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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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설교
첫 설교
제가 2015년에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제 모교인 제천제일교회에서 어린이부 간사로 사역을 처음 시작했는데요. 아직도 제가 그 때 처음으로 아이들 앞에서 설교했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제가 대인기피증 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 앞에 서는 것을 아주아주 꺼렸어요. 그러다보니까 아이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도 참 쉽지 않았는데요. 게다가 제 처음 설교는 설교를 준비하고 올라간 것도 아닙니다. 원래 설교를 하셔야하는 전도사님이 계신데 다른 부서 지원을 나갔다가 늦어서 못오고 계시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보니까 교사 선생님들이 저를 막 등떠밀어서 강단에 세워서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보라고 하신거예요.
정확히 어떤 본문으로 어떤 설교를 했는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그냥 되는대로 성경 말씀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잘 표현하고 식은 땀을 엄청나게 흘리면서 설교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저 멀리서 전도사님이 헐레벌떡 뛰어오시는 것을 보고 “자~ 이제 전도사님이 이어서 말씀 전해주실 때 큰 박수로 맞아주세요~! 박수!!”하고서 얼른 마이크를 전도사님한테 넘겨줬습니다. 그리고 저는 속이 너무너무 울렁거려서 화장실로 뛰어가서는 그날 아침에 먹었던 것을 다 토해내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제 첫 설교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니었어요. 그러다보니까 내가 신학교에 간 것이 맞나? 이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 맞나? 라고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대도 “하나님 저 이거 못해먹겠어요.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목사가 될 수 있겠어요?”라고 기도했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설교를 못하겠어요, 하기 싫어요 하니까 설교하는 자리에만 보내시더라구요. 저는 정말 하기 싫은데, 남들은 어릴 때 하고 싶어도 못서는 자리에 계속 세우시더라구요. 심지어 제가 22살 때 인천에서 사역할 때는 목사님이 아예 1부예배 자체를 맡겨버리시니까 꼼짝도 못하고 3년 내내 매 주일마다 어른 설교 한편, 아이들 설교 한 편 씩을 준비해서 나가고, 또 갑자기 담임목사님 어머니가 소천되시는 바람에 토요일 저녁 10시에 다음날 오후예배 설교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훈련을 받다보니까 이제는 설교에 대해서 여전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있지만, 처음에 너무나도 미숙했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말씀을 제가 전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전하려고 하시는 구나라는 것을 참 많이 깨닫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설교를 며칠 밤을 새워서 열심히 준비하면 오히려 반응이 시큰둥~ 할 때가 많고, 오히려 너무 바쁜 일정 때문에 준비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아예 설교문 없이 즉흥적으로 전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 오히려 은혜 받았다고 말씀해주시는 성도분들이 계신 것을 보면서 이 말씀 전하는 일은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구나 라는 것을 많이 알게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을 잘 못하는 자니이다
말을 잘 못하는 자니이다
오늘 본문말씀에 등장하는 모세 또한 저처럼 남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한다고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4장의 말씀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모세는 절대로 처음부터 하나님께 “네 주님,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난 이런거 못해요! 라고 하면서 변명하고 안할 수 있으면 안하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말씀 10절 말씀부터 보시면요 모세가 하나님께 말하죠 “오오 주님! 저는 원래부터 말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아무리 저에게 명령하신다고 한들, 지금도 보세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니 제가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사실 이 모세의 말에 굉장히 공감이 많이 됩니다. 원래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죠.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만 와도 가슴이 두근대요. 대체 누굴까, 무슨 일일까 전화를 받지도 않았는데 괜히 걱정부터 앞서기도 했습니다. 모세도 그래서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구해내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는 원래 말도 못하는데 제가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한 것입니다. 모세한테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1절에 보시면 “도대체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너처럼 말 못하는 자를 지었느냐? 못 듣는 사람, 맹인을 지었느냐? 바로 내가 지은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말씀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난 말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같이 말 못하는 사람, 또 농인이나 맹인과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뜻일까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장애를 가진 사람을 그렇게 되도록 만드셨다거나 혹은 모세를 말 못하게 만드셨다라고 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특히 11절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말 못하는자, 못 듣는 자, 맹인”이라고 하는 사람의 장애와 더불어서 “눈 밝은자”라고 하는 표현을 함께 씁니다. 