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하는 자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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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Ἰδὼν δὲ τοὺς ὄχλους ἀνέβη εἰς τὸ ὄρος,

καὶ καθίσαντος αὐτοῦ προσῆλθαν °αὐτῷ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καὶ ἀνοίξας τὸ στόμα αὐτοῦ ἐδίδασκεν αὐτοὺς λέγων·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μακάριοι οἱ πενθοῦντες , ὅτι αὐτοὶ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πραεῖς, ὅτι αὐτοὶ κληρονομήσουσιν τὴν γῆν.

μακάριοι οἱ πεινῶντες καὶ διψῶντες τὴν δικαιοσύνην,

ὅτι αὐτοὶ χορτασ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ἐλεήμονες, ὅτι αὐτοὶ ἐλε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καθαροὶ τῇ καρδίᾳ, ὅτι αὐτοὶ τὸν θεὸν ὄψ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εἰρηνοποιοί, ὅτι °αὐτοὶ υἱοὶ θεοῦ κλ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δεδιωγμένοι ἕνεκεν δικαιοσύνης,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μακάριοί ἐστε ὅταν ⸉ὀνειδίσωσιν ὑμᾶς καὶ διώξωσιν καὶ

εἴπωσιν πᾶν πονηρὸν καθʼ ὑμῶν ψευδόμενοι ἕνεκεν ἐμοῦ.

χαίρετε καὶ ἀγαλλιᾶσθε,

ὅτι ὁ μισθὸς ὑμῶν πολὺς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οὕτως γὰρ ἐδίωξαν τοὺς προφήτας τοὺς πρὸ ὑμῶν.

그리고 무리를 보시면서, 예수께서는 산속으로 올라가셨고,
앉으셨을 때 그분의 제자들이 나아왔다.
그리고 그분의 입을 열어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이르시기를
복이 있도다, 그 심령에 파산 선고 받은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애통하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온유한 자들이여.
왜나하면 그들이 그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그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긍흘히 여기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긍율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그 마음에 있어서 청결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그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평화를 만드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아 오고 있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대항하여
모든 악한 것들을 할 때 복이 있도다, 너희들이여. 기뻐하고 즐지위하라.
왜냐하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급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너회 전에 있던 그 선지자들도 그렇게 박해하였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1-12절, KNJ 사역)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03_애통하는 자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JSwZ58FCAX0
Transcript:
(00:01)

제 3장 애통하는 자

들어가는 말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은혜 주시기를 고대하며 기다립니다. 시편 40편 1절 하나님 만나기를 사모합니다. 그때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죄를 발견합니다. 그것이 자기 책임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사랑은 크고 위대하지만 죄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습니다. 이사야 59장 2절. 과목을 깨뜨려 하늘 자원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스스로 죄를 짓지만 자기가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죄에서 해방될 용서와 죄짓지 않을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울 수밖에 없습니다.
(01:02)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애통합니다.

죄 때문에 애통함.

