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공동생활_함께 드리는 기도
성도의 공동생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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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및 주제 분석: 함께 드리는 기도 - 성도의 공동생활]
[구조 및 주제 분석: 함께 드리는 기도 - 성도의 공동생활]
이 소스 자료를 바탕으로 **'성도의 공동생활: 함께 드리는 기도의 신비와 능력'**이라는 주제로 1시간 분량의 강연이나 공부를 위한 체계적인 요약안을 작성해 드립니다.
[강연안] 성도의 공동생활: 함께 드리는 기도의 신비와 능력
[강연안] 성도의 공동생활: 함께 드리는 기도의 신비와 능력
1. 서론: 박해와 위기 속에 피어난 일심(一心)의 기도 (10분)
1. 서론: 박해와 위기 속에 피어난 일심(一心)의 기도 (10분)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복음이 전파되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문초와 구타를 당하고 돌아왔을 때, 초대 교회 공동체는 두려움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사도행전 4장의 배경:
사도들의 고난 소식을 들은 성도들은 무력으로 대항하는 대신, .공동체의 즉각적인 반응:즉시 소리를 높여 일심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단순히 고난을 면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였습니다.기도의 핵심 내용:"더 큰 능력을 주셔서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완악한 자들을 굴복시켜 달라"는 부흥을 위한 기도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고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되었습니다.결과:
2. 기도의 본질: 나를 고치시는 하나님과의 교제 (10분)
2. 기도의 본질: 나를 고치시는 하나님과의 교제 (10분)
기도의 핵심은 무엇을 얻어내는 수단이 아니라, 입니다.기도는 '응시'이다:영혼이 하나님 자신을 잠잠히 응시하는 것
하나님을 구두쇠나 태만한 분으로 여겨 떼를 쓰는 기도는 초보적인 단계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입니다.유아기적 기도를 넘어서기:우리가 하나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개방하여 주님이 우리를 고치시게 하는 것
암으로 아내를 잃은 한 형제가 산속에서 6개월간 처절하게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아내를 살려주시는 대신 그 형제를 시키셨습니다. 이것이 기도가 가진 위대한 힘입니다.변화의 실례:나태한 자에서 열렬한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
3. 공동체 안에서 기도가 필요한 이유: '영적 일치' (10분)
3. 공동체 안에서 기도가 필요한 이유: '영적 일치' (10분)
교회는 다양한 지체로 구성되어 각기 다른 관심을 가집니다. 기도는 이 다양한 지체들이 를 이루게 하는 중요한 방편입니다.개별적 관심사에서 하나의 마음으로:한 가족으로서 마음과 뜻의 일치
은혜가 떨어지면 각자 자기 깃발을 꼽고 자기중심적인 동심원을 그리며 충돌합니다. 기도는 을 경험하게 합니다.자기 깨어짐의 사건:자기 사랑의 깃발을 꺾고 십자가 아래서 공동체적인 자기 깨어짐
개인의 깨어짐은 교회의 깨어짐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분께 봉헌되는 이 됩니다.사랑의 일치(Concordia Amoris):성례전적 사건
4. 공동체 기도의 비결과 원리: '공기 대포'와 '화망' (15분)
4. 공동체 기도의 비결과 원리: '공기 대포'와 '화망' (15분)
항공모함에서 비행기가 짧은 활주로를 이륙할 때 밑에서 강력한 공기 대포를 쏴주는 것처럼, 이 있습니다.공동체의 '공기 대포' 역할:공동체의 기도는 혼자서는 도저히 영적으로 비상할 수 없는 지체를 끌어올려 주는 힘
개별 소총수는 스텔스기를 맞출 수 없지만, 수백 명이 한꺼번에 허공에 총을 난사해 '화망'을 만들면 최첨단 전폭기도 격추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킵니다.'화망(火網)' 구성의 원리:성도들이 함께 드리는 기도는 화망을 구성하여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영적 문제들을 격추
하나님은 공동체를 살아있게 하기 위해 때로 '숭어(고난/문제)'를 수족관(교회)에 두십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이나 사람은 오히려 공동체를 각성시키고 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고난과 기도의 제목:
5. 성도의 책임과 공동체의 깊이 (10분)
5. 성도의 책임과 공동체의 깊이 (10분)
공동체 기도가 힘을 얻으려면 각 지체가 은밀한 골방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개인의 기도가 죽어 있으면 공동체의 기도도 잠든 기도가 됩니다.개인 기도의 골방 지키기:
많은 성도가 자기 문제에만 매몰되어 공동체의 기도를 소홀히 합니다. 그러나 .사사로운 욕망을 내려놓기:공동체의 큰 기도 제목에 마음이 녹아내릴 때,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과 갈등은 저절로 내려놓게 됩니다
교회는 대중적인 가벼움보다 . 깊이가 없는 넓은 강은 곧 마르지만, 폭이 좁아도 깊은 강은 풍부한 물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교회의 질적 심화:진리와 기도에 있어서 깊어져야 합니다
6. 결론: 무릎으로 걷는 순례자의 길 (5분)
6. 결론: 무릎으로 걷는 순례자의 길 (5분)
예수님도 십자가 고난 앞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시며 제자들이 하나 되기를 구하셨습니다.주님의 모범:
성도의 길은 운동화를 신고 뛰어가는 길이 아니라 입니다. 개인의 기도를 넘어 공동체의 아픔과 제목을 끌어안고 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위대한 영적 갱신이 일어납니다.적용:무릎으로 기어가는 길
함께 드릴 기도 제목:
우리 안에 사사로운 미움과 분열의 마음을 제하여 주시고, 십자가 아래서 하나 되게 하소서.
공동체에 주신 영적 비전을 가슴에 품고, 기도의 화망을 구성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게 하소서.
[소그룹 성경 공부 활동지] 함께 드리는 기도
[소그룹 성경 공부 활동지] 함께 드리는 기도
제공해주신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소그룹 식구들이 함께 깊이 있는 나눔을 가질 수 있도록 구성한 성경 공부 활동지입니다.
[소그룹 활동지] 성도의 공동생활: 기도로 하나 되는 공동체
[소그룹 활동지] 성도의 공동생활: 기도로 하나 되는 공동체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사도행전 4:31)
1. 마음 열기 (Ice Breaking)
1. 마음 열기 (Ice Breaking)
최근 여러분의 삶에서 **'혼자 기도할 때'**보다 더 큰 위로나 힘을 얻었던 경험이 있다면 짧게 나누어 보세요.'함께 기도할 때'
2. 말씀 속으로 (Observation & Insight)
2. 말씀 속으로 (Observation & Insight)
주제 1: 위기 앞에 선 공동체의 반응 (사도행전 4:23-31)
주제 1: 위기 앞에 선 공동체의 반응 (사도행전 4:23-31)
베드로와 요한이 유대 지도자들에게 박해를 받고 돌아왔을 때, 초대 교회 공동체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힌트: 그들은 두려움에 떨거나 무력으로 대항하는 대신 무엇을 했나요?
공동체가 일심으로 드린 기도의 핵심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단순히 고난을 면하게 해달라는 기도였나요?
주제 2: 기도의 본질 - 하나님을 응시하는 것
주제 2: 기도의 본질 - 하나님을 응시하는 것
본문에 따르면 기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바꾸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를 고치시게 하는 것입니까?
