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위해 스스로 종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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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및 찬송가)
제 850차 건축을 위한 새벽기도회에 오신 성도님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통성 기도)
우리 다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1️⃣ 먼저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시대 속에서도 대한민국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가 바로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의 방법과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내일 있을 지방선거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사 이 땅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고, 국민들 안에는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는 마음보다 이해하고 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 이 민족이 복음 위에 바로 서게 하시고, 한국교회가 다시 기도의 자리와 말씀의 자리로 돌아가 민족을 살리는 영적 사명을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2️⃣ 이어서 우리 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사람의 숫자나 외적인 모습만을 바라보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 위에 바로 서는 건강한 교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배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게 하시고,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마다 살아 역사하게 하여 주옵소서.
담임목사님과 모든 교역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영육의 강건함을 더하여 주시고, 모든 직분자들이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되게 섬기게 하여 주옵소서.
3️⃣ 마지막으로 다음세대를 위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가 점점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시대 속에서도 우리 자녀들이 믿음을 잃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품게 하시고, 예배를 사랑하며 말씀 붙드는 세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학업과 진로 가운데 하나님께서 지혜를 더하여 주시고, 세상의 성공만 바라보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비전의 사람들로 세워 주옵소서.
계속해서 다산중학교, 동화중학교, 도농고등학교에서 인큐베이팅 사역이 새싹이 올라가 자라나듯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사역들 모두 주님께 영광 돌리며 주께서 이루시길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이 시간 이러한 기도제목들을 놓고 다 함께 주여 한번 부르짖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붙드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새벽을 깨워 주님 앞에 나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세상의 분주함보다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호흡과 생명, 오늘 하루의 모든 시간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이 새벽 우리의 심령을 살펴 주시옵소서. 혹시 죄로 무뎌진 마음이 있다면 깨뜨려 주시고, 염려와 걱정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있다면 주님의 평안으로 덮어 주시옵소서. 세상 속에서 지치고 무너졌던 마음들이 오늘 말씀과 기도를 통해 다시 회복되게 하시고, 성령으로 새 힘을 얻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를 붙들어 주셔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교회, 말씀 위에 굳게 서는 교회 되게 하시고, 다음세대와 가정과 모든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여 주셔서 어디에 있든지 예배자로 살아가게 하시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한 종이 말씀을 선포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은혜 받게 하시고 그 은혜로 오늘도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시간 오직 주님께서 홀로 영광받으실 줄 믿사오며, 이 모든 말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봉독)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 말씀은요. [고린도전서 9:13-23] 입니다. 저와 함께 한절씩 번갈아가며 읽고, 마지막 구절은 합독 하겠습니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설교 제목: 복음을 위해 스스로 종이 되다
설교 제목: 복음을 위해 스스로 종이 되다
본문: 고린도전서 9:13-23
할렐루야! 오늘은 “복음을 위해 스스로 종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INTRO) 매여있을 때 오히려 더 자유하다
INTRO) 매여있을 때 오히려 더 자유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아주 놀라운 말을 합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여러분, 자유인인데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얼핏 들으면 모순처럼 들립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라는 울타리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가야 하고,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하고,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졸업하면 진짜 자유로워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보면 어떻습니까? 오히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깨닫습니다. 나를 지켜주던 울타리가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자유는 아무것에도 속하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올바른 관계 안에 있을 때, 올바른 울타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더 자유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스스로 종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복음 안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복음 안에서 누리는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BIBLE 1) 권리가 있었지만 복음을 위해 내려놓았다 (9:13-18)
BIBLE 1) 권리가 있었지만 복음을 위해 내려놓았다 (9:13-18)
오늘 본문에는 중요한 배경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진짜 사도라면 왜 사례를 받지 않느냐?” “다른 사도들은 지원을 받는데 왜 바울은 일하면서 사역하느냐?” “오히려 사도가 아니라는 증거 아니냐?” 이런 말들이 교회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3-14절에서 말합니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나에게 권리가 없어서 지원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제단의 제물로 생계를 유지했듯이 복음 사역자도 복음으로 인해 생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주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원리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16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여기서 ‘부득불’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이 말은 억지로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기 싫은데 참고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복음은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사명이었습니다. 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 없듯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권리를 포기했습니까? 18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바울은 복음의 순수함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저 사람 돈 때문에 복음 전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복음 앞에 장애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복음이 더 잘 전해질 수 있다면, 사람들이 복음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순전히 무엇을 위해서 입니까? ‘복음’을 위해서 입니다.
BIBLE 2) 자유인이었지만 스스로 종이 되었다 (9:19-23)
BIBLE 2) 자유인이었지만 스스로 종이 되었다 (9:19-23)
그리고 바울은 이 원리를 자신의 삶 전체에 적용합니다. 19절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은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제가 쉬운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9:20-23 쉬운성경]
20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들을 얻고자 유대인처럼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비록 나 자신은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그들을 얻기 위해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21 율법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록 나 자신은 하나님의 율법을 떠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는 사람들을 얻기 위해 율법 없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22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과 같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모든 방법을 다하여 그들 중에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3 나는 복음이 주는 복에 참여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이라는 그 진리를 전하는데 있어 타협한 것이 아닙니다. 전하는 것이 어려워 세상에 타협하고, 사람에게, 관계에서 타협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낮춘 것입니다. 내 방식을 고집하지 않았고, 내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고, 내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은 유대인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자 처럼, 자신을 낮춰 다가갔다는 것이죠.
왜 그랬을까요? 바울은 자신이 어떤 은혜로 구원받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빌립보서 2장은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우리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그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내려오셨는데, 내가 복음을 위해 내려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이 바울을 움직인 힘이었습니다. 즉 ‘복음’을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낮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TOUCH)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자유한 사람들입니다
TOUCH)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자유한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교회에 너무 얽매여 있는 것 아니야?” “주일마다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게 자유로운 거야?” “그렇게 살아서 뭐가 좋으냐?”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정말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갇혀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묶여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가장 자유합니다. 죄의 권세에서 자유합니다.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합니다. 세상의 평가와 시선에서 자유합니다. 끊임없이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서도 자유합니다.
세상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본 사람들은 압니다. 그 자리가 얼마나 무겁고 외로운 자리인지를 말입니다. 내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내가 실패하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으며,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합니다. 그리스도께 매여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복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종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내 자존심보다 한 영혼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내 권리보다 한 사람의 구원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 있습니까? 직장에 있습니까? 학교에 있습니까? 가까운 친구 가운데 있습니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때로는 내가 먼저 손해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먼저 이해하고 품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내 자존심을 조금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의 자리와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는 우리를 묶어 두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가장 자유롭게 하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기억하시고, 그 자유를 한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시간 아멘으로 화답하며 교회 예배당 건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 예배당 건축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우리를 위해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묵상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사랑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복음의 은혜가 오늘도 우리 마음 가운데 새롭게 살아나게 하여 주옵소서.
둘째,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삶으로 살아내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날마다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그 자유로 내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한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각자 마음 속에 놓고 기도하시는 기도제목들 붙잡고
주여 한번 부르짖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