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도: Already but Not Y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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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3:28-37절
1. 서론
대학교 신학생 시절, 담임 목사님께서 제게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목사님: 승윤, 베스트셀러를 많이 읽어야 해~!
나: 왜 그렇습니까?
목사님: 베스트셀러에 있는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가 있어. 거기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지점이 있네.
최근 제 기억으로 2-3년 이내 가장 인기 있었던 책이 바로 “니체”라는 인물의 책입니다. 니체를 떠올리면 기억해야 할 단어는 ‘허무함’입니다. 니체는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하던 절대적인 기독교적 가치관과 도덕 기준이 무너졌다는 뜻으로 “신은 죽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절대적 기준이 사리지니 인간은 극심한 ‘허무함’과 마주했던 것이죠. 이것은 당시 로마의 시간관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2. 본론 : 로마의 시간관
1) 비관론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는 인류의 역사를 다섯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가장 완벽했던 '황금 시대'에서 시작해, 은 시대, 청동 시대, 영웅 시대를 거쳐,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가장 타락하고 고통스러운 '철 시대'라는 것입니다. 로마인들은 이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들이 가장 타락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종말론적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는 로마 시민이 직접 정치를 결정하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닌 독재 정권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아우구스투스의 독재 정권은 군사적 압제와 자유의 박탈 위에 세워진 위선적인 평화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시간관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빠지는 비관적인 시간관이었고, 허무와 상실감만이 남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소망은 미래가 아닌 돌아갈 수 없는 찬란한 과거입니다.
우리 역시 과거의 어떤 이미지를 생각할 때 따듯함을 느끼곤 합니다. 예컨대 이런 것입니다. 과거 월드콘은 사진에 보듯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었죠. 이처럼 과거의 어떤 이미지는 우리로 즐겁고, 재밌는, 기분 좋게 기억을 상기시킬 만한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날 레트로 감성, 복고가 유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에 허무와 상실감을 느낍니다. 무엇입니까? 로마 시민들이 느꼈던 것처럼 앞으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현실입니다. 그래서 미래가 아닌 지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니체가 주장했던 허무주의와 일치합니다. 니체는 단순히 인생의 허무함을 주장한 게 아닙니다. 현실의 허무함이 있기 때문에 내가 내 삶의 가치 기준을 정하고 스스로 창조하고 그곳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형태가 오늘날 현대인들의 문화에 깊이 스며있는 복고입니다. 당시 로마의 시간관과 오늘날 니체의 허무주의가 서로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2) 영원성
과거를 그리워하며 현재에 절망하는 백성들의 심리를 파고든 것이 바로 로마 정권의 정치적 시간관이었습니다. 로마의 통치자들과 시인들은 제국의 안정을 위해 완전히 반대되는 타임라인을 사람들에게 주입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백성들에게 "미래를 걱정하거나 다른 세상을 꿈꾸지 말라. 아우구스투스의 통치 아래 있는 지금의 로마 제국이 인류 역사의 최종 목적지이자 영원한 천국이다"라는 시간관을 강요한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영원성을 믿은 일부의 부류들은 극심한 도덕적 타락, 방탕함을 누렸습니다.
*방탕함
크라이팔레 (κραιπάλη / kraipalē) : "음주의 결과와 방탕"
초점:술을 마신 뒤 찾아오는 '숙취, 무기력, 도덕적 해이, 그리고 이로 인한 삶의 낭비(방탕)'에 초점이 있습니다. 술기운이나 세상 향락에 취해 오늘 내가 해야 할 사명을 잊어버리고 영적인 골짜기에서 헤매는 무감각한 상태를 뜻합니다.
*술취함
메테 (μέθη / methē) : "행위 자체와 만취"
초점:우리가 흔히 말하는 '폭음'이자 '만취(Drunkenness) 상태 그 자체'를 뜻합니다. 알코올 과다 섭취로 인해 이성과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물리적·정신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술 먹지 말라’가 아니라 ‘술 취하지 말라’는 얘기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성경 시대에 술을 마셨으니 오늘날 우리도 마셔도 된다는 주장은 당시 역사적 배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당시 고대 사회는 식수 오염 문제가 있었습니다. 정수 및 냉각 장치가 없어서 물을 그냥 마시면 감염의 위험이 컸습니다. 그래서 포도주를 곁들였던 겁니다.
취함을 방지하기 위해 고대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1) 물과 포도주를 8:1로 희석: 술맛을 내기 위함이 아니라 물을 소독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2) 포도주를 달여 잼처럼 보관: 포도주를 끓여 알코올을 증발시킨 뒤 된죽(잼)처럼 만들어 빵에 발라 먹거나, 필요할 때 다시 물에 섞어 알코올이 없는 포도 주스로 만들어 마셨습니다.
