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적 예배에서 돌이키라01_하나님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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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소원
제시해주신 소스(GSI 선교회 "01 하나님의 소원" 영상 녹취록)를 바탕으로, 약 1시간 분량의 깊이 있는 학습이나 설교를 위한 정리 내용을 대지와 소제목을 붙여 구성해 드립니다.
[강연/설교 정리] 하나님의 소원: 거짓된 예배를 멈추고 참된 경외로 나아가라
[강연/설교 정리] 하나님의 소원: 거짓된 예배를 멈추고 참된 경외로 나아가라
본문: 말라기 1장 8절 ~ 10절
1. 시대적 배경: 상실된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부패
1. 시대적 배경: 상실된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부패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잃은 것보다 더 심각한 비극은 바로 **'신앙의 상실'**이었습니다.
주전 4세기경, 바벨론과 메대 바사 포로기를 거쳐 돌아온 이스라엘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영적 종기로 가득 찬 병자와 같은 상태였습니다.영적 파산의 상태:
제사장부터 일반 백성, 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이 썩어 있었으며, 하나님이 선택하신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독특성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부패의 전방위적 확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흩어짐조차 열방에 하나님을 알리는 선교적 기회로 삼고자 하셨으나, 백성들은 각자의 이익만을 쫓는 세속적 삶에 매몰되었습니다.선교적 기회의 박탈:
2. 하나님의 충격적인 소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2. 하나님의 충격적인 소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부패와 타락의 근본 원인이 **'예배(제사)의 부패'**에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그들의 예배를 혐오하셨습니다. 이는 아무도 없는 빈 성전으로 남겨두는 것이 가식적인 예배를 받는 것보다 낫다는 하나님의 절박한 심정을 나타냅니다.성전 문의 폐쇄를 원하심:
모든 경배의 기초는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경외심'**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를 상실한 채 껍데기뿐인 종교 의식에만 치중했습니다.예배의 본질, 경외심의 상실:
그들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제물을 바쳐 신의 노여움을 달래고 복을 얻어내는 이방의 '뇌물 개념' 제사를 성전 안으로 들여왔습니다.이방 제사로의 변질:
3. 참된 예배의 두 가지 요소: 두려움과 사랑
3. 참된 예배의 두 가지 요소: 두려움과 사랑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질적인 격차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티끌과 같은 존재로 깨닫고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의 위대함 앞에 옷깃을 여미는 진실한 고백이 예배의 첫 번째 정신입니다.첫 번째 요소: 거룩한 두려움(Awe):
두려워하면서도 그분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은, 나를 사랑하시고 외아들을 보내신 하늘 아버지께로 향하는 달콤한 사랑의 이끌림입니다.두 번째 요소: 사랑의 이끌림:
이스라엘 백성은 이 두 가지 마음을 모두 상실했기에,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고 깔보는 태도로 예배에 임했습니다.이스라엘의 실패:
4. 현대 예배에 대한 통렬한 비판: 하나님을 '막보는' 태도
4. 현대 예배에 대한 통렬한 비판: 하나님을 '막보는' 태도
말라기 시대의 부패는 오늘날 현대 교인들의 예배 모습 속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극장 구경도 10분 전에 가는 사람들이 예배 시간에 늦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황제를 배알하는 자리라면 결코 하지 못할 무례한 행동(예배 중 퇴장 등)을 하나님 앞에서 담대히 행하고 있습니다.예의 없는 예배 태도: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함 없이,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일주일 내내 찝찝한 기분을 떨쳐버리기 위한 '자기 만족적' 의무감으로 예배에 참석합니다.양심의 가책을 면하기 위한 예배:
예배를 위해 단 한 마디도 기도하지 않고, 목회자를 위해서도 중보하지 않은 채 몸만 와서 앉아 있는 것은 하나님을 '막보는' 행위입니다.준비 없는 예배:
5. 예배의 실패가 가져오는 삶의 재앙
5. 예배의 실패가 가져오는 삶의 재앙
공적인 예배에서의 실패는 개인의 삶과 후손에게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공적인 예배는 산 위의 저수지와 같습니다. 이 저수지가 마르면 개인의 기도 생활과 세상 속에서의 삶(삶의 예배) 또한 철저하게 무너집니다.삶의 예배의 고갈:
참된 경배의 정신 없이 행하는 교회 안에서의 섬김은 결국 자기 만족일 뿐이며, 오히려 형제를 정죄하고 교회를 더럽히는 결과를 초래합니다.형식적인 섬김의 위험:
하나님을 멸시하는 예배는 그 결과가 당대에 그치지 않고 자녀들에게까지 영적인 재앙으로 남을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기억해야 합니다.내려지는 재앙의 경고:
6. 결론 및 결단: 세 가지 선택의 기로
6. 결론 및 결단: 세 가지 선택의 기로
우리는 이제 과거의 은혜에 안주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겸손히 무릎을 꿇고 가르쳐 달라고, 믿게 해달라고 비는 마음을 가지십시오.구도자의 마음:
하나님이 어디에도 없다고 확신한다면, 차라리 기독교 신앙을 떠나십시오. 이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는 비결입니다.무신론자의 길: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즉시 태도를 바꾸어 그분을 지극히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참된 예배자로 돌아오십시오.성도의 회복:
기도 제목:
하나님을 우습게 여겼던 우리의 교만과 무례함을 용서하여 주소서.
우리 마음을 찢는 산 제사가 회복되게 하시고, 참된 경외심을 허락하소서.
우리의 불순종이 자손들에게 이어지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01 하나님의 소원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43wYsIvdqAk
Transcript:
