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신앙에서 도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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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신앙에서 도약하라!
고린도전서3:1–9; 3:10–23; 4:1–13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께 좋은 것들을 많이 받은 교회였습니다. 말을 논리적으로 잘 했습니다. 그리고 지적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구원 받는 것에 대한 확신도 있었습니다. 영적 체험도 많았습니다. (방언, 예언, 병고침, 귀신 쫓음) 그리고 강력한 재림 신앙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봐도 정말 많은 것들을 받고 누리는 교회가 고린도교회 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훌륭한 교회를 진단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3: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한 마디로 고린도 교회가 영적으로 어리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3: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파벌이 있었고, 시기와 싸움이 있었던 겁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우리에게도 이런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라고 우리를 도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도약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이 그 길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둘째, 예수 터 위에 영원한 것을 세우며, 셋째, 충성스러운 청지기로 살아갈 때, 우리는 어린아이 신앙에서 도약합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어린아이 신앙에서 도약할 수 있을까요?
첫째,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자 (고전 3:1–9)
설명: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에게 젖을 먹였다고 말합니다.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왜 입니까? 그들이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예를 들어,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기쁨, 타인을 위해 희생, 기쁘게 섬기는 삶 이런 것들을 이해하기엔 어린 신앙이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3:3) 여기서 '육신에 속한'은 헬라어로 '사르키코스(σαρκικός)'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고, 인간적인 욕망과 감정이 여전히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는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에게 자리를 내어드리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다툼이었고, 분쟁이었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사람을 우상으로 삼는 것, 이것이 영적 유아기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중요한 선언을 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3:6)
바울도 아닙니다. 아볼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그래서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저와 여러분들은 동역자입니다. 주인이 아닙니다. 도구입니다. 열매 맺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린아이 신앙에서 도약하려면, 자기 자신을 믿는게 아니라,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가능합니다.
예증: 어린아이 신앙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더 잘 가르쳐야, 내가 더 열심히 해야, 내가 더 헌신해야 교회가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치고, 그래서 비교하고, 그래서 다툽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은 다릅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아는 신앙입니다. 그 믿음이 출발점입니다.
적용: 그러므로, 비교를 내려놓으십시오. 누가 더 잘 가르치는가, 누가 더 능력 있는가,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되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인가. 이런 비교가 바로 어린아이 신앙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신앙으로 도약하는 것이 무엇이냐? 내 자랑을 내려놓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잘 안 되도, 화내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내가 할 일을 다했다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어린아이 신앙에서 도약할 수 있을까요?
둘째, 예수 터 위에 영원한 것을 세우자 (고전 3:10–23)
설명: 바울은 자신을 지혜로운 건축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터를 닦았습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3:11)
터는 이미 놓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문제는 그 터 위에, 예수를 신뢰하는 믿음 위에, 무엇을 세우느냐 입니다. 바울은 두 가지 재료를 제시합니다. 금, 은, 보석이 있습니다. 반면 나무, 풀, 짚이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 두 종류의 건물은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둘 다 크고, 둘 다 멋있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이 오면 달라집니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3:13) 종말의 심판, 불의 시험이 옵니다. 그때 나무와 풀과 짚은 타버립니다. 그러나 금과 은과 보석은 남습니다.
무엇이 영원한 재료입니까? 사람입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타지 않습니다. 무엇이 타버리는 재료입니까? 내 재산, 내 명예, 내 자리, 내가 쌓아 올린 사람들의 인정… 이것은 마지막 날, 심판의 불 앞에서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3:21) 그리고 덧붙입니다.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3:21)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소유했습니다. 그래서 영원하지 않는 것들, 마지막 날 소멸되는 것들만 붙잡고 살지 말라는 겁니다. 이런 것들만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을 어린이 신앙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증: 짐 엘리어트(Jim Elliot)는 1956년, 에콰도르의 아우카 족에게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영원히 남을 것을 위해 영원히 남지 않을 것을 포기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그의 죽음은 세상이 보기에 어리석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 이후 아우카 족의 복음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 위에 영원한 것을 세웠더니, 영원히 가치 있는 것들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적용: 그러므로, 오늘 내가 세우고 있는 것을 점검하십시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영원한 관계에 투자하십시오. 불이 와도 타지 않는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불멸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시간과 에너지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물질을 쌓는 데입니까, 아니면 사람을 세우는 데입니까?
영원한 것들을 바라보며 사는 삶,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가 뭡니까?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이미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그 자유 안에서 오히려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소유했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더 이상 사람을 붙들고 매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 안에서 풍성한 것들을 받아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런 삶이 어린아이 신앙에서 도약하는 길입니다.
(전환) 이제 세 번째입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도약하기 위해 삶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바울은 4장에서 구체적인 삶의 모델을 보여줍니다.
셋째, 충성스러운 청지기로 살아가자 (고전 4:1–13)
4장 1-2절을 봅시다. 1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설명: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합니까?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4:1)
'일꾼'은 헬라어로 '휘페레테스(ὑπηρέτης)'입니다. 배의 맨 아래 칸에서 노를 젓는 하급 선원입니다. 스스로 방향을 정하지 않습니다. 선장이 명하는 대로 노를 젓는 자입니다. 그리고 '청지기(οἰκονόμος)'는 주인의 집과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자입니다. 자기 것이 없습니다. 주인의 것을 맡아 충성되게 사용하는 자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중요한 말을 합니다. "그런즉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4:2)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능력이 아닙니다. 열매의 크기가 아닙니다. 오직 충성입니다. 그 다음 바울의 삶을 보십시오.
4장 9절부터 13절까지는 놀랍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헐벗고, 구타당하고, 주목받지 못하고, 세상의 더러운 것처럼 취급 받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자랑합니다. 왜 입니까? 그는 청지기이기 때문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평가만 의식합니다. 세상의 평가는 두렵지 않습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3) 이것이 도약입니다. 사람의 평가로부터 자유해진 것, 이것이 청지기의 자유입니다.
예증: 국제시장 마지막 장면
마태복음 25:21 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적용: 그러므로, 나는 누구의 청지기인지를 확인하십시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것이 무엇입니까? 가정입니까? 직장입니까? 사역입니까? 재능입니까? 그것을 나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인의 뜻대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오늘 누군가 여러분을 비판했습니까? 알아주지 않습니까? 청지기는 주인에게만 보고합니다. 주인이 "잘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화려한 것을 찾지 마십시오. 지금 내게 맡겨진 이 자리, 이 사람, 이 사역. 거기에 충성하십시오. 하나님은 큰 자리를 찾는 자가 아니라, 맡은 자리에서 충성하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이런 사람은 어린아이 신앙에서 도약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어린아이 신앙에서 단계 더 도약하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도약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먼저,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예수 터 위에 영원한 것을 세우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충성스러운 청지기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린아이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 도약이 가능합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결심을 해도 며칠 못 가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4장20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결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도약은 일어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동일하게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부어 주십니다. 그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영혼을 품게 하십니다. 영혼을 재생산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삶을 살아낼 힘을 부어 주십니다. 이 번 한 주, 어린 아이의 신앙에서 벗어나, 더 고상하고 더 귀하고 아름다운 믿음으로 도약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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