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적 예배에서 돌이키라02_씨 뿌리고 기름을 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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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고 기름을 짤지라도
씨 뿌리고 기름을 짤지라도
제시해주신 소스(GSI 선교회 강해)를 바탕으로, **'참된 예배의 회복과 영적 회복'**이라는 주제로 1시간 분량의 강연 또는 설교 구성을 위한 상세 정리안을 작성해 드립니다.
[강연/설교 개요] 진정한 예배의 회복과 영적 각성: "씨 뿌리고 기름을 짤지라도"
[강연/설교 개요] 진정한 예배의 회복과 영적 각성: "씨 뿌리고 기름을 짤지라도"
본문 성경: 미가서 6장 15절 핵심 요지: 형식적인 예배와 영적 타성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참된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1. 도입: 미가 선지자의 시대적 배경과 탄식 (10분)
1. 도입: 미가 선지자의 시대적 배경과 탄식 (10분)
1.1. 8세기의 선지자 미가와 하나님의 마음
미가 선지자는 나라가 망하기 전, 특히 가난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전하며 부패한 기득권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민하는 내용과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가지신 고민 사이의 깊은 간극을 보여줍니다.
1.2. 헛된 제물의 유혹 (미가 6:6-8)
백성들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갈까" 고민하며 1년 된 송아지, 천천의 수양,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 심지어 자기 죄를 위해 맏아들을 드릴까를 논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없는 종교적 거래이자, 이방 제사 방식을 본뜬 가처분적인 신앙의 모습입니다.
2. 현대 그리스도인의 영적 실태와 타성 (15분)
2. 현대 그리스도인의 영적 실태와 타성 (15분)
2.1. 미가 시대보다 못한 오늘날의 무관심
과거 이스라엘은 제물에 대해서라도 고민했지만, 현대 교인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 아파하거나 하나님 앞에 무엇을 드릴지조차 고민하지 않는 영적 무관심에 빠져 있습니다.
예배를 짓밟고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육신의 삶에만 몰두하는 배교적 태도를 보입니다.
2.2. 하나님께 실증 난 마음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신앙생활을 지겹게 여기며 억지로 자리를 지키는 '영적 권태기'와 '바람난 남편' 같은 마음으로 예배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는 목회자에게도 깊은 슬픔과 좌절을 안겨주며, 공동체 전체의 영적 활력을 앗아갑니다.
3. 예배의 실패가 가져오는 삶의 저주 (15분)
3. 예배의 실패가 가져오는 삶의 저주 (15분)
3.1. 수고하나 결실이 없는 삶 (미가 6:15)
."네가 씨를 뿌리나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을 밟으나 기름을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으나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삶은 아무리 땀 흘려 일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냉해를 입은 농작물처럼 허망하게 무너집니다.
3.2. 영적 우선순위의 파괴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자를 하나님도 가볍게 여기십니다.
예배가 무너진 상태에서의 사업적 성공이나 번영의 노력은 결국 축복이 아닌 헛된 몸부림에 불과하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만족을 누리지만, 하나님 없는 풍요는 형벌과 같은 고통이 됩니다.
4. 회복을 위한 결단과 영적 개혁 (15분)
4. 회복을 위한 결단과 영적 개혁 (15분)
4.1. 철저한 자기 반성과 대호각성(大悟覺醒)
목회자의 권면을 단순한 하소연으로 듣지 말고,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의 예배 생활이 어디서부터 병들었는지 진지하게 살피고, 아픈 부위를 칼로 도려내는 듯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4.2.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감
하나님은 경고 없이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며, 뉘우치고 돌아오는 자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문제는 경제적 여건이나 환경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답은 오직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상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자만이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5. 결론 및 합심 기도: 참된 예배자로의 부르심 (5분)
5. 결론 및 합심 기도: 참된 예배자로의 부르심 (5분)
5.1. 일상의 모든 영역을 예배로
뿌리고 밟는 모든 삶의 과정에서 주님과 함께하며, 그 결실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체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매달려도 진정한 위로는 없으며, 오직 영원한 친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올 때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5.2. 마무리 기도
무너진 예배를 회복시켜 주시고, 형식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심령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간구합니다.
