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인가 박물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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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시장인가 박물관인가
[서론]
예수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의 시작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순한 종교적 친목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하나님 나라의 표지이자 이정표입니다.
예수님은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망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어둠과 죄악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눈으로 보여주는 공동체가 되길 원하십니다.
물론 여기서 교회는 단지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우리가 함께 이루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전시장과 같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볼수 있어야 합니다.
참된 용서가 무엇인지, 온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약한 자를 품는 긍휼과 환대가 무엇인지 보여줘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삶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교회를 통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어느 순간부터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전시장이 아닌것만 같습니다.
단순히 과거의 영광만을 보관하는 박물관처럼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초대 교회의 놀라운 역사를 자주 이야기 합니다.
140여년전 이 땅에 복음이 처음 전해지던 시절 선교사님과 믿음의 선배들을 추억합니다.
실제로 그 당시 교회는 질병과 가난, 무지로 고통받던 이웃들의 곁을 지켰습니다.
학교와 병원을 세웠습니다.
교회는 말로만 하나님 나라를 외치지 않았습니다.
실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를 바라보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교회의 수는 편의점 수보다 많아졌습니다.
건물도 커졌고, 프로그램도 비교할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습니다.
넘치는 신학적 지식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를 보며 하나님 나라를 떠올리고 있을까요?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 하는 세상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왜 이토록 무기력해졌을까요?
[본론 1]
오늘 우리가 만나는 고린도 교회는 오늘의 교회와 정말 많이 닮아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굉장한 열심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방언과 치유 등 눈에 보이는 다양한 은사가 넘쳐났습니다.
영적 지식도 풍성했습니다.
미사여구를 넣어 말도 참 잘했습니다.
유명한 지도자들도 많이 거쳐 갔습니다.
겉으로 보면 부족한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는 깊은 분열과 다툼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서로 편을 가르고 무리를 지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파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아볼로파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는 베드로파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우리는 사람 안 따른다. 우리는 그리스도파다”고 외쳤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말 자체는 맞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이 말은 순수한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람을 따르지만 자신들은 예수님을 직접 따른다는 영적 우월감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까지 팔아가며 자기 자랑과 분열의 도구로 삼은 것입니다.
왜 교회 안에서 이런 부끄러운 일이 일어날까요?
바울은 그 원인을 교만에서 찾습니다.
성경에서 교만이란 단순히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내 판단을 앞세우고, 말씀보다 내 기준을 더 절대화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6절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기록된 말씀의 범위를 벗어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들을 비추지 않습니다.
대신 자기들이 좋아하는 지도자 스타일로 판단합니다.
자기들이 선호하는 은사의 종류로 판단합니다.
자기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신앙 기준으로 서로를 판단합니다.
“바울처럼 복음의 깊이가 있어야 진짜 신앙이지.” “아니야, 아볼로처럼 세련되게 말을 잘해야 더 수준 높은 신앙이지.” “아니야, 방언이나 치유같은 은사가 많아야 진짜 성령 충만한 사람이지.”
이렇게 자기들의 주관적인 기준을 마치 진리인양 여기며 다툰 것입니다.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과거 한국교회에는 좋은 신앙 5가지 항목이 있었습니다.
주일성수, 새벽기도, 십일조, 술담배 안하기, 전도와 봉사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귀한 신앙의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의 신앙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은 결코 아닙니다.
자칫 겉으로 보이는 열심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그 사람의 실제 삶을 놓칠 수 있습니다.
제가 이전 교회에서 리더를 세울때도 이 점이 참 어려웠습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눈에 보이는 교회에서의 모습만으로 리더를 세울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교회 문을 나설때 시작되는 일상입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신앙의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경고합니다.
말씀의 범위를 벗어나면 우리는 끊임없이 나만의 그럴듯한 종교적 기준을 만들어냅니다.
그 잣대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화려한 종교적 포장지를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중심을 보십니다.
낮아지고 섬기는 삶을 보십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주목하십니다.
이렇게 말씀이 아닌 자기 기준에 갇힌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뚜렷한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첫째, 교만한 사람은 감사를 잃어버립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보지 않습니다.
내 노력과 열심으로 얻은 것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7절입니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받아서 가지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내 믿음도 받은 것입니다.
내 은사도 받은 것입니다.
내 지식도 받은 것입니다.
자신이 받은 것이 모두 하나님의 선물임을 아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둘째, 교만한 사람은 책망을 듣기 싫어합니다.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진리의 말씀에는 귀를 닫습니다.
대신 자신의 자존심을 높여주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만 찾아다닙니다.