(00:15)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은 구약 성경에서 보겠습니다. 구약 성경 말라기 제1장입니다. 구약 성경 1327쪽 말라기 제1장입니다. 8절부터 10절까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01:19)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간압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대히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의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고맙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이 시간에도 저희들이 주님 앞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지극히 연약한 피조물들입니다.
(02:22) 하나님 오늘이 시간에도 오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저희들의 마음에 깨달음을 주셔서 저희들이이 땅에 살아 있는 것이 주님의 마음에 즐거움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그리고 우리의 온 삶을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라기 선지자는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성경을 남긴 기록 선지자였습니다. 주전 4세기 경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이미 6세기에 마지막 남아 있던 유다 망하고 바벨론과 메대 바사를 거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를 잃어버린 것보다도 더 심각한 불행을 경험하게 되었으니 신앙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03:29) 그래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그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경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선 이미 하나님을 떠났고 그리고 헛된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전반은 부패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부패한 모습은 위로는 제사장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아래로는 일반 백성들의 이르기까지 백성의 두목과 그리고 지도자들의 이르기까지 모두 다 부패했고 썩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마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종기가 나고 더러운 상처로 가득 골마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병자의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04:26) 사회와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세속 생활 그리고 종교 모든 것들이 다 철저하게 썩어 있었고 그들의 삶은 하나님을이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선택된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독특성을 완전히 상실한 가운데 이어지는 부패한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라기 선지자를 하나님은 보내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나의 사자라고 하는 뜻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사자로이 선지자는 왔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썩어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패와 무기력한 삶의 한 복판에 있는 그 문제의 근원을 지적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의 부패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구속주이신 것을 온 땅과 만방에 알려
(05:32) 그들로 창조 목적으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하여 모든 민족 가운데 한 민족인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널리 펼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은 비록 껍질로서의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였다고 할지라도 그 목적은 좌절되지도 않고 또 포기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매대 바사로 이어지는이 세계와의 움직임 속에서 나라는 망하여 흩어졌지만 흩어진 그 백성들이 여호와를 아는 참된 신앙을 그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므로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교의 기회로 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06:27)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각자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지극히 세속적인 백성들과 추어도 구별되지 않는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로 정치로부터 종교, 사회, 문화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구속도 성한 것이 없어서 어디부터 손야 할지 알 수 없었으나 그러나 선지자는이 모든 사회적인 부패와 타락의 근본적인 원인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선택하신 것이 이스라엘이라면 그 선택하신 백성들을 통치하시는 중심으로 삼으시고 당신의 율법과 온 땅을 향한 통치권을 행사하시는 그 왕위가 있는 보좌가 있는 땅을 택하는데 그것이 바로
(07:31)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중심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맞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예루살렘 성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온 세상의 중심으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을 이스라엘의 중심을 예루살렘을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핵심적인 장소로서 성전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에게 이스라엘 백성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백성들이었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고 당신의 온 자비와 은총을 그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심으로 언약을 맺으신 그 은혜 안에서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독특한 거룩한 삶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08:36) 그리고 하나님은이 세상에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는 아니하시는 매우 특별한 은총의 역사를 