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vs 선, 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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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 50:19–21)

서론

사적 복수

모범택시, 더 글로리. 큰 인기를 끌었던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악한 일을 행한 사람들에 대해서 복수를 하는 내용으로 드라마가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더 글로리는 학창시절 지독한 왕따와 괴롭힘을 당했던 한 학생이 학폭을 자행했던 당사자들을 찾아가서 하나씩 복수하는 내용입니다. 모범택시는 사회에서 자행되는 악한 일들로 인해서 당한 피해자들이, 택시기사 김도기에게 의뢰를 하면 그 복수를 갚아주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복수’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악한 일을 행한 사람들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갖고 휘두를 때 주는 쾌감이 있죠. 당해도 싼 사람에게 총과 칼을 갖고 복수할 때 주는 그 희열.
그런데, 이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바로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불법적인 방법으로 이 복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경찰이나 검사를 통한 절차를 통해 이 일이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비밀스럽게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자신이 결정한 방법으로 이 일을 저지른다는 것이죠. 왜죠? 정당한 방법으로는 이 악한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처벌 받지도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 만큼의 처벌이 내려지는 것 같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비질란테(Vigilante): 법의 테두리 밖에서 스스로 정의를 집행하거나 범죄자를 처벌하는 ‘자경단원’ 또는 ‘사적 제재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사적 복수 허용해 주어야 한다”
여러분은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악한 세상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악하고 안좋은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피해가 가해자가 존재하게 되고, 억울하고 당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학교에서도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강한 친구가 약한 친구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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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요셉 이야기 마지막 시간입니다. 누구보다도 억울한 인생을 살았던 요셉이었는데, 그러한 상황에 요셉이 취한 반응과 태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 말씀에 대해 생각해 보고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본론

요셉이 당한 억울함, 괴롭힘, 고통

요셉은 ‘세상이 자기를 억까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일을 당했습니다. 첫번째로 형들의 미움을 사서 에굽에 노예로 팔려가게되고요, 노예로 열심히 일해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는데 그 주인의 아내의 모함으로 인해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지난주에 다루진 않았지만 감옥에서도 요셉은 인정을 받고 교도관의 신뢰를 얻게 되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동료 죄수에게 호의를 베풀었는데도 외면을 당하게 됩니다.
요셉이 당하게 된 어려움들의 시작은 누구로 부터 시작되었나요? 바로 자신의 형들로부터입니다. 요셉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자신을 어려움에 처하게 만든 형들을 기억하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형들 때문에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거야”
“형들만 아니었으면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곱게 자랐을 텐데…”
“모든 것이 다 형들 때문이야”
아마 저라면 이런 생각을 수백번 수천번을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젠가 살아서 형들을 만나면 내가 어떻게 할까? 보자마자 날라가서 날라차기? 형이 10명이나 되니까 한명씩 따로 불러내서 몰래 처리? 나를 팔자고 했던 유다형은 진짜 고통스럽게 복수를 해야겠다! 이런 상상과 다짐들을 했을 것 같아요.
모범택시에 나왔던 김도기한테 신고를 하거나, 더 글로리에 나온 송혜교 한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복수의 칼날을 갈고 닦아서 천천히 잔인하게 복수하면서 형들을 다 노예로 팔아버리거나, 그에 걸맞는 고통을 주는 것으로 요셉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을까요?
제 생각에 성경에서 요셉처럼 억울한 인물이 많이 없을거 같아요. 요셉 정도의 억울함이라면 복수극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런 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요셉의 반응

요셉은 처음 형들을 만났을 때 모르는 척 하고 시험을 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팔아먹었을 때 처럼 여전히 악한 사람들이었는지를 시험해 보려고 막내 동생을 데리고 오라고 하죠. 지난주에 나눈 것 처럼 막내 동생을 데리고 오라고 하고, 그리고 그 동생을 버려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자, 자신을 팔아 남겼던 유다가 자신이 대신 남겠다고 합니다.
형들이 예전에 동생을 팔아 넘겼던 그런 악한 형들이 아님을 확인한 요셉은 벅차올라 울면서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5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7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크나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 주시려는 것이고, 또 형님들의 자손을 이 세상에 살아 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8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창45:4-8, 새번역)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자책을 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왜요?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여기에 보냈기 때문입니다. 분명 형들을 요셉에게 악한 짓을 하고 못된짓을 했지만,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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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은 요셉이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일입니다. 자신들의 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들은 또 두려워졌습니다. 실은 요셉이 자신들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때문에 용서한 척을 한 것은 아닐까? 우리가 행한 악한일을 다 복수해서 우리에게 해코지 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아버지가 죽자 형들은 요셉을 찾아가서 말합니다. “아버지가 살아 생전에 우리 죄를 용서하라고 하셨다 요셉아, 그거 기억하지? 우리를 용서해달라.” 그리고 요셉에게 와서 엎드려서 “우리가 너의 종이야…” 라고 빕니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 50:19–21)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항상 악함이 존재합니다. 갈등이 있고, 미움이 있고, 다툼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원수를 지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악한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서 더 악해질 수도 있습니다. 악한 상대를 상대하기 위해서 더 독해지고 악해져야 내가 이기는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우리 삶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그러한 일들 때문에 우리가 도리어 악해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악함 때문에 우리가 악해지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악한 사람들로부터 악한 일들을 당했지만, 그는 악해지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정말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상처받고 더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실력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을 벌하고 원수를 갚아도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는 위치에 까지 올랐습니다. 요셉의 손에 칼자루가 쥐어진 것이죠. 하지만 요셉은 그 칼을 휘두르지 않고 내려놓습니다. “복수”를 선택하는 대신 “용서”를 선택한 것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믿었고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들은 나를 해하기 위해서 악으로 다가 왔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그 악이 어떻게 되었나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되버렸습니다. 세상에 악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 위에 누가 계신가요? 바로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악한 일들로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요셉은 만났기 때문입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십자가(무고한 죽음)를 구원(생명)으로!

성경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분이셨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해서 그를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예수님을 끌고 십자가라는 사형 집행을 받게 만들었는데요, 이처럼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일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이 십자가를 어떻게 사용하셨나요?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그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악하고 더러워서 예수님을 죽여버렸지만, 하나님은 그 악행을 선으로 바꾸셔서 이 땅의 사람들을 구원하는 통로로 사용하셨습니다. 요셉이 고백한 것 처럼,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살면서 진짜진짜 힘들었던 경험이었고 아픈 시간들이었지만, 이것이 나중에 보니까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거나, 나와 같은 상황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하는 그런 시간으로 좋은 방향으로 사용되는 경험들? 아마 인생을 살면서 그런 일들을 많이 경험하게 될 겁니다. 정말 힘든 시간에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결론

요셉의 상황을 정말 잘 표현한 말씀 한 구절 있습니다.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12:21)
이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죠? 이 말씀에 보면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합니다. 바로 선하고 완벽한 비질란테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원수에게 물을 주고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에게 선하게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선 VS 악, 과연 승자는?’ 이었죠? 여러분 생각에 선이 강한가요 악이 강한가요?
말씀에는 선이 강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선함이 악함을 이깁니다. 용서가 복수를 이기고요, 사랑이 미움을 이깁니다. 현실은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상황에서 우리는 악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 선함으로, 신실함으로, 사랑으로 이 악함을 이기는 자들이 되길 원합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악한 모습으로 다가올 때, 우리가 원한을 품고 복수심을 품게 만드는 그런 상황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 이 모든 것 위에 일하시고 우리의 모든 억울함을 갚아주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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