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공동생활_형제 교정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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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해주신 소중한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성도의 공동생활과 형제 교정'**에 대한 1시간 분량의 교육 및 정리 자료를 대지와 소제목을 붙여 구성해 보았습니다.
[성도의 공동생활: 영적 자선으로서의 형제 교정]
[성도의 공동생활: 영적 자선으로서의 형제 교정]
I. 서론: 형제 교정의 정의와 필요성
I. 서론: 형제 교정의 정의와 필요성
형제 교정의 성경적 근거
마태복음 18장 15절("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을 바탕으로, 공동체 내에서 잘못이나 죄에 빠진 형제를 바로잡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며, 이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합니다.
왜 형제 교정이 필요한가?
참된 신자라 할지라도 여전히 부패성을 지니고 오류에 빠질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잘못되었을 때 그를 고쳐서 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공동체의 의무입니다.건강한 예수의 몸
II. 형제 교정의 본질: '영적 자선(Spiritual Charity)'
II. 형제 교정의 본질: '영적 자선(Spiritual Charity)'
육적 자선과 영적 자선의 비교
육체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물질로 지체를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질을 주신 이유는 탐욕의 제방을 허물고 필요한 지체들에게 흘려보내기 위함입니다.육적 자선:
잘못에 빠진 형제를 건져내어 신앙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영혼은 육체보다 훨씬 중요하므로 영적 자선은 더욱 고귀한 사역입니다.영적 자선: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교회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한 이들이 그 사랑을 세상과 지체들에게 흘려보내는 입니다.교통하는 사랑의 공동체
형제 교정은 이러한 사랑의 공동체라는 문맥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III. 형제 교정의 대상과 수행자의 요건
III. 형제 교정의 대상과 수행자의 요건
형제가 빠질 수 있는 두 가지 오류
미움, 정욕 등 도덕적 죄에 빠진 상태입니다.윤리적 잘못:
진리가 아닌 거짓된 가르침을 진리라고 확신하는 상태입니다.교훈적 잘못: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
자신도 동일한 죄에 빠져 있다면 형제를 책망할 수 없습니다. 형제의 잘못을 보며 자기 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윤리적 건강성:
특히 교훈적 오류에 빠진 형제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성경적인 풍부한 지식이 필수적입니다.진리에 대한 풍부한 지식:
지식 없는 사랑이나 사랑 없는 지식은 형제를 미혹에 빠뜨리거나 실족하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지식과 사랑의 조화:
IV. 형제 교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 가지 이유
IV. 형제 교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 가지 이유
범죄한 형제의 영혼을 위하여
오류를 즉시 고쳐주지 않으면 영혼이 병들고 부패하며, 지성과 판단 기능까지 파괴됩니다.
세상을 향한 선교적 사명을 위하여
세상은 교리를 배우기보다 믿는 자들의 을 보고 하나님을 판단합니다.착한 행실
북경 사스 사태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봉사한 그리스도인들의 사례처럼, 올바른 삶의 모범이 하나님을 알리는 통로가 됩니다. 반대로 방치된 지체의 죄는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심어줍니다.
교회의 공동체적 건강을 위하여
한 지체의 오류는 누룩처럼 번져 교회 전체를 병들게 합니다.
잘못된 삶이 방치되면 다른 지체들이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그릇된 표양'**의 위험(예: 청년들의 동거, 헌금 반환 소송 등)이 발생합니다.
V. 형제 교정의 실천 원리
V. 형제 교정의 실천 원리
명예 보존의 원리 (은밀한 권고)
잘못을 발견하면 즉시 소문내지 말고, 은밀히 권고해야 합니다.오직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시는 복음적 배려이자, 심리적으로 그가 굴복하지 않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입니다.
비방과 감염의 방지
형제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것은 공동체를 더럽히는 행위이며, 이는 원래의 상처보다 더 위험합니다.'감염'
용서와 연대 의식
형제의 죄를 공동체 전체의 허물로 여기는 이 필요합니다(에스라의 예).연대 의식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끝까지 사랑하며 인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VI. 결론: 교회의 일치를 위한 희생과 사랑
VI. 결론: 교회의 일치를 위한 희생과 사랑
최고의 가치는 교회의 일치
때로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보다 가 더 중요합니다.교회의 평화와 일치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교회를 위해 침묵하며 떠났던 어느 목사님의 사례처럼,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상처받지 않게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삶
불완전한 교회를 온전케 하기 위해 자신의 육체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야 합니다.
형제가 미끄러졌을 때 더 많이 사랑하고 용서하여, 그를 다시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이 성도의 사명입니다.
[마치는 기도 요약]하나님, 무지 속에서 주님의 몸을 아프게 했던 허물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형제가 충만할 때나 실족했을 때나 변함없이 사랑하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사랑과 용서로 일치를 이루며 주님의 남은 고난을 기쁘게 짊어지게 하옵소서.
제시해주신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소그룹 공동체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성경 공부 활동지를 제작하였습니다. 이 활동지는 형제 교정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사랑으로 실천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소그룹 성경 공부 활동지]
[소그룹 성경 공부 활동지]
주제: 성도의 공동생활과 영적 자선, "형제 교정"
주제: 성도의 공동생활과 영적 자선, "형제 교정"
[함께 읽을 말씀]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마태복음 18:15)
1. 마음 열기 (Introduction)
1. 마음 열기 (Introduction)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의 잘못을 보았을 때, 여러분은 주로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예: 모른 척한다,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 직접 가서 말해준다 등)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2. 말씀의 이해 (Observation & Interpretation)
2. 말씀의 이해 (Observation & Interpretation)
Q1. '형제 교정'이란 무엇이며, 왜 이것을 '영적 자선(Spiritual Charity)'이라고 부를까요?,
육적 자선이 육체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라면, 영적 자선은 잘못에 빠진 형제를 건져내어 시켜 주는 것입니다,. 영혼은 육체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그를 바로잡아 주는 것은 가장 고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내용 정리:신앙의 건강을 회복
Q2. 우리가 형제 교정을 실천할 때 갖추어야 할 자질 두 가지는 무엇인가요?,
남을 책망하기 전, 나 자신도 동일한 죄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윤리적 건강성:
특히 교훈적인 오류에 빠진 형제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성경적인 풍부한 지식이 필수적입니다,.진리에 대한 풍부한 지식:
Q3. 형제의 오류를 방치하지 않고 즉시 교정해 주어야 하는 세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요?,,
방치하면 영혼이 부패하고 지성적 판단 기능까지 파괴되기 때문입니다.형제의 영혼을 위해:
세상은 믿는 자들의 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판단하기 때문입니다.세상을 향한 선교를 위해:착한 행실
한 지체의 죄는 누룩처럼 번져 교회 전체를 병들게 하고 다른 이들에게 이 되기 때문입니다,.교회의 건강을 위해:그릇된 표양
3. 깊이 나누기 (Discussion)
3. 깊이 나누기 (Discussion)
Q4. 예수님은 형제의 잘못을 발견했을 때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은밀하게' 찾아가는 것이 중요할까요?,
하나님께서 죄인일지라도 그의 이며, 심리적으로도 그가 수치심 때문에 마음을 닫지 않고 정직하게 회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명예를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
Q5. 형제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비방'이 왜 위험한지, 강의에서 언급된 '감염'과 '합병증'의 비유를 들어 나누어 보세요.,
상처 자체보다 무서운 것이 감염이듯, 말의 옮김은 공동체 전체를 위태롭게 하는 더 큰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비방은 형제를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공동체를 병들게 합니다.
Q6. 때로는 내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보다 '교회의 일치'가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강의 중 누명을 쓰고도 묵묵히 떠났던 목사님의 사례를 통해 무엇을 느끼셨나요?,
최고의 가치는 나의 결백이 아니라 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운다는 마음으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솔직하게 나누어 봅시다.주님의 몸 된 교회의 평화
4. 삶으로 (Application)
4. 삶으로 (Application)
현재 나의 권면이나 기도가 필요한 형제나 자매가 있나요? 그를 비난하기보다 그의 영혼을 위해 먼저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시다.기도하기:
앞으로 공동체 안에서 형제의 허물을 알게 되었을 때, '말을 옮기는 사람'이 아닌 '명예를 지켜주며 은밀히 돕는 사람'이 되기로 결단합시다.결단하기:
이번 주 중에 격려가 필요한 지체에게 따뜻한 안부 전화나 메시지를 한 통 보내봅시다.사랑 전하기:
[마침 기도]사랑의 주님, 우리가 서로의 허물을 비난의 도구로 삼지 않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아파하며 서로를 세워주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나의 의로움을 드러내기보다 교회의 화평과 일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는 성숙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7 형제교정01 - YouTube
https://youtu.be/TE8aQD6p-qc?si=GWkS9igFqJXR6M_p
[음악] 자,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8장 15절입니다. 신약성경 30페이지 18장 15절입니다. 내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내가 내 형제를 얻은 것이요.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자비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주님. 오늘이 시간에도 저희들이 드리는이 경배와 예배를 받아 주시고 오늘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예배를 통해 영광을 거두시옵소서. 오늘 말씀을들을 때 모든 지체들이이 말씀에 크게 은혜를 받고 또 변화되는 복된 역사가 나타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은혜 내려 주시기를 간곡히 빌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도의 공동생활 중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형제적 교정의 교리입니다. 형제적 교정이란 성도의 공동생활 가운데서 잘못하거나 죄에 빠진 형제를 형제들이 고쳐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천국 시민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를 상세히 가르치신 이유는 바로 그것을 통해서 이 세상이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함께 모인 이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서로 잘못된 것을 고치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특별한 교훈을 주셨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입니다.