암으로 아내를 잃은 형제의 사례를 통해 본 **'기도의 위대한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주제 3: 함께 드리는 기도의 신비 - 공기 대포와 화망
주제 3: 함께 드리는 기도의 신비 - 공기 대포와 화망
비유는 공동체의 기도가 지체들에게 어떤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까?'공기 대포(Air Cannon)'
**'화망(火網)'**의 원리는 개인의 기도와 공동체의 기도가 가질 수 있는 능력의 차이를 어떻게 보여줍니까?
주제 4: 공동체를 깨우는 '숭어'
주제 4: 공동체를 깨우는 '숭어'
아놀드 토인비의 이야기에서, 교회 안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나 고난이 존재하는 영적 이유는 무엇입니까?'청어와 숭어'
3. 삶의 적용 (Sharing & Application)
3. 삶의 적용 (Sharing & Application)
나는 지금 나의 욕망을 중심으로 한 '나만의 동심원'을 그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십자가 아래서 **'자기 깨어짐'**을 경험하며 공동체와 일치되고 있습니까?자기 깃발 꺾기:
공동체의 기도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각자의 **'기도의 골방'**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나의 개인적인 기도 생활은 공동체의 비상에 돌멩이를 매달고 있습니까, 아니면 공기 대포의 동력을 제공하고 있습니까?개인 기도의 골방:
우리 교회가 대중적인 가벼움에 머물지 않고 가 되기 위해, 내가 이번 주에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깊어지는 강물:진리와 기도의 깊이가 심오한 공동체
4. 합심 기도 (Collective Prayer)
4. 합심 기도 (Collective Prayer)
우리 공동체가 사사로운 미움과 시기를 내려놓고, 주님이 주신 하나의 비전을 향해 **'기도의 화망'**을 구성하게 하소서.공동체의 제목:
혼자서는 기도의 이륙이 힘든 지체들을 위해 우리가 **'공기 대포'**가 되어 함께 부르짖게 하소서.지체를 위한 중보:
운동화 신고 뛰어가는 인생이 아니라, 겸손히 을 걷게 하소서.순례자의 자세:무릎으로 걷는 순례자의 길
"순례자의 길은 운동화 신고 뛰어가는 길이 아니라 무릎으로 걷는 길입니다."
06 성도의 공동생활 함께 드리는 기도 - YouTube
Transcript:
(00:00)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제4장. 사도행전 제4장 24절입니다. 193쪽 신약 성경입니다. 제가 23절을 읽고 24절을 우리 모두 같이 읽겠습니다. 사도들이 노임에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다 같이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제여 천지 내 만물을 지으신이시요 아멘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제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마유를 지으시니 31절 빌기를 다함에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01:06)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고맙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 주시고 오늘 이 예배 시간에 저희들을 함께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사랑하는 종들의 마음에 성령의 감화가 있게 하시고 그 감화로 말미암아 주님을 더 사랑하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에도 주의 말씀이 증거될 때 저희들의 지성을 새롭게 하시고 저희의 마음을 정말 순전하게 하셔서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이 새로워지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도의 공동생활 중에서 오늘은 공동생활과 기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02:14)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우리들이 읽은 이 본문의 배경을 보면 큰 박해가 있고 난 후에 일어난 어떤 사건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의 성령 강림을 통해 충만함을 입은 공동체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에 사로잡힌 공동체가 되었고 그래서 그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였죠. 그러다가 이 4장에 와서 급속하게 전파되는 복음의 복음 때문에 염려하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이들을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특별히 베드로와 요한이 끌려가서 심한 문초를 당하고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복음에 사로잡힌 그들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박해하는 그들을 향해서 사도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03:17) 생각하여 보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옳겠느냐?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겠느냐? 조금도 굽힘이 없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을 복음을 더 담대히 외쳤을 때에 그들은 더 심하게 구타하여 그들을 놓아주었습니다. 아마 그 과정을 겪으면서 사도들은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즉시 교회로 돌아갔고 거기서 공동체의 지체들을 만났습니다.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모든 교회에 말했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모든 지체들의 마음은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온 박해받은 사도들의 표정을 보면서 공동체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이런 종류의 핍박에 대항할 무력도 없었습니다.
(04:14) 그러나 그들은 사도들의 이 고난을 통해서 일치한 한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즉시 소리를 높여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의 간절한 대목은 제목은 더 큰 능력을 우리에게 주셔서이 복음을 담대히 말하게 하시고 종들이 이 복음을 전파할 때에 성령의 역사와 기적이 나타나서 저렇게 완악한 자들을 꺾고 굴복시킬 수 있게 해달라는 부흥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기도가 있고 나서 빌기를 마침에 성령의 충만함이 오순절 성령 강림 때처럼 동일하게 그들 가운데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뜨거운 공동체가 되었고 오히려 그 핍박 때문에 더욱 담대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겁없이 전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05:11)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살펴보자 보고자 하는 본문이 담긴 사건의 맥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 공동체를 부르셔서 함께 살아가게 하시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하나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수많은 성도들로 이루어져 있고 성도들은 각각 자기 나름대로의 개별적인 관심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개별적인 관심사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성도들이 마음과 뜻을 합하여 한 마음 한 마음과 뜻을 합하여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서 함께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06:15) 그렇게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것 없이는 아무리 모여서 먹고 마신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들이 공동생존이라고는 말할 수 있지만 공동생활이라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양한 지체들 사이에 마음과 뜻의 일치를 이루시어서 하나님 앞에 한 가족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중요한 방편이 기도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 우리들이 지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무엇일까?이 이 기도는 핵심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혼이 하나님 자신을 응시하는 것 그것이 기도할 때 영혼의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하면 기도를 강조할수록 (07:20) 하나님은 구두쇠라서 무엇인가 우리에게 자꾸 안 들어 주시려고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꾸 졸라서 뭔가 자꾸 하나님께로부터 뜯어내려고 하는 그런 끈질긴 심성을 가진 사람들로 묘사되기 일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매우 태만하셔서 우리 사정을 잘 모르시는데 계속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의 빈도수에 따라서 열심에 따라서 우리의 사정을 알아 주시기도 하는 그런 분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진실한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본래의 정신은 그런 것이 아닌데 그 기도라고 하는 은혜의 깊이를 잘 모르는 유아기 상태에 있는 우리를 우리의 수준에 맞게 대우해 주시기 (08:24) 위해서 이해시키시려고 우리에게 기도를 그렇게 설명해 주시는 것이죠.
그중에 하나가 바로 누가복음에 나오는 불리한 재판장과 억울한 과부의 비유죠.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과부가 하두 가서 귀찮게 구니까 원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계속 괴롭힘을 당할까 봐 그 소원을 들어 주었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기도에 관한 설명 중 가장 유아기적인 설명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점점 깊어질수록 이제 우리의 이 기도 생활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굴복시킴으로 얻어내는 것이 기도의 진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09:24) 오히려 기도는 영혼히 잠잠히 하나님을 응시하는 것이니 하나님을 잠잠히 응시하는 그 상태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고 그로 인해서 우리의 온 영혼이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는 고유한 의미에서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바꾸거나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도 속에서 잠잠히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개방함으로 주님이 우리의 방해 없이 마음껏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고치시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기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한 가운데 드리는 몇 마디의 기도는 그렇지 못한 영혼의 상태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만 마디의 말보다 우리의 삶과 환경을 움직이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10:25) 하늘의 기름으로 부어진 한 마디의 기도는 인간의 머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만 마디의 언어보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상황을 바꿔 넣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저희 후배가 하나 있었는데 일찍 결혼을 했어요. 근데 그만 부인이 암으로 죽었어요. 그 아이 그 집의 아이가 세 살짜리 하나, 한 살짜리 하나를 남겨 놓고 자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갔습니다. 그때 나이 자매 나이 겨우 27이었어요. 그러니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이 형제가 하나님이 나에게 분명히 목회하라고 소명을 주셨고 그것도 함께 이 길을 가라고 아내를 주셔 놓고 어린아이 둘만을 남겨 놓고 아내를 (11:28) 먼저 데려가시면 내가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눈물로 많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하셨어요.
