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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Ἰδὼν δὲ τοὺς ὄχλους ἀνέβη εἰς τὸ ὄρος,

καὶ καθίσαντος αὐτοῦ προσῆλθαν °αὐτῷ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καὶ ἀνοίξας τὸ στόμα αὐτοῦ ἐδίδασκεν αὐτοὺς λέγων·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μακάριοι οἱ πενθοῦντες , ὅτι αὐτοὶ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πραεῖς, ὅτι αὐτοὶ κληρονομήσουσιν τὴν γῆν.

μακάριοι οἱ πεινῶντες καὶ διψῶντες τὴν δικαιοσύνην,

ὅτι αὐτοὶ χορτασ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ἐλεήμονες, ὅτι αὐτοὶ ἐλε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καθαροὶ τῇ καρδίᾳ, ὅτι αὐτοὶ τὸν θεὸν ὄψ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εἰρηνοποιοί, ὅτι °αὐτοὶ υἱοὶ θεοῦ κλ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δεδιωγμένοι ἕνεκεν δικαιοσύνης,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μακάριοί ἐστε ὅταν ⸉ὀνειδίσωσιν ὑμᾶς καὶ διώξωσιν καὶ

εἴπωσιν πᾶν πονηρὸν καθʼ ὑμῶν ψευδόμενοι ἕνεκεν ἐμοῦ.

χαίρετε καὶ ἀγαλλιᾶσθε,

ὅτι ὁ μισθὸς ὑμῶν πολὺς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οὕτως γὰρ ἐδίωξαν τοὺς προφήτας τοὺς πρὸ ὑμῶν.

그리고 무리를 보시면서, 예수께서는 산속으로 올라가셨고,
앉으셨을 때 그분의 제자들이 나아왔다.
그리고 그분의 입을 열어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이르시기를
복이 있도다, 그 심령에 파산 선고 받은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애통하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온유한 자들이여.
왜나하면 그들이 그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그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긍흘히 여기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긍율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그 마음에 있어서 청결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그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평화를 만드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아 오고 있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대항하여
모든 악한 것들을 할 때 복이 있도다, 너희들이여. 기뻐하고 즐지위하라.
왜냐하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급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너회 전에 있던 그 선지자들도 그렇게 박해하였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1-12절, KNJ 사역)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02_심령이 가난한 자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2WUjxXAWHBc
Transcript:
(00:00)

제 2장 심령이 가난한 자

복이 있도다. 그 심령의 사산 성고받은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말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일을 쉽게 그만두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더 좋은 상태를 욕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불행하게 된 모든 사람들은 행복해지러다가 그리된 것입니다. 우리는 소유함으로써 행복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행과 고통이 다만 지상 자원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 그러했 그렇습니다. 그러나 참된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00:59) 그것은 오히려 사람됨에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존재 곧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무엇을 소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애통하는 자는 지위를 차지한 사람이 아니고 온유한 자도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가진 사람이 아니라 된 사람입니다. 그것은 사람됨을 가리킵니다.

인간의 행복

산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무리들이 나왔습니다. 먼저 참된 행복을 선언하시고 거기로 초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던 것처럼 창세기 1장 27에서 28절 그리스도께서는 제창조하시는 분으로 행복을 선언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3절 우리말 성경과 달리 헬라 성경에는 복이 있나니가 먼저 나옵니다.
(02:05) 선언은 그 의미의 뿌리를 구약에 두고 있습니다. 구약의 복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단어 둘이 있습니다. 첫째로 베라카의 복입니다. 창세기 1장 22절 30장 27절. 이것은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것까지 포함한 행복입니다. 일반적인 섭리의 복을 포함합니다. 육체의 건강, 사업의 번창, 재산의 증가, 자녀의 축복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이 복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받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 39절 39장 5절. 둘째로 에세르의 복입니다. 시편 1편 1절 2장 12절. 이것은 일반적인 섭리의 복보다는 영적인 복을 가르킵니다. 신령한 복입니다.
(03:07) 이것은 영혼을 만져 주시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만 누릴 수 있는 복 행복입니다. 구약 성경 시편의 첫장은이 행복에 대해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로 묵상하는 자도다. 묵상하는도다. 시편 1편 1절에서 2절 복이 있나니로 번역된 헬라의 원형 마카리오스는 지편에 나오는 아셀의 복이 있음을 뜻합니다. 팔복은 세속적 복이 아니라 신령한 복을 가르킵니다. 행복은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복된 상태입니다. 행복 복된 아 참된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04:01)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장 36절.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행복입니다. 시편 73편 28절. 모든 불행은 하나님 바깥에서 하나님 아닌 것에 의해서 하나님이 아닌 것을 향하여 사는 데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그는 그는이십니다.

