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사이에 하나님이 계신다

사무엘상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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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 한 교회

사무엘상 20장을 함께 펴 보시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다윗이 인생의 가장 큰 고비에서 외톨이가 되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울 왕이 그를 죽이려 합니다. 궁궐 안에 있을 수도 없고, 도망갈 방향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 위기의 순간에 세 사람이 다윗 곁에 있었습니다. 미갈과 사무엘과 요나단. 오늘은 그중에서 요나단의 이야기를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본문을 펴기 전에,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사무엘상 20장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울, 요나단, 그리고 다윗.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은 세 사람 중 누구에 가장 가깝습니까?
사울처럼 —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마음속에 두려움과 불안이 올라올 때가 있는 분. 다윗처럼 — 열심히 했는데 왜 이런 상황인지 억울하고 혼란스러운 분. 요나단처럼 — 두 사람 사이에서, 두 공동체 사이에서 무언가를 내어주어야 하는 자리에 있는 분.
오늘 설교는 이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세 사람이 오늘 이 예배당 안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의 내면에 세 가지 모습이 동시에 있습니다. 사무엘상 20장이 그 세 가지를 모두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사이에' —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를 가르쳐 줍니다.

본론 1. 나와 죽음 사이에는 한 걸음뿐이라 (1-4절)

먼저 1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달려와 요나단에게 첫 마디를 던집니다.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삼상 20:1)
이것이 다윗의 첫 마디입니다. 억울함, 혼란, 두려움이 뒤엉킨 질문입니다. 다윗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골리앗을 이겼고, 전쟁마다 승리했고, 사울을 충성스럽게 섬겼습니다. 그런데 왜 왕이 자기 목숨을 노리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3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죽음 사이에는 한 걸음뿐이니이다."
'나와 죽음 사이에 한 걸음뿐.' 이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다윗은 지금 '사이에' 서 있습니다.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그 경계선 위에. 자기 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이 나를 도와줄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 편에 설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그 '사이에'.
여러분, 이 '나와 죽음 사이'가 낯설지 않은 분이 계실 것입니다. 관계의 위기, 가정의 위기, 건강의 위기. 혹은 두 공동체가 만나는 이 자리에서 어디에 속해 있는지 모르겠는 그 어색한 '사이'. 익숙한 것들이 달라지고, 내 자리가 어디인지 헷갈리는 그 자리.
그 자리에서 다윗이 한 것이 무엇입니까. 요나단에게 달려갔습니다.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꺼냈습니다. "나는 지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섭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요나단이 4절에서 답합니다. "네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하리라."
이 말이 얼마나 큰 말인지 아십니까. 조건이 없습니다. '네가 옳으면', '내가 동의하면', '내 아버지가 허락하면' — 이런 단서가 없습니다. 그냥 '네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요나단은 이미 마음이 정해진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설득하기 전에, 설명하기 전에.
진짜 관계는 그렇습니다. 답을 주는 자리가 아니라, 그 질문과 함께 앉아있어 주는 자리입니다. '나와 죽음 사이에 한 걸음뿐인' 그 자리에 함께 서주는 사람. 다윗에게는 요나단이 그 사람이었습니다.

본론 2. 사울의 창과 요나단의 활 (5-34절)

이제 두 사람의 대비를 봅니다. 사울의 손에는 창이 있고, 요나단의 손에는 활이 있습니다. 이 두 무기가 이 장에서 아주 대조적으로 등장합니다.
사울의 창. 33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요나단에게 — 자기 아들에게 — 창을 던집니다. 이미 사무엘상 18장에서 다윗에게 두 번이나 창을 던졌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사울의 창은 무엇입니까. 두려움에서 나온 무기입니다. 시기에서 나온 무기입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찌르는 무기. 그런데 이 창의 끝이 어디로 갑니까. 마침내 자기 아들에게까지 향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요나단의 활. 35절부터 40절입니다. 요나단은 들판으로 나가 화살을 쏩니다. 그런데 이 화살은 적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에게 보내는 신호입니다. 바위 뒤에 숨은 다윗에게 '지금 위험하다. 어서 가라'는 메시지입니다. 요나단의 활은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같은 '무기'인데 — 한 사람은 찌르고, 한 사람은 살립니다.
요나단이 이 장에서 다윗을 위해 한 것들을 보십시오. 아버지의 속마음을 탐색해 줍니다(5-10절).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습니다(12-17절). 신월절 잔칫상에서 다윗을 변호하다 아버지에게 창을 맞습니다(32-34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살 신호로 '도망가라'는 말을 전합니다(35-40절).
17절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함으로." 그리고 이 사랑은 본문 곳곳에서 히브리어 '헤세드(חֶסֶד)'라는 단어와 연결됩니다. 헤세드는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언약에 기초한 충성스러운 사랑,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 있어도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요나단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요나단은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그는 사울의 장자입니다. 왕위 계승자입니다. 다윗 편을 드는 것은 자기의 왕위를 포기하는 것이고, 아버지의 진노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요나단은 선택했습니다. 왜요? 사무엘상 23장 17절에서 요나단은 직접 고백합니다.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이라." 요나단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다윗에게 있다는 것을. 그러니 자기 자리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했습니다.
여러분, 이 교회 안에도 사울과 요나단과 다윗이 있습니다. 솔직히 인정합시다. 우리 모두 안에 사울의 창이 있습니다. 두렵고, 불안하고, 내 자리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우리 손에도 어느새 작은 창이 들립니다. 말의 창, 침묵의 창, 무관심의 창. 그 창이 때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향합니다. 사울이 자기 아들에게 창을 던진 것처럼.
그러나 요나단의 모습이 있습니다. 자기 자리를 내려놓고, 대가를 치르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손. 사울의 창이 아니라 요나단의 활.
창은 사람을 찌릅니다.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그러나 활은 사람을 살립니다. 그리고 요나단의 활이 날린 화살은 다윗을 살렸고, 결국 한 나라를 살렸습니다.