이 형제가 원래 뜨거운 열심이 별로 없는 형제였는데 자매가 암의 사형 선거를 받고 젊은 나이에 아이 둘을 낳고 이제 죽음의 길로 접어들고 있을 때 이 형제는 돈도 없고 힘도 없고 아무것도 할게 없었어요. 기도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이 기도의 제목이 워낙 크고 절실하니까 그냥 일반적으로 기도에서는 하나님이 쳐다보실 것 같지도 않더래요. 그래서 결심을 하기를 밤 12시에 뒷산으로 올라가서 숲속에 들어가서 혼자 기도하기로 다짐했어요. 그리고 그것을 6개월 이상 실천을 했어요. (12:30) 그러니 캄캄한 밤에 밤 11시 40분쯤 집에서 떠나서 그래서 캄캄한 숲속에 들어가서 거기에 혼자 무릎을 꿇고 기도했을 때 처음 시작은 되지 기도 그렇게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렇게 한다라고 하는 것이 그게 그렇게 쉬운게 아니거든요. 기도를 시작을 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이 기도할 수 있게끔 힘을 주시니까 온 몸에 땀을 흐르도록 땀이 흐르도록 매달리면서 하나님 앞에 6개월 동안을 그렇게 기도했어요. 그래도 결국은 하나님이 그 자매를 하늘나라로 데려가셨어요. 형제 혼자 남았는데 하나님을 많이 원망했지만 깨달은 사실 하나가 있어요. 그것은 뭐냐면 그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놀랍게 바꿔 놓으신 겁니다.
(13:25) 게으르고 나태해서 기도 안 하는 자기를 열렬한 기도의 사람으로 바꿔 놓으시고 목숨을 건 기도의 투쟁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하시고 그렇게 깨닫게 되니까 성령의 은혜를 받으니까 체험하게 돼요. 또 그렇게 하나님 앞에 헌신적으로 기도하니까 주의 말씀에 민감하게 하셔서 성경의 뜻을 깨닫게 하셨어요. 내린 결론이 이거예요. 어린아이 둘을 남겨 놓고 먼저 간 그 아내는 아내가 먼저 간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내가 변화되지 않 않은 채 둘이 목회하는 거보다는 변화된 나 혼자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훨씬 쉬울 것 같아서 하나님이 아내를 나를 위한 교재로 사용하셔서 데려가시고 나를 변화시키셨습니다.
(14:21) 이게 기도가 가지고 있는 위대하고 놀라운 힘이에요. 위대하고 놀라운 힘이 우리들이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 제목이 있다는 것만큼 복된 것이 없는 거예요. 기도 제목이 있다라고 하는 것은 고통이 있다는 거예요. 기도 제목이 있어서 마음을 찌른다고 하는 것은 고난이 있다고 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의 경험을 보더라도 마음 한쪽 구석을 애이는 아픔이 담긴 기도의 제목이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은 건강했죠.
역사의 한 연구라는 작품을 쓴 아놀드 토인비가 즐겨 들던 비유 가운데 하나가 이런 것이 있습니다. 영국 북해도에서 나는 유명한 생선 둘이 있는데 하나는 연어이고 또 하나는 청어입니다. (15:24) 이 청어는 아주이 그 신경질적인 물고기입니다. 근데 여러분 아십니까? 고기의 얕은 맛은 그 신경질적인 고기들이 얕은 맛이 있습니다. 꽁치, 갈치 이런 것들은 수족관에 오래 보관을 못 하는 겁니다. 청어도 마찬가지예요. 왜냐면 신경질적이기 때문에 가둬 놓으면은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어 버려요. 뭐 잘은 잘 모르지만 아마 동태 같은 것은 생긴 걸 보더라도 성질이 느긋한 물고기가 아닐까요? 근데 그게 뭐 그렇게 맛이 있습니까? 또 이 얕은 맛이 있는 고기들은 까시가 많아요. 준치, 청어, 꽁치 다 칼치 가시가 많고 아주 잔가씨들 때문에 먹기 힘든 생선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선이 맛이 있죠.
(16:24) 그래서 영국 사람들도이 청어를 ‘해링’이라고 하는데 참 좋아합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생선 중에 하나입니다. 잘 안 해 줘서 그렇죠. 그 그 북쪽에서 그걸 잡아 가지고 아래로 고속도를 타고 내려오는데 거기나 여기나 소비자 입장에서 싱싱한 걸 먹으려 그러지 않겠어요? 그러까 수족관에서 살아서 펄펄 뛰는 청어는 값이 비싼 거라. 근데 이게 너무 신경질적이라서 늘 이게 그 그렇게 하다 보면 죽어요. 그래고 도착하다 들어놓어서 배를 하늘로 뻗치고 그렇게 죽어 있단 말이죠. 근데 그 한 그 수산물 유통업자 한 사람이 있는데 이상하게 그 사람이 운반 해오는 청어는 안 죽고 생생하게 살았나요? 그 비결이 뭐냐고 물어봐도 그게 사업상의 기밀인데 가르쳐 줄 리가 있겠어요? 그래도 동료가 졸르니까 가르쳐 줬대요. 그게 뭐냐면
(17:29) 그 청어를 잔뜩 싣고 올 때 나는 거기에다 숭어를 같이 집어넣는다네. ‘그레이 멀렛’이라고 하는 그 숭어라는 곡인데 그거를 거기다가 집어넣는다 그래요. 그 그 야 그건 그러면 청어 다 잡아 먹잖아. 물론 그 멀렛이 청어를 잡아먹지. 허어가 청어를 잡아먹지. 그렇지만 밤새도록 잡아 먹어 봐야 두 마리밖에 못 먹는다. 그래서 나는 청어를 잔뜩 씻고 거기다가 그 숭어 두 세 마리를 탁 넣어 가지고 온다 이거죠. 그러면 숭어는 완전히 눈을 닦다 보니까 이게 도시락 통에 들어가 있는 거야. 사면의 밥이야. 그러니까 너무 신이 나서 밤새도록 돌아다니면서 청어를 쫓는 거야. 그래서 그 중에 하나 잡아서 우선 먹고 그리고 계속 쫓아다니는 거예.
(18:24) 이 이 청원은 밤새도록 그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밤새로 긴장을 풀지 않고 그 수족관을 헤엄치면서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리고 아침에 와서 보면은 아 도망다니던 그 청어들은 상생하고 쫓아다니던 숭어는 지쳐서 이제 누워 있는 거예. 그래 가지고 상생하고 팔짝팔짝 뛰는 청어를 매일 신선하게 그 먼거리를 배달할 수 있었다. 이런 얘기죠.
