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부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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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지금 우리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묵상기도

Deuteronomy 6:4–5 NKRV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앙고백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 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301

본문

Joshua 14:8–12 NKRV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서론】

오늘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살면서 포기한 것이 있으십니까.
한때 간절히 원했는데, 한때 열심히 기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마음을 내려놓은 것이 있으십니까.
자녀를 위한 기도였을 수도 있습니다. 건강을 위한 소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 나이에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싶어서 스스로 조용히 접어버린 꿈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요청하는 것을 멈추게 됩니다.
새벽 기도실에서 두 무릎을 꿇고 간절히 부르짖던 분이, 어느 날부터는 그냥 의자에 앉아 조용히 눈만 감게 됩니다. 기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요청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겸손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는 받을 자격이 없다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포기하지 않은 한 사람을 만나봅니다.
여든다섯 살입니다. 사십오 년을 광야와 전쟁터에서 보낸 사람입니다. 누가 봐도 이제는 쉬어야 할 나이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일어나서 이렇게 외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포기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나이 앞에서 멈추지 않은 사람입니다. 여든다섯 살에도 담대하게 요청한 사람, 갈렙의 이야기를 오늘 함께 듣겠습니다.

【대지 1】하나님은 오늘까지 나를 살리셨습니다

10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Joshua 14:10 NKRV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갈렙은 지금 몇 살입니까.
여든다섯 살입니다. 그런데 그가 먼저 한 말이 무엇입니까.
"이 산지를 달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이걸 보면 우리가 알 수 있는건 하나님과 평생을 동행한자에게서는 요청 보다 고백이 먼저나온다는 것 입니다.
사렙의 사십오 년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것이 사십 세였습니다. 그로부터 광야에서 사십 년,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오 년. 도합 사십오 년입니다.
그 세월 동안 갈렙이 함께 했던 친구들 가족들 한 세대가 불신앙으로 쓰러져 갔습니다.
또 그의 광야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그저 평화로웠을까요? 그렇지 않았죠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을 막던 여러 국가와의 전쟁에 참가했고, 광야의 뙤약볕이 몸을 지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살아남았습니다. 어떻게요?
갈렙이 스스로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생존하게 하셨다"
그냥 죽지 않고 버텼다는 말이 아닙니다.
갈렙은 그 사십 오년간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 약속을 경험했다고 이곳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사십오 년을 자신의 강인함으로 버티었다고 고백하는 것도 힘들어서 지쳤다고 고백하는 것도 아닌. “하나님이 나를 생존시켰다!”
이사야서 46장이 그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사야 46:3–4)
Isaiah 46:3–4 NKRV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오늘 갈렙이 이러한 인생을 살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갈렙은 요청보다 고백을 먼저 했을까요.
산지를 달라고 그냥 해도 될텐데 왜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까지 생존시켰다는 말을 먼저 하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이 요청의 근거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겁니다.
갈렙은 요청의 근거를 자신에게서 찾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십오 년을 잘 버텼으니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십오 년 동안 나를 살리셨으니,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다. 신실하신 분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의 논리입니다.
우리가 담대히 구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충분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충분히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나를 살리셨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는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도 이 논리로 기도했습니다.
(시편 22:4–5)
Psalm 22:4–5 NKRV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지금 나를 도우시라는 요청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과거에 우리 조상들을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어제 신실하셨던 하나님이 오늘도 신실하시다는 것, 이것이 성경 기도의 뿌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의 나이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팔십 세를 사신 분은 이만 구천 일을 넘게 사신 것입니다. 그 하루하루가 다 하나님이 살리신 날들입니다.
여러분의 지난 삶을 돌아보십시오. 고비가 없었습니까. 아팠던 때가 없었습니까. 못 버틸 것 같던 때가 없었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의 힘만으로 오셨습니까? 하나님이 업고 오신 것입니다.
이 고백을 인생 마지막에 가장 선명하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송을 아십니까.
예배 때 자주 부르는 찬송입니다. 영어로는 "Amazing Grace"입니다. 이 찬송을 쓴 사람이 존 뉴턴(John Newton, 1725–1807)이라는 영국 목사인데, 그의 젊은 시절을 알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는 아프리카 해안을 오가며 수천 명의 사람들을 배에 실어 노예로 팔아넘기는 노예 선박의 선장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없고 양심도 없이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1748년 3월의 일입니다. 그가 탄 배가 대서양을 항해하던 중 거대한 폭풍을 만났습니다. 파도가 배를 집어삼킬 듯 쏟아졌고, 배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 순간, 그는 생전 처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폭풍은 지나갔고, 배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날 밤 존 뉴턴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회심 이후 그는 노예 무역에서 손을 뗐고, 서른아홉 살에 목사 안수를 받아 평생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은 그의 자서전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시력도 흐려지고, 기억도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존 뉴턴은 잠시 말이 없다가 조용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기억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만은 분명히 기억합니다. 내가 큰 죄인이라는 것과, 그리스도는 위대한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평생을 복음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 인생 마지막에 남긴 고백이 "내가 잘 살았다"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큰 죄인이었고, 그리스도가 나를 살리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살아온 것이 아니라 살려져 온 것임을 인생 끝에 가장 분명히 보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기억해 봅시다. 하나님이 과거에 여러분에게 신실하셨던 순간이 있습니까. 아프던 때 회복시켜 주신 일이 있습니까. 막막하던 때 길을 열어주신 일이 있습니까. 포기하고 싶던 때 힘을 주신 일이 있습니까. 그 기억들이 그냥 추억이 아닙니다. 그것이 오늘 여러분이 담대히 요청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같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신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고백입니다.
"내가 너를 여기까지 살렸다. 내가 너를 업고 왔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하신 적 있으십니까. "이제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 얼마나 더 살아야 하나."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몸이 아프고, 외롭고,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 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목적 없이 사람을 살리지 않으십니다. 갈렙을 사십오 년 동안 살리신 것이 이유 없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이 여러분을 오늘까지 살리신 것도 이유가 없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숨을 쉬고 계신 것, 이 예배당에 앉아 계신 것, 이 말씀을 듣고 계신 것. 그것이 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아직 너와 함께 있다."