이스라엘에게 베푸셨으니 그것은 바로 당신의 임재의 영광을 수시로 그 백성들에게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할 때에 하나님이 성막 위에 임재하였던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는 구름과 불기둥으로 나타났고 이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들어간 후에 성전을 통해서 만나게 될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었으며 멀리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교회의 임재에 계시는 영광을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이 이런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이스라엘 성전을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시고 거기서 당신의 백성들을 만나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현저하게 욕보이고 있었던
(09:39)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뜻밖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간절한 소원을 표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있어서 성전의 문을 닫아버렸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의 문에 대못을 받고 어느 인간도 그 예배당에 임할 수 없도록 비인 성전으로 내버려 두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밝히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헌제자로서 그 하나님을 향한 경외를 상실한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을 향한 경배의 제사는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경외심이 없이는 그 모든 것들은 헛된 것들입니다.
(10:36)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던이 고대의 근동 사회에서이 제사는 이스라엘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이방 백성들도 같이 이런 제사의 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이 이 제사의 제도는 원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그 위로는 노아와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그 위로는 아담이 타락한 직후 아담과 그의 자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은이 제사가 이방 사람들에게 들어가서 자기들의 세계관과 인생관으로 왜곡된 것이 바로 이방의 제사요 또이 한반도에서 우리들이 드리던 조상들의 제사제도 도였던 것입니다. 이방 당시 고대 근동에서 많은 이방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이 제사의 개념은 뇌물 개념이었습니다.
(11:37) 그들은 자기의 신들로부터 큰 축복이나 도덕성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관이라고 하는 것은이 신들이 때거지로 몰려다니면서 제사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 걸근되는 그런 종류의 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를 제대지 않으면 고를 부리고 심수를 부려서 인간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파멸을 가져오는 그러한 신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전전 긍긍하며 신들을 분노하게 하지 않도록 달는 일에 앞장을 섰고 그 일이 바로 짐승을 죽여서 드리는 제사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방의 제사의 개념이 이스라엘 성전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12:31) 그리하여 이들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가장 중요한 본질인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마음은 상실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진정한 경외의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중심으로 제사를 드릴 리가 없죠. 그래서 그들은 집안 씻고도 먹기 힘든 병든 짐승을 갖다가 하나님 앞에 바치고 눈 멀어서 사람들도 불결하게 여겨 잡아먹지 않는 그런 막된 짐승을 하나님 앞에 갖다 바치며 그거를 제사라고 올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말합니다.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데 나를 공경함이 어디에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데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말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3:32) 경외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말할 수 없는 두려운 마음입니다. 나와는 비교될 수 없는 온 땅과 하늘 위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무엇으로도 그 질적인 격차를 좁힐 수 없는 그 위대하심 앞에서 두려워 벌벌 떨며 땅에 엎드려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첫 번째 요소입니다. 그분의 임재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자기 같은 인간은 티끌릴 뿐이라고 고백을 하며 나의 생명과 나의 존재와 그리고이 세계와이 모든이 땅의 영광이 오직 그분께 의존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진실한 경배 그것이 바로 예배의 첫 번째 정신입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만약에 이런만 있다면은 우리는 이방의 제사를 드리던 사람들처럼 하나님께 아참하기 위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14:37) 그러나 경외의 또 다른 요소가 있으니이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이끌림입니다. 두려우면서도 그분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고 두려우면서도 또한 가까이 하고 싶은 그 하나님 나를 위해서이 세상을 만드시고 또 나를 위해 자기의 외아들을이 세상에 보내어이 땅을 창조하신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하신 그 위대한 사랑과 총체적인 목적의 목적을 묵상하며 자기 같은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게 되는 것 그래서 그 하나님의 더 큰 사랑 속으로 이끌려들어 그 달콤함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그 마음이 사랑의 이끌림이 바로 경건의 두 번째 요소입니다.