우리의 개인의 생활도 이렇게 생기에 넘치는 신앙생활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항상 기도의 제목을 주셔요. 기도의 제목을 주셔요. 그러면 기도의 제목을 주신 사람은 항상 생기에 넘치냐? 절대 그럴 수 없죠. 왜냐하면 그런 기도의 제목은 섭리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지만 믿음으로 화합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에요. (19:25) 기도의 제목이 있을 때 믿음으로 화합하면 이렇게 생기에 넘치는 신앙생활을 기도 제목 때문에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고 기도 제목이 주어졌는데도 게으름을 피우고 하나님 앞에 나태한 신앙생활을 하면은 그 상황과 함께 자신의 영혼이 부패해 가는 것이죠.
이러한 일들은 개인의 삶에서뿐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 속에서도 일어나. 그래서 교회 안에도 하나님이 항상 수어를 몇 마리씩 두셔 그래 가지고 못된 교인이 그냥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게 교회를 살아 있게 하는 아주 좋은 조건이에요. 이게 예. 그래서 그 숭어가 그리고 입을 벌리고 흉칙하게 생긴 놈이 그리고 돌아다니면은 물론 몇몇 몇몇 교인을 잡아먹을 순 있어.
(20:21) 그래 가지고 그 저 영혼의 상태가 맛이 간 사람과 아주 절친하게 교재를 하게 되면은 그러면 같이 부패해야 돼요. 그러니까 영향력을 자신이 미치지 않으면 그 나쁜 영향력을 받아 그래서 은혜에 있던 사람이 시들먹하고 떨어져 가지고 그래서 아주 영혼의 상태가 나쁜 사람이 되는 거죠. 한두 명을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모든 교인이 다 그 송어와 같은 교인에게 먹히는 건 아니거든. 그렇게 난리를 치고 그 짐승처럼 행동하는 걸 보면서 생각 있는 많은 교인들은 각성하는 거야. 아, 우리가 기도해야 될 때구나. 아, 진짜 그 기도해야 될 때구나. 우리가 정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 보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뭔가 메시지를 주시는구나.
(21:18) 그리고 자기를 단속하면서 오히려 한 마음이 되어서 기도하게끔 해요. 그래서 많은 지체들로 하여금 살아나게 하는 거죠. 예.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예요. 그래서 이 세상에 제일 안 좋은 교회가 문제가 없는 교회예요. 그 문제가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교인들이 문제를 일으킬 기력조차 없다는 뜻이거든. 그 상태가 문제죠. 그렇죠. 아까 2부 시간에도 아이들이 유아 세례를 주었는 유아 세례를 주었는데 어참 그렇게 아이들이 잘 태어나는지 몰라요.이 더 많이 태어나야 되겠는데 말이죠. 그래서 아이들이 막 태어나요. 오늘 자매는 시집 가서 분명히 아기를 가졌는데 배가 꺼지질 않아. 저 자매는 왜 아기를 안 났나? 그러고 물어보면 하나는 벌써 낳고 두 번째래.
(22:21) 야 이게 참 요즘 같은 때에 정말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그래서 많이 나서 진짜 이 그래서 그 아이들을 잘 가르쳐서 그 아이들을 잘 변화시켜서 인해 전술로 이 세상을 뒤덮어야 돼. 예. 그래 북한 선교 애 많이 나서 주님의 사람으로 잘 키우면 그 아이 안에 북한 선교도 있고 세계 선교도 있고 우주 선교까지 다 담겨 있어요. 그 아이 때쯤 되면 달라 가서도 살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거기는 세계 선교가 아니라 이제 우주 선교 아니 그것도 가능해진다 이거죠. 그 다음부터는 셋을 안 난다 그러면은 주례를 안서 줄까봐 최소한 셋을 낳겠다고 서약을 하고 힘나는 대로 뇌까지 낳겠노라고 약속을 하면 그러면 주례를서 줄까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3:26) 그러니까 아이들이 태어나서 그렇게 자라 아이들이 곧 잠깐 유아 세례 받는 동안에도 그냥 벌써 회개하고 우는 애. 엄마 아빠가 회개 안 하니까 자기가 대신 중보 회개하는 거. 울고 회개하는 애. 어떤 애는 소리 소리 지르고 지 엄마 아빠가 전도 안 하니까 자기가 대신 선포하는 거 그러는가 하면 또 열심히 지엄마는 눈물을 열면 세례 주는데 코 걸고 자느네 총 천연색이잖아요. 왜 살아 있으니까 살아 있으니까 죽으면은 천만 명을 한 군데 모아놔도 숨소리 하나 나지 않아요. 살아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수시로 깨뜨리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우리 한 사람이 처음 회심할 때는 (24:30) 자기 사랑의 깃발을 꺾고 손들고 예수님 앞에 와서 십자가의 깃발 아래 모이죠. 나는 죽고 주님은 사셨죠. 그래서 그 십자가를 중심으로 사랑의 동심원을 그려나가 함께 그려나가 은혜가 떨어지면 거기에서 뛰쳐나와서 자기 깃발을 또 꼽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자기 동심원을 그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그 일을 하게 되면 그려진 동시원은 결국은 어느 순간에 충돌을 일으키게 돼. 거기에서 교만과 다툼 분쟁과 분열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미움과 시기들이 거기에서 발생하게 되는 거죠. 그런 사람들을 내비두고 교회가 한 마음 한 뜻을 이루는 꼬이노니아가 될 수가 있겠어요? 교회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지 않는데 머리 되신 그리스도 예수께 전적으로 부정하여 그분의 뜻을 받드는 그분의 몸이 될 수 있겠어요? 안 되잖아요.
(25:31)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들을 회개시키셔서 각기 자기 깃발을 꺾고 십자가 깃발 아래 다시 모이게 하는 공동체적 자기 깨어짐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개개인의 신앙생활이라고 자꾸 개인적인 생활 신앙생활이라 그러는데 그런 거 없어요.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자기가 깊이 깨뜨려지면 이거보다도 훌륭한 교회를 위한 섬김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개개인의 자기 깨어짐은 어려운 말로 개개인의 자기 깨어지면 자기 깨어짐은 그 깨어짐의 경험을 통해서 성례전적으로 그리스도인 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깨어짐이 되고 교회의 깨어짐은 그 깨어짐의 경험을 통해서 성례전적으로 그리스도 예수께 봉헌되는 겁니다.
(26:30)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자기에게 깨뜨려지는이 사건은 교회론적 사건이에요. 그렇게 여러분들이 깨뜨려짐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깃발 아래 돌아가게 되고 여러분들의 사랑의 동심원과 교회의 동심원이 하나가 일치가 되고 이렇게 될 때 여러분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가장 잘 수종 들 수 있는 그분의 몸의 역할을 하게 되는 거라 이거죠. 그러니 당연히 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기 깨어짐 이외에도 공동체 전체를 어느 공동체 전체를 하나님께서 깨뜨리시는 공동체적 자기 깨어짐이 필요하다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이성적인 결론이 아니에요.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 이거죠. 개개인이 자기 깨어짐이 없으면 결국은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으로부터 멀어진 형식적인 신자가 되듯이 교회가 제도와 그리고 목회의 방법에 있어서 아무리 뛰어난 일치를 이루고 있다고 할지라도 교회에 참된 영광은 생명에 있기 때문에 (27:34) 그들이 공동체적인 자기 깨어짐의 경험이 없다고 할 것 같으면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과 합일이 될 수가 없어요. 그렇게 되면 그 안에는 일치가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왜냐하면 교회의 영적인 일치는 곧 곤꼬르디아 아모리스 사랑의 일치이기 때문에 그래요. 왜냐하면 그렇게 자기가 깨뜨려진 그곳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지순의 사랑이 생겨나게 되고 그 같은 사랑을 품음으로써 그들이 일치를 이루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죠. 진리를 이루게 되기 때문이라. 이런 일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기도하게 하시는 거죠. 그래서 기도 속에서 일치를 이루게 되는 거예요. 기도와 일치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거예요.