이러한 형제의 교정의 필요성은 형제들이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참된 신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져 그리스도의 일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부패성을 가지고 오류에 빠질 수 있는 인간들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렇게 잘못되었을 때 그들을 고쳐서 건강한 예수의 몸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형제의 교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형제적 교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예수님께서는이 본문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고대의 많은 교부들은이 형제적 교정을 가르쳐서 “영적 자선”이라고 불렀습니다. 육적 자선은 육체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신의 쓸 것을 희생해서 다른 지체를 돕는 것을 가르치죠. 이것이 육적 자선이라면 영적 자선은 그들이 잘못된 그들이 잘못에 빠졌을 때에 그 잘못에서 그들을 건져주고 교정해 주는 것이 영적 자선입니다. 육적 자선의 과산에서 말하자면은 성경이 우리에게이 의무를 매우 강조하고 있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고 그것들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물질을 우리 혼자 누리게 하시는 것이 아니요. 그 물질을 가지고 많은 지체들을 섬겨서 그 지체들을 돕고 결핍에서 그들을 풀어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는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교회에 헌금했으니까 이제는 교회가 구제하면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은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육적 자선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죠. 헌금을 해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헌금을 사용하고 그 속에 지체들을 향한 구제가 들어가는 것은 성경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 몇 푼 낸 헌금에 자신의 의무도 교회에 떠넘겼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성도의 육적 구제의 정신은 자신에게 주신 그 모든 물질을 가지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인생을 사는 것의 일부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특별한 행사와 결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자신에게 주신 물질을 인생을 살면서 그 물질이 없어서 고통하고 힘들어하는 지체들에게 나누어 주며 함께 누리며 살아가는 이것이야말로 육적 자선의 정신이며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아름다운 지순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물질을 주시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그 물질을 흘러가게 해서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이 물질이 흘러 들어갔더라면은 고여 있을 그 물질을 탐욕의 재방을 허물고 그 물질을 필요로 하는 모든 지체들에게 흘려보내므로 그들의 구여진 삶들을 펼쳐주고 치료받게 하는 이것이 바로 육적 자선의 정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도 이루어져 있고 영혼은 육체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육적 자선 위에 영적 자손이 필요한 것이니이 영적 자선이 바로 형제들이 잘못되었을 때 그들을 올바로 교정하여 신앙의 건강을 회복하고 나아가서 그들의 건강을 복함으로 교회 전체가 영적으로 건강하도록 회복하는 그 일을 위해서 기여하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선이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서 우리는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라고 하는 사실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워 놓으신 이것은 바로 사랑의 공동체로 세워놓으신 것입니다. 두 가지 점에서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일 수 있는데 첫째는 교회를 구성하는 각자 각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에 깊이 감복하여 지순의 사랑을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점에서 사랑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고 그렇게 아의 사랑에 감복한 사람들이 지순의 사랑을 가지고 이번에는이 세상 상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가까이 다가온다는 점에서 이제이 공동체가 사랑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 까리따스의 사랑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는 지체들을 돌보고 사랑하며 또 교회 밖에 있는 불신 세계를 향해서 주님이 섬기셨던 것처럼 그들을 위해 섬기는 것이 바로 이러한 섬김과 사랑의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형제 교정의 교리는 바로 교회가 이런 사랑의 공동체라고 하는 문맥 안에서 형제 교정의 교리가 이해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랑의 공동체 자체가 교통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 지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육적인 자원들이 사랑의 공동체라고 하는 연합을 통해서 내 것이 다른 사람의 것인 것처럼 흘러가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인 자원 은사들도 함께 이 교통적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가도록 돕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정신이고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의 설립과 그리고 설립과 그리고 운영의 정신이라고 하는 것이죠. 이런 문맥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형제가 잘못되었을 때 어떻게 그 형제를 고치고 새롭게 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공동생활과 형제 교정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형제가 잘못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형제가 범죄하거든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이 형제는 정말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형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형제도 역시 범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형제가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진 참된 신자라고 할지라도 무엇인가 잘못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형제들이 교회 안에서 참된 신자로서도 참된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그들이 진실로 거듭나서 성화의 과정을 성실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때로는 여러 가지 잘못 때문에 오류에 빠져서 이렇게 이렇게 올무에 걸린 사람처럼 갇혀 있을 수 있는데 이때에 이들을 풀어주고 사명이 교회에 있고 그것이 우리 모든 교회의 지체들이 그 사명을 함께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형제가 빠질 수 있는 잘못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윤리적인 잘못이고 하나는 교훈적인 잘못입니다. 다시 말하면 첫 번째 윤리적인 잘못은 자신도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형제가 어떤 죄에 빠지게 된 것을 가르치는 것이죠. 어 미움이라든지 혹은 또 어 뭐 도둑 도적질이라든지 혹은 기타 정욕에지는 죄라든지 어떤 마음에 있던 혹은 바깥으로 나타났던 어떤 것이든지간에 어쨌든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닌 죄에 빠진 상태를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윤리적인 문제를 띄고 있을 때에는 윤리적인 잘못이 되는 것이죠. 이런 잘못에 빠졌을 때 그 지체는 형제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의 죄와 잘못을 교정받고 다시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복귀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형제들이 이 사람을 교정해 줘 줘야 하는데 형제들이 이런 윤리적인 잘못에 빠진 지체를 교정해 주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윤리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죠. 자신도 계속해서 도둑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 도둑질을 하고 있는 형제를 책망하고 그를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정욕에 지고 있는 사람이 정역에 빠져서 범죄한 지체를 돌아오도록 잘 권면하고 돌볼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어려운 이야기죠. 이렇기 때문에 사실은 형제가 윤리적인 잘못에 빠졌을 때마다 모든 교회의 지체들은 자기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고 그리고 자기 정화의 순 자기 정화의 계기로 활용을 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이죠.
또 교훈적인 잘못에 형제가 빠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직 윤리적인 문제는 없지만은 진리가 아닌 거짓된 교훈을 참된 신앙을 위한 진리라고 확신하는 잘못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는이 사람을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그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어서는 안 되고 그 형제보다도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그릇된 길에 들어선 그 형제를 설득하여 참된 진리로 교훈할 수 있는 진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형제가 잘못에 빠졌을 때에는 윤리적인 잘못이든지 교훈적인 잘못이든지간에 어쨌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죠. 키더 민스터의 리차드 백스터가 말했듯이 그 모든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건강한 교리에서 나오는 것이죠. 그러니까 윤리적인 잘못에 빠진 형제를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할 때에는 자신도 윤리적인 윤리적으로 떳떳한 사람이 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고 그 오류에 빠진 지체들을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성경적으로 보여주고 타이를 수 있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이죠. 더욱이 그가 윤리적인 잘못이 없이 오류인 교훈적 잘못에 빠졌을 경우에는 더더욱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아는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지만 이 사람을 옳은 길로 돌아올 수 있게 한다는 것이죠.
결국 자선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이 베푸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영적 자선을 제대로 베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풍부한 은혜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지식이 넘쳐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하는 사실에 우리들은 주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풍부한 진리와 은혜의 지식을 가지고 형제들을 계속 돌아오게 하는 이 사역은 다니엘서 말한 바와 같이 형제를 옳은 길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은 하늘에 빛나는 별같이 밝게 비추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처럼 그는 하나님 앞에 정말 고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제왕이 되고 장군이 되어서 역사를 주름잡는 사람보다 도탄에 빠진 형제 한 사람 한 사람을 건져 참되신 하나님께로 전향하게 하고 주님을 배향하던 그 삶을 돌이켜 다시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아가게 하는 이것은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영적 자산이며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지체들이 교훈적인 오류와 윤리적인 잘못에 빠졌을 때에 풍부한 은혜와 진리에 대한 지식으로서 그들에게 참으로 행하여야 할 바가 무엇이고 걸어가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가르칠 수 있는 이 영적 자선이야말로 그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는 훌륭한 섬김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아는 지식에서 끊임없이 자라도록 많이 애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들의 지나온 교회의 역사들을 보면은 어떤 사람이 교훈적인 잘못에 빠져서 이단적인 신앙을 추종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꾸짖고 혹은 바른 길로 돌아오기 위해서 접근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가르치는 잘못된 교훈에 미혹하여서 오히려 자신의 참신앙을 저버리고 오류에 떨어지게 된 경우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결국은 지식이 없는 사랑으로도 부족하고 그다음에 사랑이 없는 지식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형제들을 이런 잘못에 빠지게 되었을 때 그들을 정말로 하나님 앞에 올바로 고쳐 주는 일들이 필요하다라고 하는 것이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형제가 오류에 빠졌을 때 그들을 교정해 주어야 할 형제 교정의 필요성은 무엇일까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는데 첫째는 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그를 교정해 주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가 하나님을 믿는 참된 형제이기 때문에 이미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졌죠. 그런데 그가 잘못하게 됩니다. 죄에 빠지게 됩니다. 윤리적인 잘못에 빠지거나 교훈적인 오류에 빠져서 그릇된 확신을 붙잡게 됩니다. 처음 그 순간에 그를 빨리 고쳐 주지 않으면 그런 오류 속에서 그 사람의 영혼은 점점 병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점점 그의 영혼이 병들어 갈수록 그의 심령은 더욱더 피폐해지고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는 결국은 병들게 되는 것이죠. 이런 지체들이 많이 있으면 교회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처럼 섬길 수 있는 교회가 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이 사람의 영혼을 고쳐 주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죠.이 이 사람의 영혼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일 내의 잘못에 빠져 있는 그 지체를 섬겨서 그 지체로 하여금 올바른 곳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이 교훈을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의도이고 또 정신입니다.
