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복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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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초청잔치 특별설교

네 안녕하세요 여러분. 네. 새로운 친구가 좀 왔네요. 어쨌든 여러분 오늘은요. 여러분에게 막 말씀을 엄청 깊게 전한다 이런 거 말고. 그냥 간단히 기독교를 좀 소개할 까 합니다. 편안히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여러분 여러분은 행복하시나요? 한번 질문드려볼게요. 여러분은 행복하시나요? 그런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을 겁니다. 그죠? 우리는 왜 열심히 살아가나요? 궁극적으로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일겁니다. 그죠?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뭐죠?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하고있는 거죠. 그죠? 그럼 반대로 지금 공부를 열심히 안 하고 노는 친구도 있을겁니다. 이들은 왜 지금 노는 거죠? 바로 현재의 행복을 위해서 그런 선택을 하는거죠.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왜 운동을 하나요? 지금 운동하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죠. 여러분이 공부를 하든 놀든 운동을 하든 그게 현재의 행복을 위해서냐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냐의 차이일 뿐 여러분을 여러분이 행복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합니다. 뭐 맛있는 것을 먹는것도 마찬가지이구요.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얻기 위해 한 평생을 달려가죠. 누군가는 돈으로 자신의 행복을 이루려고 합니다. 아 나는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질거야. 돈은 내 인생에 궁극적인 구원을 줄거야. 돈을 벌기 위해 한 평생 미친 듯이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명예이죠. 아 나는 명예로운 사람이 되어서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나는 행복할거야. 그리고 명예를 쌓기 위해 한 평생을 살아가죠. 그리고 누군가는 사랑으로 자신의 행복을 이루려합니다. 아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거야.
그런데 여러분 현실을 한번 봅시다. 오늘날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요? 왜 돈이 많은 사람이 마약을 하고 자살하죠? 물론 여러분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돈 많으면서 행복한 사람도 있는데요? 예 맞죠. 그런데 이렇게 반문 할 수도 있습니다. 돈은 별로 없지만 행복한 사람도 있는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돈이 우리의 궁극적인 행복을 결정지어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원래 행복한 사람이 돈을 얻으면 행복하게 돈을 쓰는 거지 불행한 사람이 돈을 얻었다고 해서 그 불행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명예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예를 얻었다고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구요. 정말 정말 사랑해서 결혼하고도 이혼하는 경우도 정말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요. 하나님이 없이는 그 행복과 만족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죄라는 것이 이 세상에 있기 때문이에요.
그럼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죄는 무엇이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내 행복을 방해하는 죄는 다른 사람의 죄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내 행복을 방해하는 죄는 내 안의 죄입니다. 이렇게 두가지의 죄가 나를 행복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선 첫 번째 다른 사람의 죄에대해서 이야기 해보죠.
여러분은 일상에서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힘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나를 싫어해서 나를 뒷담화 하는 친구일 수 있습니다. 그런 친구 한번씩 경험해보셨죠? 그리고 뭐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해본 적이 있다면 그 폭력이 나에 행복을 앗아갑니다. 또 타인의 죄가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경우는 뭐가 있을까요?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누군가는 나를 따돌리려고 합니다. 왕따시키려고 하는거죠.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유튜브를 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은 정말 다른 사람이 성공해서 행복을 누리는 것을 정말 못 견뎌 하는 것 같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조금만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댓글부터 해서 엄청난 욕을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끌어내리려고 하죠. 물론 저는 정말 큰 잘못을 저질러서 나락간 사람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정말 요즘 보면 사실 큰 잘못아니고 누구나 살면서 한두번쯤은 할 만한 실수를 해도 용서없이 그 사람을 나락 보내려고 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겉으로는 정의로워 보입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실제로 정의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사실 나보다 성공한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고 싶은 욕망이 있죠. 즉 죄된 마음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여러분이 시험을 잘 쳤거나 혹은 어떤 좋은일이 있을 때 그것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친구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보통 우리를 힘들게 하죠. 이것이 바로 타인의 죄가 우리의 행복을 앗아가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내 행복을 앗아가는 죄가 있습니다. 바로 나의 죄성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도 해보셨을 겁니다. 사실 여러분도 누군가를 질투하거나 시기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있을 겁니다. 그죠? 누군가를 욕해본 경험은요? 당연히 있을 겁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혹은 욕을 할 때 행복했나요 불행했나요? 불행하죠. 이것이 바로 내 안의 죄가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경우입니다. 내 안의 있는 죄성은요. 항상 나를 불행하게 합니다. 행복하게 하지 않아요.
또 나의 죄성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뭐가 있을까요? 내가 성공한 자리에 올라가잖아요? 그럼 엄청난 유혹이 옵니다. 여러분은 뉴스에서 성공했다가 죄를 저질러서 나락간 수 많은 사람들을 봤을 겁니다. 뭐 불륜이 들통나서 나락간 사람도 있고, 요리하는 사람 중에 원산지를 속이거나 와인을 바꿔치기 해서 나락가는 사람도 있고, 어릴 때 했던 학폭이 들통나서 인생이 망가지는 사례도 보았을겁니다. 바로 내 안의 죄가 나의 행복을 앗아가는 경우들입니다.