(28:25)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개개인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있죠. 그러니까 우리는 개개인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열렬하게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모여서 공동체적인 기도회를 갖는다고 할지라도 모인 개개인의 기도의 골방이 정말 살아 있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골방일 때 그 모여서 드리는 그 기도에 하나님의 비범한 능력이 깃들게 되는 것이죠. 잠자는 모든 신자들이 모여서 드리는 그 기도는 잠든 기도밖에 드릴 수가 없어요. 그러나 한 사람 한사가 한 사람이 개인의 기도 생활 속에서 승리하는 기도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 거기에는 위대한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요. 나타나요.
(29:18)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흩어진 삶 속에서 개개인의 기도 생활에 있어서 기도의 골방을 훌륭하게 지키는 삶을 살아가야 해요. 그래서 거기에서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과 생명의 교통이 있을 때 여러분들이 개개인이 건강한 영혼을 소유하게 되고 그 건강한 영혼들이 함께 연결을 이룰 때에 건강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개개인의 기도 생활이 살아 있는 삶을 사는 것. 흩어져 있을 때에도 우리가 각자의 기도의 골방에서 성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살아 있는 심령을 가지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 이거는 성도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라 이거죠. 이것을 태만히 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자기 자신의 영혼만을 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비상하려는 교회의 날개에 돌멩이를 매는 사람이에요.(30:23) 그러나 또한 비록 여러 가지 이유에 이어서 마음이 무거워지고 영혼히 둔탁해진 사람도 이렇게 살아 있는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그 기도의 일치 속에 참여하게 될 때 혼자 기도하려고 할 때보다는 훨씬 더 놀랍게 이게 뜨거운 기도의 영에 불붙여질 수가 있는 거죠.
여러분, 우리나라의 조선 기술이 세계에서 아주 뛰어나게 발달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항공 모함까지 만들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 항공 모함이 미국이나 소련에서 운영하는 것 같이 그런 대형 항공 모함은 아니지만은 약 20여대의 공격형 헬기를 싣고 바다를 항해하면서 작전을 펼 수 있는 그런 소형 항공 모함을 순수한 우리의 기술로 만들었습니다.
(31:24) 미국이나 이런 강대국에서 가지고 있는 항공 모함을 보면 신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비행기를 타면 최소한 몇 km의 활주로를 비행기가 그냥 달음박질을 해야지 겨우 떠오르는데 아무리 큰 항공 모함의 길이도 330m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짧은 활주로에서 어떻게 그 육중한 쇠덩어리의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아마 여러분 한 번쯤은 궁금하게 여기셨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뜰 수 있을까요? 아무리 비행기가 발달해도 그 비행기가 300m 정도의 활주로를 가지고는 뜰 수 없습니다. 물론 미국이 가지고 있는 재규어 같은 비행기는 앉은 자리에서 헬리콥터처럼 수직 상승을 해서 작전을 펼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많은 비행기들은 활주로를 여전히 필요로 합니다.
(32:24) 이때 항공모함은 전속력으로 이륙하고자 하는 같은 방향으로 이 그 선체가 움직이고 그리고이 비행기는 엔진의 출력을 최대로 해서 그래서 발진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330m는 뜰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렇게 뜰까요? 여러분 잘 모르시겠지만은 배밑창에서 공기 대포를 쏩니다.이 공기 대포는 초속 300km로 바람을 날려보낼 수 있는 속도의 공기 대포입니다. 그거를 최대의 엔진 출력을 걸고 활주를 달리는 비행기에다 대고 밑에서 쏘는 거죠. 그래서 바람으로 그 함재기를 공중으로 날려 버리는 거죠. 그래서 거기에서 비행기가 상승된 엔진 출력을 이용해서 이제 이륙을 하게 되는 것이에요. 공동체의 기도는 바로 이런 공기 대포 같은 역할을 해요.
그래서 정상적인 (33:31) 상태에서는 도저히 기도의 이륙을 할 수 없는데 기도의 영이 살아 있는 많은 지체들과 함께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공기 대포 같은 효과를 누리게 하셔. 그래서 혼자는 도저히 이륙할 수 없었는데 공동체와 한마이 대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의 기도가 하고 하늘로 상승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에 그들이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을 통해 알고 그 하나의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정신을 모으고 그것들 들이 자신의 마음에 간절한 기도 제목이 되어서 그들 모두 함께 같은 마음을 품게 되는 거죠. 그래서 마음이 단일한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는데 그때 그 마음이 예수의 마음이 되는 거죠. 응.
(34:32)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게 될 때 마치 우리 개인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그 마음이 모아지면 그 모아진 후에 비로소 하나님이 그 마음을 깨뜨리듯이 공동체의 마음도 그렇게 하나로 모아질 때 하나님이 깨뜨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을 회개하게 하시고 뉘우치게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삶의 상황과 여건 관심사가 다 달랐는데 함께 한 마음이 되어서 기도하는 가운데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같은 기도의 제목들을 우리의 마음과 정신 안에 공유하게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같은 마음을 가지고 견해는 달라도 삶의 상황은 각각 틀려도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되는 거죠.
(35:23) 이렇게 기도하는 제목이 워낙 소중하고 간절하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한 우리끼리의 다툼과 분열과 분쟁과 미움과 시기, 갈등, 원망 이런 것들을 모두 내려놓게 만드시는 거죠. 이게 바로 기도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내려놓다라고 하는 거죠. 전에는 그것이 제일 중요한 줄 알았어. 그래서 한번 미워한 사람 용서하지 않고 원한이 맺친 사람을 풀어 주지 않았어요.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이보다 훨씬 중요한 기도 제목에 우리의 마음이 녹아내리게 하셨어요. 그니까 이걸 내려놓는 거죠. 왜? 이거보다도 그게 더 중요하니까.