그렇다면은 이제 이렇게 지체가 잘못하고 있을 때에 그 잘못된 지체들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고쳐 주어야 하는데 만약에 빨리 고쳐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 사람의 영혼이 점점 더 부패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오류에 빠졌을 때 즉시 건져내지 않으면은 그 오류가 그 사람의 지성과 심지어는 그 사람의 모든 사고의 기능까지 점령해서 그래서 그릇된 것을 그릇되다고 판단하는 그 지성의 판단조차도 혼란을 겪게 된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영혼이 철저하게 파괴될 때까지 방치되기 때문에 빨리 그 형제를 그 형제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교정해 주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이 세상을 위해서라도 선교적인 차원에서 형제가 잘못되었을 때는 빨리 고쳐 주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 주님께 대해서 깊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장시간 시간을 내어서 우리들이 가르쳐 주는 이 구원의 교리, 그다음에 우리들이 가르쳐 주는이 하나님과의 화목의 교리 같은 것들을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에 의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리고 그러한 판단들이 이 사람의 영혼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절대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믿지 않기 위해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대부분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서 못 볼 일들을 보았고 깊이 실망했기 때문에 복음에 대한 강한 의도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그렇게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겠지만은 그러나 그들에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그릇된 모본을 끼쳐 준 사람도 그 사람의 영혼이 실족한 것에 대해서 일정 부분은 죄를 감당해야 된다고 보는 것이 성경의 판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빚된 자녀로서의 모본을 보이도록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착한 행실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인 것입니다.
실제 중국의 북경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나스가 일어나고 온 도시가 막 말할 수 없이 어려움 속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대책 없이 사스가 번져 나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그중에 간호사와 의사들이 최대의 피해자가 됐습니다. 이때에 의료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자기 근무지를 이탈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대만 같은 데서는 간호과 의사들이 병원을 뿌리치고 도망가는 사태까지 벌어지지 않았습니까?이 이 여기 북경에서 이런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거리는 거의 철시 상태가 되고 피하지 못한 연약한 그 사람들과 병든 자들 그리고 노숙자들 이런 사람들이 길거리에 방치된 채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리가 거의 철시가 된 상태였는데 어 거기에서 북경 시장이 이렇게 텔레비를 보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그 위험한 지역을 무릎 쓰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고 물을 주고 그들에게 약을 주고 하는 것을 봤어요. 그 저 사람들이 누구냐 그랬어요. 그랬더니 비서진들이 가서 다 조사를 해 보니까 그 허가 받지 않는 교회에서 모이고 있는 성도들이 그 흩어져서 그렇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 다음도 보니까 또 그런 거죠.이 이 사람이 엄청난 감동을 받았어요. 중국의 공무원들도 자기 국민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모두 피하는데 의사들도 피하고 간호원들도 회피하는데 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길래 저 생명의 위험을 무릎 쓰고 저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저 사람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해 주고 저들을 씻겨 주고 그리고 저들에게 물을 따라주고 저렇게 대화해 주고 그러는게 도대체 누구냐 그랬어요.
알고 보니까 그리스도인들이에요. 그래서 사스가 어느 정도 평정이 된 다음에이 시장이 거기에 있는 대표자들을 불렀어요. 12모인가 가서 식사에 초대가 되었어요. 그래서 같이 먹으면서 이 사람이 아주 개피 감동을 받았다고 표했어요. 어떻게 목숨을 돌보지 않을 수 있느냐. 모두 도망가고 공무원들조차도 의사들조차도 환자를 회피하는데 당신들이 그 환자들에게 다가가서 도시락을 주고 물을 건네 주고 그러는 거를 우리가 봤다. 근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정말 놀랍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셨으며 예수님이 이 북경시에 계셔서도 아마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랬더니이 북경 시장이 얘기했어요. 소원이 뭔지 하나만 얘기해 보라 그랬으니까 우리가 자유롭게 모일 수 있도록 넓은 장소를 주십시는 거예. 몇 천 명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세요. 그리고 허가를 해 주세요. 그래서 지금 수천 명이 모여요. 그 이것이 바로이 세상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믿는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되는 방법이에요.
한해 전에 우리 지체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선교 여행을 갔습니다. 아직까지도 아프가니스탄은 그렇게 마음대로 예수 못 믿게 합니다. 어 그리고 정말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곳입니다. 오죽겠으면 그 선교사님이 복음을 전해서 두 형제가 예수를 믿었는데 둘이 같은 집안의 형제야. 그런데 서로 숨겨요. 같은 교회 나오면서. 왜냐면 교회라고 하 교회라고 하는 것도 없고 뭐 예배당에 모여서 주일날 예배드리는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서로 예수 믿는 신앙을 고백했다는 사실을 그 맘 놓고 고백을 하지면 어떻게 서로 믿는데도 그럴 정도로 무서운 곳이에요. 그 우리 지체들이 가서 고아와처럼 버려진 아이들을 열심히 돕고 섬기고 신체 검사도 해 주고 사랑으로 함께 돌보면서 뛰놀았습니다. 원래 이 사람이 두려움의 영에 사로잡혀 있거든요. 그 자유가 없어요. 근데 그렇게 해서 아이들과 웃고 뛰놀고 막 놀아주니까 마지막 헤어질 때 그 도시에서 만찬을 베풀면서 거기 지도자급에 있는 어떤 분이 그 인텔리 괜찮데 그분이 그런 얘기를 안 들어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우리 동네의 외국인이 이렇게 와서 우리 우리 피도 살도 섞이지 않는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사랑하고 돌봐 주었는데 나는 도대체 너무 놀랍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근데 이런 놀라운 사랑의 근원이 어디인지 자기는 너무 궁금하다고 이야기하더요. 그 우리 모두 다 그 자리에서 그 사랑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겠죠. 그렇게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가는 거죠. 근데 오류에 빠진 지체를 내버려 두게 되면은 그 지체가 계속 망가진 채 있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죄 가운데서이 세상을 향해 오염시키는 거죠. 그걸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들이 차단이 되는 거라 이거죠. 그러니까 세상을 위해서라도 그 지체를 고쳐 주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으니 이것은 바로 교회를 위해서라도 그를 고쳐 주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몸입니다. 교회의 한 지체이지요. 그는 그런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의 한 지체이니 그가 오류에 계속 빠져 있을 경우에는 그 죄와 죄가 계속해서 번성해서 다른 지체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래서 교회 전체가 병들게 만드는 주범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교회는 교회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 형제를 고쳐야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개개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오류와 잘못이 사실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는 흔히 잘못에 빠졌을 때 누군가가 와서 자신에게 충고하려고 하면 우리는 흔히 내 프라이버시야 내 개인적인 생활이니까 이야기하지 마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그런 것은 성경에서 성경적인 태도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생활도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우리의 윤리적인 삶도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느 형제가 주님을 위해서 정말 아름다운 은사를 받았으면 그 모두 우리의 것이고 그 형제가 죄악에 빠졌으면 그 모든 것이 또한 우리의 부끄러움이니 한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우리들이 서로를 고쳐 온전하게 되라고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 속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간구하도록 교훈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형제를 고쳐 주어야지만 교회가 전체적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죠.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죠. 더욱이 한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교회에 계속 출석하면서 이런 죄를 짓게 될 경우에는 더더욱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죠. 한 형제가 죄 가운데 빠졌다가 교회를 떠나가면 그가 예수의 몸인데 교회를 떠나갔으니 그의 몸이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을 교회가 함께 느끼게 될 것이고 교회에 남아 있다고 할 것 같으면은 그 형제의 잘못된 삶을 모든 형제들이 함께 보게 됨으로써 그의 그릇된 표양을 보면서 다른 모든 지체들이 오류에 빠질 담대함을 가지게 되니 이 또한 교회 교회를 위해서 속히 그 형제의 오류를 고쳐 주어야 할 필요다라고 하는 것이죠.
