이 본문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ᄄᅠᆫ 의미가 있을까요?
자 생각을 해봅시다. 도시를 건설하는 목적은 결국 그 도시를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맞죠?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이 도시를 어떠한 태도로 이용하는지를 보면 곧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을겁니다.
대치동이라는 도시를 생각해보죠. 물론 대치동을 도시라는 단위로 말하기엔 하나의 좀 작은 느낌이 있지만 인류 역사가운데 도시에 범위가 작은 경우들도 있었으니깐 한번 이렇게 설명을 해볼게요.
이 대치동이라는 도시는요. (제가 중고등부 전도사니깐 중고등부 학생들 기준으로 얘기해보죠.) 내 안전과 내 이름을 내기 위해서 공부라는 탑을 쌓기 매우 용이합니다. 그리고 타 도시에 비해서 대학간판을 따내서 내 이름을 내고 정체성을 삼기에 매우 유리한 도시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이 지역에서 학원을 보내기 위해서 이사를 올 정도죠. 왜냐하면 이 도시는 그것으로 내 안전을 삼기가 매우 유리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런데 봅시다. 제가 아까 도시를 건설하고 탑을 쌓는 행위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했지요? 그죠? 그 말은 즉슨. 단순히 이 대치동이라는 환경을 이용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성경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겠죠? 그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단 그 목적에서 갈리겠죠.
아까 그들은 하나님의 사명을 거절했죠. 만약에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환경을 활용해서 최선을 다해서 공부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위해 쓴다면 그것은 오히려 좋은 걸겁니다. 그리고 그 공부한 것을 통해서 이 세상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데 쓴다면 다시 말해서 이 땅의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쓴다면 그것은 오히려 영광될겁니다. 나의 안전은 다 하나님께 맡긴 채 내가 가진 지식과 재능을 통해 이 세상의 필요를 채우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섬긴다면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큰 유익을 줄겁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이 도시를 내가 더 힘을 가져서, 내가 더 좋은 대학을 가서 내 안전을 강화하고 내가 더 좋은 정체성을 갖기위해 즉 오로지 나를 위해 쓴다면 그것은 오히려 오늘 본문에 바벨탑을 쌓는 것과 같은 것일겁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이 지역에서 공부하나요?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쓰기위해선가요. 아니면 내 이름을 내고 내가 더 안전해지기 위해선가요?
3. 하나님의 개입
자 5-8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께서 이 광경을 보시고요. 이곳으로 내려오십니다. 본격적으로 이 세상에 개입하시기 위해서요. 원래 하나였던 언어를요. 혼잡하게해서 흩어버리십니다. 어떤 한 집단이 죄성으로 인해 잘못된 방향으로 뭉쳐서 나아가면 그것은 겉잡을 수가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2차 세계대전이 있습니다. 그 당시 독일은 히틀러를 중심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이데올로기로 뭉쳤죠. 그 결과 어떻게 됐죠?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었으며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사용하라고 주신 기술을 사람을 죽이는 핵무기로 사용했습니다. 잘못된 신념을 가진자들이 하나로 뭉치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 어떻게 하시죠? 흩으시죠. 흩으십니다. 언어를 나눠서 흩으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ᄄᅠᇂ게 했죠? 8절 여호와께서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라고 나옵니다. 그칠 수 밖에 없죠. 말이 안 통하는데. 어 같이 일하는데. 옆에 사람보고 망치가져와 했는데 톱 가져오고 이러면 일 같이 못하죠. 그러니까 결국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치고 흩어졌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하나님의 개입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앞으로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생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때로는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개입하셔서 여러분이 세워놓은 계획을 흩으실 때가 있을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을 사랑해서요. 여러분들이 만약에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을 여러분의 안전으로 삼고 여러분의 정체성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삶을 망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정말 노력해서 쌓아놓은 커리어를 AI가 다 흩어버리지 않을거라는 자신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절대 변하지 않는 토대위에 여러분의 정체성과 안전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잖아요? 이것은 여러분을 망칠겁니다.
“그러니 이제 네 이름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살아라.”)
여러분이 공부를 여러분의 정체성과 안전으로 둔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쉬지 못하게 할 겁니다. 여러분은 쉬지 못할뿐더러 쉬더라도 계속 공부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성적이 떨어졌을 때 단순히 슬퍼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며 성적이 오를 때 단순히 기뻐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나치게 기뻐할겁니다. 마치 구원을 얻은 것 처럼요. 언제 변할지 모르는 기준에 토대를 두는 것은 우리한테 안 좋습니다. (나는 사역 이야기로 바꿀 수 있다.)
4. 결론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 이 대치동이라는 도시는요. 신앙의 측면에서는 양날의 검인 거 같습니다. 이 지역은 공부라는 측면에서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환경도 잘 갖추어져 있지요. 이 도시에서 얻은 기회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위해서 쓴다면 정말 영광될 것 같습니다. 크리스찬이 공부를 잘하면 그만큼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지죠. 물론 공부를 못해도 하나님께서 그거대로 쓰신지만요.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이 도시를 오직 여러분의 이름을 내기위해서 쓴다면, 여러분의 안전을 확보하고 여러분의 정체성을 얻기 위해 이 도시를 이용한다면 여러분은 신앙의 측면에서는 정말 많이 손해를 볼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절대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지 않을겁니다.
오직 여러분의 안전과 정체성을 하나님께 두십시오. 그리고 이 도시가 주는 이득을 내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가 아닌 주님의 이름을 위해 쓰십시오.
여러분 그런데 그게 쉽나요? 쉽지 않지요.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ᄄᅠᇂ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닮아야 할 대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누구죠? 예수님이죠. 여러분 예수님을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은 하늘에 닿기 위해 탑을 쌓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요. 이미 하늘에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모든 것을 다스리며 이미 왕같이 사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그 사명 감당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 오십니다. 그 것도 신이신 그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요. 인간은 하늘에 닿기 위해 탑을 쌓지만 그분은 하늘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으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삶은 인류를 구원하는 위대한 역사를 씁니다. 그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걸은길을 우리도 걸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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