(15:30) 바로 이런 두 마음 두려움과 그리고 이끌리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예배인데 이스라엘 백성은이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상실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의 어미와 두려움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고 깔보는 태도로 하나님 앞에 제사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향한 어떤 사랑도 없이 예배를 드렸으니 이들은 그저 종교적인 의무를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오늘 여러분들의 예배의 모습이 아니냐고 나는 여러분들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몇 주째 전는 설교자로서 말할 수 없이 괴로운 심경으로 나나를 보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막보는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16:20) 엎드려 강대에 기도하면서 과연 이렇게 드리는 예배에 하나님이 오실까?라는 마음을 설교자로 갖게 하는 여러분들은 누구입니까? 극장 구경도 10분 전에 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나 바쁘고 크다란 일이 있길래 예배가 이미 시작되는데 문을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만약에 어떤 황제가 여러분들을 당신을 아련하도록 초청했다면 만약에 여러분들이 그 자리에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마 들어오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도대체 얼마나 중요하고 급한 일이 있길래 여러분들은 누구일길래 예배 시간에 담대하게 일어나 두 시간도 안 되는 그 예배 시간에 담대하게 일어나서 목을 ড়법이 들고 걸어나가는 그런 담대함은 어디서 배운 것입니까? 만약에 황제를 아련하는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아나 무인격으로 일어나고 문을 박차고
(17:24) 나간다면 성문을 나가기 전에 목이 잘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황제의 위험을 모두 앞에도 도달할 수 없는 위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영화관에서 늦게 들어갔을 때 여러분들은 고개를 숙이고 혹시 다른 사람의 영화 관람을 방해할까 봐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서 자기의 자리를 찾는 많은 지각한 관람객들을 볼 것입니다. 그래 우리 하나님이 그 화면에 뜨는 주연 배우만도 못한 하나님입니까? 여기 앉아 드리는 거룩한 성도는 5, 6천원씩 돈을 내고 영화관에서 앉아서 즐기려고 하는 관람객들만 못한 사람들이냐고 나는 여러분들에게 묻는 것입니다.
(18:12) 나는 12주 동안 여러분들에게 사랑을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지난주 나는 마음에 결심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설교를들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막보는 막된 예배 추호의 경외심이 없는 성도들과 예배를 드리는 저희의이 예배는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한 수치인 것입니다.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건강을 해칠이 많치 학문에 열중했습니다. 공부를 해서이 세상에서 영광을 누리고자 하는 소망은 교수직을 집어던지는 순간에 함께 버렸습니다. 다연코 양심을 걸고 나의 모든 학문적인 탐구는 그대들과이 세상에 있는 많은 양떼들을 위한 것입니다. 금주의 심각한 회의를 느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유익이 있을까?