슬퍼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누구나 인생길에서 많은 눈물을 흘리고 고통을 겪기 때문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 빼프고 피할 수 없었던 실패의 쓰랄이기도 합니다. 산다는 것이 수고와 슬픔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시편 90편 10절. 여기서 말씀하시는 애통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세속적인 이유가 아니라 신앙적인 이유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적인 연약함 때문에 울기 시작했을지라도 그 울음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이유로 시작했으나 결국 신령한 이후로 울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애통하는 것입니다.
(01:58) 애통하는 이유는 죄와 하나님 나라 때문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4절 첫째로 죄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 불결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죄악 덩어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불결함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무한한 격차에서 오는 슬픔을 느낍니다.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마음다에 용서를 빌게 됩니다. 이때 아프게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사야 6장 5절 죄로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교재 속에 있기를 원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또한 이웃의 죄 때문에 슬피옵니다.
(02:53) 은둔자의 교회의 박사로 불리던 초대교회의 교부 케로니모스는 말했습니다. 여기서 애통하는 것은 자연의 공통된 법칙을 따라 죽은 자들을 위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영적 죽음의 죄와 허물을 위해 우는 것이다. 바울은 회개하지 않는 교인들 때문에 울음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21절. 이것은 특별한 슬픔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얼마나 큰 슬픔이 있으면 두려움까지 느꼈을까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슬픔의 심오한 깊이를 보여주지 않습니까? 경건한 에스라는 성전 앞에 엎드린 채 울었습니다. 에스라 10장 1절. 왜 성전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그 앞에서 울어야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03:55) 그가 울며 죄를 자복했을 때 그 자신과 이스라엘의 죄는 나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죄를 자기 죄로 여겨 슬피 울었던 것입니다. 백성을 두고 자기를 위하여 자기를 두고 백성을 위하여 슬피 울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슬픔이 아닙니다. 특별한 비참의 서름입니다. 이상한 비통입니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픈 슬픔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절망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매달리게 하는 절망감입니다. 자신에게 절망하고 오직 하나님께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예레미야가 그렇게 슬피 울었습니다. 밤에 통곡하였습니다.
(04:47) 다한 고통이 그를 압도했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그의 뺨을 적시었습니다. 예레미야가 1장 2절. 그의 슬픔은 눈물이 되어 강물처럼 흘렀습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너희에게는 관계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예레미야 애가 1장 12절. 이로 말미암아 내가 우니 내 눈의 눈물이 물같이 흘러내림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생명을 회복시켜줄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예레미야가 1장 16절. 그가 왜 그렇게 슬피 애통했을까요? 죄를 해결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형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잃어버린 하나님 사랑 때문에 슬피 울었던 것입니다.
(05:44) 경건한 슬픔에 마음이 찢어질 때 울부짖는 기도는 영혼을 뒤덮은 어둠에 내려치는 벼락이 됩니다. 하늘문은 사람의 제조와 기술로 열리지 않습니다. 가난한 심령으로 애통하는 기도로 열립니다. 뿌리 깊은 죄는 기털 같은 기도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도울 같은 마음이 어찌 그런 기도에 녹아내릴 수 있겠습니까? 죄는 인간이 짓고 용서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죄를 깨달은 자는 애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눈물이 가득찬 사람들이고 애통하는 사람들은 그 눈물다리가 터져버린 사람들입니다. 누군가 내게 목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마음에 눈물이 그렁크렁한 것.
(06:39) 참 신자는 그 마음이 그리스도의 핏방울에 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흘리신 눈물 방울 끝에 매달려 있는 존재입니다. 죄 때문에 애통할 때 이런 사실을 깨닫습니다. 애통하는 사람은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는 자, 깨달은 자입니다. 많은 사람이 은혜 안에 살지 못합니다.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회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크나 큰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바세바를 범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1장 4절. 그 일을 감추고자 충성스러운 신하였 우리를 죽게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1장 17절. 선지자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 소문은 온 나라에 퍼졌습니다. 하나님 만나기 위해 제사를 드려 보았지만 소용이
(07:42) 없었습니다. 시편 51편 16절 천천의 순양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으로 죄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가 6장 7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정의와 인자 겸손이었느니 범죄하자 그렇게 살 수 없었습니다.이가 6장 8절. 범죄한 다윗은 이미 그런 사람 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매달렸으니 밤마다 탄식함으로 눈물로 침상을 띄우고 열을 적시며 회개하였습니다. 시편 6편 6절 7절. 9일에 그는 범죄보다 회개로 소문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습니까?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애통하였습니다. 용서를 구하며 울었습니다. 죄짓고 떠난 건 자신이었지만 스스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08:45) 돌아와 주시도록 애통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시편 6편 3, 4절. 그때 그는 하늘에 가득찬 영광을 본 철학자도 아니었고 시편 57편 10절 수많은 전쟁터에서 승리한 장수도 아니었습니다. 사무엘하 8장 6절 14절 뛰놀며 노래하는 여인들의 칭송을 받던 자도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상 18장 7절. 한 나라를 통치하던 임금도 아니었으며 사망의 골짜기에서 상처받아 찍힌 채 죽어가고 있는 한 마리 어린 양에 불과하였습니다. 신자가 자신의 죄 때문에 울고 교회가 세상의 죄를 대신에 애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오를 것입니다.
(09:43) 신자들은 예배의 감격에 빠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슴을 찢는 애통이 있습니까? 회개가 있습니까? 왜 오늘날은 그렇게 통곡할 수 없습니까? 복음은 애통하는 신자들의 눈물을 타고 세상에 흘러갑니다. 눈물 쏟는 교회만이 순교의 피를 흘려보낼 수 있으니 그 피의 강물을 타고 예수 생명이 흐릅니다. 그 핏강이 광야 같은 세상을 가로지를 때 하나님을 거역하던 세상은 순종하는 교회로 변합니다.

하나님 나라 때문에 애통함.

