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가볍게 보지 않는 공동체

고린도전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
Notes
Transcript

기도

우리의 모든 죄짐을 맡아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오늘도 죄인들을 이 은혜의 자리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와 함께 교제하는 이 시간, 우리의 구원되신 주님 품에 안기어 참된 위로 받기 원하오니, 우리를 받아주시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여 주시고, 합력하여 주의 몸된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갈 수 있도록 능력과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제일영도교회가 십자가의 복음 위에 바로 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사랑과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 안에 스며든 죄악을 방관해왔다면, 이 모든 것을 제할 수 있도록 믿음과 용기룰 허락하여 주옵소서. 형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권면함으로, 그들이 죄에서 멀어질 수 있도록 우리에게 굳건한 믿음과 인내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발검음이 거룩한 발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세상의 음행과 탐욕 속에서 거룩을 잃지 않게 하시고, 동시에 세상의 죄인들을 정죄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스스로를 돌이켜 정결함을 지키게 하시고, 이를 통하여 세상의 등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심령 가운데 성령의 조명을 비추어 주시옵소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거룩을 위해 눈물로 권면했듯, 우리 마음 가운데 애통함을 허락하여 주시고,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정결한 공동체로 다시금 세워질 수 있도록 하나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하시고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본문

1 Corinthians 5:1–13 NKRV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서론

오늘날 교회는 거룩함을 상실하였습니다. 과거 믿음의 선배들은 생활의 순결을 굉장히 강조하였고 또 지켜왔습니다. 세상으로 하여금, 교회의 이런 모습이 교회가 거룩한 곳임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선배들의 노력을 자신의 의로 여겼던 교회는 점점 생활의 순결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급기야 ‘형제 사랑’이라는 핑계 속에서 죄를 용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2천년 전 고린도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이방인들조차 입에 올리기 꺼려 하는 충격적인 음행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더 참담한 것은 교회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이 죄악을 애통해하며 끊어내기는커녕, 도리어 헛된 관용으로 포장하며 영적으로 교만해져 있었습니다.
오늘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던지는 단호한 권면은,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죄에 무감각해진 오늘날의 교회가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십자가의 피로 세워진 우리 공동체가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결단해야 할 세 가지 영적 원리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지 1. 거룩한 공동체는 죄를 방관하는 교만을 버리고 ‘애통함’을 회복해야 한다(1-5절).

먼저 본문 1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이루어졌던 충격적인 음행에 대해 먼저 말합니다. 이는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는’ 충격적인 음행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조차 꺼려하는 패륜적인 죄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을 진정으로 분노하게 만든 것은, 범죄한 개인에 대한 ‘공동체의 반응’이었습니다. 본문 2절을 보시면, 형제의 음행에 대하여 애통해 하지도, 그를 치리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영적으로 매우 교만해졌다고 진단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적인 지식과 은사가 풍부하다는 이유로, 혹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자유롭다는 이유로 ‘이 끔직한 죄’를 묵인하였습니다. 죄를 덮어주는 자신들의 모습이 마치 수준 높은 관용과 사랑인 것처럼 착각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헛된 관용이 사실은 영적인 교만이며, 하나님 앞에서 ‘애통함’을 잃어버린 치명적인 병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3절과 4절에서, 자신이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영으로는 그들과 함께 모여 이미 이 일을 단호하게 판단하였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5절에서 확고한 처방을 내립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 말은 곧 하나님의 통치와 보호가 있는 교회에서 그를 쫓아내라는 ‘출교 명령’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바울의 처분은 어떠합니까? 가혹하게 느껴지십니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바울이 이토록 형제를 가혹하게 징계하는 이유는, 그를 파멸시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5절 하반절에 바울의 진짜 의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바게 하려 함이라”
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내보내어, 세상 속에서 죄의 결과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뼈저리게 깨닫고, 그 모진 고집을 꺽게 하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그가 회개하여 주님의 날에 그 영혼이 구원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무조건 덮어주는 거짓된 평화가 아니라, 뼈를 깎는 징계를 통해서라도 영혼을 살려내는 것, 이것이 바울이 보여주는 ‘진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공동체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은혜’라는 이름으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핑계로 죄를 묵인하고 방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죄에 대한 찌름이 올 때, 우리는 변명할 것이 아니라, 가슴을 치며 애통해해야 합니다. 공동체 안의 죄악을 가슴 아파하며 눈물로 회개하는 ‘애통함’이 회복될 대, 비로소 우리 교회는 다시 거룩한 생명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대지 2. 거룩한 공동체는 ‘적은 누룩’을 제거하고, 십자가 은혜로 빋어진 ‘새 반죽’답게 살아야 한다.