(19:20) 내 새끼들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데 이렇게 파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회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 결국 한 설교자의 인생이 이렇게 병든 교회를 제고품처럼 남기고 시간 속에서 촛불처럼 꺼져 가는구나라고 생각하니까 한 주간 내내 눈물이 비워듯 흘렀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신앙생활 하지 않으려면 나를 자유롭게 놓아 주십시오.이 이 진리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에게 가고 싶습니다. 정말 예배 시간에 아무런 시간 개념 없이 아무렇게나 들어오는 추어의 가책이 없는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예배 시간 구석구석해서 편안한 의자에 기대어 졸고 있는 여러분들의 모습은
(20:23) 나로 하여금 죽고 싶게 만들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런 예배 속에 깃뜨려 있는 정신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막보는 겁니다. 아니 뭐이 정도 예배드리면 됐지 뭐 하나님이 우리에게 뭐라 그러시겠어? 복도 안 주시면서 그게 여러분들 마음속에 있는 언어가 아니겠습니까? 더욱이 교회에서 중직을 맡은 사람들이 예배 시간에 여기저기서 졸고 있는 그 모습은 저로 하여금 설교자로 설교자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건 하나님 없는 예배다라고 하는 것이죠. 도대체 여러분들이 누구입니까?
(21:27) 여러분들이 이렇게 예배를 드리게 된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여러분들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데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과연 하나님을 위한 예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중에 절반 이상은 지난 한 주간 동안에 단 한 마디도이 예배를 위해 기도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 대다수는 이렇게 무거운 짐을지고 여러분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목회자를 위해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배에 나와서 여러분들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제가 핵심을 말해 드릴까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일주일 내내 왠지 찝찝한 그 기분을 떨쳐 버리기 위한 양심의 자유를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22:18) 그리고 예배를 드렸으면 여러분들은 이미 그것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더 이상 해 드릴 것이 없습니다. 도대체 이런 식의 예배를 드리면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소원이나 있기는 있는 겁니까? 만약에 그런 것이 없다면이 예외에는 무엇 때문에 나옵니까?이 이 교회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의무적으로 참석해서 드리는 헌금으로 운영되는 교회가 아닙니다. 거듭 말씀들이거니와 나는 여러분들이 교회를 떠나면 다 팔아 버리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부채를 짊어지고이 힘든 길을 걸어가야 합니까? 8년 전에 이름모릴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집을 팔고 그리고 자기의 전세를 빼고 심지어는 오랫동안 모았던 퇴직금들을 털어서이 예배당을 여기에 건축한 것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여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의 은혜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그 일에 헌신하였던 입니다.
(23:24) 도대체 그렇게 해서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진실한 소원이 있습니까? 아니 그건 묻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생각은 하는 것입니까? 나는이 교회에 있는 동안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나에게 뭐라고 말해도 나는이 점에 있어서 여러분들에게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이것을 거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죽도록이 교회에서 나와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삶 속에 복이 있을 리가 없죠.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깔보고 막보는 방식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하나님 앞에 예비되고 준비된 아까운 시간이 아니라 눈먼 시간입니다.
(24:13) 여러분들이 교회당에 바치는 그 헌금은 더러운 그런 여러분들의 허물이 많은 그런 돈들입니다. 마음을 바치지 않는데 그 돈이 어떻게 깨끗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선지자가 뭐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이렇게 예배드리는이 모든 일들의 재앙은 여러분들에게서 먼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자녀, 여러분들의 새끼들에게까지도 재앙으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이다. 너희가 그렇게 예배를 드리지만 나는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르리라. 선지자가 말라기 2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결단을 하십시오.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으면 교회와 기독교 신앙을 떠나십시오.
(24:58)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선택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약에 추워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신앙이 남아 있다면 신앙으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처럼 행동하고 주님이 계신 것처럼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리고 만약에 그것도 양단간에 확정할 수 없다면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가르쳐 달라고 교회에 비십시오.이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택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전면적인 도전입니다. 무엇을 믿고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막보는지 나는 묻고 싶습니다. 정확하게 16년 전이었습니다. 저는 17년 전에 서울 시내에서 6층일 100명 교인이 모이는 당시에 50년 된 교회에서 전도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25:50) 예배 시간마다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앉아서 예배를 드리면서 전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희 리브 시간에 550명 내지 600명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80%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절반은 자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주보에다가 필 주보에다가 낙설를 하면서 필담을 하는 사람들 귓속말로 속건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다리를 벌리고 입을 벌리고 자는 사람들 교인도 고개를 숙이고 설교자인 목사님도 고개를 숙이고 계셨습니다.