실제로 어떤 그 사역자가 외국에 있는 교회에 나갔는데 한인 교회에 나가서 부교역자로 섬기는데 청년들을 돌보게 됐어요. 청년들을 돌보는데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보게 된 거예요. 함께 나와서 예배드리는 청년 중에 여러 커플이 동거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청년들에게 이야기하면 오히려 교회의 분위기는 뭐 요즘 세상에 그런 걸 가지고 이야기하냐라는 시기들에요. 처음부터 그들이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죠. 처음엔 굉장히 충격이었을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충격이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걸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거죠. 이게 바로 그릇된 표양이 가져다 주는 위험입니다.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 어떤 자매가 그런 간증을 해요. 미국에 처음 왔는데 낯설고 물설은데 도시에 갔더니 참 아주 헌칠하게 생긴 젊은음 형제들이 참 많더래요. 그날도 길을 걸어 가는데 어떤 형제 둘이 걸어가는데 그렇게 그림처럼 이쁘더래요. 야 진짜 날씬하고 어쩜 저렇게 젊고 발랄하고 이쁘구나 그래서 야 참 좋다 그렇게 아 참 좋다 그러고 가는데 또 형제가 자기 옆을 이렇게 지나가더래요. 그러더니 손을 잡고 가더래요. 그래서 야 둘이 굉장히 친한가 보다. 그리고 가는데 신호등이 탁 꺼져서 자긴 여기 있고 형제들은 둘이 여기서 이렇게 손을 잡고서 있더래요. 그러더니 갑자기 둘이 마주 보더래요. 그러더니 뽀뽀를 하더래. 처음에는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너무 충격을 받는 거야. 야, 말로만 듣던 게이가 여기 있구나. 어. 야. 야, 진짜 야, 진짜 아깝다. 그리고 이제 그리고 그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몇 시간 동안 그게 떠나질 않더래요. 그다음 날까지도. 근데 그게 아니 뭐 그냥 종종 있는 일이라는 거지. 서로 끌어안고 보를 부비고 뭐 뽀뽀하고 막 그러더니 아 그런데 조금 했더니 또 여자애들이 앞에서 그러더래요. 전철에서 그러한고 뭐 여자애들끼리 뽀뽀를 하고 뭐 이제는 뭐 그런 일이 일어나도 아이고 또 하는구나. 그러면서 이 잘못된 표양을 보면서 만성이 되어 가는 겁니다.
그러면은 이게 자연스러운 것이 되는 되어 가는 이번에 그 도시를 갔더니 어느 한 교회에서 성도 한 사람이 교회를 걸어서 재판을 청구했어요. 그게 뭐냐면 내가 낸 헌금 돌려 달라는 재판이었어요. 그러면서 그 목사님을 만났는데 목사님은 자기는 정말 더럽고 치사해서 당장 돌려줘 버리고 싶다는 거죠. 근데 그런 예가 한국에서는 그래도 외국에 심심게 일어납니다. 언젠가 한번은 성도 한 사람이 법원에 제소를 했어요. 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이게 뭐냐면 어 십일조를 바치면 복을 받는다 그래 가지고 11조 열심히 바쳤는데 복형 비슷한 것도 안 오더라. 그러니 이거는 교회가 사기친 거다. 부당 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했어요. 얘네 그 목사님한테 그랬어요. 돌려 주지 마십시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목사님은 돌려줄 권한이 없습니다. 야,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을까?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을까요?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은 그거를 소송을 해? 진짜 하나님이 한번 본보기를 보여 주셔야 돼요.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걸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왜 왜 돌려 주면 안 되는지를 설명했어요. 그 사람이 헌금을 바쳤을 때 그 돈이 교회로 돌아간게 아니라 하늘나라로 간 거야. 그리고 그걸로 끝난 거야. 그리고 그 돈이 교회로 돌아온 거야. 흔히 사람들은 뭐 교회가 교인이 낸 헌금을 가지고 그렇게 사용할 수 있냐는데 그건 비성경적인 생각이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순간 그 순간은 에 여러분들이 헌금해야 되겠다고 돈을 구별해서 뛰어놓는 순간 떼어놓는 순간 그 돈은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돈이고 그 헌금을 헌금함에 넣는 그 순간 그 돈은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손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바쳐진 거예요. 그리고 그것으로 끝난 거예요. 그 헌금이 잘못 쓰여지던 도둑을 맞든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물질을 바친 대로 하나님 물질을 바칠 때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대로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요. 그러니까 돈은 바쳤고 그걸로 하늘 참고에 들어가서 끝난 거예요. 그다음에 교회에 쓰는 돈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거예요. 박집사가 낸 돈으로 선교하는게 아니고 최집사의 십일조로 목사들이 월급을 받는게 아니에요. 예. 김권사의 감사헌금을 가지고 주일학교 학생들이 교육을 받는게 아니라 얘기예요. 그러니까 선교지에서 선교비를 받은 선교사는이 헌금이 박집사가 낸 십일조, 최집사가 된 감성과 생각할 필요 없다 이거예요. 그리고 심지어 교회에서 보내 줬는지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해? 하나님의 창고에서 온 거라고 생각을 해야 된다.이 그런데 바보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여전히 교회에 헌금을 받치고는 그 헌금이 모두 돌아서 쓰여질 때까지 그것에 대해서 자기가 바친 돈이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그런 식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제소를 할 수 있는 거라. 내 돈이 아직 그 교회 통장에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 멍통구리 천치바보 깡통이 어디 있어요? 도대체 말이지 이게 어떻게 그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인간이 그거를 성도들이 다 봐.
어떤 형제가 잘못했을 때 그 잘못을 지켜보고 있는 교회 공동체의 지체의 영적 수준은 다 달라. 어떤 지체들은 형제가 아무리 죄를 보고 잘못해도 그거를 보면서 실족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아, 네가 죄를 범했구나. 아, 진짜 나는 저러면 안 되는데 내가 기도해야 되겠구나. 이렇게 하고 자기가 더 올바로 살아가는 지체도 있어요. 소수야. 대부분은 마음이 흔들려요. 그 사람의 경우 그렇게 헌금 1억을 되찾겠다고 교회를 걸어서 세상 법정에 재판을 걸었어요. 자식들이 그거를 보면서 뭘 배울까? 난 걱정해. 그 뭘 배울까? 아, 이래도 되는구나. 아, 이래도 되는구나. 어, 그걸 배울 거 아니야.
어떤 성도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은 자기 남편한테 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은 그렇게 교회를 욕하고 말이죠. 그지? 사실 예배 시간에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그거를 한 곳에 숨어서 하는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모든 자기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그 일을 행한다 이거죠. 그것이 그릇된 표양이야. 그거를 보고 배운다 얘기예요. 뭘 배우게 될까요? 그 자손들이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부모 앞에서 배우지만 아이가 좀 머리가 크면 부모 뒷모습을 보면서 배워. 그 뭘 배우겠느냐? 뭘 배우겠느냐? 그러니 그는 그 한 가지만을 범죄하는게 아니라 한 가지를 범죄한 것이 방치되면 자기는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죄들을 범하면서 그러면서 그 죄가 진척이 되는 거예요.이 이 마지막에 계산을 하면은 어마어마한 양의 죄를 짓게 되는 거예요.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결국은 형제의 교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여기로 필요하다라고 하는 거. 그러면 그 형제를 교정하는 원리가 무엇일까? 무엇일까? 첫째는 명예를 보존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거예요. 아니, 짐승같이 죄를 지어서 교회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예수님의 명예를 실추시킨 그 지체에 무슨 명예를 보존해 준단 말인가? 이렇게 얘기할지 몰라요. 그러나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형제가 죄를 범하는 것을 보거든 오직 그에게로 가서 오직 그만 상대하여 그를 권고하라. 그리하여 그가 들으면 형제를 얻은 것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철저하게 어떤 잘못을 발견하게 되면 혼자서 그 형제를 찾아가서 은밀한 중에 단 둘이 있을 때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올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권고하라는 것이죠.
그러나 사실은 오늘 우리의 현실은 정 반대죠. 누가 잘못을 하게 되면 기도 많이 하고 그 사람한테 찾아가서 가슴에 묻어두고 있다가 너 이런 잘못한 것 같은데 너 어떻게 생각하니? 고쳐야 되지 않겠니라고 말하진 않고 그 사람의 잘못을 보고 나면 그 사람에게 가라고 예수님 말씀하시는데 그 사람에게는 안 가고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게로 가서 막 떠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은 불어나고 불어나고 불어나서 두 세 사람일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돌아서 그 사람 빼놓고 모든 사람은 다 알게 만드는 거예요.
오히려 범죄한 한 형제가 지금 교회를 위태롭게 하는게 아니라 그러고 다니는 지체들이 교회를 위태롭게 하는 거예요. 더 큰 죄를 짓고 있는 거예요. 정 반대로 행하고 있잖아요. 아마 이러한 범죄에 대해서 설교를 듣는 여러분 가운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 보세요. 형제의 잘못을 보았을 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그의 영혼을 위해서 진실하게 장시간 기도하고 오직 그만 그 사람만 대면에 본 적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럼 여러분들이 이렇게 물을 거예요. 아 목사님 저는 그 지체하고 그렇게 친 친분이 없어요.