참고 사항:이 정리안은 소스에서 강조된 미가 6:15 의 말씀과 형식적 예배에 대한 비판, 그리고 하나님께로의 철저한 회귀라는 핵심 흐름을 따라 구성되었습니다. 각 단계에서 제시된 시간 배분은 1시간 분량의 모임이나 강연에 적합하도록 설정되었습니다.
씨 뿌리고 기름을 짤지라도 - YouTube
https://youtu.be/rG4wJsDlvq8?si=gul_LVgYHN1CFYLZ
하나님의 말씀은 미가서 6장 15절 1296쪽입니다. 입니다. 네가 씨를 뿌리나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남을 밟으나 기름을 내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으나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를 붙들어 주시고 오늘이 시간이 오후에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또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 사랑과 은혜를 저희들이 깨닫게 하옵시고 그래서 우리 각자가 주님 앞에 우리의
분수를 알게 하시며 그래서 우리가서야 할 자리와 행하여야 할 일 그리고 우리가 마음에 품어야 할 바를 품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미가 선지자는에에 8세기의 선지자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나라가 망하지 않았을 때이죠. 그는 특별히 가난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했던 선지자였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없기 때문에 몰린정한 부자들에 대한 탄핵이 이어졌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고민하는 내용이
사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고민하시는 내용과 얼마가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가 가 하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대면하고 있는이 6장에서 여러분 중 누구라도 다 알 수 있는 성경 구절 하나가 미가서에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유명한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을 1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히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쁨을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인하여 내 마다들을 내 영혼의 죄를 위하여 내 몸에 열매를 드릴까? 이 유명한 이야기가 담긴 구절입니다.
웃지 못할 일은 많은 사람이 여기에다가 자신의 마음을 담아서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부른다는 것이죠. 부르는 사람은 감격하며 부르지만 사실 성경에 볼 뜻은 그게 아닙니다. 미관은 그렇게 고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웃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제사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 앞에 뭘로 제사를 드릴까? 번제물 1년 된 송아지를 갖고 나갈까?
그냥 수양을 한 천 마리쯤 드려. 아니면 그냥 기름을 수만 마리 짜 가지고 갖고 갈까? 아니면 내가 죄를 지었는데 내 아들을 한번 불태워 볼까? 이거는 이방 제사에서의 속죄 의식과 관련된 거예요. 실제로 그 어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벌그게 다 쇠덩어리 속에 자기 자식을 넣어서 뚜껑을 닫아 가지고 불태워서 이방신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자기에게 임하는 진노를 면해 보려고 하기도 했어요. 그 얘기하는 거죠. 요즘으로 말하면 우리 자식 신학교 보내 볼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지가 죄를 지었으면지가 불속에 들어가야지 왜 새끼를 갖다가 태워들이냐 이게. 그 이거 아주 비가 선지자가 철저하게 비웃으면서 비난하고 있는 장면이죠.
최근 들어서이 성경 구절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아, 이만큼이라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과연 요새 교인들이 자기 안에 있는이 많은 죄를 가지고 어떻게 내 자식을 어떻게 해서 내 죄를 용서받아 볼까 이런 생각이나 하냐 얘기죠. 심지어 나아가면서 1년 된 송아지를 드릴까? 아 내 내 친김에 천천히 수양을 갖다 바칠까 누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예배에 나오느냐는 거죠.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미가가 피를 토하듯이 외치던 그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보다 훨씬 나았다라는 결론이에요.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고민도 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무엇입니까? 결국은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하느니라.
