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무너짐의 자리, 그곳에 놓인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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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출애굽기 17:11-12
Exodus 17:11–12 NKRV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서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 구조적 피로]

누군가를 위한 기도로 아침을 채우기 위해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이 나라와 이 땅을 위해,
북한 땅의 회복을 간절히 소망하며 모이신 여러분께
하나님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건축 공학에 '구조적 피로(Structural Fatigue)'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거대한 다리나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져 내릴 때,
벼락을 맞거나 폭탄이 터져서 붕괴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해서 가해지는 일상적인 무게 때문입니다.
매일 다리 위를 지나다니는 수많은 자동차의 하중,
미세한 바람의 진동, 계절에 따른 온도 변화가
수년, 수십 년 축적되다 보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콘크리트 내부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피로도가 임계점에 달하는 순간,
건물은 소리 없이 주저앉고 맙니다.
우리들의 삶이 어쩌면 이 '구조적 피로도'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겉으로는 가정의 어른으로서, 교회의 중직자로서,
아무런 문제 없이 단단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어떠합니까?
자녀들의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는
부모로서의 애타는 마음,
점점 쇠약해지시는 노부모를 향한 무거운 책임감,
그리고 어느덧 내 몸 구석구석에서 신호를 보내오는
건강과 노후에 대한 조용한 두려움들.
이 일상의 무거운 하중들이
우리의 영혼을 짓누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만들어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출애굽기의 본문은,
유혈이 낭자한 끔찍한 전쟁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삶에 찾아오는
이 '조용한 무너짐'과 '지독한 피곤함'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떻게 은혜의 반석을 예비하고 계시는지를 보여주는
따뜻하고도 강력한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본론 1: 산 아래의 방식이 아닌, 산 위의 은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빠져나와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깊은 피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말렉 군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합니다.
신명기 25장을 보면,
아말렉은 정면으로 당당하게 싸움을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대열의 맨 뒤,
가장 지치고 피곤하여 뒤처져 있던 연약한 자들을
기습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원수도 이와 똑같은 전략을 씁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할 때가 아니라,
삶의 하중에 짓눌려 마음이 무너지고 육체가 지쳐 있을 때,
우리의 그 미세한 균열을 파고들어 옵니다.
두려움을 주고, 원망하게 만들며, 기도의 자리를 떠나게 만듭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모세는 조금은 의아한 행동을 합니다.
그는 훈련받지 않은 오합지졸 백성들에게
칼을 쥐여주고 산 아래로 내보낸 뒤,
자신은 묵묵히 산꼭대기를 향해 걸어 올라갑니다.
왜 그랬을까요?
모세는 이 싸움의 승패가
눈에 보이는 물리적 힘에 있지 않음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Exodus 17:11 NKRV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가 든 손은 빈손이 아니었습니다.
그 손에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내었던
그 언약의 지팡이를 위로 들었다는 것은,
철저한 항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내 힘으로는 이 피곤함과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직 당신의 은혜에만 기대어 섭니다"
라는 전적인 의존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의 손길을 먼저 내밀어 주시지 않는다면
단 한 순간도, 단 하나의 선한 발걸음도
스스로 내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모세의 든 손은 바로 그 고백입니다.
참된 항복의 자리입니다.
우리의 일상에 찾아오는 문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지혜, 내 인맥, 내 통장의 잔고라는 나의 힘으로는
결코 이 영적 전쟁에서, 영적 피로를 이겨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야만
바르게 설 수 있습니다.

[본론 2: 카베드(כָּבֵד), 실패가 아닌 영광의 무게]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솔직해져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것을 몸으로 살아내는 것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습니다.
모세는 그 간격을 온몸으로, 팔로 느꼈습니다.
Exodus 17:12 NKSV
모세가 피곤하여 팔을 들고 있을 수 없게 되니…
여기서 '피곤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베드(כָּבֵד, kaved)' 입니다.
본래 이 단어는 '무겁다'는 뜻입니다.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육체가 연약하여, 우리의 마음이 무너져서,
인생이 너무 고달프고 버거워서
팔을 들고 있을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이런 틈이 생길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저는 아까 서론에서 말씀드렸던
'구조적 피로'의 이미지를 다시 떠올립니다.
공학자들이 건물 내부의 균열을 발견했을때,
에이 이건 안돼. 글러먹었어 못 고치겠다. 라고 단정짓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균열이 있는 정확한 지점을 찾아내어, 거기에 더 단단한 재료를 채워 넣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십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 때문에 맞이하게 되는
우리 안에 생긴 균열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채워 넣으실 정확한 주소가 됩니다.
그 이유가 히브리어 안에 담겨 있습니다.
놀랍게도, '무겁다'는 뜻의 ‘카베드(כָּבֵד)’는
하나님의 '영광(כָּבוֹד, kavod)'을 의미하는 단어와
정확히 같은 어근에서 나옵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단어입니다.
구약학자 브레바드 차일즈(Brevard S. Childs)는
출애굽기 주석에서 이 전투 장면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의 개입이 열리는 문이 된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드는 기도의 팔이
쇳덩이처럼 무겁고 삶이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연약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세의 팔이 내려온 것은, 엄밀히 말하면 실패가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은혜는 실패를 위장된 성공으로 바꾸지 않습니다.
은혜는 실패한 자리에 그대로 들어와,
실패한 채로 서 있는 사람을 붙들어 줍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과 가정을 어깨에 짊어진 중보의 자리에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압도적인 영광의 무게가
함께 실리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이 눈물로 자녀를 품고 기도할 때,
남몰래 교회의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헌신할 때,
그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는 단순한 삶의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가장 고귀하고 거룩한 사명의 무게입니다.
모세의 팔이 무거워진 것은,
이스라엘 전체의 생명이라는
그 무거운 영광을 한낱 불완전한 인간이
감당해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팔이 덜덜 떨리며 내려오는
이 뼈아픈 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우리의 구원과 승리가 인간의 초인적인 노력이나
인내, 결단에 달려 있지 않음을,
오직 철저한 은혜에 달려 있음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본론 3: 반석 위에 앉아 경험하는 타마크(תָּמַךְ)의 은혜]