여기서 친구가 범죄하거든이라고 이야기한게 아니에요.네 친한 친구가 죄를 짓거든 그 친한 한도 내에서 찾아가라 그런게 아니라 형제가 범죄하거든. 형제가 이게 공동체성이라 이게. 그렇게 해 가지고 해. 거기에다가 평소에 그 죄에 빠진 형제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형제였으면 본 것 플러스 알파 해 가지고 악소문을 퍼트려서 인간을 매장을 시켜 버리는 거. 사실은 그게 문제가 되는 거죠. 무슨 이야기냐면 상처가 문제가 되는게 아니라 감염이 문제가 되는 상처보다 더 나쁜 건 감염이야. 아무리 상처를 입어도 감염되지 않으면 안 물어요. 근데 감염되는 거예요. 그러면 상처 상처낸 사람도 나쁘겠지만 그것을 감염시켜서 온 몸을 위태롭게 한 사람은 더 나쁜 사람이죠. 심지어는 그렇게 해서 자기 생각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작당을 해서 당을 만들고 그리고 그 사람들 그렇게 그렇게 남을 비난하고 소문을 퍼트려서 범죄한 형제의 범죄를 빌미삼아서 그의 명예를 먹칠하기 위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아예 회심조차도 안 한 사람들도 섞여 있다 이거죠. 이럴 경우에는 한 사람에게 죄 짓는게 아니라 그 그 사람에게도 죄를 짓는 거야. 그래서 결국은 회심하지 못한 영혼이 교회를 떠나게 하고 실망을 하게 하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이 얘기예요. 근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왜 그럴까요? 형제를 바르게 해 줄 용기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그럼 어떤가? 괜히 내가 이야기했다가 네가 뭔데? 이러고 면박을 주면 난 어떡하나? 아니면 또 그 형제가 내 약점을 알고 너도 이랬잖아. 그리고 대들면 어떡하나? 뭐 이런 등등의 이야기. 또 내가 이렇게 괜히 남의 일에 휘말려들어서 내 평안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이게 모두 다 예수님 사랑일까요? 자기 사랑일까요? 두말할 필요가 없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에게는 공동체성이 현저하게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야기하고 있는이 사실들은 오늘날에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서 표준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교회의 환경들을 내가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에요.
근데 이것이 얼마나 비성경적이고 탈신앙적인 행동인지를 여러분들이 오늘 분명히 알고 고쳐야 된다 이거죠. 고쳐야 된다 이거죠. 만약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를 지은 형제는 조금 야단을 치시고 그거를 갖다가 그냥 그 입으로 막 그냥 토해내어 가지고 모든 지체들에게 옮겨 가지고 교회를 더럽힌 여러분 중에 한 사람 그 말을 옮긴 한 사람의 죄를 준엄하게 물으신다면 여러분들은 주님을 불공평한다고 말하겠죠. 불공평하게 처리하신다고 말하겠죠. 근데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너무 많은 거죠. 왜? 그 형제가 죄를 범하는 그 순간 그것은 개인적인 범죄였을지 모르지만은 그러나 그것은 공동체의 죄야.
그런데 여러분들의 그러한 무분별한 이 말의 옮김을 통해서 형제 교정이 아닌 형제 악담, 형제 교정이 아닌 형제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동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은 감염의 역할을 한 거예요. 감염을 역할한 거예요. 여러분, 당뇨가 왜 그렇게 무서운지 아세요? 당뇨 아무리 심하게 걸려도 인슐린 제대 맞고 당조절하면 절대 안 죽어요. 근데 왜 문제가 돼요? 합병증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예요. 몸이 상처가 나면 아물지를 않아. 수술을 하면 피가 멋질 않아. 그러니까 상처보다 더 무서운게 감염이라 이거죠.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은 얼마나 많이 감염시켰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러한 소문에 휘말려서 형제의 명예를 보존해 주지 못하고 실추시키는 그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아주 심각하게 자기를 성찰해야 돼요. 인간에게 있어서이 명예라고 하는 것은 생명과도 같은 거예요.
예수님이 이렇게 범죄한 형제인데도 은밀히 찾아가서 그에게만 말하는 것으로 형제 교정을 시작하시는 이유는 두 가지 사실을 보여 주는 거죠. 우선 첫째는 뭘 보여 주냐면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형제이지만은 그의 명예를 매우 소중히 여기신다는 복음적인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죠. 복음적인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 복음적인 사실을 보여 주는,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적이 있어요. 그 죄를 지은 적이 있는데 그 죄를 지었을 때에는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 누구에게 알려지기 전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 자신이 책망을 받고 있어요. 이미 깊이 책망을 받고 있어요. 그러니까 사실은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실은 양심의 가책보다도 더 중요한 복음으로 그를 감동시켜서 그 길에서 돌아오게 하는 것. 이것이 그에게 있어서 정말 필요한 것이라고 하는 거죠. 응. 그래서 그의 명예를 보존해 주라는 거죠. 그 우리도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보면은 율법 때문에 돌아온게 아니라 사실은 복음 때문에 감격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건 아니에요. 돌아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형제를 돌이키는 원리도 또한 그러하다라고 하는 것이죠.
여기에는 이런 복음적인 배려뿐만 아니라 심리학적인 배려까지 포함되어 있어요. 사람은 명예가 매우 중요 생명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을 때에 정직하게 고백을 하고 자기가 승복을 하게 되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실은 심리적으로 이거를 굴복을 안 하게 된다 이거죠. 예를 들자면 여러분들이 열의 잘못을 했는데 다섯이나 여섯 일곱의 야단을 맞을 때에는 정말 내가 잘못해서 이런 일을 당하고 있다라고 하지만 열밖에 잘못을 안 했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15개로 공격을 당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어느날 갑자기 고개를 탁 두는 거야. 그래 나 죄졌다. 어쩔래? 너희들은 좀 낫냐? 너희들은 좀 낫냐? 너 나 보고 죄를 졌다 그러는데 너도 옛날에 보니까 비슷한 행동하더라. 너는 이런 죄는 안 졌지만 너 뇌물 먹는다고 소문 났더라. 너 공무원이잖아. 어 내네 직장 동료들이 다 그러더라. 너 돈 밝힌다고. 너 너 애들 너 지금은 나를 뭐라 그러지만 너네 마누라가 너 바람 펴 가지고 피눈물 흘린 거 온 교인이 다 하는데 네가 낫냐이 그래 나 더럽다. 너희들 중에 깨끗한 놈이 어떤 놈이냐 이거야 쓰레기 같은 인간들. 그리고 사태가 확장이 되는 거야. 그래, 나 죄졌다. 어쩔래? 그래, 나 돼졌다. 그래, 나 막간다. 그래, 어쩔래? 너희들은 뭔 너희들이 뭔데? 응? 경찰에서 가만히 있는데 너들이 뭐야? 이런 반응이 보일 수 있는 거니, 심리적으로. 예. 그거는 요만한 애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명예를 보존해 주는 그것이 너무너무 필요한 거예요.
응. 그런 거라 이런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배려하심을 이렇게 찾아가서 그 형제만 독대해라. 그리고 그에게 그의 잘못을 이야기해 주고 돌이킬 수 있도록 회개하라요. 제가 대학에 9년 동안 있었습니다. 후반부에는 내가 조금 약간 온순해지긴 했지만은 초반부에는 정말 칼 같았습니다. 그 제 별명이 검찰 총장이었어요. 근데 그 학생들이 정말 그렇 이해가 안 되게끔 그렇게 살아요. 그래서 정말 홀달어요. 어이 교수에게는이 레포트를 보는 직관 같은게 있어요. 수백개의 레포트를 읽어도 어 이거 어디서 봤는데 이런게 있어요. 근데 이제 찾아내기가 굉장히 힘들죠. 근데 분명히 읽는데 깨끗하게 쓰여진 레포트인데 어디서 분명히 본 거야. 아 틀림없이 읽었어요. 야 이상하다 이거 읽었는데 이게 뭐지 그래서 그거를 전부 다 교수실 바닥에다가 펼쳐 놓고 조교하고 둘이서 찾아냈어요. 근데 그 중에 하나를 딱 찾았는데 똑같은 컴퓨터에 써서 한 사람은 명조체로 한 사람은 필기체로 된 거야. 그뿐만이 아니죠. 더 지능적인 놈은이 사람이 사람이 사람 레포트에서 1분의씩 합쳐 가지고 쓴 거 그것까지 다 찾아서 마지막에 교수시지 앞에다 방을 붙였어요. 몇 번 레포트는 몇 번 하고 갔고 몇 번은 몇 번 하고 몇 번은 몇 번 몇 번은 몇 번 플러스 몇 번 플러스 몇 번이니까 베긴 사람과 베김을 당한 사람이 함께 와서 해명하지 않으면은 다 낙재다. 그리고 방을 써서 딱 붙였어요. 그랬더니 이제 난리난 거야 애들이. 아 그래 가지고 막 들어오는 거야. 애 정말 형편 없죠. 그래 가지고 돌아오는 놈들한테 그저 그 아주 그 그 얼굴에 기름기 흐르는 애들이 있어요. 그 번질번질하는 애들잖. 되게 들어와요. 아무리 이렇게 머리를 극적크극적하면서 싹 물 들어와 가지고 뭐 그 교수실에 있는 그 의자에 앉으려고 이래요. 거기 있다가 레포트를 한 주먹 주고 그 화가 좀 안 나도 그럴 경우에는 학생들을 막 그 기회가 있을 때 기선을 확 제압해야지 그 1년 동안 그 편안 4년 동안 편안하지 첫번 만남에서 말려들기 시작하면은 고달픕니다. 그래서 레포트를 한큼 가지고 있다가 뭐 앉으려고 이러면 말 확 집어던지는 거죠. 너 있는 자식 말이지 너 같은 놈이 무슨 신학교로 오냐고 말이지. 난 너 같은 인간하고 상대할 일 없으니까 너 이 저 신학교 가도 된다고 도장을 찍어 준 그 너희 그 담임 목사님 이름하고 주민 등록번호 주민등록 번호 아니라 그 전화번호 전화번호 전화번호 주민으로까지 몰라요. 전화번호 되라 내 직접 통화했다. 너하고 대화할 가치도 없다. 내 뭔 물어보려 그런다. 도대체 목사님이 뭘 보고 이런 애를 신학교 가서 앞으로 목사가 되라고 도장을 찍어 줬는지 내 묻고 싶다.이 내 직접 통하겠다. 예. 그러고 나서 이제 그리고 이제 막 봉변을 당하고 이제 뛰어나가는 거죠. 그 무슨 언제까지 레포트 내라 그런 것도 없어. 그냥 뛰어나가는 거예요. 그다음 학생이 들어오는 거예요. 야 어땠니? 거 아 말하지 마. 넌 이제 죽었다. 근데 딱 들어와. 근데 얘는 의외야. 얘는 진짜 양순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앤데 왜 이걸 컸를 이짓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가는 거죠. 예.