가난함이란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좋은 상태가 아닙니다. 가난한 것은 무엇인가 결핍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자라는데 좋고 없는데 행복하다는 것은 역설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물질과 육체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04:58) 정신과 영혼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하였습니다.이는 이는 세상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기에 목마른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3절. 여기서 심령은 인격의 가장 깊고 은밀한 부분을 가르킵니다. 사람의 생각과 정서와 의지까지 주관하는 마음의 핵심적인 자리입니다. 인생의 뿌리가 무엇입니까? 한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 살아가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심령이 아닙니까? 거기서 마음이 작용하는 작용하고 삶 자체가 이끌리는 것이니 심령은 인격과 생활의 사령부입니다.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은 그의 마음이 그린 입니다.
(05:54) 은혜의 통치도 죄의 지배도 마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거룩한 삶에 있어서 성령은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서 일하시지 우리를 거슬러 우리 바깥에서 일하시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마음의 의지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인생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먼저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복되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는 행복하길 원하면서 마음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이 이 구절의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주석과 낸스키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 심령에 있어서 거지 신세인 사람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이다.
(06:42) 비유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하여 많은 빚을지게 되었습니다. 살던 집에서 쫓겨놨습니다. 가엽쓴 아내 자녀들과 함께 보다리를 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때는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도와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울기 시작하고 간난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의 눈에도 이슬이 맺칩니다. 지나가던 한 이웃이 이웃 사람이 그들을 보았습니다. 불쌍히 여겨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일단 오늘은 따뜻한 집에서 밤을 지세고 살 방도를 찾아보고자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때 도움받은 사람은 그 집에 방이 몇 개인지 욕심 욕실은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것입니다.
(07:35) 침대에서 잘 수 있는지 바닥에서 자야 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의 친절에 감지 덕지하며 따라갈 것입니다. 아무도 의지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가난한 마음입니다.이는 이는 그냥 가난한 것이 아니라 극빈의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랬습니다. 혼자 잘 살 수 있었다면 예수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 수 있었다면 회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회심한 자는 심령의 파산 선고를 받은 사람입니다. 거기 신세 거짓 신세가 된 사람입니다.
(08:24) 그 마음 간직하고 있으면 은혜 안에 있는 것이고 잃어버렸으면 은혜 은혜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는 찾은 것이 언제입니까? 불타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시파한 적이 언제입니까? 그분의 은혜 없이 살 수 없다는 갈망으로 울부짖으며 간구한 적이 언제까?

가난한 마음과 믿음.