너희는 그렇지 못하다 그겁니다. 그러니까 예배를 이렇게 다 짓밟아 놓고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죠. 역설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언약 백성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면 무엇을 먹을 것인가 무엇을 마실 것인가 별로 염려 안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으니까 진짜 우리가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충하게 될 때 내가 어디에 있든지 어떻게 살든 지 또 무엇을
견디게 되든지 나는 관계치를 않노라. 아무 상관없습니다. 왕의 음식을 먹고 황제의 잠자리를 누려도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형벌과 같은 고통일 것이고 주님을 섬길 수가만 있다면 조악한 음식과 불편한 잠자리에서도 그는 만족을 누릴 것입니다. 예배를 이지경으로 짓밟아 결국은 선지자로부터 치열한 탄핵을 당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향해 끊어진 이들의 관심은 예배를 짓밟아 버린이 배교에 가까운 이들의 영적인 무관심은
오히려 자기의 육신에 대해선 아주 열심히 움직이게끔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씨을 뿌리며 추소하고 싶어 했습니다. 감남을 밟으며 그 기름을 열매에서 기름을 짜고 싶어 했고 포도주의 틀을 밟으며 술을 마시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선지자는 말합니다. 네가 씨를 뿌리지만 추수할 수 없을 것이다. 기름을 내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주틀을 밟지만 그러나 술은네 술이 안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거죠. 한 10여년 전에 저는 농사를 지어 본 적은 없지만 너무 가슴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곡식이 지금쯤 되면은 탱탱하게
이제 그 쌀 알을 형성하는 물이 벼위에 꽉 차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 가을 따가운 햇빛 아래에 그것이 연어서 여러분들이 먹는 딱딱한 쌀이 되는 것이죠. 근데 큰 냉해가 확 덮쳤습니다. 그러면 액체 상태로 있던 그 나달들이 전부 다 얼어 버렸어요. 그때 잊혀지지도 않습니다. TV에서 그 현장을 중계해 주는데 어느 농부가 자기 들판에 나와서 나다를 손으로 만지다가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두 다리를 뻗고 통곡을 하며 울었습니다. 1년 내내 농사를 졌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천둥과 번개의 위험을 무릎 쓰고 비가 쏟아지면은
들길로 뛰어나가 물을 트고 그리고 해충을 방지하고 열심히 해를 썼는데 그래서 이제 막 연글게 되었는데 냉해가 닥쳐서 싸라리 모두 죽어서 떨어지는 것이에요. 그 자리에 앉아서 통곡하는 그 마음이 바로 농심이에요. 교회는 포도원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포도원을 이루게 하시고 맡겨 주신 것은 줄기 가지가 뻗어서 그래서 특품의 포도로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이 포도원을 여기에 세우신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어디에 흩어져서 살든지 명품 포도가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여기에 보내어 때로는 물질로 때라는 눈물로 말씀을 전하거나 교회를 섬기면서 그렇게 포도운을 갖꾸게 하신 것이죠. 우리 모두는 뱀미창에서 노를 젖는 노예 같은 일꾼들일 뿐이었고 주님이 친히 선장처럼 교회를 이끌어 오셨고 그분은 포도원의 주인이었어요.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정말 애정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이이 세상에서 어떻게 좀 해 보려고 몸부림치든 모든 일들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눈물나도록 안타까운 사연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예배 그렇게 드리면
여러분들에게 행복 없어요. 여러분들은 씨를 뿌려도 어떠한 열매도 거리 거두지 못할 것이고 몸이 부서지게 이래도 여러분들은 단 한 그릇의 기름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땡볕에 포도밭을 갖꾸느라고 비참하게 수고해도 단 한 잔의 시원한 포도주도 마실 수 없을 것이에요.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사상이에요. 나를 가볍게 여기는 자를 나도 가볍게 여기고 나를 중이 여기는 그를 나도 소중히 여기리라는 것이 주님의 생각이에요.이 이 세상에 산다고 하는 모든 인생의 날들이 시련이 아닌 날들이 없겠지만 우리는 지금 바로 그런 매우 중요한 시기를 영적으로 지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이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이 애쓰고 사업에 힘을 내고 그리고 여러분들의 번영을 누리기 위해 힘쓰고 애쓴다고 할지라도 예배를 그렇게 드리고 있는 한 여러분들의 삶에는 어떠한 축복도 없어요. 대호 각성하시기를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깊이 뉘우치고 주어도이 이야기를 목회자의 하소연이라거나 아니면은 객끼로 여기지 말고 주님이 친히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경고라고 생각하고 넓은 의미의 예배부터 시작해서 가장 좁은 의미의 예배 주님앞 앞에 무릎을 꿇고 드리는 개인적인 예배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여러분들의 예배 생활이 썩고
병들었는지를 진지하게 살피고 아프더라도이 지점쯤에서 칼로 돌려내려고 하는 결단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에게 경고 없이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시거나 뉘우치는 마음 없이 용서의 은혜를 베푸시는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이고 공평한 분입니다. 거스리는 자에겐 무서운 분이시고 뉘우치고 돌아오는 사회들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요즘 여러분들의 표정을 보면 한마디로 하나님에게 실증난 표정들입니다. 신앙에 지겹고 하나님께 대해서 실증난 사람들. 마음에는 바람기가 가득 들었지만 할 수 없이 자식 생각해서 아내와 살아주는 남편처럼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목회자에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주일 저녁이면 매일 눈물을 흘리며 사태까지 갑니다. 여러분들이 요즘 저에게 32평짜리 아파트를 하나 마련해 줬습니다만은 추워도 기쁘지 않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심령으로 드리는 예배 여러분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행복을 느낀지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음. 신방을 하거나 여러분들을 만나 보면 너무 가없습니다.