(26:40) 원고를 읽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배 순서가 23 가지인데 정확하게 65분에 끝났습니다. 안 끝나면 끝나게 무조건 맞춰 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났으면 하나님 만났으면 만나서 좀 반성을 하며 기도하고 못 만났으면 왜 하나님은 예배 속에서 내게 나타나시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엎드려야 되잖아요. 설교자가 나가기도 전에 교회당 통로는 교인들로 꽉 차는데 이건 예배 끝난게 아니라 영화경 끝난 거예요. 그리고는 식당으로 뛰어가서 줄을 쓰거나 아니면은 바쁘게 걸어 나가는데 그래 봐야 식구들과 외식하거나 집에 가서 파자모 빨람으로 소파에 누워서 거실에서 텔레비 보는 겁니다. 전 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목사로
(27:47) 그때 당시 전도사로서 신학 교수로서 난 거기 하나님이 없다고 확신했어요. 그리고 만약에 오신다면 내가 제일 먼저 가서 오시지 말라고 간청을 드렸겠어요. 왜?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런 쓰레기 같은 예배를 드리는 것에 나타나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하는 나로 나의 마음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의 모습이 어떤 부분들이 나의 목회지에서 제현되는 것을 보면서 침통한 마음으로 몇 주을 지냈습니다. 특별히 지난 주간은 그랬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만나고 제가 일생을 살면서 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의 영광은 구원받고 하나님을 만난 여러분들이고
(28:53) 그리고이 교회가 저의 첫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모습이 제한된 것을 보면서 그 교회를 비난했던 것을 계속 후회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저에게 그러시는 것 같았습니다. 봐라. 제고픔 같이 병균이 교회가 바로네 모습이다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배 시간에 뭐가 바쁜지 벌떡 일어나서 걸어가는 사람. 늦게 와도 추후에 뉘우침이 없는 담대한 사람들.
(29:59)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 어떤 깨달음도 없이 곤란 얼굴로 예배당을 빠져나가는 빚기없는 성도들의 얼굴들. 이것들이 설교자 저 한 사람만의 작품이라고 여러분들이 생각하십니까? 결국은 그렇게 제사를 드리면서도 하나님께 긍휼히 여겨 달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어떻게 긍휼히 여기겠느냐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중심으로 나아와 통하고 은혜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의 외아들을이 세상에 버리시기까지
(31:03) 우리를 사랑하셨 그분에게는 우리를 위해서 아까운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랬길래 가장 사랑하는 자기의 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이 세상을 데려보내셨던 것이죠. 그래서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그리고 소회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배는 그렇게 하나님 없는 예배를 드리면서 또 어떤 사람들은 섬긴다고 분주하게 돌아칩니다. 그러면서이 사람 저 사람하고 부딪히면서 그의 섬김의 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지체의 가슴에 칼을 꽂고 피를 흘리게 합니다. 그런 식의 섬김이 하나님 앞에 연락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모두 하나님 없이 자기 좋아서 하는 자기 행 자기 일입니다.
(32:09) 세상에서는 믿기 전에는이 세상에서 판치고 그렇게 자기 보람을 위해서 살았는데 이번에는 무대가 교회로 바뀌었을 뿐이지 죄의 지배를 받는 그의 본성은 추어도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미명하에 교회의 몸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일 한다는 미명하의 형제를 정죄하고 미움의 칼을 갈아서 교회를 더럽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의 몸에 약을 바르며 또 한쪽을 칼로 찌르는 것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식의 행동을 하면서 여러분들이 자기처럼 똑같은 짓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합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가당하기나 한 것이로 생각하십니까?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갔을 때 여러분들이 행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나를 섬긴 것이라고 인정을 받으실 것 같습니까? 마태복음 7장을 보십시오.