구약에는 경외하라라는 명령이 자주 나옵니다. 출애굽기 20장 20절 신명기 6장 13절 여호수아 4장 24절. 이것이 여호와 종교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경외에 이르는 길을써 믿음이 제시됩니다. 믿으라라는 명령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 1장 15절 요한복음 4장 21절 14장 11절 심령의 가난함은 믿음이 무엇인지 잘 가르쳐줍니다.
(09:29) 자신의 비한 상태를 직시하는 것입니다. 시편 40편 17절 90 어 4편 17절 하나님 말고 도움의 길을 없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불쌍히 여기심에 모든 희망을 거는 것입니다. 자기 바깥으로부터 오는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본위의 여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태복음 15장 22절에서 28절. 그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딸은 어 흉악한 귀신이 들려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수께 나아가 고침받고자 했습니다. 소리치며 예원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세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이 들렸나이다.
(10:25) 하되 마태복음 15장 22절 그러나 걸 보지도 않으셨습니다. 여인은 호사 계속되었습니다. 부르짖는 소리가 어찌나 소란했던지 제자들까지 나섰습니다. 그때 말씀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마태복음 15장 26절. 불쌍한 여인은 개의 비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심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마음이 너무나 가난해서 내세울 자손존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거기서 한 줄기 빛을 찾았습니다. 갈망은 더욱 불타 올랐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올소리더 많은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수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태복음 15장 27절 모욕받아도 매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1:20) 그리스도 외에는 도움을 받을 길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의전의 마음을 보여 주 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큰 믿음이었습니다. 딸은 구원받았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내 믿음이 크도다 내 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5장 28절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모든 구원의 희망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분에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죄가 들어올 때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 절대 의존의 마음입니다.
(12:12) 그분만 의존하는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이어서 인간은 하나님의 지장한 준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러자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본래의 아름다움과 행복도 함께 잃어버렸습니다. 가난한 마음은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전하는 마음입니다. 그분의 은혜에 소망을 둔 마음입니다. 파상 선고를 받은 마음으로 교회의 문을 두드릴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인생의 벼란 끝에 내몰린 채 부르짖던 때를 회상해 보십시오. 붉은 피가 흐르는 십자가 아래 흐느끼든 때를 회상해 보십시오. 지금은 어떤 마음입니까? 인생은 여전히 어렵고 영혼을 어두운 밤을 지나는데 왜 지금은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까? 왜 그때처럼 파산한 심령으로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습니까? 왜 그때처럼 몸부른치지 않습니까? 가나안 심령에서 열렬한
(13:17) 기도가 나오고 간격스러운 예배가 드려집니다. 그 마음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거짓 신세가 된 마음으로 들으리는 기도는 하늘보좌를 움직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을 도우십니다. 죄를 지었던 어 죄 지었으면 영소해 주시고 미련하면 지혜를 주십니다. 무능하면 유능해 하시고 가진 것이 없으면 채워 주십니다. 애월하제 하나님만 의존하는 마음이야말로 참된 행복의 진주입니다. 기도 속에서 어 피어린 외침에 사라질 때 부유한 마음은 부려진 죄악 죄의 씨앗은 불리한 삶으로 추사됩니다. 인생은 돌에 부딪히며 흘러가는 계곡 물과 같습니다. 그러는 물소리는 물이 돌들이 부딪친 소리입니다.
(14:19) 어디에 살든지 문제가 없을 때는 없었습니다. 상에 부딪히며 때로는 신호하며 흐름끼며 비명을 지릅니다. 이럴 때마다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 찾지 않으면 인생의 고통은 운명이 됩니다. 가난한 마음 없이 참된 행복에 이르지 못합니다. >>

심령이 가난한 자의 행복.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부자되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부족한 것이 없는 나라입니다. 세상의 풍요를 능가하는 완전한 기쁨과 만족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미 그 나라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15:15)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절. 천국은 사랑의 나라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그 나라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이미 하나님 사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데 있습니다. 시편 21편 1절 33편 21절. 그것은 천국의 질서 안에서 사는 기쁨이니 하나님 사랑의 질서를 누리는 것입니다. 가난한 심령으로 그 나라를 누립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소유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미래적 측면과 현재적 측면입니다. 첫째로 미래적 측면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종말에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16:06)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를 모든 죄와 비참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때 모든 피조물은 고통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1절. 악은 영원히 심판받고 마귀는 완전히 멸망할 것입니다. 땅과 하늘에서 하나님의 통치는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나라를 물려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종말에 대한 소망으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둘째로 현재적 측면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습니다.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가 이미 세상 나라 속에 침투에 들어왔습니다. 현재적으로 그 나라를 누리기에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현실을 살아갑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그 보증이십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 14절.
(17:01) 지금 누리는 은혜의 기쁨과 충만한 생명이 그 증거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들을 누립니다. 미래에 누릴 천국을 바라보며 현재 이루어진 천국을 누리면서 오늘을 살아낼 힘을 얻는 것입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누림으로써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그 나라를 누림. 지금은 경제적으로 >> 박충성 목사님입니다. 네. >> 어. 예. 죄송합니다. >>