【대지 2】하나님은 온전히 좇은 삶을 기억하십니다

8절과 9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Joshua 14:8–9 NKRV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충성하였으므로
히브리어 원문에서 이 표현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가득 채워 따랐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서 따랐다는 것입니다. 조금 따른 것이 아닙니다. 절반쯤 따른 것이 아닙니다. 넘치도록 채워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이 더욱 빛나는 것은 갈렙이 어떤 상황에서 이 삶을 살았는지를 볼 때입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 가운데 열 명이 "안 된다"고 할 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온 회중이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며 통곡할 때 홀로 "올라가서 취하자"고 외쳤습니다.
다수의 두려움을 거슬러 하나님을 향한 방향을 지킨 것, 그것이 갈렙의 "온전히 좇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사십오 년 동안 한 번도 꺾이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갈렙과 정반대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솔로몬입니다.
(열왕기상 11:4)
1 Kings 11:4 NKRV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솔로몬은 젊을 때 성전을 지었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자 마음이 다른 곳을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많을 때에"라는 표현이 뼈아프게 읽힙니다. 나이 들면 신앙이 자연스럽게 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갈렙은 나이 들어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솔로몬은 나이 들어 마음이 나뉘었습니다. 그 차이가 인생의 마지막을 갈라놓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가지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충성이 갈렙이 흠 없이 완벽하게 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갈렙이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광야 사십 년 동안 그도 힘들었을 것이고, 낙심했던 날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의 방향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충성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차이입니다. 만약 충성이 완벽한 행실을 의미한다면, 갈렙의 기업 요청은 자신의 공로에 근거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갈렙의 요청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입니다.
"네 발이 밟는 땅을 주겠다"고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맹세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붙들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를 어렵게 만드는 오해를 풀어줍니다.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어서 하나님께 뭔가를 구하기가 미안하다." 여러분 중에 이런 마음이 드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그 마음은 이해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4:16)
Hebrews 4:16 NKRV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담대히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은혜의 보좌이기 때문입니다.
갈렙처럼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두고 살아온 것, 그것이 여러분이 담대히 요청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으면 됩니다. 그 삶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그 관계 안에서 여러분의 요청을 들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평생을 기억하십니다.
여러분의 평생 신앙이 허공에 흩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고이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낱낱이 기억하고 계십니다.

