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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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태초에 하나님이

본문: 창세기 1장 1-2절

찬송: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말씀의 문을 열며: 장엄한 선언과 주어의 신비

오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삼위일체주일입니다. 우리가 매주 암송하는 사도신경의 첫머리가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로 시작하듯, 성경의 첫 장, 첫 절 역시 장엄한 창조의 선포로 그 문을 엽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히브리어 성경의 첫 단어는 '베레쉬트', 즉 '태초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시간의 한 지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만물과 시간, 공간이 시작되는 첫 출발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선언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말은'창조하시니라'입니다. 히브리어로 '바라’이고, 이 단어는 ‘만들다’라는 기본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만들다'라는 단어는 누구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음식을 만드신다", "아이가 종이비행기를 만든다", "목수가 의자를 만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바라'라는 창조하다라는 말은 매우 독특하고 신비로운 규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이 바라(창조하다)라는 말의 주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만다는 것들은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가지고 모양을 바꾸거나 조립하여 무언가를 '제조'할 뿐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오직 주권적인 말씀으로 유(有)를 부르십니다. 이것이 바로 '무에서의 창조'입니다. 온 세상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고, 그 시작의 주체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이 사실은 우리 신앙의 가장 기초이자 대전제입니다.
그런데 이 장엄한 선언 뒤에 곧바로 이어지는 2a절의 말씀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완벽한 창조의 선포 뒤에 이런 어둠과 무질서의 묘사가 등장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모순적이기도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만, 본문 2절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어둡고 혼탁한 이 세상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살피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내가 주인 된 삶의 혼돈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내가 인생의 주체가 되어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려 합니다. 마치 내가 창조의 주체라도 된 양, 내 힘으로 행복을 제조하고, 내 능력으로 평안을 구축하며, 내 열심으로 나만의 세상을 세우려 발버둥을 칩니다. 우리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쥐고, 내 삶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모든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열쇠 꾸러미'를 손에 꽉 쥐고 절대 놓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내가 주체가 되어 악착같이 만들어낸 우리 삶의 결과는 어떠합니까?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을 배제한 채 우리가 스스로 주체가 된 인생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2절의 묘사와 같은 거칠고 비어 있는 혼돈과 공허일 때가 많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부를 쌓았는데 마음은 더없이 황폐해집니다. 수많은 사람 속에 섞여 살아가지만 영혼은 깊은 고독의 흑암 속에 갇혀 있습니다. 질서를 세우려 할수록 관계는 엉키고, 무언가를 채우려 할수록 공허함은 커져만 갑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를 잃어버린 피조물의 비극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창조할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무능력을 정직하게 직면해야 합니다. 우리 삶이 왜 이토록 무질서하고 혼탁한지, 왜 끊임없이 갈급한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뒤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체가 되셔야 할 내 인생의 창조(바라)의 자리에 '나'라는 연약한 존재를 앉혀두었기에, 우리 영혼은 흑암에 갇혀 깊은 침묵 속에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주인이 되려 할 때, 우리는 오히려 우리 자신이 만든 혼돈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우울'과 '공허'는 단순한 심리적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스스로를 창조할 수 없다는 또 다른 증거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만들어 내야 한다(제조)는 강박이, 오히려 우리의 영혼을 황폐한 땅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우리 삶의 주인 자리를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자 동행이신 삼위일체 하나님

그런데 너무나도 감사한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혼돈과 공허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서 '운행하다'라는 말을 히브리어 성경을 통해 보면 그 뜻이, 어미 새가 새끼를 보호하고 양육하기 위해 둥지 위를 맴들며 따스하게 품어 안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 보좌에서 우리의 고통을 구경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과 이 세상의 무질서와 흑암 속으로 친히 걸어 들어오시는 분입니다. 칼 바르트 목사는 "창조는 삼위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넘쳐 우리를 초대하신 은혜의 무대"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의 교제 속에 스스로 완벽하게 행복하신 분이지만, 그 충만한 사랑을 우리와 나누기 원하셔서 우리 인생의 혼돈의 수면 위를 사랑의 날개로 품어주셨습니다.
창조의 사랑성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절정을 이룹니다. 창조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참 빛으로 우리의 어둠 속에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주인 되어 망가뜨린 이 세상을 새롭게 재창조하시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의 흑암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저와 여러분 곁에 머물며 동행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삼위일체 하나님은 논리 속에 갇힌 박제된 교리가 아닙니다. 그분은 실제 우리 곁에 머물고 계시며, 우리가 눈물 흘리는 그 혼돈의 현장에서 우리 영혼을 품어 안으시는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은 이미 우리 삶의 수면 위를 운행하며 새로운 창조의 시간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겪는 절망의 깊음보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품으심은 더 깊습니다. 흑암이 깊을수록 빛의 임재는 더욱 가깝습니다. 우리가 주권을 내려놓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품으심을 신뢰할 때, 비로소 우리 삶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 속에 버려진 우리를 다시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로 빚어가시는 영원한 동행자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근원과 주인을 아는 자가 누리는 안식

창조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그분이 우리 삶의 유일한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사람은 비로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에 답을 얻게 됩니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살고,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우연의 산물로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계획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목적 없이 방황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돌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종착역은 허무나 멸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의 일곱째 날에 제정하신 영원한 안식입니다.
안식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창조의 완성이며, 왕이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완벽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2절 에서 말하는 일곱째 날의 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즐거워하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의미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쉼 없이 경쟁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하며 살라고 강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이 세상의 분주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립니다. 내 인생의 모든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열쇠 꾸러미'를 하나님께 맡겨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가 주인되는 나라를 스스로 세우려 애쓰는 고단한 노동을 멈추고, 하나님의 안식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삶은 결코 방종이나 나태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역동적인 삶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바꾼 사람은 일터에서, 가정에서 생명을 돌보고 평화를 이루는 창조의 동역자로 살아갑니다.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을 통해 행하시는 새 창조의 사역에 기쁨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앞으로 들어갈 미래의 영원한 안식을 오늘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일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품으심 속에 머물 때, 우리의 고단한 일상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 자리로 변화됩니다. 나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참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창조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신실하신 동행으로의 은혜로운 초대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이것 하나 만큼은 반드시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주인을 ‘나’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바꿀 때, 우리의 혼돈은 거룩한 안식이 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실 때 우리는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거칠고 비어 있는 인생의 계절을 지나며 깊은 외로움과 낙심에 빠지곤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어 버둥거릴수록 어둠은 더 짙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여러분을 홀로 두신 적이 없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참 빛이 되시고, 성령께서 지금도 여러분의 아픈 심령을 위로하시고 사랑으로 운행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아무리 혼돈스럽고 공허할지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지금 실제 여러분 곁에 머물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온전히 새롭게 빚으실 수 있는 유일한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어미 새처럼 우리를 품으시고 새 일을 행하고 계시는 살아계신 창조주이십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권 아래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천지를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혼돈과 어둠 속에 신음하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지금도 어미 새처럼 따스한 사랑의 날개로 우리 영혼을 품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이제 내 힘으로 인생을 빚으려던 무거운 고집과 불안을 내려놓습니다. 내 손에 꽉 쥐고 있던 통제권의 열쇠 꾸러미를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리오니,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삶의 유일한 창조의 주어가 되어 주옵소서.
우리를 은혜의 무대로 초대하신 주님과 손잡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갑니다. 우리 삶의 자리가 비록 거칠고 비어 있을지라도, 실제 우리 곁에 머물며 동행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흔들리지 않는 참된 안식과 소망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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