다음으로 바울은 공동체 안에 숨겨진 죄의 파괴력을 설명하기 위해 ‘누룩’을 비유로 듭니다. 누룩, 즉 이스트는 아주 적은 양만 들어가도 반죽 전체를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죄의 성질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이 정도 죄는 괜찮겠지’, ‘우리끼리 덮어주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방치할 때, 아주 작은 죄악은, 순식간에 공동체 전체로 퍼져나가 교회를 병들게 하고 타락시킵니다. 죄는 전염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죄를 묵인하는 것은, 결국 공동체 전체를 영적인 전염병에 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7절에서 ‘낡은 누룩을 내버리라’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내 안에 있는 죄의 누룩을 치열하게 버려야하는 이유가 바로 희생되신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미 깨끗하게 씻겨진 ‘누룩 없는 새 반죽’이 되었습니다. 거룩해지기 위해서 죄를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 값으로 ‘이미 거룩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그 고귀한 신분에 맞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은 악동하고 타락한 옛 누룩으로 채워져서는 안 됩니다. 나를 위해 희생하신 유월절 어린 양의 은혜를 기억하며,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이라는 ‘무교병’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나가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삶과 교회 공동체 구석구석에 아직 치우지 않은 ‘적은 누룩’이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십자가의 빛으로 확실하게 비추보아야 합니다.

대지 3. 거룩한 공동체는 세상을 향해서는 열려있되, 교회 안의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분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전에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권면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이 말을 오해했습니다. ‘아, 세상에 있는 모든 죄인들과 인연을 끊고 우리끼리만 모여 살라는 말이구나!’하며 오해했습니다. 바울은 10절에서 오해라고 말합니다. 만약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피해야 한다면, 우리는 아예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산속에 숨어 우리끼리만 거룩한 척하며 살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세상의 죄인들은 우리가 피하고 정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끌어안고 복음을 전해야 할 전도의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엄하게 경고한 진짜 대상은 누구입니까? 11절을 보시면, 그가 우리의 ‘형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타깃은 세상 밖의 불신자들이 아니라,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면서도, 실제로는 음행과 탐욕, 우상숭배와 남을 속여 빼앗는 악한 습관을 뻔뻔하게 지속하는 ‘교회 안의 형제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식사 교제조차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그들의 죄를 묵인하고 계속해서 친교를 나누면, 그 사람은 끝내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세상은 교회를 ‘죄를 지어도 괜찮은 곳’이라고 조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2절과 13절에서 교회 안과 밖의 질서를 명확하게 정리해 줍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교회 밖의 불신자들을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향해 휘두를 정죄의 칼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은 다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너희는 이 악한 사람을 너희에게서 내쫓으라!’ 교회는 세상의 죄에 대해서는 긍휼을 베풀어야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의도적으고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이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분별하고 징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피로 세워진 교회가 회복해야 할 거룩함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상처 입은 죄인들이 모여 치유받는 은혜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죄를 정당화하고 즐기는 안식처는 아닙니다.
오늘 바울의 엄중한 권면을 우리 가슴에 새기길 원합니다. 거짓된 교만과 방관을 버리고 죄를 향한 ‘애통함’을 회복합시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유월절 어린 양의 은혜를 기억하며, 내 삶의 구석구석에 숨겨진 ‘낡은 누룩’을 과감히 내다 버립시다. 그리하여 세상 속에서 사랑으로 영혼을 품고, 공동체 안에서 순전하고 진실한 거룩을 지켜내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그리고 우리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우리 제일영도교회를 비롯한, 이 시대의 교회가 다시 거룩한 공동체가 되길 기도합시다. 생활의 순결과 엄중한 치리를 통해 교회의 질서가 태초에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와 같이 아름답게 세워지길 기도합시다.
교육부서가 성경학교 및 수련회를 준비하는 중에 있습니다. 모든 준비와 수고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가득하게 하시고, 말씀을 먹는 아이들이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바르게 세워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후 각자 가져오신 제목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