(33:09)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이런저런 일로 하나님을 일평생 섬겼고 그 섬긴 것에 대한 기억이 선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나는 너희를 모르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경배의 정신에서 울어나오지 않는이 모든 섬김은 거짓인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삶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얼마나 욕을 먹고 있는지 여러분 아시죠?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릅니다. 거기에는 억울한 측면도 있지만은 그러나 오늘날 성도의 삶이 얼마나 형편없이 무너져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 드리는 삶이 사실은 하나님 앞에 예배로 올려져야 할 영역입니다.
(34:05) 그게 바로 넓은 의미의 삶의 예배입니다. 그리고 좁은 의미의 예배는 두 가지가 있는데 사적인 예배와 공적인 예배입니다. 여러분 공적인 예배의 샘이 마르면 삶의 예배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렇게 예수 믿고 은혜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이 세상에 나아가서 당치도 하는 못된 짓들을 하는 것입니다. 예. 그렇게 해서 한 나라가 정권을 잡고 그리고 자기의 교회, 자기 구역, 그리고 자기 모교에 있는 측근들을 세워서 온 나라의 질서를 잡으려고 하고 그렇게 하고 그 사람들의 삶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욕해요. 기독교가 세력을 형성한다 그러는데 사실은 그런 사람들이 형성한 세력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모욕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35:13) 그리고 그런 모든 지도자들의 본는 여러분들에게 놀랍게 가슴을 파고 들어서 그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불감증에 걸린 채이 세상에서 바쁘게 살아갑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나요? 여러분들이 좁은 의미에서 예배에서 실패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삶으로서 하나님 앞에 성공할 것 같으냐고 나는 묻는 것입니다. 공적인 예배를 산 위에 있는 저수지라고 할 것 같으면 개인적인 예배는 거기에서 흘러내려오는 실계천입니다. 목회자인 나에게 여러분들이 경건 생활이 느껴집니다. 여러분들이 개인적인 예배의 생활 은밀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거기에 자기를 비춰보고 그리고 자기의 심령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산제사 이런 개인적인 제사는 아무 데서나 드릴 수 있습니다.
(36:14) 그러나 여러분, 공적인 예배를 그렇게 막드리는 하나님을 막보는 사람들이 개인의 삶에 있어서 그렇게 하나님을 만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성경을 다시 써야 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중에이 중에 절반 이상이 지난 한 주간 동안 한 시간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응. 무엇보다도 영혼들을 짊어지고 기도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과 많은 일꾼들조차도 여러분들은 그런 점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헌신하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이렇게 짧은 예배 시간에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이것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이제 자유롭게 하나님을 찾아도 되고 말아도 되는 개인의 삶 속에서 은밀하게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천사가 와서 웃을 일입니다.
(37:05)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은 영적으로나 그리고 삶에 있어서나 마음에 있어서나 철저하게 하나님을 떠난 삶이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하나님 없는 삶을 살다가 오니 이렇게 엄숙하게 드리는이 예배가 여러분들의 적성에 맞을 리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10시에 나오는 여러분들의 모든 소망은 예배가 빨리 끝나고 집에 가는 겁니다. 아닙니까? 아니면 한번 아니라고 말해 보십시오. 나는 그렇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에게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참된 예배의 정신으로 경배하면 한 사람이 모이는 거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이 됩니다.
(37:52) 그러나 만약에 정 반대일 경우에는 모이면 모일수록 그것은 수치인 것입니다. 도대체 여러분들이 중생한 사람이 맞습니까? 중생한 사람의 마음 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영광 앞에 엎드리는 감각이 있습니다. 13주 동안 설교되었던 고린도전서 13장의 강론는 적어도 저희 10년간의 몸부림치는 연구와 그리고 구도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분간 설교하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혼자 조용히 글로 써서 전 세계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출판해 버리고 말겠습니다.