그렇게 절망의 중력에 이끌려 모세의 두 팔이 바닥으로 떨어지려 할 때,
가장 낮고 묵묵한 은혜가 모세에게 흘러들어오기 시작합니다.
Exodus 17:12 NKRV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아론과 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모세를 다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어디선가 단단한 돌 하나를 가져와,
땀범벅이 된 모세의 그 지친 몸을 털썩 주저앉게 했습니다.
이 돌은 생수가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던
화려한 기적의 암벽이 아닙니다.
광야 흙바닥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투박하고 거친 돌멩이, 뾰족하고 평범한 '에벤(돌)'이었습니다.
모세가 완전히 힘이 빠져 주저앉은 그 밑바닥에서
그의 모든 하중을 받아낸 것은, 볼품없는 거친 돌멩이 하나였습니다.
은혜는 화려한 기적으로만 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투박한 광야의 돌(에벤)이,
훗날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십자가에 달리신 '모퉁이의 머릿돌',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선포합니다.
내 힘으로 버틸 수 없어 철저히 무너져 내릴 때,
우리는 내 알량한 열심을 다 내려놓고
십자가라는 거칠고 단단한 반석 위에
나의 모든 피곤함을 온전히 내어 맡겨야 합니다.
모세가 그 돌 위에 털썩 주저앉았을 때,
아론과 훌이 양옆에서 모세의 손을 붙듭니다.
여기서 '붙들다'는 히브리어로 '타마크(תָּמַךְ)'입니다.
가볍게 부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63편에서 다윗이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라고 고백했듯,
뼈가 으스러지도록 단단히 움켜쥐어
절대 놓지 않는 하나님의 강력한 지지를 의미합니다.
내 곁에 다가와 나의 무거운 손을 잡아주는 믿음의 동역자는
그저 고마운 조력자가 아닙니다.
내 영혼이 방전되어 바닥에 고꾸라질 때,
그 지체의 따뜻한 손길을 빌려
내 손목을 '타마크'로 움켜쥐고 계신 분은,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통해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리스도의 단단한 두 손을 경험하고 위로를 얻는 것입니다.

[결론: 참된 안식처, 십자가의 두 팔 안으로]

구약의 모세는 피곤하여 팔이 내려오는
불완전한 중보자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결코 피곤함을 모르시며 팔을 내리지 않으시는
참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우리의 예수님께서는
양손에 굵고 차가운 쇠못이 박힌 채로
두 팔을 높이 드셨습니다.
온 인류의 죄악과 사망이라는 가장 끔찍하고 무거운 하중을
온몸으로 홀로 받아내시며,
생명이 끊어지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들었던
그 영광의 손을 끝끝내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은 선포합니다.
Hebrews 7:25 NKRV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예수님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모세의 팔은 내려왔지만,
예수님의 팔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 기도의 자리에서,
"내가 더 힘을 내서 버텨야지"라는 무거운 결심의 짐을
다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중보기도는 내가 하늘을 향해 용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모든 하중을 짊어지시고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신 예수님의 두 팔 안으로,
나의 작고 떨리는 손을 살며시 얹어 놓는
은혜의 신비이며 참된 안식입니다.
여러분을 짓누르는 삶의 '구조적 피로'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안에 생긴 그 균열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채워 넣으실 정확한 주소입니다.
여러분이 바닥에 주저앉은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이 이미 놓여 있습니다.
매일의 삶에서
나를 단단히 움켜쥐고 계신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며,
내 옆에 있는 지체들과 함께
그 반석 위에서 하늘의 안식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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