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은 누구의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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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신의 몸은 누구의 것입니까?
본문: 고린도전서 6:12-20
고린도전서 6:12–20 NKRV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도입]
354년에 태어난 아우구스티누스는 북아프리카 히포의 주교가 되기 전까지, 오랜 세월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성적 방종과 철학적 방황 속에 헤맸고, 그 끝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이런 유명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주님,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위해 만드셨으므로,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쉬기 전까지는 쉬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의 온몸을 온갖 쾌락으로 채워봤지만 그 어디서도 참된 만족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몸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오늘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가 바로 그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해석]
당시 고린도는 우리나라로 치면 항구 도시였습니다. 동서양 무역이 교차하고 경제가 번성했지만, 도덕적 타락으로도 악명이 높았습니다. 아프로디테 신전의 종교 창기들이 있었고, 성적 방종이 그 도시의 문화였습니다.
그 도시에서 살다가 예수를 믿게 된 고린도 성도들이 이런 슬로건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 무슨 뜻입니까? "나는 그리스도인이니 모든 것이 자유다. 성적인 것도 내 자유다." 이것은 단순한 방종이 아니라 신학적 논리였습니다. 당시 헬라 철학의 영향으로 "영혼만 중요하고 몸은 어차피 썩을 것이니 몸으로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는 이원론이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첫째, 바울은 말합니다. "자유를 남용하면 오히려 노예가 된다." 12절을 새번역으로 보면 “모든 것이 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겠습니다.”
개역개정에서는 허용을 ‘가하다’(exestin)로 번역되었죠. 이 ‘가함’과 '제재(exousiazō)'는 같은 어근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바울은 언어유희를 통해 말합니다. "자유를 잘못 쓰면 그 자유에 지배를 당한다." 오늘날 말로 하면, 자유롭게 시작한 것이 어느새 중독이 됩니다.
둘째, 바울은 말합니다. 몸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 15절입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 몸은 이미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입니다. 그러니 그 몸을 음란한 데 쓰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충격적인 표현을 씁니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셋째, 바울은 음행을 다른 죄와 구별합니다. 18절입니다.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성적 죄는 몸 자체를 오염시키는 독특한 죄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내리는 결론은 "저항하라"가 아닙니다. "피하라(pheugete)"입니다. 도망치라는 것입니다. 마치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를 피해 겉옷을 버려두고 달아난 것처럼.
그리고 마침내 바울은 19-20절에서 가장 깊은 이유를 말합니다.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요,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핵심 메시지]
오늘 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 값을 치르고 하나님이 사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성도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적용 1 — 디지털 시대의 '피하라']
오늘날 '피하라'는 명령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지금 이 시대, 스마트폰 하나로 어디서든 음란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SNS 알고리즘은 한 번 클릭하면 더 자극적인 것을 계속 밀어 넣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끊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제재를 받는 것", 즉 자유를 주장하다가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내 몸이 성령의 전임을 믿는다면, 내 눈에 무엇을 입력하느냐가 신앙의 문제입니다. 바울의 명령은 이것입니다. 도망치십시오. 앱을 지우십시오. 필터링을 설치하십시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우면 믿는 형제자매에게 고백하고 함께 싸우십시오. 도망치는 것은 비겁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적용 2 — "내 몸은 내 것"이라는 세상의 논리 앞에서]
오늘 우리 사회에는 빠르게 퍼지는 논리가 있습니다. "내 몸은 내 것이니 내가 원하는 대로 쓸 권리가 있다."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자유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2천 년 전 고린도 교인들도 똑같이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
바울의 답은 이것입니다. 19절입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내 몸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산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 주고 사신 것입니다. 이 진리를 붙드십시오. 결혼 안에서 성적 순결을 지키는 것,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 이것은 억압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라는 가장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결론 — 복음으로 닫으며]
아우구스티누스는 몸으로 온갖 쾌락을 다 경험해봤지만 결코 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쉼을 찾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 그 몸을 내어주셨고, 그 보혈로 우리를 값 주고 사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그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이 우리 몸의 미래입니다. 14절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우리 몸은 버려질 몸이 아닙니다. 부활할 몸입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된 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몸으로, 이 하루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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