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히 서가는 교회
0 ratings
· 2 viewsNotes
Transcript
본문: 사도행전 6:1-7
[도입: 탄탄한 기초 위에 세워지는 공동체]
[도입: 탄탄한 기초 위에 세워지는 공동체]
여러분에게 ‘교회’란 무엇입니까?
어떤 이들은 웅장한 십자가가 서 있는 예배당 건물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결코 벽돌로 쌓아 올린 건물이 아닙니다. 신약 성경은 교회를 ‘에클레시아’(Ekklesia)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즉,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이 공동체가 거센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서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기초가 탄탄해야 합니다. 건물을 지을 때 기초가 부실하면 아무리 화려하게 올려도 금방 무너지듯,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기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바른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 말씀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고백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요? 예수를 ‘주(Lord)’로 모신다는 것은 우리 삶의 중심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이 강조하듯, 죄의 본질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권을 찬탈하여 내 스스로 왕관을 쓰고 내 인생의 왕 노릇을 하던 우리가, 복음 앞에서 그 왕관을 벗어 예수님의 발 앞에 내어드리는 것—그것이 바로 예수를 ‘주’라 고백하는 진짜 믿음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완전히 대속(代贖)의 피를 흘리셨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 복음의 핵심을 정직하게 믿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 위에 설 때, 우리와 하나님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삶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이 시간, 이 탄탄한 기초를 기억하며 함께 고백해 볼까요?
“나는 예수님을 나의 주로 모신 교회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교회를 든든히 세워갈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삶으로 증거하는 청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행복한 청년회가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탄탄히 청년회를 세워가는 복된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의 말씀을 통해, 구체적으로 교회가 어떻게 든든히 서갈 수 있는지 두 가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든든히 서가는 교회는 바른 우선순위를 가집니다]
[첫째: 든든히 서가는 교회는 바른 우선순위를 가집니다]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6장을 보면, 폭발적으로 부흥하던 초대교회에 생각지도 못한 큰 위기와 갈등이 찾아옵니다. 제자의 수가 많아지면서 아름답기만 할 줄 알았던 공동체 내부에 원망의 소리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당시 교회 안에는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자란 ‘히브리파 유대인’과, 해외 디아스포라 출신으로 헬라어와 문화에 익숙한 ‘헬라파 유대인’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제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의지할 곳 없는 가난한 과부들에게 매일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데, 언어와 문화가 달랐던 헬라파 과부들이 이 구제에서 자꾸만 소외되고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 오해와 서운함이 쌓이자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을 향해 강하게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도들의 물리적인 한계가 찾아온 것입니다. 사도들이 말씀도 전하고, 기도도 하고, 구제 물품도 일일이 나누어 주다 보니 과부하가 걸렸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교역자가 설교, 제자훈련, 심방, 행정, 찬양 인도, 전도, 구제까지 모든 것을 혼자 다 하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본질을 놓쳐버린 상황과 같습니다.
사도들은 이 위기 앞에서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행정적인 시스템을 고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우선순위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본문 2절 말씀입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여러분,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삶으로 보여주신 위대한 사랑의 실천이자 교회의 핵심 사역입니다. 사도들은 구제 사역을 폄하한 것이 아니라, 바른 우선순위를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주신 주님의 절대적인 지상 명령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8:19-20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들의 최우선순위는 말씀을 연구하고 선포하며, 제자를 삼기 위해 기도에 전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구제)을 하느라 더 본질적인 일(말씀과 기도)을 제쳐두게 되었으니, 이것이 영적인 질서를 무너뜨린 원인이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선언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 밤마다 배들의 안전을 지키는 등대가 있었습니다. 이 등대를 지키는 등대지기에게는 매달 등대 불을 밝힐 수 있는 일정한 양의 기름이 지급되었습니다.
어느 날, 근처에 사는 한 가난한 여인이 찾아와 "아이가 아픈데 방이 너무 추우니 기름을 조금만 나누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마음 약한 등대지기는 기름을 조금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밤길을 가야 하는 여행자가 등불을 켤 기름이 없다며 청하자 또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다음 날에는 이웃 주민이 등대지기의 착한 행실을 칭찬하며 다급한 일에 쓰겠다고 기름을 빌려 갔습니다.