무거운 인생에 짐을 짓고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면 교회 와서라도 여러분들을 위로해 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합당하지 않은 인간의 큰 위로보다는 하나님의 작은 채찍이 훨씬 훌륭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사경애를 준비하면서도 신이 나질 않습니다. 목회자가 이야기하는데 교인 40%밖에 참석을 안 한대요. 나는 솔직히 여러분들에게 먹이기 위해서 몇 천 명 집회도 마화하고 안 가는데 꼭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부르는데 많습니다. 전 세계에서 한 주도 안 비우고 집회 다닐 자신이 있습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이렇게 교인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경회를 강사 한번 안 부르고 15년 동안 1년에네 번씩 해야 되는 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보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운데 그런데 해결의 길은 여러분들이 주님을 제대로 경외하면서 사는 거예요. 다른 해결이 있을 수 없어요. 하나님이 여러분
싫다 그러는데 내가 신방 가서 여러분들의 등을 두드면서 그거 문제 아니다라고 얘기하면 하나님이이 자식이 그러지 않겠습니까? 다른 답은 없습니다. 수없이 방황하고 돌아와도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 계시고 그리고 주님을 만나는 사람은 언제나 상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사람들 그들만이 주님을 만납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총체적인 개혁을 촉구합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의 삶에 대대적인 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 주를 여러분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서
월요일 날 일어나 새벽에 나오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몸이 부서지는 것 같아서 도저히 나올 수가 없었어요. 주일이면 7시간을 설교를 합니다. 제가 못 나오는 날 여러분들이 더 많이 나와서 기도해 줄 수는 없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어떻게 하든지 당신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정말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어두운 세상의 빛처럼 그렇게 살게 하시고 싶으신 것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선을 행할 힘이 없으면 은혜를, 주님을 아는 지식이 너무 없으면 지혜를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의 예배의 생활을 여러분 스스로 현재의 예배의 생활에 대해서 심각하게 반성하고 그렇게밖에 예배드리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 고통을 느끼며 자기를 반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예배로 돌아와야 합니다. 인간적으로는 여러분 가없습니다. 젊은이들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너무 많아요.
1,000원 한 장 쓰면서도 그런 성도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해결은 문제는 거기에 있지만 해결은 거기에 없어요.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되는 그 문제가 무엇이든지간에 문제는 여러 개지만 답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요. 그리고 다시 마음을 기울여 주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때 여전히 우리에게 시련이 남아 있으면 그 시련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더 많이 의지하면서 주님의 형상을 회복해 갈 것이고
주님이 우리를 평탄한 길로 인도하시면 그곳에서 우리는 번영한 가운데 주님을 섬기게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뿌려도 주님과 함께 뿌리고 밟아도 주님과 함께 밟으며 그래서 그 결실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런 일체의 삶으로 나아가야 되잖아요. 세상에 목매어도 세상에 여러분 친구 없어요.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칠네.
온 천지는 변에도 날 버리지 않네. 주님께로 돌아오는 여러분들 되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이 시간 우리 기도할 때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도록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시도록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이 시간에도 간고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자비하신 아버지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의 그 큰 사랑 >> 헤아릴 수 없이 크신 주님의 은혜를
인하여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 하나님 아버지 붙들어 주시고 >> 은혜를 내려주고 우리를 간절히 기고하옵나이다. >> 주여 저를 붙들어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 은혜를 주시옵소서. 의 마음을 >> 저는 슬픈 자오니 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 아버지 하나님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누려 주셔서 우리 온 사람들 주님 앞에 세워 주시고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
그래서 아버지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 아버지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 하나님이 시간에도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은혜를 내려주옵소서.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함께 있어지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