고린도 교회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치켜 세워주는 화려한 말 재주를 가진 여러 스승들을 쫓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에게 스승은 많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많지 않다.
스승은 지식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랑하기 때문에 아픈 말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만에서 벗어나려면 아픈 책망의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유튜브나 미디어를 가득 채운 은혜롭고 화려한 스타 목사님들의 설교에만 너무 귀를 빼앗기지 마십시오.
그 분들은 자기 교회 성도들의 담임목사지, 유튜브 시청자의 영혼을 책임지는 담임목사가 아닙니다.
그들이 내 신앙의 스승이 될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내 아픔과 눈물을 알고 삶을 붙들어주는 영적 아버지가 될수 없습니다.
바울은 비록 화려한 말솜씨는 부족할지 몰라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복음으로 낳은 영적 아버지입니다.
비록 때로는 설교를 잘 못해도 지금 내 곁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책망을 아끼지 않는 나의 담임목사님이 진짜 영적 아버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디어의 화려한 스승들만 쫓아다니다가 정작 내 곁의 영적 아버지를 가볍게 여길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만 번지르르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영적 교만에 빠질수 있습니다.
[본론 2]
그렇다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는 이러한 교만을 어떻게 깨뜨릴 수 있을까요?
단순히 “겸손해야지”라고 마음먹는다고 교만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교만은 생각보다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쉽게 겸손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낮아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높아지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교만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방법은 단순한 자기 결심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십자가를 정면으로 마주설때 우리의 가짜 자랑은 무너져 내립니다.
십자가를 대면할때에만 내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이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고린도 성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미 배부르고, 이미 풍성하고, 이미 왕이 된 사람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영적 아비의 심정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뼈때리는 말을 합니다.
8절입니다.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제쳐놓고 왕이나 된 듯이 행세하였습니다.”
이 말은 칭찬이 아닙니다.
바울의 뼈아픈 풍자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십자가를 따라 낮아지기도 전에 이미 영광의 자리에 오른 사람처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길을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 성공과 자랑의 길로 이해한 것입니다.
우리도 비슷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더 많이 가지는 것, 더 높아지는 것, 더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 깊은 곳 은밀한 곳에서는 신앙을 내 욕망을 채워줄 도구로 변질시켜 버리곤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다 나쁘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바울이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성공 문법과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십자가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9절부터 13절까지를 보십시오.
사도들의 삶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철저한 실패자들입니다.
미련한 자처럼 여겨졌고, 약한 자처럼 취급받았고, 비천한 자처럼 취급 받았습니다.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었습니다.
매를 맞고 정처 없이 떠돌았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모욕을 당하면 축복했고, 박해를 받으면 참았고, 비방을 받으면 권면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한없이 어리석어 보이는 길입니다.
스스로 약해지는 길입니다.
자진해서 손해 보는 길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길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입니다.
13절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되고, 이제까지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쓰레기는 더러워서 미련없이 버리는 것입니다.
찌꺼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버려지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기비하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은 높아지는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십자가 복음은 기꺼이 낮아지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드러냅니다.
16절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것은 바울의 자기 자랑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걸어온 십자가의 길을 본받으라고 말하는 영적 아비의 눈물어린 호소입니다.
모욕을 당해도 축복하는 삶, 박해를 받아도 참고 견디는 삶, 비방을 받아도 보복하지 않는 삶, 높아지려 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낮아지는 삶, 섬기는 삶, 손해보는 삶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20절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구절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습니다.”
여기서 능력은 세상이 열광하는 그런 능력이 아닙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교만한 사람이 낮아지는 것, 자랑하던 사람이 감사하는 것, 모욕을 당해도 축복하는 것, 내 권리를 내려놓고 공동체를 세우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진짜 능력입니다.
교회가 가야 할 길은 왕 노릇하는 길이 아닙니다.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교회는 세상 위에 군림하고 힘을 과시하여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낮아지고 손해보고 끝까지 사랑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증명해 내는 곳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왕처럼 살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십자가를 따라 낮아지는 사람입니까?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십자가를 살아내는 삶에서 드러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교회는 과거의 찬란했던 흔적만을 박제해 놓은 박물관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계신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보여주는 전시장이어야 합니다.
세상은 결코 우리의 화려한 말잔치에 감동하지 않습니다.
오직 구별된 우리의 삶을 통해서만 비로소 하나님 나라를 봅니다.
교회가 가야 할 길은 높아지는 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입니다.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입니다.
거창하게 사도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 안에서 낮아지고 섬기는 작은 선택을 하면 됩니다.
그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전시장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그 능력이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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