【대지 3】하나님은 지금도 요청하는 자에게 응답하십니다

11절과 12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수아 14:11–12)
Joshua 14:11–12 NKRV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여러분, 이 말을 한 사람이 몇 살인지 다시 한번 기억하십시오. 여든다섯 살입니다.
여든다섯 살의 노인이 말합니다. "나는 여전히 강합니다. 사십오 년 전과 똑같이 강합니다. 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미 광야 사십 년을 버텼고, 가나안 정복 전쟁 오 년을 싸웠습니다.
아무도 갈렙에게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갈렙, 당신은 충분히 했소. 이제 쉬시오." 그러나 갈렙은 요청합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그런데 12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갈렙이 눈을 감고 요청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갈렙은 현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아낙 사람들, 사십오 년 전 열 명의 정탐꾼이 "우리는 그들 앞에서 메뚜기 같다"고 무너지게 했던 바로 그 거인들입니다.
견고한 성읍들, 하늘에 닿을 듯한 성벽들. 갈렙은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다 알면서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갈렙 신앙의 핵심입니다.
두려움이 없어서 담대한 것이 아닙니다. 현실을 똑바로 보면서도, 그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 요청하는 것입니다.
갈렙이 요청한 땅은 헤브론 산지입니다. 이 땅은 어떤 땅이었습니까. 예루살렘 남쪽 약 30킬로미터, 해발 900미터가 넘는 험준한 고원 지대입니다.
주변에서 가장 공략하기 어려운 자연 요새였습니다. 아낙 자손이라는 거인 족속이 살고 있었고, 성벽은 하늘에 닿을 듯 높았습니다. 그 땅을 원한 것이 욕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렙이 이 땅을 요청한 것은 사십오 년 전에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네 발이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여호수아 14:9) 갈렙이 사십오 년 전에 직접 발로 밟았던 그 땅, 그것이 헤브론이었습니다. 갈렙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의 본질입니다.
성경적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주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당신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이루어 주십시오"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갈렙의 기도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자녀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때, 그것이 단순한 부모의 소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건강을 위해 기도할 때, 그것도 하나님이 우리 몸을 지으시고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삼으면, 기도는 더 이상 미안하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담대하게 드릴 수 있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요청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납니까.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여호수아 14:12) 갈렙은 자신의 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이것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아낙 자손도 두렵지 않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견고한 성읍도 무너진다. 이것이 여든다섯 살 갈렙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늘 나이 든 사람들을 통해 가장 큰 일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일흔다섯 살에 고향을 떠났고(창세기 12:4), 모세는 여든 살에 바로 앞에 섰으며(출애굽기 7:7), 갈렙은 여든다섯 살에 산지를 요청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젊은이가 아니라 이렇게 나이 든 사람들을 통해 일하셨을까요.
나이 든 사람은 이미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젊은 날의 자신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오직 하나님만 남아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를 찾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갈렙이 여러분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의 산지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아직 하나님께 요청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아직 응답이 없는 것이 있습니까. "이제는 너무 늦었다, 이제는 내 나이에 안 된다"고 스스로 포기해버린 것이 있습니까.
갈렙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십오 년이 지났어도, 아낙 자손이 있어도, 견고한 성읍이 앞에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청했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러분도 오늘 그렇게 요청하시기를 바랍니다. 건강을 위해 요청하십시오. 자녀를 위해 요청하십시오. 손자손녀를 위해 요청하십시오.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가족을 위해 요청하십시오. 남은 날들을 하나님과 함께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요청하십시오.
그리고 그 요청을 갈렙처럼 이 말씀으로 마치십시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 힘이 아닙니다. 내 나이가 아닙니다. 내 건강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됩니다. 그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요청하는 자에게 응답하십니다. 여든다섯 살 갈렙의 요청에 응답하신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의 요청에도 응답하십니다.
나이가 요청을 막지 않습니다. 연약함이 응답을 막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요청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응답하십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여든다섯 살 갈렙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십오 년을 살리셨습니다. 한 번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요청에 응답하셨습니다. 갈렙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갈렙에게 하신 것을 여러분에게도 하십니다. 지금까지 살리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살리십니다. 평생을 기억하신 하나님이 오늘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요청하는 자에게 응답하십니다.
여러분의 눈앞에도 두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아픈 몸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앞날의 불확실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 큽니다. 갈렙이 아낙 자손 앞에서도 요청했듯, 여러분도 오늘 그렇게 요청하십시오.
오늘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시면, 조용히 하나님 앞에 앉으십시오. 그리고 갈렙처럼 말씀하십시오.
"하나님, 오늘까지 나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평생을 기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내게 이 산지를 주소서.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됩니다."
시편 기자는 노래했습니다.
"그들은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시편 92:14)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나이 드는 것은 시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결실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됩니다.
아멘.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지나온 긴 세월 동안 수많은 고비와 아픔 속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넓은 품에 업어 여기까지 인도해 주시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고 육신이 약해지면서 때로는 스스로 기도의 자리에서 물러나려 했던 우리의 작아진 마음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오늘 갈렙의 고백을 들으며 다시 한번 굳게 일어섭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신 주님의 음성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남은 평생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고 온전히 좇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이 시간 주님께서 약속하신 산지를 담대히 구합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아낙 자손처럼 커 보이는 질병의 문제, 자녀와 손주들의 앞날, 그리고 아직 주님을 모르는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주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내 나이나 약해진 몸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그 분명한 믿음을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질지라도 우리의 기도는 결코 늙지 않게 하시고,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여전히 생명을 잉태하고 열매 맺는 푸른 삶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평생을 기억하시고, 오늘도 담대히 간구하는 소리에 응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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