등대지기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행하고 있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달 말, 폭풍우가 치던 어느 날 밤, 정작 바다를 비추어야 할 등대의 기름이 바닥나고 말았습니다. 불이 꺼진 등대 때문에 수많은 배들이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는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등대지기는 좋은 일을 하려다 등대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인 '빛을 밝히는 일'을 망각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의 사역과 신앙생활도 이 등대지기와 같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 임원으로, 리더로, 팀원으로 열심히 봉사하고 행사를 치러내느라, 정작 내 영혼을 살리는 말씀과 기도의 기름을 다 채우지 못해 영적 탈진에 빠지지는 않습니까? 화려한 방법과 유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는 있지만, 주님과의 본질적인 관계가 끊어진 사역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무너집니다.
올바른 우선순위는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온전한 관계로 주님의 마음을 닮는 것이 최우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 행복한 청년회의 교역자인 저와 임원들이 맡은 바 행하는 모든 섬김 속에서 주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최우선순위로 삼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수많은 시중을 드느라 마음이 분주했던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41-42 말씀입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가 준비하던 ‘접대와 봉사’는 우리가 본 구제 사역의 문제와 맥을 같이 합니다. 예수님은 봉사 자체를 책망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마음을 알며 주님과 온전한 관계를 놓치는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사역은 말씀이 공급되어야 하며, 기도로 주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함께 고백합시다!
주님! / 언제나 내 마음에 우선순위는 / 오직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이십니다! / 성령님! / 내 마음에 예수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올바른 우선순위로 내 영혼과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주의 청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든든히 서가는 교회는 이 우선순위를 기쁘게 여기며 성령 충만한 사람을 세워 함께합니다]
[둘째: 든든히 서가는 교회는 이 우선순위를 기쁘게 여기며 성령 충만한 사람을 세워 함께합니다]
사도들이 이 우선순위의 경계선을 명확히 하고, 구제 사역을 전담할 일꾼을 세우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제안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이 결정에 공동체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본문 5절 말씀입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온 무리가 사도들의 제안을 기쁘게 여겼습니다. 물론 말씀 사역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쩌면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강단에 서는 편한 일처럼 보였을지도 문득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것이 타협할 수 없는 주님의 명령이자 교회가 사는 길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른 영적인 바른 우선순위가 선포될 때, 온 교회가 성령충만한 마음으로 기뻐하며 동역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이와 같은 일이 한국 교회사 속의 너무나 아름다운 실화로 기록되었습니다.
1900년대 초, 전라북도 김제에 마부들이 쉬어 가던 ‘금산교회’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는 조덕삼이라는 그 지역 최고의 부자이자 대지주가 다녔고, 그의 집에서 마당을 쓸고 말의 먹이를 주던 ‘이자익’이라는 머슴도 함께 다녔습니다. 조덕삼 씨의 배려로 주인과 머슴이 한 교회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교회가 성장하자, 교회를 이끌어갈 첫 번째 장로를 선출하는 투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은 당연히 학식도 많고 돈도 많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지주 조덕삼 씨가 장로가 될 것이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투표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지주 조덕삼은 떨어지고, 그의 집 머슴이었던 이자익이 장로로 선출된 것입니다.
양반과 천민의 신분 질서가 서슬 퍼렇게 살아있던 그 시절, 이것은 교회가 두 쪽으로 깨질 수도 있는 엄청난 위기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파와 헬라파가 부딪쳤던 것처럼, 인간의 자존심과 감정이 폭발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주 조덕삼 씨의 입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조덕삼 씨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성도들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금산교회 성도들은 참으로 훌륭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정이 대단하고, 무엇보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저는 교회의 결정에 기쁘게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님을 잘 받들어 우리 교회를 신실하게 섬기겠습니다.”