지금 그 나라를 누림

지금은 경제적으로 부유해졌지만 60년대 우리나라는 매우 가난했습니다. 하루 새끼를 먹지 못하는 이들이 도시에도 허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니 아이들에게 변변한 간식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17:55) 그 시절 배고픈 아이들이 모여서 니다. 땅따먹기 구슬치기에 몰두합니다. 잘 씻지도 않고 잘 먹지도 못해서 꾀재한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서 놀이를 합니다. 그때 손수레를 끌고 오는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들립니다. 아이들은 엿장수 주위에 몰려듭니다. 요장수는 옆판에서 아주 작은 여조각을 떼어냅니다. 줄서 있는 아이들 입에 하나씩 넣어 줍니다. 한 것이 귀하던 시절 아이들 입안으로 들어온 여조각은 그야말로 단맛의 신세계를 신선 선사합니다. 요수는 고물을 가져오면 그 많은 엿을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단맛을 본 아이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고물로 보입니다.
(18:52) 할머니의 고무신 부뚜막의 막 위에 찌그러진 냄비 강아지 밥 그릇 형이에 보다 마루에 놓아둔 책까지 어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을 주십니다. 그 나라의 감격과 기쁨을 미리 맛보여 주십니다. 종말인 우리 행복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미리 알게 하십니다. 교회와 함께 그 나라를 미리 누리게 하셔서 그곳을 더욱 사모하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봅니다. 그 힘으로 죄악된 세상을 거슬러 올 살아갑니다. 밤하늘의 불꽃처럼 살아갑니다. 그렇게 사는 신자가 세상의 빛입니다. 기도로 엎드릴 때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하는 소리에 길을 기울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은 우리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스바냐 3장 17절.
(19:53)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다시 찾아야 할 행복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예수여 살아가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요?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만큼 밀려오는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며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생명과 사랑이 답입니다. 그 힘으로 세상을 이기고 역경을 헤쳐 나아가야 합니다. 가난한 심령으로 천국을 누리기에 슬픔을 극복할 사랑이 있고 결핍을 견뎌낼 생명이 있습니다.

맺는 말

심령은 세상에 있는 것들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은혜가 아니면 만족할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간절히 샀습니다.
(20:47) 시편 72편 2절. 부요한 심령이기에 먹어도 줄이고 마셔도 못마릅니다. 온 마음 다에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돌아가십시오. 첫사랑의 때처럼 타는듯한 목마음으로 은혜의 보좌에 나아오십시오. 교만한 마음에 울고 부유한 심령에 가슴을 치십시오. 그런 사람은 이미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심령의 파산 선거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심령이 가난한 자 한눈에 보는 2장
1번 들어가는 말
사람들은 소유함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참된 행복은 그의 존재 사람됨에 달려달렸다.
2번. 인간의 참된 행복.
구약에는 복을 지칭하는 두 단어가 있다.
첫째로 넓은 의미의 복인 베카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가르킨다.
둘째로 좁은 의미의 복인 에세르다.
진자만이 누리는 신령하고 영적인 복을 가르킨다.
부문의 복에 해당하는 마카리오스는 에셀르의 복이다.
예수께서는 그 복을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신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3절.
3번. 심령의 가난함.
심령은 사람의 인격의 가장 깊고 은밀한 자리다.
생각과 정서 의지를 주관하는 핵심적인 자리다.
가난함은 파산한 국을하는 비참한을 뜻한다.
비참에서 벗어나는 길이 하나님 외에 없다는 마음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이것이 믿음이고 신앙의 출발점이다.
4번. 천국을 누리는 복.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만 의존하고 그분의 은혜의 은혜의 소망을 둔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천국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절.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다스리시는 완전한 기쁨과 만족의 나라다.
그 나라는 두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첫째로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이루어질 미래적 측면이다.
둘째로 신자가 지금이 땅에서 누리는 현재적 측면이다.
하나님은 심령의 가난한 자들에게 천국을 맛보여 주신다.
그 나라의 감격과 기쁨을 사라질이 땅에서 누리게 하신다.
그러므로 미래의 그날을 더욱 사모하게 하신다.
5번 맺는 말.
행복은 어디에서 찾고 있는가?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라.
그분 안에 참된 행복을 누리길 바란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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