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시험
가스펠프로젝트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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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들어가면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입학해야 하는 학교가 있습니다. 바로 '광야 대학'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광야는 하나님 나라의 학생들을 위한 옥스퍼드 대학이자 케임브리지 대학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깊은 영성과 신앙의 훈련은 화려한 궁궐이 아니라 척박한 광야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광야는 지름길을 두고 굳이 우회해야 했던 험한 길이었습니다. 본래 상인들이 다니던 평탄한 '왕의 대로'에는 최소한의 인프라와 우물이 있었지만, 광야는 아무도 가지 않는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름길에 있던 전쟁을 피하게 하시려고 광야로 돌리셨지만, 그 광야에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결핍인 '굶주림과 목마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면 전쟁 중에서도 능히 승리하게 하실 수 있었을 텐데, 왜 굳이 이 비참하고 처절한 결핍의 땅, 광야로 밀어 넣으셨을까?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시험하고 낮추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이 풍족할 때는 내 신앙이 좋은 줄 압니다. 그러나 '결핍'이라는 시험대 앞에 서면 비로소 우리의 진짜 본색이 드러납니다. 광야는 두 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첫째, 나는 정말 어떤 존재인가?",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입니다.
나는 어떤 자인가?
광야에서 드러난 우리의 첫 번째 실상은 '배은망덕함'과 '지독한 기억상실증'입니다.
출애굽기 16:2–3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애굽이 더 좋았었다고 추억하는 모습니다. 종살이를 고기가마 곁에 있었다고 미화합니다.
홍해를 경험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면서도 그렇게 말한다.
시간이 흘러 출애굽기 17장에 이르면, 그들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매일 먹는 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상태였습니다. 매일 아침 초자연적인 하늘의 양식을 입에 넣으면서도, 당장 마실 물이 없자 또다시 폭발합니다.
출애굽기 17:7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영적 경험이 쌓이고 기적을 삶처럼 누리고 있으면서도, 결핍이 찾아오면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본질적인 질문은 똑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진짜 계시기는 한 건가? 계신다면 왜 내가 이렇게 힘든데 가만히 계시는가? 그러고도 하나님이신가?"
성도 여러분, 이것이 이스라엘만의 이야기입니까? 오늘 우리의 모습은? 구
원의 은혜를 누리고, 수많은 기도의 응답을 경험했으면서도, 내 삶에 재정의 결핍, 건강의 결핍, 관계의 목마름이 찾아오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합니다. "내가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 하나님은 대체 어디서 뭐 하시냐"고 원망하는 것, 그것이 광야에서 폭로된 '나'라는 존재의 부끄러운 실상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렇다면 인간이 그렇게 원망하고 시험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인간의 본색이 원망이라면, 하나님의 본색은 '은혜'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0:4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맛사에서 백성의 원망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하십니다.
그 반석이 깨어짐으로 이스라엘에게 물이 공급됩니다. 그 반석은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누굴 위하여 깨어진 반석입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눈물로 부르짖던 신실한 자들을 위해 깨어진 것입니까? 아닙니다! 방금 전까지도 모세를 돌로 치려 하고, 하나님을 향해 삿대질하며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의심하고 배은망덕하게 원망하던 바로 그 추악한 죄인들을 위해 반석이 대신 매를 맞고 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욕망의 도구로 판단하던 자들을 살리기 위해,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온몸이 찢기시고 피와 물을 쏟아내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실히 증명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7:8 “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는 그때 아말렉과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미 물이 없어 지친 노예 출신에게 그들의 침공은 멸망의 신호탄이었습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기고 내려가면 지는 전투를 통해 시각적으로 똑똑히 보여주셨습니다. "보아라, 너희는 나를 의심했지만 나는 단 한 순간도 너희를 떠난 적이 없다. 내가 친히 너희를 위해 싸우고 있다!" 하나님은 르비딤 평야에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를 세우시며 불신앙에 빠진 백성들을 품어 안으셨습니다.
시험에는 경고가 있다.
우리를 위해 깨어지신 반석의 은혜는 너무나 값지고 아름답지만, 오늘 성경은 이 광야의 사건을 전하며 한 가지 엄중한 경고를 덧붙입니다.
고린도전서 10:5–6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하나님은 원망하는 자들에게도 반석을 깨뜨려 물을 주시는 자비한 분이시지만, 끝까지 은혜를 망각하고 원망과 탐욕을 즐기던 '다수의 사람들'은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 역사적 사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본보기(거울)'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거울은 왜 봅니까? 내 얼굴에 묻은 더러운 것을 닦아내기 위해 봅니다. 광야 이스라엘의 원망과 파멸을 보면서 "에구, 저 미련한 인간들" 하고 손가락질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내 삶에 결핍이 올 때마다 툭 튀어나오는 내 입술의 원망을 발견하고, 즉시 돌이켜 회개하라고 주신 영적 거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