(39:05) 결론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거진 예배를 떠나지 않으면 여러분들의 영혼에 끊임없는 재앙이 내릴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씨를 뿌리면 싹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싹이 났다면 메뚜기가 와서 먹어 버릴 것입니다. 메뚜기가 남기고 갔다면 커다란 풍제가 들어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아무것도 거둘 열매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이 번영한다면 그 번영은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찾은 신앙입니까? 우리는 모두 한 때 하나님 없이이 세상에서 자기를 주인 삼으며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었고 마음과 모든 사상의 하나님을 싫어하는
(40:10) 종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이 운명적으로 그런 삶을 살다가 하나님 없이 지역불에 던질 문명이었습니다. 우리의 공로나 의로움이 티끌만큼이나 있었습니까? 그런데 주님이이 세상에 지혜로운 사람에게 믿어지지 않는 복음이 우리의 마음속에 믿어지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갈 곳이 수없이 많았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저는 여기에 교회를 세웠고 그리고 여러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발견하고도 바른 길을 가고 싶지만 알려 주는 사람이 없어서 평황하고 길을 발견했어도 그 길로 갈 힘이 없어서 주저 앉아 있는 여러분들을
(41:14) 만나게 해 주셨고 마치 다윗에게 눈먼자 원한이 맺친 자 비친 자 상심한 자들을 모아 주신 것처럼 처럼 나는 하잘 것 없는 사람이었지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맞나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났고 그 큰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우리의 옛 삶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박한 소원을 품었어. 내 생에 가장 귀한 것
(42:19) 주담는 것. 그러나 지금 여러분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집어던지며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거나 먹고 살아야 되냐고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진리도 예배도 여러분들의 마음을 끌지 못하고 고 그렇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목적을 붙잡은 것도 아니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그렇게 속절 없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귀만 높아져서 이젠 다른 교회에 가서 설교를들을 수 없다고 자랑스럽게 목회자에게 와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조금도 사랑스럽지 않으니 다음부터 그런 얘기
(43:23)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도대체 여러분들의 인생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떠나가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믿음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따라오던 사람들 걸어가는 길은 약속의 땅을 향하는데 마음은 애굽에가 있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모두 엎드려져서 죽어 버렸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만난 하나님인데 여러분들의 인생을 그렇게 끝내고 싶으십니까?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에게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계신 것처럼 믿어지지 않으면 믿도록 도와달라고 무릎을 꿇는 구도자의 마음이 되십시오. 하나님이 여기도 없고 아무 곳에서 없다고 믿으면 무신 논자로 사십시오.
(44:24)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비결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택한 영혼이면 어떤 전도자를 만나서 여러분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고 아니면 영원히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믿는 성도라면 여러분들의 태도를 바꾸십시오.이 이 교회에 있는 동안에는 나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나를 원수처럼 여겨도 나는 여기서 바른 도리를 가르칠 것입니다. 거짓 예배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왕년에 받은 은혜를 자랑하지 마십시오. 다 흘러갔고 지금 여러분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 안에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그를 지극히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것을 보이십시오.
(45:20) 기도하겠습니다.이 시간에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죄악은 우리 중 누구의 죄악이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의 죄인이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하나님을 깔보고 주님의 이름을 우습게 여기며 능멸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벌 주실 사람들을 벌시고 격려할 사람들을 격려하셔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시련을 만나 깨닫고 깨닫는 사람들은 삶을 돌이키도록 하나님께서 붙들어 달라고 그리고 우리의 이런 불순종들을 우리의
(46:25) 자손들에게는 돌리지 말아 달라고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기도합니다.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아버지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고 이제껏 우리를 불러 주셨지만 하나님 저희는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모르고 우리 마음대로 행함 주님을 멀리 떠났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내 주시옵소서. 이것이 주님이 저에게 맡기신 교회이며 이것이 주님이 저에게 맡기신 성도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없사 주님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짓는 산제사가 있게 해 주시고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이여 저희들이 진실로 참여하며 주 앞에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옵 주옵소서.
(47:30) 주님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함께 있어지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