들어오면서 그 뭐 앉지도 못하고 뭐 그냥 아주 그냥 그 자 스스로 부끄러운 그 자괴감에 막 그 얼굴을 못 들죠. 예. 앉아라. 그래서 이제 앉아서 앞에 나간 학생하고 전혀 다르게 이제 이야기를 하는 거. 왜냐면 걔네들은 그따위를 하려면 집어치 아무리 그래도 결국은 졸업해요. 근데 이런 애는 집어치 그러면 당장 가다가 그냥 자퇴 원서 써 버린다고 그러니까 이제 앉아서 내 친구들한테 얘기 들으니까 낮에는 아르바이트하고 밤에 공부한다며 세차장에서 일한다는데 정말이냐?네 네. 네. 부이는 아기 가지고 있으면서 또 그 공장에 다닌다며? 네. 어깨 그러면서 이제 물어보는 거죠. 그 전에 커피, 홍차, 녹차, 물 이렇게 있는데 뭘 먹을래? 하여튼 예외 없이 아 괜찮습니다. 아, 그래도 아무거나 주세요. 그러잖. 아무래도 이제 그런 애들한테 냉수가 적합할 것 같아요. 그래서 냉수 냉수를 따실 때쯤 돼서 그런 거예. 어깨에 손을 다 얹고 힘들져요. 눈물이 쭉 그러 나도 그렇게 힘든 전도사 생활을 보냈단다. 지금도 전도사야. 그런데 너희 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기도하고 네 아내가 그 공장에 가서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마지막 희망이 너 좋은 목사 되는 거 말고 뭐가 있겠니? 그러면 막 엉엉 울죠. 누구든지 그런 실수 한 번쯤 하지 않겠니? 다음 주까지 다시 써서 내라 그러고 보내요. 그 문을 열고 이제 눈물이 씻으면서 나 친구들이 야 너 혼났지? 혼났지 몰라.
어둡고 캄캄한 길에 가시밭길에 [음악] 길 잃은 양 한 마리 [음악] 떨고 있을 때 [음악]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는 내 것이라. 어디선가 들리는 [음악] 주님의 [음악] 음성.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그래서 아무리 잘못하고 있는 형제들이라도 명예를 보존해 줘야 되는면 그의 명예는 그가 실추시킨 예수님의 명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거든. 그렇지만 그 사람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인격적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명예를 보존해 줘야 되는 명예를 보존해 줘야 돼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뭐냐면은 용서와 사랑의 원리야. 용서와 사랑의 원리. 특별히 여기에서이 용서와 사랑은 그의 죄를 자기 모든 공동체가 함께 짊어지고 있다라고 하는 바디로서의 연대 의식에서 오는 용서와 사랑의 정신이란 말이죠. 에스라가 이 모본을 보여 주었잖아요. 에스라는 경건한 지도자였는데 어느 날 보니까 포로에서 본국으로 돌아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 죄를 지은 거예요. 그때에 이 에스라는 제일 먼저 성전 앞에 가서 엎드려서 자기의 죄인 것처럼 흐느껴 울면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했어요. 이게 바로 공동체의 정신이에요. 공동체의 정신. 하나님 우리의 죄가 저 형제 안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를 진실하게 사랑하고 용서하는 어떤 경우에서도 포기 돼서는 안 될. 이것이 바로 뭐냐면 사랑의 사랑.
그래서 너무 현실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다 죽어. 여러분들이 시집 장가가 가서 아이를 낳는데 계속 가서 맡고 와. 그때 여러분들이 열받으면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지. 넌 병신이냐? 너도 한대 때려. 그렇게 가르칠 수 있잖아요. 그럼 사실 복음은 없는 거죠. 실제로 내가 아는 어떤 집안에서는 애가 계속 막고 오니까 엄마가 너무 속상하니까 몇대 맞았냐 이랬어. 세대 맞았다 그러면 다섯 대를 때리는 거야 엄마가. 그러니까 그다음면 얘가 완전히 어마꾼만 다니던 바보에서 쌈꾼으로 변하는 거야. 그래서 어차피 집에 가도 맞으니까 여기서 해결을 보는 거야. 그 이제 국민학교 5학년짜리가 중학교 2학년을 기화장으로 머리통을 날렸어. 야, 어떻게 그렇게 담대해질 텐데? 그렇게 엄마가 걔를 그렇게 담대하게 만든 거야. 예. 예수 믿는 집안에서 그런 식으로 가르치면은 복음은 없는 거죠. 그래서 어떻든지 자신의 어떤 윤리적인 행동 앞에서 특별히 이 사랑과 용서의 행동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철저히 인식하도록 만들어. 그때 뭘 깨닫게 되냐면 복음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겁니다. 아, 정말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구나라고 하는 걸 느끼는 그걸 어려서부터 느끼게 만들어야 돼.
그래서 하나님은 의존적인 사람이 되게 해야 된다 이거죠. 우리도 그걸 배워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잘 들어 보세요. 제 논리를. 성경의 논리를. 어떤 형제가 잘못해.이 형제에 대한 사랑은 없어. 나쁜 자식. 그리고 계속 좋아되기 시작하는 거야. 온 교회에 대해 더러운 소문이 다 퍼졌어요. 나중에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졌어. 그랬더니 이렇게 떠든 모든 지체들 중에 하나도 용서 비는 사람이 없고 발설하는 사람도 아님 말고 신문 볼 때 제가 제일 분노하는게 뭐냐면은 이 그 신문이에요.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하는데 오보야. 그리고 어느 회사나 집단의 명예를 심각하게 실추시켜. 그리고 그다음 며칠 있다가 신문에 그때 그 기사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이거는 안경을 써도 찾을 수가 없는 자리야. 나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보는 거죠. 만약에 일단의 기사로 누구의 명예를 훼손했으면 그다음에 잘못된 8단이 나왔을 경우에는 일단에다 똑같이 내야 돼. 그래서 그날 신문은 신문은 일단 기사가 잘못했습니다로 나와야 돼. 그래서 신문을 매장시켜야 되. 그렇게 하면서이 이 오늘날 사회가 계속 되는 겁니다.
언젠가 몇 년 전에 어느 목사님 교회에서 교회 알려지신 목사님인데 교회에 있는 어느 지체가 우리 목사님이 1억 2,384만 원 연봉 받아 간다고 인터넷을 터트렸어요. 그 인터넷이 소문에 소문을 타고 신문까지 완전히 번져서 그 목사님을 거의 매장시키려고 하는 거지. 뭐 그게 다 목사님의 월급인지 딴 것까지 합쳐졌는지 난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많으냐 적으냐라고 하는 것도 뭐 그것도 나는 관심이 없어요. 근데 그 행동이에요. 그 어떻게 그렇게 비열하게 그렇게 하냐 이거죠. 교회 안에 회의도 있고 다 있잖아. 자기가 집사면 제직해 가서 이야기하면 될 거고 그것도 아니고 성도면은 공동 위의 시간에 목사님이 너무나 월급을 많이 받아 가십니다. 좀 깎읍시다. 얘기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아마 정 답답하면은 재정 현장을 찾아가서 존경하는 목사님 너무 월급 많이 줘서 어 제가 마음이 아프다고 이야기를 하든지 그러면 되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해 가지고 인터넷을 터트려 가지고 말하자면 무슨 중대한 범죄 행위가 교회에서 일어난 것처럼 말이지. 그렇게 해 가지고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다 보도록 말이지. 일간 신문회까지 보도가 나게. 그다 한다 이거죠. 현대에서 지금 검사하고 있죠. 사람들이 혀를 내둘러요. 검찰에서 수사를 나왔는데 비밀 금고 번호까지 알고 있더래요. 그 그 수사에서 그게 나오겠어요. 그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밀고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현대가 비자금을 조성하고 한 것에 대해서 나는 편들자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건 나쁜 거고 벌을 받아야 돼요. 예. 그렇지만 그렇게 같은 같이 피를 묻히고 더러운 일을 한 사람들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되었고 그다음에 자기를 섭섭하게 한다고 그런 식으로 자기가 다니던 회사를 헐뜯고 해 가지고 그렇게 폭로해서 그렇게 더러운 그거는 말하자면은 아주 더티하고 더러운 행동이라.