(36:06) 내려놓는 거예요. 응.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빨리 판단을 해야 돼. 양쪽에 계란 두 개를 들고 있어요. 근데 저쪽에 이렇게 하고 거실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귀중한 도자기가 흔들리기 시작하니 막 떨어지려 그러는 거야. 어 빨리 판단해지 이걸 버려야지. 계란 그까짖게 깨지면 뭔 상관이 있어?이 도자기를 붙들어야지. 응. 그게 바로 내려놓는다는 말의 의미예요. 이라크전이 있을 때 초기에 황당한 일이 하나 일어났죠. 미국이 자랑하는 폭격기가 있는데 그 스틸스 폭격기예요. 그 폭격기는 이제까지 인류가 만든 폭격기 중에서 가장 완벽한 폭격기라고 해요. (37:00) 생긴 것부터가 아주 특수하게 생겼어요. 그 폭격기의 최대의 장점은 뭐냐면 레이더에 포착이 안 돼요. 20km까지 접근을 해야지 레이더에 포착이 되는데 제가 알기로 그 스텔스 전폭기의 속도가 마하 2 정도 나와요. 그러면 초속 780m 속도로 날아가니까 거의 1km고 그러면 20km 안에 만약에 발견이 된다고 하면 15초 내지 25초 안에 비행기가 나타나는 것이니 이미 벌써 폭탄이 떨어지고 난 다음이라요. 그 비행기 한 대의 가격이 2조원에서 2조 5천억이 가는 고가의 비행기예요. 근데 그게 이라크 군인들에 의해서 격추됐어요. 그 너무 황 더 황당한 건 그다음에 어떻게 그걸 격추했냐 그랬더니 총으로 쏴서 잡았다 그이 무슨 스텔스기가 무슨 제비도 아니고 참새도 아니고 (38:04) 어 나는 뭐 그걸 만든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너무 참피하더라고요. 그 이북애들이 잠수함을 몰고 뭐 내려왔잖아요. 그게 그물에 걸렸잖아요. 고래 잡는 그물, 상어 잡는 그물도 안 오고 묘치 잡는 그물에 걸렸어. 멸치가 그렇게 큰 멸치가 어디 있어? 그게 어디 가서도 그 창피에서 어떻게 얘기하겠어? 뭐 최신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든지 최신의 점수함을 만나서 격침됐다든지 그러면은 동정이나 했겠지만 그물에 걸려서 잡혔다. 그것도 멸치 잡는데 거부들이 멸친 줄 알고 모르고 잡았는데 좀 크더라. 이게 이해가 되겠냐?
근데 오랫동안 군생활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은 우리가 생각하는 거보다도 비행기가이 미사일이나 아니면은 대공포가 아닌 총에 맞아서 (39:10) 떨어지는 경우가 우리 생각보다 많다는 거죠. 그 어떻게 그러냐? 그러니까 비행기가 날아가면 수백명의 군인들이 있는데 비행기가 나타나는 거죠. 그러면 이제 일제히 사격 자세로 들어가는 거예요. 비행기가 지나가면 이 비행기의 종류에 따라서 하나 둘 반 그 앞에다 대고 이 거리는 이제 비행기 속도에 따라 틀려요. 그래서 하나 둘 반 정도에다 대고 총을 수백명이 정신없이 갈기는 거야. 허공해다 그러면 소위에게는 화망이 구성이 되는 거예. 그 비행기는 가다가 이렇게 꺾을 순 없으니까 그 화망을 지나게 되는 거예요. 그때에 수천 발이면 그중에 몇 발이라도 맞는다 이 그게 연료통 같은데 맞으면은 직방 가는 거예요.
(40:01) 더군다나는 비행기는 날개 전체와 몸통이이 유류통으로 되어 있어요. 전투기 하나가 약 다섯g드럼 반의 기름을 싣고 달려요. 그러니까 그 전투기에다 다섯 반에 기름을 넣으려니까 날개 이 아래쪽 전체가 이게 기름통이라든지. 근데 혼자서는 그걸 마칠 수가 없을 거예요. 근데 수백명이 화망을 구성하면서 수천 발 수만 말에 수만 발에이 그 총을 난사하는 거예요. 그 거기에 걸리는 거죠. 그럼 떨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그것도 그렇게 하다가 떨어진 거죠. 이처럼 일치라고 하는 것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는 거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교회에 어떤 일이 생기고 교회에 큰 사명이 주어지고 하면 어떤 영웅적인 사람이 그냥 기도해서 해결을 받는 그런 거 보는데 하나님의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에요.
(40:59) 뭐 우리는 우리 개인 기도하기도 바쁜데 공동체를 위한 기도라고 하는 것이에 교회에서 생활비받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건 쓰레기 같은 생각이에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이에요. 머리이신 그분께 붙어 있는 한 지체. 그래서 우리가 함께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약하지만 우리에 드리는 모든 기도가 화망을 구성해요. 그래서 우리 혼자의 힘으로는 떨어뜨리기 어려운 기도의 제목들을 격추시켜요. 그래서 꿈꾸는 거 같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하는 거죠. 예. 그게 이렇게 사경회를 한다든지 세계 선교를 앞두고 있다든지 교회의 중요한 영적인 갱신을 위해 기도한다든지 이런 것들은 누구 한 사람이 짊어지고 기도해야 될 몫이 아닙니다. (41:53)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의 정신으로 그 고난에 참여해서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렇게 간절히 마음을 쏟아부며 기도하는 가운데 비로소 우리가 뜨겁게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늘 강조하는 눈부신 진리, 마음을 쏟는 기도, 불붙는 사랑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다. 항상음 이 세 가지가 항상 있으므로 교회는 정말이 세상에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고 그 교회 안에서 참다운 신자들이 자라나는 것이죠. 교회가 그렇게 되게 하는데에 여러분 자신이 무엇을 기여하고 있는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라고 하는 것이죠. 이제 님이 돌아가셨으니까 다시들을 일도 없겠지만 어려서 우리 아버님이 625 참전하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어린 시절에는 큰 자랑거리였고 기쁨이었습니다.
(42:55) 어쨌든 열심히 싸우신 것 같고 당신 자신의 손으로 북한군도 두 명이나 그 포로로 잡았다고 하니까 그렇게 해서 무공 훈장 받은 이야기도 하고 하는 이야기에 밤새는 줄 몰랐습니다. 근데 그분의 이야기가 참 재밌습니다. 우리 영화 보면은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데 보면은 대장이 맨 앞에서 권청을 들고 총알이 막 날라오는데 대장은 절대 안 맞죠. 그래서 덜개 그러면 쫄병들이 뒤에서 용기를 용기 백배에서 그 지위관을 따라오는 걸로 돼 있는데 이건 다 거짓말이고 진짜 전쟁에서는 절대 지휘관이 앞에 서지 않는다는 거죠. 왜냐하면 지휘관이 앞에 서면 옛날 칼사받은 시대야 멋있을지 모르지만 그 한 방만 맞으면은 나머지 모든 대원들은 지위관을 잃어버린 거지.
(43:53) 그러니까 지위관은 항상 맨 뒤에 산다는 거죠. 또 하나의 이유는 돌격으로 그리고 지휘관는 달려가는데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면 뒤에 있는 쫄병들은 가자 집으로 그리고 흩어지네. 그러면 전쟁에 성립 안 하는 거죠. 그래서 항상 뒤에 지위관이 서서 몇 분대 적진을 향하여 고지를 향하여 돌격 그리고 지시를 내리면 이 사람들이 적진을 향해 단번에 돌격을 하는게 아니라 위에서 총알이 비오듯 쏟아지니까 숨을 장소를 각자 찾아서 앞으로 달려가서 엎드리는데 어쩜 그렇게 총알에 절대 안 맞을 기가 막힌 자리를 각자 찾아내서 그 바위 뒤에 탁 붙어 있는데. 그리고 아무리 돌격하라고 외쳐도 절대 돌격 안 한다죠.