본론 3. 하나님이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35-42절)

이제 본문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화살 신호를 보낸 후, 소년을 돌려보낸 후, 두 사람이 들판에서 단둘이 만납니다. 41절입니다.
"다윗이 일어나 남쪽으로 엎드려 세 번 절하고, 두 사람이 서로 입 맞추고 서로 울었으나, 다윗이 더욱 심히 울었더라."
두 사람이 함께 울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더 많이 울었습니다. 왜요. 요나단이 자기를 위해 치른 대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창을 맞으면서까지, 자기 왕위를 잃으면서까지, 자기 편에 서 준 것을. 그 사랑의 무게를 알기에 더 울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42절, 이 장 전체의 마지막 말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에,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영원히 계실지라 하였느니라."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에 영원히 계실지라."
이 말이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사이에'. 두 사람 사이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요나단과 다윗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었습니다. 왕자와 목동의 아들. 왕위 계승자와 쫓기는 자. 사울의 아들과 사울의 적. 그 모든 차이가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자리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차이가 없는 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사이에' 계셨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맺는 그 자리.
이 언약이 얼마나 강한지는 요나단이 죽은 후에도 드러납니다. 사무엘하 9장에서 왕이 된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습니다. 므비보셋은 두 발을 다 절뚝거리는 장애인입니다. 정치적으로 아무런 이득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전 왕가의 자손으로 위협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왕의 식탁에 앉혔습니다. "왕자 중 하나처럼." 왜요?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에 영원히 계실지라' — 그 언약이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약은 요나단이 죽어도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이에' 증인으로 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 사이에 오신 분

여러분, 이제 이 이야기를 훨씬 더 큰 이야기와 연결해야 합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위해 한 것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왕자의 자리를 내려놓고, 아버지의 진노를 감수하고, 자기 왕위까지 내어주면서 다윗 편에 섰습니다. '나와 죽음 사이에 한 걸음뿐인' 다윗 곁에, 자기가 서기로 했습니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영광을 내려놓으시고, 우리와 죽음 사이에 한 걸음뿐인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우리 편에 서시기 위해 십자가의 창을 감수하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찌름을 당하셨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다면 — 예수님은 다윗과 요나단을, 그리고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을 실제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전날 밤, 예수님이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1절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2장 14절은 그 하나됨의 비밀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예수님이 '중간에 막힌 담'을 십자가로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셨습니다. '너와 나 사이에'.
여러분, 지금 이 예배당 안에 두 공동체가 함께 앉아 있습니다. 서로 자란 배경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오랫동안 지켜온 방식이 다릅니다. 그 차이가 '사이에' 있습니다. 때로 그 사이에 어색함이 있습니다. 때로 그 사이에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들 사이에 계시지 않습니다. 차이가 없는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사이에' 계십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선택하는 그 자리. 그 '사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요나단과 다윗이 하나되는 데는 반드시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요나단이 먼저 내려놓았습니다. 왕자의 자리를, 아버지의 눈치를, 자기의 미래를. 그 희생이 '사이'를 만들었고,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됨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방식에 대한 고집, 내 자리에 대한 집착, 나를 이해해 달라는 요구. 그것을 먼저 내려놓는 사람이 요나단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부담이 될까봐 한 가지를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 희생을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사이에 오신 예수님이, 그 희생을 먼저 하셨습니다. 우리가 할 것은 — 그 예수님이 이미 이 '사이에'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이 자리에 계십니다. 이 어색한 사이에, 이 불완전한 사이에. 그분이 이미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이 가지고 돌아가실 것은 결심이 아닙니다. 한 가지 믿음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에 영원히 계실지라."
사울의 창은 사울과 함께 길보아 산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의 활이 날린 화살은 — 다윗을 살렸고, 므비보셋을 왕의 식탁에 앉혔고, 오늘 이 자리까지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앉아 있다는 사실이 — 이미 그 화살이 날아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처음사랑교회가 이 자리를 지켜온 것도, 새롭게 함께하신 성도들이 이 자리에 오신 것도 — 하나님이 '우리 사이에' 계셔서 이루신 일입니다.
이 예배 후 문을 나서실 때, 옆에 앉아 계신 분을 한 번 보십시오. 그 '사이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사이'가 교회입니다. 그 '사이'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입니다.
창을 내려놓고, 그 '사이'를 지키는 처음사랑교회 모든 여러분 되시기를 —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목사님의 의도를 반영한 사항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구조적 보완서론의 "세 인물 질문"을 도입부에 배치해 처음부터 청중이 자기 이야기로 들을 수 있게 했습니다.
클라이맥스 강화결론에서 요나단 → 예수님 연결을 충분히 펼쳤고, "우리가 먼저 희생해야 한다"는 부담 대신 "예수님이 이미 이 사이에 계신다"는 복음으로 전환해 결단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믿음으로 흘러가도록 구성했습니다.
헤세드 본론 2에서 한 번만 자연스럽게 설명했습니다.
신약 연결 요 17:21(하나됨 기도), 엡 2:14(중간에 막힌 담)을 결론에 연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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