어떻게 이런 식으로 살아가냐?이 사회가 이렇게 잘못된 사회를 올바른 복음의 정신으로 꾸짖어야 될 이 사회의 목소리가 그리스도인들이라 이거야. 근데 그리스도인들 자신이 교회에서 그런 식의 삶을 프랙티스하지 않는다 얘기야. 자기도 똑같이 그렇게 살아간다 이거죠. 그러니 이게 교회 담장 하나 사이에 두고 교회 속에 세상에 들어와 있는 것이 뭐냐 얘기 그런 비열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거 그러면 예배 시간에 위선을 떨면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끝나고 나가면은 또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그러면서 한다 해 그게 뭐냐 하나는 교회 밖에 있는 쓰레기고 하나는 교회 안에 있는 쓰레기지 무슨 차이가 있냐이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해서 오는게 아니에요.
현대 사회에 있어서 이 익명이 가지고 있는 유익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그런 익명성이 있기 때문에 사실 사회 구석구석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폭로되고 그걸 통해서 사회가 정화되는 것은 어느 정도 우리들이 인정한다 이거죠. 그러나 교회 안에서까지 그렇게 돼야 되겠나요? 여러분들은 한번 여러분 주위에 있는 지체들 가운데 죄를 지어서 회개하는 지체는 봤지만 형제가 죄를 지은 것을 잘못 알고 잘못된 소문을 내어서 형제를 실추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사실 때문에 회개하는 사람 본 적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죄도 아니에요. 살아간다요.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닌이 세상에서도 생명보다 명예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난 많이 만났어요. 수치스럽게 살기보다는 명예롭게 기꺼이 죽을 사람들 많아요. 신앙을 떠나서 이야기한다면은 나도 나도 그러고 싶어요. 구차하고 불명예스럽게 목숨을 부지하기보다는 명예스럽게 죽어 버리는 것을 전 택할 거예요. 신앙을 떠나서라도 말이죠. 그런 사람들 많아요. 세상에 세상에서도 그걸 못 하게 하는데 응. 심지어 교회 안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냐 이 그들은 흔히 자신들이 올바로 한다는 것을 강조해요. 뭐가 올바른 건데?
제가 한 10년 넘게 무좀에 시달렸어요. 엄지 발가락부터 시작되는 이 무좀이 하여튼 무슨 약을 발라도 안 나요. 근데 그 처음에는 낳는 것 갖다가 약의 내성이 생기면 그 약을 바르나 마나에요. 그 또 다른 약을 바르고 또 다른 약을 바르고 그까 그 해도 해도 안 돼요. 낫는가 하면 그의 여름에 또 번지고 번지고 그래서 그다음서부터는 몇 양말 이후에는 아무것도 못 씻는 버릇이 생겨났어. 그래서 여름에도 아주 두툼한 면양말을 신어요. 나도 더워서 싫은데 그게 제일 도움이 돼요. 예. 그러나 한 번도 나는 그렇게 계속해서 치료해도 자꾸 옆에 발가락으로 무좀을 번지게 만드는 엄지 발가락을 잘라 버리는 것이 무좀에 대한 대책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차라리 무을 조금 가지고 다섯 발가락 가지고 내 정상적으로 살고 싶지. 그거 잘라내 버리고 깨끗한 발 가지고 내 발가락 가지고 살고 싶지 않아요. 그거 잘라내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되게 남의 발가락 가지고 그렇게 얘기하는 거야. 응.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의 마음은 [음악] 인간들을 위하여 [음악] 십자가에 [음악] 달려 제물 되실 때[음악] [박수] [음악]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정신이 우리 모두의 죄를 당신의 죄라고 여기고 짊어지신 거예요. 그래서 주님 앞에 형벌을 당할 때에도 조금 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거예요. 의롭게 사는 형제를 돕기 위해서 고난을 참는 일은 가끔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죄에 빠진 형제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일은 별로 없죠. 근데 정말 지체들의 고난이 필요한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에요. 그 부분이에요. 그 예수의 정신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기요. 의식도 없이 행동하며 살아오는 날 동안에 예수의 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냈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깊이 뉘어우치고 회개해야 해요. 그리고 이제는 같은 일을 행하지 아니하도록 아주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그래서 교회를 다룰 때 아 고기처럼 다루지 말고 인체처럼 다뤄야 돼. 두려움과 떨림의 마음으로 말이죠. 그래도 그럼 그런 사랑과 용서의 원리를 가지고 행하면서 죄는 미워하고 죄인은 끝까지 사랑해야 되는 그를 위해서 아파야 된다 이거죠. 철학자 플라톤이 이런 이야기를 남겼어요. “무엇인가를 비판하려거든 먼저 그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을 깊이 사랑하십시오”라고 말이 유사한 이야기를 어거스틴이 남겼어요. “먼저 그대의 지체를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그다음에 맘대로 하십시오.” 그런 용서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어떤 죄에 빠진 지체도 그 형제를 더럽다고 여기지 말고 그거를 고쳐서 회복시켜 건강한 몸으로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정말 그를 빛 가운데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를 그렇게 고치지 않으면 결국은 찢어지는교자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교회 안에 남아서 교회를 부패시키는 사람이 될 것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그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형제들 속에서 수많은 교정의 작용이 일어난다고 한번 생각을 해 봐요. 얼마나 몸이 건강해지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응. 그래서 형제를 찾아가서 형제의 죄를 먼저 발견하고 그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니까 그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주셔서 그래서 다가가서 내가 너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 못 한 건 정말 잘못했는데 너 이런 잘못했는데 너 어떻게 생각하니? 정말 돌이켰으면 좋겠다. 돌아오라.
그럴때 형제가 정말 나도 너무나 괴로웠었는데 네가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니 너무나 고맙구나. 내 혼자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데 네가 나를 도와줄래? 그리고 치료의 길이 있어서 일어선다고 한번 생각해 봐요. 오히려 그 형제의 죄가 얼마나 교회를 건강하게 하겠느냐 말이에요. 응. 하나님의 그 놀라운 가슴섬이는 사랑은 모두 죄에 빠졌던 사람들에 의해서 경험된 겁니다. 죄의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가 경험된 거예요. 그걸 함께 경험하면서 공동체가 커간다고 생각하면 형제 가운데 남아 있는 죄들이 올바로 그것을 다루기만 하면은 은혜의 방편으로 하나님께서 바꿔 놓으시는 거죠.
그런 거를 결국은 악이 되게끔 공동체 자체의 졸립을 위협하 위협하게끔 그렇게 만드는 그 감염시키는 사람들이 너무나 교회에 많은 거예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래서 용서와 사랑의 정신이 필요한 거. 그래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거죠. 세 사람이 두 세 사람이 찾아가라. 그래서 함께 권한 경고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려라. 그래서 치리한다. 그래서 잘라낸다.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죄 지은 형제를 잘라내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럼 어떤 형제를? 회개하지 않는 형제를 잘라내라는 거예요. 죄지은 형제를 잘라내라는 건 없어요. 회개하지 않는 형제를 잘라내는 어떤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는 형제는 잘라낼 수 없어요. 회개하지 않을 때 잘라내는 거예. 그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사랑이에요. 예. 그거를 예수님께서 이렇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계시는 거 결국 형제 교정의 이 가르침은 교회가 잘못된 것을 고치면서도 일치를 상실하지 않을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잘못된 것을 고치면서도 화해와 일치를 유지하는 복음적인 비결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거죠. 그게 바로 이러한 교리들이라 이거죠. 이렇게 해야 되는 거라는 그런데 인간들이 이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무지하거나 더 근본적으로는 사랑과 용서가 없기 때문에 한 형제를 정죄하는 동안에 예전에 자신도 그런 죄에 빠졌던 인간이라고 하는 사실은 까마귀 고기 먹은 것처럼 새카맣게 잊어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대부분 십자가의 정신이 유지되고 현재적으로 십자가가 경험되는 곳에서만 이 형제 교정의 교리가 실행이 가능하지 십자가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는 현실적으로 이것이 불가능해지는 거죠. 자기가 어떠한 죄 가운데 용서받은 죄인이란 거 죄인인가 하는 거에 대한 의식이 거의 없는 거예요. 그런 상태 속에서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는 거죠. 이건 안 된다 이거죠.