(44:48) 그리고 거기에 딱 붙어 앉아서 이제 주머니에서 건방을 꺼내서 먹기 시작하는 겁니다. 옆에 있는 전우가 총알이 막 날라오는데 나도 배고프니까 좀 달라. 줄 거 같아요, 안 줄 거 같아요? 일체 없죠. 그런다가 이제 지휘관이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이제 자기 대원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면 됩니다. 이 그 가까운 것에 위협 사격을 하는 거죠. 빨리 일어나서 공격 안 하면 너희들 죽여 버린다고 쏘는 거죠. 그때 건빵 달라던 친구가 이제 살짝 일어나서 가려고 하는데 막 그 총알이 비오듯하는 속에서 순식간에 막 머리통이고 뭐고 다 부서져 가지고 핏덩어리가 돼서 막 쓰러지는 거예요.
(45:41) 이때부터 이제 우리들이 아는 전투라고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은 그다음에는 진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죽음을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로 변하는 거. 해전쟁은 맨신을 못 하는 거죠. 그렇게 해놓고 진짜로 돌격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그렇게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지면서 그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이루어져 있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두 사람의 생명을 건 기도로 교회를 움직이게 하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공동체가 모두 참여해서 애달픈 마음이 되게 하시고 가슴 저리게 하시고 자기를 찢게 하시고 그래서 한 마음으로 매달려 간절히 기도하게 하시는 가운데 서로를 용서하게 하시고 서로를 사랑하게 하세요. 그리고 우리간에 (46:44) 화합하며 살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이렇게 일치를 이루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하는데 방해가 된다라고 하는 것을 자각하게 하시는 그래서 회개하게 하시는 거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1907년에 일어난 평양의 대부흥도 역시 이렇게 일어난 거죠. 그때 한국의 선교사들이 무슨 낙이 있겠어요? 그 운든의 땅에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아무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없는 그런 나라에 그 사람들이 왔는데 그래서 그 선교사의 외로움들을 되게 사냥으로 많이 달렸다 그래요. 그 때가 보니까 참 그 신령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사냥을 좋아할 수 있을까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여튼 무지하게 사냥들을 좋아했대요.
(47:36) 그 장대현 교회에서 모여서 부흥회를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별로 없었어요. 그때에 그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평양 대부흥이 일어나게 되는 그 계기가 바로 설교였어요. 그때 그 선교사가 설교를 뭘 통해서 했냐면 뭘로 설교를 했냐면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교회의 지체됨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이 이 선교사가 얼마 전에 사냥을 하다가 오발 사고가 나 가지고 손가락 마디 하나가 날아갔어요. 그러니까 거기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했어요. 그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4분 5오열 마음이 찢겨 있었고 선교사와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서로 대립하고 교인과 교인들이 대립하고 하여튼 다 나뉘어져 있는 마음이었어요.
(48:32) 그때 그 선교사가 이렇게 얘기했어요. 내 손가락을 보십시오. 내가 얼마 전에 사냥하다 오발 사고가 나서 이 손가락을 다쳤는데 다친 건요 작은 손가락 끝이었는데 내 온 몸이 불덩이 같이 달아오르고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중에 작은 고통이 있으면 우리 몸 전체가 이렇게 아파하는구나. 그러니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아픔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내용들을 설교했을 때 불이 내리는 것 같은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이들을 뒤집어 놓은 거야. 응. 거기서 일치를 일치 보다 더 중요한 목표. 그 1907년에 모인 그 목표가 뭐냐면은 그 인도 카아시 지방이나 영국 웨일즈에서 일어난 그리고 또 선교사 하디가 경험한 그런 놀라운 성령 충만의 역사가이 한국 교회에도 (49:37)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는 절박한 일치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모인 거였거든요. 예. 그런데 그런 분열의 죄를 이야기하니까 그 일치한 목표가 더욱 감절해지게 되자 자신들이 일치하지 못하고 살아가게 만들었던 많은 이유들이 정말 사소한 자기 사랑이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그거를 버리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난 거야. 예. 그러니까 그 교회가 하나를 이루게 되는 거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교회는 개인의 기도의 제목을 넘어서는 공동체의 기도의 제목을 공유하게 하셔요. 그리고 그렇게 공유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영혼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에요. 예. 우리도 흔히 있는 경험이잖아요.
(50:33) 기도하러 올라갈 때는 기도 제목을 자기 자기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개인 기도 제목을 실컷 적어 가지고 올라갔는데 정작 기도하려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일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시고 그것 때문에 마음을 다 녹이시고 결국은 자신의 기도는 그 안에서 저절로 응답되거나 아니면은 뭐 아무렇게 해도 전 상관이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만들어 버리시는 경우 우리에게 흔히 있잖아요. 그니까 이게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가는 일치의 기도와 개인의 생각에만 순수하게 의존하는 욕망 의존적인 기도의 차이라. 난 오늘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지금이 공동체를 향해서 우리가 한 마음으로 마음을 모으고 기도해야 할 제목이 뭐죠? 그런 것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확실히 이것은 이 시점에서 우리 공동체로 하여금 마음에 품게 하시는 기도의 제목이고 나 개인의 사사로운 기도의 제목은 이 아래로 굴복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그런 기도의 (51:39) 제목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교회의 이러한 기도의 제목들을 교회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이나 특별히 하나님의 강단을 통해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마음을 품고 설교를 듣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한 마음을 품고 기도하고 그 기도 속에서 그 기도의 성취를 방해하는 많은 헛된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게 하시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에요.
그래서 성경을 보면 교회가 기도 함께 기도할 때 일어나는 많은 일을 적고 있습니다. 교회가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개개인이 기도할 때 상상치도 못했던 놀라운 일들을 이루십니다. (52:31)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교회는 어찌야 할 바를 모를 때에 성도들이 다락방에 모여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마음이 드디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2장에서 사도행전에 성령 강림이 있게 됩니다.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이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다시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향해 일심으로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다시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고 핍박을 이겨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이런 식의 증거들이 사도행전을 계속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역사, 선교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고 그 역사는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53:22) 문제는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지극히 어린아이 같은 기도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자기의 사사로운 욕망에만 매어서 공동체의 기도를 위해 헌신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교회에서 생활비 받는 사람들의 몫이고 나는 그 혜택을 받으면서 나 개인의 문제나 해결하면서 교회 다니면 그게 덕보는 거라는 이 소아적인 생각들이 겨울 거 결국은 그 사람 자신의 영혼의 생명과 공동체의 기도의 영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 예수에게 접붙여져 있고 여러분들의 생명은 다른 시체들의 생명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가 공동체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한 마음이 없다면 그것 없이 개인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 단일한 마음도 없다는 것입니다.
