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내 것이 아닙니다
Notes
Transcript
[도입]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를 아십니까. 4세기 북아프리카, 모니카는 그리스도인이었지만 그의 남편 파트리키우스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성미가 불같고, 아내에게 신실하지 못한 남편이었습니다. 주위의 다른 아내들은 남편에게 맞아 얼굴에 멍이 들곤 했는데, 사람들이 모니카에게 비결을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남편의 화가 끓어오를 때 맞서지 않고, 잠잠히 기다렸습니다." 모니카는 다그치지 않았습니다. 오래 참았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신실한 삶 앞에서, 평생 복음을 거부하던 남편 파트리키우스는 세상을 떠나기 약 일 년 전 마침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아내의 한결같은 사랑이 한 영혼을 주님께로 돌이킨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7장이 그리는 그림입니다.
[본문 해석]
고린도 교회는 두 가지 극단 사이에 있었습니다. 한쪽은 "무엇이든 다 괜찮다"는 방종이었고, 다른 한쪽은 정반대로 "거룩하려면 부부 관계조차 끊어야 한다"는 금욕주의였습니다. 바울은 이 두 번째 오류를 바로잡습니다.
3절과 4절을 보십시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여기 "의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빚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내가 누릴 권리가 아니라, 서로에게 진 빚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한마디가 나옵니다 —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남편의 것이요, 아내의 것이다. 철저히 가부장적이던 그 시대에, 바울은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똑같이 이 말을 합니다.
또 결혼도 독신도 하나님이 주신 "은사"라고 말합니다(7절). 어느 한쪽이 더 거룩한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부르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부터, 믿지 않는 배우자와 사는 성도에게 말합니다. 떠나지 말라. 머물러 있으라. 당신을 통해 그 가정이 거룩하게 구별되며(14절), 당신은 배우자를 구원할지도 모른다는 소망 가운데 화평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요(15-16절).
[핵심 메시지]
성도 여러분, 본문 전체를 꿰뚫는 한 문장은 이것입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받는 자리가 아니라, 드리는 자리입니다."
[적용]
첫째, 우리 시대의 결혼관을 돌아봅시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작년에 혼인이 8% 넘게 늘고 출산율도 9년 만에 반등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청년들 사이에서 "결혼은 안 하는 게 낫다"는 인식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20대에서 19%까지 올라왔습니다. 이유를 물으면 "독신의 자유와 홀가분함을 잃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합니다. 오늘의 결혼관은 한마디로 손익계산입니다. 내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그러나 이 계산법은 결혼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터와 학교, 모든 관계를 "나에게 이득이 되는가"로 저울질하게 만듭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아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이번 한 주, 늘 손익을 따지던 한 사람에게 계산 없이 먼저 내어 주는 연습을 시작합시다.
[결론 — 복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는 못 합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으신 한 분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 하시며, 자기 몸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드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모니카의 인내 뒤에는 바로 이 십자가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시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내어 주신 그분의 사랑이, 오늘 우리를 드리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