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31 청년교회
Notes
Transcript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아주 현실적인 갈등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죄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명확한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인데, 포기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전서 본문은 바로 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아주 중요한 기준을 제시해 줍니다.
1. 참된 자유는 이웃의 믿음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편지를 보낸 고린도라는 도시는 우상 숭배가 일상이던 곳이었습니다. 당시 고린도의 고기 시장(마켈룸)에 유통되는 거의 모든 고기는 이방 신전에서 제물로 바쳐졌던 것들이었습니다.
이때 고린도 교회 안에서 믿음과 지식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가짜일 뿐이고,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지으셨으니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이들의 말은 신학적으로 전혀 틀린 것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자신의 자유를 자랑했습니다.
이들을 향해 바울은 본문 23절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율법에서 벗어난 자유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자유를 사용하는 '태도'를 지적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덕을 세우다'라는 헬라어 원어는 '오이코도메오(οἰκοδομέω)'입니다. 본래 건축에서 '집을 짓는다'는 뜻입니다.
즉 바울은 원독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진 그 지식과 자유가, 지금 내 옆에 있는 형제의 믿음이라는 집을 튼튼하게 지어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무너뜨리고 있습니까?"
바울은 25절에서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의심하지 말고 먹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음식이니 자유롭게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8절에 보면, 옆에 있는 누군가가 "이것은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입니다"라고 알려준다면 그때는 먹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왜일까요? 고기가 부정해져서가 아닙니다. 그 말을 한 형제의 '연약한 양심'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여전히 과거의 우상 숭배에 대한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는데, 믿음이 좋다는 내가 아무렇지 않게 먹어버리면 그 형제가 신앙의 깊은 상처를 받고 시험에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나에게는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자유와 권리가 있지만, 내 형제가 다친다면 나는 그 권리를 기꺼이 내려놓겠습니다."
2. 권리를 포기함으로 이웃을 살린 사람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이처럼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포기함으로 이웃을 살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구약 창세기 13장의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조카 롯과 가축이 많아져 서로 다투게 되자 땅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롯을 거두어준 삼촌으로서, 또 가장으로서 먼저 비옥하고 좋은 땅을 선택할 권리는 당연히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마땅한 '우선권과 기득권'을 조카에게 흔쾌히 양보합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자신의 권리보다 조카와의 평화를 선택한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더 넓은 지경의 축복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신약에는 빌레몬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에게는 주인의 돈을 훔쳐 도망친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법은 도망친 노예를 주인이 마음대로 가혹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보장했습니다. 빌레몬에게는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노예를 심판할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바울을 통해 오네시모가 회심하자,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내 그를 벌할 권리를 내려놓고 형제로 받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빌레몬은 자신의 정당한 분노와 심판의 권리를 포기하고 그를 용서합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골로새서 4장을 보면, 오네시모는 바울의 편지를 교회에 직접 전달하는 훌륭한 동역자로 세워집니다. 나아가 초대 교회 역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훗날 소아시아 지역의 핵심인 에베소 교회를 이끄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됩니다. 빌레몬이 심판의 권리를 포기했을 때, 죽을 수밖에 없었던 한 영혼이 살아나 교회를 세우는 기둥이 된 것입니다.
3. 가장 위대한 권리 포기, 십자가
성도 여러분,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합니까? 단순히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11장 1절에서 바울은 편지의 결론을 이렇게 맺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 역시 복음을 전하며 마땅히 받아야 할 생활비의 권리조차, 혹여나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될까 스스로 포기하고 천막을 지으며 살았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님을 깊이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영광과 권리를 누리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반역하고 실패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하늘의 모든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시고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바로 그 십자가의 권리 포기를 통해 생명을 얻은 사람들을 뜻합니다.
4. 일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습니다"라는 기도를 참 많이 합니다. 오늘 본문 31절의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세상에서 1등을 하고 거창한 업적을 이루어야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32절과 33절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줍니다. "거치는 자(장애물)가 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돈, 시간, 지위, 자유를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내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처럼 내 옆에 있는 연약한 형제를 위해 기꺼이 양보해 주는 것. 내가 충분히 따져 묻고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빌레몬처럼 한 걸음 물러서서 참아주고 덮어주는 것. 그것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고 구원을 얻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삶을 통해 받으시는 가장 큰 영광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지 못하고 집착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 욕망의 노예가 되는 길입니다. 진정한 자유인은 형제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가진 권리를 스스로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번 한 주간,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내 정당함을 먼저 주장하기보다 이웃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그 작은 양보와 포기가 생명을 살리는 씨앗이 되어, 십자가의 사랑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복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살아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은,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살도록 돕는 일입니다.
29절 내가 지금 말하는 양심은 당신 자신의 양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사 음식을 먹는 문제와 관련해서 바울이 내린 최종 결론은 믿는 자가 (먹든지 먹지 않드지, 마시든지 마시지 않든지) 어떤 행동을 취하든, 그것은 결과적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자유, 기쁨, 유익보다는 다른 믿음의 형제들의 양심과 기쁨과 유익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런 자신의 절제와 배려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