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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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명자들

본문: 사도행전 18:18-23절

찬송: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몸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마무리하며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그 여정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고린도에서의 안정과 기득권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바울과 함께 배에 올랐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구별된 결단을 놓고 함께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삶의 목적으로 삼은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결단 이후 에베소에 상륙한 사명자들인 바울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다시 한번 내려놓고 헌신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명자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머물라 하시는 곳에 머물고 떠나라 하시는 곳에서 떠나는 사람입니다. 겐그레아 항구에서 머리를 깎으며 서원을 마무리했던 바울의 심장은 오직 영혼 구원이라는 사명으로 고동치고 있었습니다. 그 뜨거운 사명의 불꽃이 에베소라는 거대한 도시에 어떻게 옮겨붙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을 내어드린 이들의 발자취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마음을 품은 사명자

바울 일행이 고린도를 떠나 수리아로 향하던 중 잠시 기항한 곳은 당시 아시아의 심장부였던 에베소였습니다. 19b절을 보면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하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했습니다. 여기서 '변론하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논쟁했다는 뜻이 아니라, 죄와 죽음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강론하고 설교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에게 에베소(로마 제국의 4대 도시 중 한 곳)는 그저 거쳐 가는 정거장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아데미 신전(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길이 130미터, 기둥 127개, AD 263년에 파괴됨)의 웅장함보다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에베소 사람들의 가련하고 측은한 영혼이 먼저 보였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20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은 바울에게 더 오래 있기를 청했습니다. 사역자에게 있어 이보다 더 달콤한 유혹은 없습니다. 복음의 반응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자신을 간절히 원할 때, 그곳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적 성공보다 하나님의 뜻과 전체적인 선교의 여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21절)는 약속만을 남긴 채 자신을 파송했던 수리아 안디옥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울이 에베소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3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다니며 제자들을 굳건하게 한 뒤, 다시 에베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눈물로 밤낮 쉬지 않고 영혼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잠시 머물다 떠났던 그 짧은 만남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의 생명을 다해 그 교회를 섬겼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명자의 모습입니다. 사명자는 사람의 인기에 취해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사로잡혀 가장 필요한 때에 가장 낮은 자세로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구약의 느헤미야를 떠올리게 합니다. 느헤미야는 바사 제국의 아닥사스다 왕 곁에서 술 관원이라는 높은 직책을 맡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고통받는 동족의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의 안락한 삶을 미련 없이 내려놓았습니다. 왕의 총애를 뒤로하고 험난한 유다 땅으로 달려가 성벽을 재건하고 백성들의 신앙을 개혁하는 일에 자신을 온전히 던졌습니다. 바울과 느헤미야처럼 우리 역시 나의 안위보다 무너진 영혼과 교회를 세우는 일에 마음의 중심을 두는 진정한 사명자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는 충성된 사명자

본문 19절 상반절에는 우리를 한참 동안 멈춰 서게 만드는 사명자들의 소리 없는 고백이 나옵니다.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라는 기록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바울과 동행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의미합니다. 이 문장 속에 담긴 무게감은 실로 엄청납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이들 부부는 로마에서 쫓겨나 고린도에 겨우 정착하여 이제 막 천막 사업으로 경제적 안정을 이룬 상태였습니다. 바울을 따라 고린도를 떠난 것만으로도 대단한 결단이었는데, 바울은 이제 에베소에 도착하자마자 이들 부부에게 그곳에 남으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에베소는 이들 부부에게 연고도 없는 낯선 땅이었습니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영적 스승 바울은 떠나가 버리고, 이제는 자신들끼리 생계를 책임지며 에베소 최초의 성도들을 돌보고 교회의 기틀을 닦아야 하는 막중한 사명이 그들 앞에 놓인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개척 자금을 주지도 않았고, 화려한 보장을 해주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남아서 교회를 지키라"는 사명 하나만을 맡겼을 뿐입니다. 그러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이 부당해 보일 수 있는 요청에 기꺼이 순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사느냐보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느냐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바울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스스로 천막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며 에베소 교회의 든든한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훗날 바울이 다시 에베소에 왔을 때 사역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들 부부가 미리 닦아 놓은 헌신의 토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주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사명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 소리 없는 순종이 가져온 결과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바울이 떠난 뒤 에베소 교회에 아볼로라는 인물이 나타납니다. 그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했지만, 예수에 관한 도를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때 에베소에 남아 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쳤습니다. 평범한 부부 사명자의 양육을 받은 아볼로에베소 교회의 든든한 지도자로 세워졌을 뿐 아니라, 이후 고린도 교회를 섬기기 위해 파송되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3장 6절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에베소에 남겨진 브리스길라 부부의 헌신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중앙교회 성도님들의 삶도 이와 같기를 소망합니다. 농촌의 척박한 삶의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잘 압니다. 육신의 고단함과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여 때로는 주님이 맡겨주신 직분과 사명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 자신을 내려놓고 교회를 위해 작은 헌신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 눈물을 기억하시고 우리를 통해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에베소에 남겨졌을 때 그것은 버려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장 거룩한 역사를 위한 예비하심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의 현장임을 믿고 끝까지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오늘 본문은 바울이 2차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가 보고한 뒤, 다시 3차 여행을 떠나 제자들을 굳건하게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사명자의 삶은 멈춤이 없습니다.영혼을 살리기 위해 달려가고, 세워진 교회를 굳게 하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순종의 연속입니다. 바울의 열정과 브리스길라 부부의 묵묵한 헌신이 만났을 때, 에베소라는 불모지에는 찬란한 복음의 꽃이 피어났습니다.
사명자의 삶은 바울과 브리스길라 부부처럼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나의 계획을 수정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라면 나의 안정과 편안함을 기꺼이 포기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얻을까"를 고민하는 인생에서 "내가 어떻게 쓰임 받을까"를 기도하는 인생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여전히 세상은 혼탁하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험난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에베소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과 막막함이 우리를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명의 자리를 지킬 때, 먼저 가시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합당한 은혜와 동역자를 붙여주실 것입니다. 일상의 작은 자리에서부터 영혼을 사랑하고 교회를 아끼는 마음으로 자신을 드리는 사명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거룩하고 귀한 일에 귀히 쓰임받고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삶을 사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에베소의 척박한 땅에 복음의 씨앗을 심기 위해 자신의 계획과 안위를 내려놓았던 바울과 브리스길라 부부의 헌신을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진정한 사명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의 열매가 나타날 때 그 자리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고 자신의 성공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웠던 바울처럼,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에베소에 홀로 남겨졌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순종을 기억합니다. 낯선 땅 막막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이 자리를 지켰을 때, 아볼로라는 위대한 믿음의 거목이 길러졌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농촌의 고단한 삶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님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혹은 척박한 일터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이 아니라 견뎌내야 할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왜 나만 이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 하는 외로움과 막막함이 우리의 마음을 짓누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자리가 결코 버려진 자리가 아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 땅의 무너진 영혼들을 살리고, 아볼로와 같은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시기 위해 우리를 이곳에 '머물게' 하셨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의 작은 눈물과 이름 없는 헌신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밑거름이 되고 있음을 기억하며 다시금 일어설 힘을 얻게 하옵소서.
느헤미야처럼 영혼을 아끼는 마음과 공동체를 위해 내어주는 뜨거운 사랑을 부어 주십시오. 날마다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시고, "무엇을 얻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쓰임 받을까"를 고민하는 복된 인생으로 변화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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