(54:27)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이 이 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범이 되셨습니다. 잠시 후 다가올 그 무거운 고난의 십자가를 앞두고도 주님이 땀이 피가 되어 흐르기까지 기도하신 제목 중에 하나는 우리들을 하나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진리로 하나되게 하시고 저희들이 그 진리 안에서 서로 교통함으로 사랑으로 하나되고 그 사랑과 진리를 소유한 공동체로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그 하나됨을 기도 속에서 유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주님의 그런 희망을 계승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55:18) 만약에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사사로운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되지 않았다면 그 기도의 제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훨씬 중요한 기도 제목이 있는가 보다라고 생각을 하고 성령 안에서 주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개인보다 공동체를 끌어앉고 나보다도 내가 접붙여진 지체들의 기도의 제목을 끌어앉고 교회 전체를 향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매달려 보십시오. 아마 여러분들의 기도의 문을 여시고 하늘의 문을 활짝 여시고 여러분들에게 기도의 영을 부으시고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서도 기도하실 수 있도록 무장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가 모두 일치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미움과 원망과 다툼과 시기와 질투, 욕망과 헛된 것들에 대한 생각들을 모두 접고 우리가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공동체 전체가 일체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깨뜨려지기를 원한다고 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보다도 더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56:22) 이루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쉽고 대중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좀 더 진실한 의미에서 보면은 그 말처럼 위험한 말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돌아볼 때 부흥은 불신자들이 회개함으로 부흥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해 믿은 신자들이 심오하게 회개하고 각성을 하고 공동체가 일체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깨뜨려짐으로써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흥의 혜택들을 불신자들도 누리게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는 진정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한다면 교회는 깊어져야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57:17)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서 갈수록 깊어지고 기도에 있어서 점점 깊어지고 상담과 모든 교육에 있어서 점점 깊어지고 성도의 교재에 있어서도 매우 진리 안에서 깊어진 공동체가 될 때에 그것이 바로이 복음의 영향력을 보증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제가 만들어낸 비유입니다. 만약에 하나의 강이 있는데 강폭은 매우 좁지만 그러나 깊이는 심오하게 깊어요. 그런 강물을 좀 더 넓게 만들어서 더 많은 땅에게 혜택을 누리게 하고 싶다면 강 주변을 더 많이 수로로 파서 강의 넓이를 두 배 세 배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여전히 풍부한 물이 흘러가는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려 보내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58:12) 그러나 만약에 이러한 진리와 모든 사역들이 대중화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넓은 강은 되었지만 깊이는 1m도 채되지 않는 강이 되었다고 칩시다. 아마 얼마 흐르지 못해서 그 강물들은 모두 마른 땅에게 빼앗기고 물이 흐르지 않는 와디 곧 무수천이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철저하게 먼저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깨뜨려지고 그 속에서 자기 깨어짐 속에서 일체를 이루는 것이 선교를 보증한다라고 하는 평범한 진리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죠. 만약에 그렇지 않고 교회의 복음과 예배와 가르침을 저 믿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아주 가벼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아니한 믿음주의 곧 빌리비즘이 판칠 것이고 결국은 교회에서 오래 믿는 사람들이 참다운 회심이 없이 (59:18) 형식적으로 교회 남아 있거나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 3, 4년 만에 보따리를 싸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교회를 떠나서 좋은 교회와 목자를 만나면 다행이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그들의 삶은 불신자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라도 우리는 더욱더 한 마음이 되어서 간절히 기도해야 돼. 더 깊이, 더 높이, 더 맑게 더 올곧게 신앙과 이 영적인 역사가 교회 한복판을 지나가도록 그렇게 될 때에 땅끝까지 흘러갈 수 있는 강물과 같은 교회, 강물과 같은 성도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에요.
제가 최근에 선교지에 자주 나갔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삶은요. 교회에 가만히 그림 같이 있는 (1:00:24) 겁니다. 아침이면 규칙적으로 열린 공간 앞에서 성경을 묵상하고 독서하고 꼭 필요한 곳에 심방하고 나머지 시간은 연구에 바치고 이것이 제가 원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럴 수가 없거든요. 너무너무 척박하고 비참해요. 누군가가 가서 나누어 줘야 해요. 그래서 담임 목사인 제가 갑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리고 한 일주일이나 일주일 반 2주일 있쓴 적도 거의 없잖아요. 개척하고 나서 아직까지도 두 번 이상 교회를 비워 본 적이 없어요. 휴가 한 번 그렇게 간 적이 없어요. 목이 터져서 피가 나와서 2주 동안 강단을 못 친 이외에 제가 두 주 이상 강단을 연속 비우지 않았어요.
(1:01:25) 그런데도 그 열흘 사이 일주일 사이를 못 참아서 새벽기도 인구가 푹 주는 거예요. 너무 마음이 아파요. 그럼 내가 지킬게 여러분이 가요. 그러면 내가 지킬 테니까. 그 여러분이 가서 내가 하는 일을 해요. 그러면 담임 목사가 그렇게 떠났으니까 우리가 더 기도해야 된다고 생각해야 되지 않아요. 그래서 담임 목사가 새벽 기도를 안 지키니까 새벽 기도의 인구가 푹 줄어서 기도할 의욕이 거의 없는 공동체인 것처럼 새벽에 비칠 때 진짜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요. 그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러면 제가 열심히 새벽마다 교회에서 은혜의 불을 지피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테니까 여러분들이 가세요.
(1:02:22)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을 하고 오세요. 내가 보낼 테니까. 둘 중에 하나를 해야죠. 둘 다 안 하겠다 그러면 그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 아니죠.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주님이 사신 생애를 돌아보세요.
머리 둘 곳 없으시던 혼자 기도하시던 주님 생각해요. [음악]
그렇게 기도 안 해서 어떻게 하시려고 하세요? 순례자의 길은 (1:03:37) 운동화 신고 뛰어가는 길이 아니라 무릎으로 걷는 길이에요. 무릎으로 걸어가는 길이에요. 무릎으로 걸어가는 길이에요.
교회에서 정말 뜨겁게 기도하면 밖에 나가서 그것이 느껴져요. 진짜 항공 모함에서 비행기를 하늘을 향해 띄우는 공기 대포를 맞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피곤하고 말씀을 받을 준비가 안 된 곳에 일어나는 특이한 성령의 역사 대부분 (1:04:42) 기도의 은혜의 힘입어요. 그래서 지지난 주에도 고백을 했어요. 하나님 제가 이렇게 밖에 목회를 못 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사셨던 삶의 방식을 생각해 봤습니다.
주님도 때로는 올 기도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1:05:46) 하소서. [음악]
공동체 아픔을 끌어앉고 하나님 앞에 자기의 마음을 쏟는 기도는 십자가에서 흐르는 주님의 이마에 땀을 씻게 드리는 것이에요. 그 피를 닦아 드리는 것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이 시간에 우리 같이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1:06:49) 우리가 그 마음을 품고 성도의 공동체의 기도의 제목을 가슴에 품고 주님의 분신처럼 기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이러한 길을 가기에 가로막는 많은 걸림들을 우리의 마음 안에서 치워 주시옵소서.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음악]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이 시간에도 간고하고 기도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해 주시고 오늘이 시간에도 간고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 오늘이 시간 더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녹이시고 주님이 새롭게 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맨 처음 하나님이 제게 주신 그 기전을 따라서 제가 주님의 조국의 교회를 위하여 (1:07:54) 아버지 하나님의 주의 거룩한 복음 드려지도록 역사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산물로 산제사로 하나님 앞에 받쳐지고 드려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다. 사랑이 만드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오셔서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고 할렐루야 주의 마음을 기도하게 해주시 하나님이 시간에도 저희를 도와주시고 은혜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고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역사하여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시옵소서. (1:09:00) 하나님 새롭게 해 주시옵소서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오늘이 시간에도 저희들을 일깨워 주시옵소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깨뜨리시고 저희의 공동체를 깨뜨리시고 그래서 지수의 사랑으로 연약되게 하시고 그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이 시간에도 간고하고 기도하오 주여 우리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하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