최근에도 어느 후배 목회자가 교회 어려움이 있는 거를 토로했어요. 그러면서 어떡하면 좋냐? 관둬라 떠나라. 왜요? 교인들이 원하지 않잖아. 목사는 교인이 가라 그러면 가야 되는 사람입니까? 아니다. 목사는 교인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라 그러시면은 가는 사람이라는 건 틀림없다. 그렇지만 교회가 상처를 받잖아요. 당신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면은 결국은 당신이 옳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입증하는 과정을 통해서 다 찢어지고 만신창이가 된 교회는 누가 고치냐? 그럴 봐야 차라리 우리 중 누가 상처를 받는 것이 더 낫지. 그리고 그렇게 교회를 사랑해서 십자가를 지면 하나님이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시거든요.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목회를 하면서 더욱 굳어지게 되었어요.
목사님 한 분이 계셨는데 일찍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상처하셨어요. 그냥 혼자 사시는데 50대 중반 정도 되셨대요. 근데 교인도 한 100여명밖에 안 모이는 쪽은 교회인데 청년 하나가 계속 배가 불러오는 거야. 여자아이가 더 충격적인 건 어느 날 그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그랬더니 얘가 교회 앞에서 목사님이 해라 그런 거예요. 교회가 발칵 뒤집힌 거죠.이 자매는 목사님 사택에 가서 종종 밥을 해 주었어요. 목사님을. 목사님이 그게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미 그 목소리는 너무 작은 목소리고 계속 이러면서 다 돌아버려. 결국은 노회의 재소에서 목사님은 목사 지위를 박탈당하고 교회에선 쫓겨놨어요. 쫓겨날 때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 아이를 낳아 가지고 그 아이를 목사님에게 품에 안겨서 내보냈어요. 퇴직금 없이 5년의 세월이 지났어요. 그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어요. 이자매가 또 충격적인 발언을 하는 거야.
막 울면서 그 아이가 목사님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때에 목사님과 반대편에서 싸우던 어느 집사 유부남의 아이라 얘기해요. 그 교회가 이번에는 더 뒤집힌 거야. 난리가 나. 그때 온 성도들한테 이제 큰 일이 남게 뭐냐? 장로님들이에요. 그런 결정은 장로들이 하는 거거든. 온 성도들이 다 동참했으면서 그 마지막 상황이 오니까 장로들은 도대체 뭐 하는 것들이냐 그러면서 손가락질이 날라오는 거예. 결국은 그런 거예요. 내가 이 실화를 이야기들은게 20년 전이에요. 근데 나이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내가 그 목사님의 상황에 갔나면 그럴 수 있을까? 못 할 거 같아요.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못 할 것 같아. 근데 그 목사님이 왜 그러셨을까? 그냥 그 아 참 오래 참으니까 결국은 다 다 제자리로 돌아가는구나. 사필귀정이구나. 처음엔 그것밖에 몰랐어요. 근데 목회를 13년 22년 13년을 하면서 이제 최종적으로 드는 느낌은 뭐냐면 그 목사님을 이해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 후배 그렇게 충고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옳은 것이 무엇이냐가 밝혀지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최고의 가치는 아니야. 왜냐면 옳고 그런 것이 밝혀지는 것을 통해서 명예를 회복하게 되는 것은 몇몇 사람이지만 그걸 밝히는 과정을 통해서 교회는 말할 수 없이 상처를 받는 거죠. 그것은 안 고쳐지는 거예요. 예. 그러면서 거기서 소송을 하고 그다음에 사돼지를 하면서 싸우고 그다음에 편갈 이쪽에서 찬송하면 이쪽에서 설교하고 이쪽에서 설교하면 저쪽에서 기도하고 이렇게 교회가 찢어지고 갈라져서 교인들이 물고 뜯고 싸우는 동안에 교인들의 영혼은 전부 다 병들어 버리는 거예요. 그거는 그다음에 누가 와도 쉽게 고쳐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 목사님이 굉장히 지혜로우셨던 거죠. 그냥 그걸 그대로 뒤집어 쓰고 그냥 떠난 거야. 그래서 온 교회가 수소문에서 목사님을 찾은 거예요. 저 강원도 사북에 있는 어느 탄광에서 그 아이를 기르면서 광부 생활을 하더래요. 5년의 세월을 그렇게 보내고 마침 그 교회에 있는 목사님이 다른 임지가 있어서 가셔서 그 자리가 비게 되었길래 가서 섞고 대제하고 그 목사님을 모셔. 마지막에 그 목사님은 죽을 때까지 거기서 거의 성자 대접을 받으면서 목회를 하셨다 그래요. 근데 나는 그 당시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갔어요.
근데 이제 깨닫게 되는 건 뭐냐면 아 그렇구나. 지체보다 나보다는 지체가 소중하고 지체보다는 주님이 더 소중해요. 그래서 주님의 몸이 더 소중해요. 그래서 내가 그런 거죠. 난 당신 상황이라면 떠났나요? 왜? 그게 교회가 안 아프는 비결이잖아요. 누가 옳았는지 그란 걸렀는지는이 세상에 흐르는 세월 속에서 입증이 될 것이고 입증이 안 되면 뭔 상관이 있냐? 교회의 역사가 결국은 밝혀지질 않아서 교회의 역사가 우리를 죽일 놈이라고 매도해도 주님이 안 그렇다 그러시면 되지 않아요.
그래서 결국은 교회는 아프지 말아야 되지 않느냐? 그렇게 교회를 다 찢어놓고 갈리 상처를 받게끔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마지막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교회를 하나되게 하고 치료하고 고치고 싸매고 작은 흠집 하나에도 가슴 점이 있는 것처럼 슬퍼하면서 쌓안고 고쳐서 온전하게 만들어도 우리의 사명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없는데 쥐꼬리 만큼 섬기고 어느 날 말할 수 없이 교회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그리고 마지막에 겁 내가 이겼지. 그게 무슨 영광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산다 얘기요.
저는 이 시간에도 상처난 이 땅에 수많은 교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아. 작은 교회도 예수의 몸이고 성도 두 세 사람밖에 안 모이는 개척 교회도 우리 그리스도의 몸인데 몸인데 그리고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살인데 지체인데 그냥 희생하면 되잖아 누명 좀 쓰면 어때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자기의 생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도대체 어디에 있겠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고난이 충족했지. 남은 고난이 도대체 어디냐 이거든. 근데 그런데도 그는 남은 고난이라 그랬어요. 그리스도 예수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서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래서 예수님은 충족하게 고난을 받고 죽으셨지만 아직 교회의 몸은 아파. 그게 예수의 고난이에요. 교회의 몸은 불완전하므로 아직도 아파. 응. 그게 아직까지는 남아 있어요. 그래서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그 예수의 남은 권한을 자기의 육체 속에 채워서 나는 아프고 교회는 안 아프게. 그렇게 이 수행 동안 살고 싶었던 거야.
연약한 자에게 [음악] 믿음 주고 슬픔의 싸인자 위로하며 [음악] 길 잃은 자들은 [음악] 친절히 이끌리 [음악] 사랑의 주 내 주님께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기도해. 모두 예수의 몸인데 고통을 주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의 남은 고난을 자기의 몸에 채우려는 사람은 너무나 없어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래 조국 교회 어디에 있든지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이 돼야 해요. 그런 사람이 돼야 해. 아무리 많이 악하고 잘못된 형제라도 사랑하고 용서하고 그를 잘라낼 생각부터 하지 말고 회개하여 주님을 배향하였던 삶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전향하도록 돕고 그래서 그 영자가 마음이 강팍해서 회개할 수 없을 때는 는 여러분들이 대신 회개해 주고 그래서 결국은 예수의 몸이 건강하게 그렇게 되도록 어려울 때마다 교회 세우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찢어진 살과 흘리신 피를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나도 그 예수님이 뒤를 따라간다라고 맘 먹고 그렇게 희생하고 하고 낮추면서 형제들 모두를 뜨겁게 피붙이처럼 사랑하세요. 여러분들에게 잘해 줄 때만 사랑하지 말고 성령 충만할 때만 사랑하지 말고 미끄러졌을 때 죄 가운데 있을 때 실족했을 때 더 많이 사랑하세요. 그래서 결국은 그의 손을 이끌고 빛 가운데 함께 살기를 기도하세요.
기도하겠습니다.이 시간에 우리 같이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오늘이 시간에도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우리의 지난 날에 주님의 몸을 아프게 했던 우리의 많은 허물들을 용서해 주시고 무지 속에서 그렇게 살 때가 너무 많았으니 다시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를 빛 가운데 세워 주시고 주님의 남은 고난을 불완전한 교회를 온전케 하기 위한 나의 나의 수고 속에서 나의 육체 속에 채워지게 도와주시고 형제들이 충만할 때나 미끄러졌을 때나 변함없이 예수님처럼 사랑하게 하시고 그래서 우리 모두 빛 가운데 살도록 사랑하고 용서하며 일치를 이루며 살도록 도와달라고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이 시간에도 간고하고 기도합니다. 은혜를 내려 주시고 도와주시옵소서. 자비하신 하나님 오늘이 시간에도 은혜를 내려 주시고 하나님 붙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은혜를 내려 주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자비하신 아버지 오늘이 시간에도 간고하고 기도하오니 주님께서 도와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어 주시고 주님의 크신 사랑과 그 은혜 아래 붙들려 살게 하시고 [음악] Ah.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사랑하는 모든 어린 자녀들 위해 이제로부터 영원히 함께 있어지이다. 아멘.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