눈 밝은 자라고 하면 장애나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축에 속하죠? 하나님께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눈 밝은 자를 함께 지으셨다라고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든지 없든지, 말을 할 수 있든지 없든지, 들을 수 있든지 없든지, 사람의 눈과 귀와 입을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은 즉, 말을 할 수 있다 없다의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입을 사용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12절 말씀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게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네가 말 못하는 것을 고쳐주겠다”가 아닙니다. 말 못하는 모세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그 모세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전히 모세는 말을 “못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일하시고 행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저도 사람 앞에서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사람들 앞에 나서서 무엇인가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심지어 저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라서 막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만큼 사람 만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의 연약한 부분을 억지로 막 바꿔서 외향적이고 말 많은 사람으로 바꾸지 않으시고, 연약한 그대로 사용하시는 것을 지금까지의 사역을 통해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못하는 걸 억지로 되게끔 하시는게 아닙니다. 못하고 연약한 모습 그대로 저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12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할렐루야! 연약하고 못하는 모습 그대로 저희를 기뻐하시고 또한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본문말씀 13절부터 보시면요, 모세가 하나님께 이제는 아주 대놓고 못하겠다고 합니다. 뭐라고 말하냐면요 “오 주님! 제발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주세요”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보낼만한 사람”이라고 하는 단어는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손”입니다. 이 손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 “행위” 혹은 “지배”를 뜻하기도 합니다. 손으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표현할 때 쓰는 것이죠. 그럼 모세가 말하는 “보낼 만한 자”라고 하는 것은 “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겁니다. 본인은 잘 못하니까,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대신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모세가 그저 변명하면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모세가 굉장히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한번 생각해보세요. 떨기나무가 불에 타고 있는데, 완전히 타고 있지는 않고 불만 붙어 있어요. 근데 그 나무에서 막 목소리가 나와서 “가서 내 백성을 구해라”라고 하면 무서워서라도 “네 알겠습니다”할 것 같아요. 근데 모세가 본인은 말도 잘 못한다고 했으면서 하나님한테는 따박따박 말대답하는데 오히려 용감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모세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모세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본인의 한계를 잘 알고 있어요. 말 못하는 사람한테 말 잘해야 하는 일을 시키니, 사실 안하는게 맞거든요.
사무엘하 6장에서는 블레셋에 빼앗긴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로 가지고 돌아오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원래 하나님의 법궤는 레위인들이 어깨에 짊어지고 이동해야 하는데 다윗이 새 수레에 궤를 실어서 옮기는 바람에 하나님의 궤를 싣고 가던 소들이 날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 궤가 떨어질랑 말랑 하니까 웃사라고 하는 사람이 이 궤를 붙들려고 딱 잡았는데, 하나님께서 이 웃사라는 사람을 치셔서 그가 결국에 죽고 맙니다.
다윗도 그렇고 이 웃사라는 사람도 그렇고, 의도는 좋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궤를 다시 돌려놓고, 또, 소들이 날뛰니까 궤가 쓰러지지 않도록 한 것도 분명히 좋은 의도였을 겁니다. 하지만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의 결과가 어떻습니까? 그 결과는 결코 좋은 쪽으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구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시키시니까 하면 잘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애초에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하라고 하시니 결과가 눈에 보이잖아요? 게다가 모세는 “안해요, 못해요”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써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한 것이죠.
저희가 때로는 이런 모세와 같은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뭐든지 안한다, 못한다 하는 것도 문제지만, 정말로 못하는 것을 가지고 억지로 밀어붙이려고 하다보면, 화를 당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교회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봤어요. 열정은 많이 있는데, 의지도 있는데, 또 본인이 더 잘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는데 못하는 일을 너무 하려다가 오히려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제천제일에 있을 때, 한 원로장로님이 꼭 매년 어린이부 교사로 아이들을 섬겨주셨어요. 사실 아이들을 돌보는게 쉽지 않은데, 그 연세에 아이들을 어떻게든 섬겨주시려고 매 주일 아침마다 교육관에 오셔서 아이들을 같이 봐주셨거든요.