(3) 디모데의 사례:바울이 디모데에게 "소량의 포도주를 쓰라(딤전 5:23)"고 권한 것은 당시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술(독주)을 철저히 회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신체적 이상을 돕기 위한 의료 목적이었습니다.
성경 시대의 알코올 음료는 석류, 포도, 보리, 대추야자, 건포도로 만들어졌으며, ‘독주’라는 용어는 이집트인과 블레셋인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 있었던 강한 보리 맥주를 가리켰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포도주가 거의 항상 발효된 포도 주스였습니다. 독주는 곡물, 꿀, 또는 대추야자로 증류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성공, 자본, 학벌, 대기업이라는 '현대판 로마 제국'의 영원한 시스템을 신봉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영원한 천국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시스템에 심리적으로 노예 된 사람들은 끝없이 ‘안정’을 추구합니다. 돈이 되는 직장, 돈이 되는 직업 모두 생활의 염려와 관련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병행 본문인 눅21:34에도 생활의 염려를 언급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생활의 염려가 마음을 둔하게 합니다. 이때 “둔하다”는 말의 의미는 생활의 염려로 인해 극심한 슬픔을 뜻하며, 심리적으로 견디기에 지나치게 무거운 부담을 짊어진다는 말입니다. 이번에 중등부와 두 차례 연합 행사를 가졌습니다. 중등부와 고등부 아이들을 동시에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굳이 이 시간이 아니더라도 이 아이가, 저 아이가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어렴풋이 짐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빛도 다 다릅니다. 중학생은 대체적으로 밝고 즐겁고 그런 느낌입니다. 그런데 고등학생의 얼굴에는 수심이 있습니다. 앞으로 뭐 먹고 살아야 할지,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할지 현실적인 고민을 깊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생활의 염려가 우리의 마음을 둔하게 하는, 다시 말해 극심한 슬픔 / 심리적으로 견디기에 지나치게 무거운 부담을 짊어지게 합니다. 그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는 표현보다 기쁨이 사라졌다는 말이 더 알맞은 표현인 듯합니다. 왜냐하면, 수심이 유입해서 기쁨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사라졌기 때문에 수심이 가득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논리입니다. 빛이 사라지면 어둠이 드리우지만 빛이 유지될 때 어둠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이 생활의 염려는 얼굴에 기쁨을 잃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자기중심적 생활로 이어지게 합니다. 빌2: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그러므로 생활의 염려는 인간적 측면, 영적 측면 모두 사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로마 제국은 결국 멸망했습니다. 인간 제국의 시스템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소유를 모두 내려놓고 주님 만나야 합니다.
3) 제자도: Already but Not Yet
성경의 시간관은 미래의 암담함을 말하는 비관론도, 인간 제국의 영원성도 아닙니다. 성경의 시간관은 ‘Already but Not Yet’ 즉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 다시 말해, 이미와 아직의 사이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권세를 깨뜨렸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는 실현 되었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재림과 비교했을 때, 그것은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완성된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 때 최종적 완성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 시기를 말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 시기를 알려고 시도한다거나 알려주는 곳은 모두 이단/사이비입니다.
이미와 이직의 시간 속에 살아가는 우리, 우리가 해야 할 점이 무엇입니까? 바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눅21:36에서는 구체적으로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합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생활의 염려 어떻게 우리가 이겨나가야 하는 것입니까? 빌4:6-7절에서 동일하게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웨스터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78문은 "기도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질문 178: 기도란 무엇입니까? 답: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그분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그분의 자비하심을 감사히 인정(감사)해야 합니다. 즉 생활의 염려로 우리의 마음이 둔해져서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 아닌 자기 일을 구하려고 할 때, 사명이 아닌 생존의 삶으로 회귀하려고 할 때, 우리의 삶을 기도로 다시 고쳐 매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고 또한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평강이 주어집니다.
수심이 가득해진 우리의 얼굴 어떻게 바꾸어야 합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기쁨을 환경이나 자기 안에서 찾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요15:11-12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은 타인을 사랑하는 곳에서 자신의 기쁨을 찾으셨습니다.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져서 시야가 자기 일로 축소될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집니다. 쓰임새도 자기 자신으로 한정시킵니다. 이곳엔 참 기쁨이 없습니다. 힘들수록, 어려울수록 자신의 믿음의 분량만큼 섬기는 것이 참 기쁨인 줄 믿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문지기가 해야 할 일입니다. (1) 기도 (2) 이웃 사랑
3. 결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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