조덕삼 씨는 자신의 기득권과 체면, 인간적인 부끄러움을 십자가 앞에 철저히 내려놓았습니다. 오직 성령 충만한 사람을 장로로 세운 교회의 결정을 ‘기쁘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는 집에서는 여전히 머슴인 이자익을 인격적으로 대했고, 교회에서는 자신의 장로님으로 깍듯이 모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후 조덕삼 씨가 이자익 장로의 영적 자질을 아끼어 그를 평양신학교로 유학 갈 수 있도록 물질과 기도로 전폭 지원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자익 장로가 목사가 되었을 때, 조덕삼 씨는 그를 자신의 금산교회 담임목사님으로 청빙하여 평생을 겸손히 동역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행복한 청년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 신분 의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만 가능한 줄 믿습니다. 세상의 기준, 내 기준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 충만한 일꾼’을 세우는 것을 기뻐할 때 교회는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그 영적 질서를 온 무리가 기쁘게 여길 때, 공동체 안의 모든 갈등과 원망은 눈 녹듯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처럼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우리는 그분의 몸 된 각 지체로서 서로 다른 역할과 은사를 맡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교역자는 말씀을 맡고, 예배팀은 찬양을, 미디어팀은 방송을, 임원과 리더들은 청년회 운영과 돌봄을 맡아 각자의 자리에서 성령 충만함으로 섬길 때 교회는 비로소 든든히 서갑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살펴본 초대교회는 일꾼을 세우는 기준도 세상의 스펙이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다’는 것은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항상 동행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그분의 인격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성령충만한 자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섬김의 삶을 따라 살게됩니다. 내가 값없이 은혜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니,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닮아 나도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섬겨야지! 어려워하는 사역, 전도하고 선교하고 교회 남들이 하지 않는 그런 사역을 마음으로부터 행동까지 따르게 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충만함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교회 성도들은 칭찬합니다. 저 친구를 보니 정말 그를 변화시키신 예수님이 생각이나! 저 친구의 섬김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어! 하면서 ‘칭찬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성실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도 겸손함과 순종의 삶으로 그 믿음이 증명된 사람입니다.
우리 행복한 청년회가 성령충만하여 그 삶으로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공동체 안에서 겸손하며 순종하는 믿음이 증명된 청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청년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든든히 세워지는 것입니다!
또하나 아름다운 사실은 이때 뽑힌 일곱 집사의 이름이 전부 ‘헬라식 이름’이라는 점입니다.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헬라파 과부들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도록 히브리파가 다수였던 온 교회가 기쁨으로 용납하고 세워주었습니다. 결코 갈등을 야기하거나 그러지 마세요. 기득권을 내려놓고 성령 충만한 사람을 세워 기쁨으로 ‘함께’ 동역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는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성령충만한 사람을 세울 때 위기를 넘어 더 큰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및 적용: 우리는 성령충만한 교회입니다.]
[결론 및 적용: 우리는 성령충만한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행복한 청년회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를 주로 모신 성령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이 청년회 공동체를 함께 세워갈 거룩한 동역자로 부르셨습니다.
내가 맡은 사역이 찬양이든, 미디어 방송이든, 작은 행정이나 청소이든, 구제이든 심지어 순원이든 상관없습니다. 먼저 바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자에게 하나님은 귀한 일을 맡겨주십니다. 그리고 능히 감당할 힘과 지혜를 공급해 주십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우리는 맡은 직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잘하였다, 충성된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우리는 성령충만한자들로 바른 우선순위를 깨닫고, 역할을 존중하며, 함께 기쁨으로 연합할 때 교회가 어떻게 변화되는지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이 선포합니다. 본문 7절 말씀입니다. 다 함께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교회가 바른 질서 위에 세워지자, 인간적 갈등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생명의 복음이 힘 있게 뻗어나가자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졌고, 심지어 예수를 대적하던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까지도 복음 앞에 굴복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최우선순위에 두는 자들에게 성령 충만함을 주십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목적이 있으셔서 부르셨습니다. 결코 이 땅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길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행복한 청년 여러분! 전능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함께하자고 초청하십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결코 여러분들을 그냥 부르신 게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는 사역에 바로 네가 꼭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 교회는 복음으로 든든히 서가게 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우리의 다짐을 고백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나는 예수를 나의 주로 모신 /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 말씀과 기도를 우선순위로 삼고, / 맡겨주신 자리를 기쁨으로 섬기며 /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겠습니다!”
이 믿음의 고백대로 바른 우선순위를 지키며, 서로 기쁨으로 연합하여 행복한 청년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사랑하는 주의 청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함께 찬양합시다.
찬양- 충만 (1절 - 2절 - 후렴 1절 3절 - 후렴 2-3절)
합심 기도
“주님! 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하여 내 안에 예수로 가득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 은혜로 기쁘게 섬기며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겠습니다!”
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