어느날은 이 장로님께서 아이들에게 어떤 걸 가르치시나 하고 공과공부 시간에 찾아가 봤는데 아니 말씀을 가르치시는게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이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해서만 열심히 이야기하고 계시더라구요. 물론 본인의 삶이나 살아온 세월에 따라서 이런저런 정치인에 대해서 훌륭하다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해야하는 시간에 예수님 얘기가 아니라 정치인 얘기를 하는 것이 과연 좋은 신앙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처럼 모세가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소서”라고 하나님께 구한 것은 그냥 “나 말고 저 사람 시키세요”라고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셔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구함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불러주시면 더 좋은 일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습니까?
본문말씀 13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할렐루야! 우리가 열정이나 의지만 가지고 무대뽀로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권면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고자 하는 일에 더욱 정진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활용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네 입을 대신할 것이라
네 입을 대신할 것이라
14절 말씀 이후를 보시면요, 하나님께서 정말로 모세가 구하는 것,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소서”라고 하는 것에 응해주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계속 못한다고 하니까 이번에 화를 내시면서 “너는 말 잘하는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너가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면, 내가 아론의 입과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모세가 구하는 것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끈질기게 하나님께 “제가 말 못하는거 아시지 않습니까, 못하는 저 말고 잘 하는 사람을 시켜주십시오”라고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결국 모세가 직접 말하는게 아니라 아론으로 하여금 말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다이렉트로 아론에게 시키시는게 아니라 모세를 통해서 아론에게 말하게 하신다는 것이죠. 그래서 16절 말씀에 보시면 “아론이 네 입을 대신할 것이고, 너는 아론에게 하나님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모세가 할 수 있는 일, 즉 아론에게 할 말을 건네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고, 아론은 마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했던 것처럼 모세의 말을 받아서 애굽의 바로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번 아론과 함께 하지 않는 모세를 상상해봅시다. 애굽의 왕에게 가서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시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하는데, 모세가 가서 “저,저,저, 그, 백…성들…”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왕이 듣지도 못하고 “엥? 뭐라고?”하고 말았을 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모세는 아론에게 전달하고, 아론이 애굽 왕에게 전달하는 이 과정 덕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일이 진행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모세가 하나님께 구한것, “저 말고 다른 이를 보내소서”라고 하는 구함은 겉으로 보기에는 변명만 하고 무서워서 도망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모세가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더 잘 이루게끔 하기 위한 구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설교 초반에 말씀드렸죠? 저도 말을 잘 못해서 기도할 때 “제발 저 설교좀 안하게 해주세요”라고 수차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는 오히려 저를 더 시키셔서 훈련을 시키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만약에 “저 못하겠어요”라고 기도하고 구하지도 않았으면, 설교를 지금까지도 잘 못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나 못하겠어요”라고 하는 모세의 구함은 부끄러운 구함이 아닙니다. 저희도 못하는 일은 못하겠다고 솔직하게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만 못하겠다고 다 던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못하니까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주시던지, 아니면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해낼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달라고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말씀 16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할렐루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아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더 잘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구하며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연약한 모습 그대로 사용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저희가 잘하고 못하고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모세가 말을 못하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을 빌려 말씀하신다는 것처럼, 저희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구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열정과 의지가 있다고 무슨 일이든 다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의도가 있더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그렇기에 하면 안되는 일, 정말 할 수 없는 일들은 멈출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못하겠다고 말씀드리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말을 잘하는 아론을 붙여주셨습니다. 이처럼 저희가 연약한 모습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더 잘하는 사람을 보내주시던지 아니면 저희를 훈련시켜주시던지 하십니다. 다만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것보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임을 말하고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연약한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고 또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지혜롭게 분별하며, 연약한 모습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아뢰고 또한 구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