저는 예전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저 정도 위치에 가고 저 정도 힘이 있는데, 왜 굳이 저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죄를 지어서 인생을 망가트리지? 근데요. 오히려 저 위치에 있기 때문에 다른 말로 영향력과 힘이 있기 때문에 죄를 컨트롤 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자 이렇게 한번 비유를 들어볼게요.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한테 어떤 죄를 지어도 절대 걸리지 않는 능력과 그리고 여러분들이 짓는 죄를 아무도 못 보게 하는 투명인간이 되는 능력이 여러분한테 주어졌다고 해봅시다. 여러분은 투명인간이 되어서 남들은 여러분이 하는 행동을 보지 못하고요. 그리고 투명인간이 되어서 여러분이 한 모든 행동이 절대 걸리지 않도록 보장된 능력을 얻었다고 해봅시다. 그럼 여러분은 이 능력을 어떻게 쓸거죠? 말은 하지 말고 한번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말하면 쓰레기 되니깐. 말은 하지말고. 많은 죄를 짓겠죠?
그런데 여러분이 사회에서 힘이 생기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저 정도의 능력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여러분이 죄짓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걸 안 들키도록 세팅한 후 죄를 지을만한 힘이 생깁니다. 물론 걸려서 인생이 망한 사람들도 있지만 높은 기업인이나 연예인들 중 걸리지만 않았을 뿐이지 얼마나 쾌락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고 각종 범죄 등 얼마나 많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런 힘을 가지면 죄를 짓지 않을 거라고 보장하십니까? 그런데 언젠가 이 죄들은 나의 발목을 잡습니다. 그리고 설령 끝까지 걸리지 않는다고 해도 막상 그러한 죄를 지으면 그런 죄를 지을 때 조차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겁니다. 하기 전에는 그런 죄를 지으면 마치 엄청난 쾌락이 날 행복하게 만들 거 같은 착각을 할 수 있지만 막상 죄를 지으면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겁니다. 오히려 우리의 죄성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또 내 행복을 앗아가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죽음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여러분들이 어려서 잘 못 느낄수가 있지만 여러분이 나이를 먹어가면 먹어갈수록 이 죽음의 문제는 여러분들의 행복을 앗아갈겁니다. 한명 한명 여러분들과 정말 친했던 친구들을 데려가고요. 혹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이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데려가고요. 여러분이 나이를 많이 먹으면 여러분의 부모님도 데려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의 행복에 굉장히 치명상을 입히죠.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로부터 우리를 이별하게 만들고 우리를 허무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죠. 인생 참 허무하다.. 결국 이렇게 죽으면 다 끝날 것 뭘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우리는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어쩌면 불가능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은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니? 그거 가능해. 그거 불가능하지 않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잠깐 성경의 이야기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자 성경은요.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 세계와 우리를 창조하셨고요. 우리를 창조하신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어떤 물건을 만들때도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목적을 가지고 만드십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우리 한명 한명을 만드실 때는 많은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만드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들 한명 한명을 사랑하십니다. 사랑을 가지고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맡겼습니다. 그리고 딱 한가지 명령만 하십니다. 내가 너의 모든 필요를 다 공급해주겠다. 내가 너를 먹이고 입힐 것이다. 나는 너희의 필요를 안다. 그러나 딱 한가지만 지켜주기를 바란다. 많은 열매를 다 먹어도 되는데 선악과는 먹지마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선악과는 이런 의미입니다. 인간이 주인이 아닌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다. 선악과를 먹지 않으므로 이런 고백을 하나님께서는 듣기 원하셨죠. 그런데 결국 인간은 선악과를 먹습니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은 이 세상의 왕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과 분리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내가 하나님처럼 신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돼서 인생을 살아가겠습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죠.
그리고 실제로 인간은 이제 자신이 자율적으로 옳고 그름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처럼 살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리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력이 사라지고 죄라는 것이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됩니다. 아까 말했던 모든 죄의 안 좋은 것들이 이 세상을 덮치기 시작하죠.
그리고 세상은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앞에 말씀드렸던 수 많은 죄의 결과들. 자신의 죄와 타인들의 죄가 우리의 행복을 앗아가죠. 그렇기에 누군가는 사는 것을 힘들어 하고 누군가는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병에 걸리고도 하고 각종 죄의 결과들을 겪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세상을 보시죠. 그리고 그 망가진 세계를 보시고 슬퍼하시죠. 고통을 겪고 있는 인간을 보며 슬퍼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죠. 예수님이 이것을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으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죠.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죠. 하나 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교회로 올까요? 계속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 내 안의 죄성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뿐만 아니라 죄된 삶을 같이 이겨내는 사람들을 여기서 만납니다. 그리고 말씀을 나누고요. 누리게 되죠. 이것으로 죄의 1차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알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알 때 우리의 죄성은 서서히 죽어갑니다.
뿐만아니라 기독교는 죽음의 문제도 해결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죽음에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한번 깊게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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