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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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바울 사도가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며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품에 안고 가던 중, 고린도 근처의 겐그레아 항구에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 편지가 바로 성경의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로마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바울이 로마의 '지체들'에게 편지를 썼다면,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이루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가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어떻게 복음을 듣고 성도가 되었을까요?
교회 전승은 베드로가 로마 교회를 세웠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베드로는 나중에 교회를 견고하게 하는 데 기여했을 뿐, 초기 개척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오순절 날, 성령 충만한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로마 출신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 자생적으로 교회를 세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미 복음을 들어서 알고 있고, 이미 예수 님을 믿어 그리스도인이 된 그들에게, 바울은 왜 굳이 또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혹시 베드로가 전한 복음과 바울이 전한 복음이 달라서, 자기 복음을 주입하려는 것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만났을 때, 자신들이 전하는 복음이 완전히 일치함을 이미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미 믿는 로마의 성도들에게 다시 복음을 전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그 위대한 두 가지 이유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론 1] 복음은 믿지 않는 사람만 듣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본론 1] 복음은 믿지 않는 사람만 듣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많은 성도가 복음을 "예수 믿고 천국 가는 티켓" 정도로 가볍게 이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광대합니다.
복음은 죄인이 어떻게 구원받는가를 알려주는 소식일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능력을 주는 것이며,
무너진 세상을 하나님이 어떻게 회복하시는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미 믿는 자들에게 다시 복음을 선포하려 합니다. 성도는 결코 복음을 졸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혁주의 전통의 경구처럼, *"복음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학교의 입문 과정이 아니라, 평생 배워야 할 교과과정 전체"*입니다.
성도는 복음으로 거듭나고, 복음으로 성장하며, 결국 복음으로 영화롭게 됩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보십시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기서 "구원을 주시는"이라는 말은 헬라어 시제로 현재진행형입니다. 즉, 복음은 과거에 나를 구원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나를 구원하고 계시며, 미래에도 나의 구원을 완성해 가시는 능력입니다.
복음은 단 한 번 먹고 끝내는 치료약이 아닙니다.
심장이 끊임없이 피를 공급해야 온몸이 살아나듯, 복음의 피가 성도의 심장에 매일 공급되어야 영이 살 수 있습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매일 복음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본론 2] 복음은 끊임없이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본론 2] 복음은 끊임없이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를 깊이 읽어보면, 바울은 교회 내부의 심각한 문제들을 끄집어냅니다. 율법주의, 민족적인 우월감, 자기 의,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깊은 갈등입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교회 안의 문제들이었습니다. 사람은 참 끈질깁니다. 은혜로 구원받아 놓고도 돌아서면 끊임없이 내 행위를 의지하려 하고, 내 공로를 자랑하려 하며, 내 기준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날마다 우리를 다시 원점으로 끌고 옵니다. "정신 차려라, 너는 오직 은혜로만 구원받은 죄인이다!"
마르틴 루터는 이 지독한 인간의 부패함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이 날마다 복음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과 다시 복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선포되는 이 날것의 복음을 통해, 누군가는 잃어버렸던 구원의 첫사랑과 은혜를 격렬하게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또 인생의 고통스러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는, 오늘 선포되는 복음 안에서 세상을 이길 위로와 능력을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후반부 폭발적 선포
[결론] 후반부 폭발적 선포
오늘 성경은 선포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여러분, '하나님의 의'가 무엇입니까? 먼저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며, 단 하나의 죄도 용납하실 수 없는 엄격한 거룩함입니다. 죄인을 반드시 심판하셔야만 하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거대한 영적 충돌이 일어납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영원한 지옥 형벌로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가슴이 찢어지신 것입니다. 죄는 벌하셔야 겠고, 죄인은 살리셔야 겠는 이 거대한 딜레마를 하나님은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타오르는 진노와 공의의 칼날을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아낌없이 쏟아부으셨습니다. 내가 받아야 할 십자가의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만족시키셨고, 동시에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이 말도 안 되는 지독한 사랑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내 힘과 내 의지로는 단 1초도 살 수 없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하나님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만 우리가 진짜 생명을 얻는다는 선포입니다.
이 복음을 깨달은 자에게는 더 이상 자랑이 없습니다. 오직 깊은 겸손과, 터져 나오는 감사와, 멈출 수 없는 기쁨만 남을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구원 받았다는 믿음은 또한 자신이 미래적으로도 구원받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의미입니다.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완성하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표현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대속적 죽음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하여졌다는 과거적 사건에 대한 믿음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우리 모두 구원받을 것이라는 미래적 사건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과거와 미래에 대한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다르게 현재를 살아갑니다.
이 복음의 능력을 가진 자는 더 이상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삶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고, 사탄의 참소와 악한 공격이 거세다 할지라도,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 뒤에서 담대히 외칠 수 있습니다. "나의 공로 전혀 없으나, 오직 하나님의 의가 나를 덮으셨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오늘 이 복음의 능력이 저와 여러분의 심장에 다시 한번 뜨겁게 휘몰아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