둘째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 나라 때문입니다. 팔복은 하나님 나라와 관련됩니다. 고난도 기쁨도 그러합니다.
(10:36) 하나님 나라 때문에 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이미 세상에 임했으나 아직 실현되지 않은 하나님의 고통 통치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0절.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셨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슬퍼할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생애는 애통하는 슬픔과 기도의 연대였습니다. 연대기였습니다. 우리 죄와 하나님 나라 때문에 울면서 사셨습니다. 신약에는 우셨다라는 표현이 3여나 나옵니다. 누가복음 19장 41절, 요한복음 11장 35절, 히브리서 5장 7절. 현실이 하나님 뜻과 같지 않았기에 오셨습니다. 때로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11:25)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5장 7절. 그것은 십자가를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죄로 인해 멸망하는 인류 때문에 부르짖는 통곡이었습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한 애통이었습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심한 통곡과 눈물로 그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가난한 심령 핏빛 서름으로 우리 위해 울어 주셨습니다. 존 오는이 구절을 자신의 히브리서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주님의 통곡은 비록 복음서 안에서는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으나 그분도 짊어지셔야 했던 우리 인간 본성의 연약함들 중 하나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눈물을
(12:28) 흘리시더라. 요한복음 11장 35절. 주님은 당신의 슬픔을 그렇게 표현하셨다. 그리고 그때 크나 큰 고통, 갈등과 슬픔 속에 계셨으니이는 그것들이 죽음에 이르는 슬픔이 되기까지 그분의 영혼에 다른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분이 하나님께 매달리실 때 기도와 함께 눈물을 쏟으셨다고 언급된 바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받기를 바라셨습니다. 그 나라가 임하기를 사모하셨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갈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9절부터 10절.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애통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이 통곡을 아는 것입니다.
(13:19) 믿는 자는 그분의 눈물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시인도 그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로 내 눈물이 시내물같이 흐르나이다. 시편 119편 136절. 시인은 애통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이 울었으면 눈물이 시내물처럼 흘렀을까요? 자신의 불행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 때문에 업수의 여김을 받는 하나님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무엇이 그의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그의 소원은 소박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세상에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기에 통국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14:08) 우리에게 이런 애통이 있습니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까? 가슴이는 통곡이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그리워하는 자가 애통합니다. 세상은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스스로 울지 못합니다. 그러니 대신 울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아니면 누가 통해 주겠습니까? 그럴 수 없다면 우리가 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애통하는 자의 행복.

애통하는 자들은 복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이유로 애통하였으니 신령한 방식으로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애통하는 자의 행복입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며 마태복음 5장 4절.
(15:00) 그러면 애통하는 자는 어떤 방식으로 위로를 받을까요?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심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사람들 곁에 함께 있어 주심으로 위로하십니다. 위로는 삼일체 하나님 중 성령의 고유한 사역입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 성부는 사랑을 성자는 은혜를 성령은 위로를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십니다. 절친 것은 나의 사정에 공감하거나 동정할 수 있습니다.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위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위로입니다. 애통하는 사람은 하늘 위로를 받습니다. 사랑의 성품을 맛보게 하십니다. 시편 34편 8절.
(15:53) 그 사랑의 힘으로 현실을 감당하며 살게 하십니다. 그들은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더 큰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그날에 애통하던 자들은 완전한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더 이상 아파하지도 눈물 흘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자신은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장 4절. 우리는 강하지는 않습니다. 강함과 약함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기쁘고 즐거운 때가 있으면 슬프고스러운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죄 때문에 아프고 하나님 나라 때문에 애통하게 됩니다.
(16:45) 하나님은 이런 사람과 함께하셔서 위로하십니다. 바울은 뛰어난 신학자였고 놀라운 은혜의 사람이었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던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9절. 그러나 그도 두려워 떨던 때가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3절. 살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때가 있었습니다. 고린도서 1장 8절. 그때 그를 살리신 것은 하나님의 위로였습니다. 찬송하리로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고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17:38)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린도서 1장 3 절부터 5절. 마음이 괴로울 때는 교회를 찾습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진 채 예배당에 들어옵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어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기도하는 것밖에 길이 없기에 마음을 쏟아놓으며 아무도 없는 예배다. 의자에 앉자마자 눈물이 쏟아집니다. 우는 것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어린아이처럼 흔느길 뿐입니다. 그런데 어느덧 기도가 깊어집니다. 멀리 계시던 하나님이 가깝게 느껴지고 낯설던 교재가 친밀하게 됩니다. 비로소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게 됩니다.
(18:33) 어떻게 큰 은혜를 주셔서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는지를 회상하며 가슴 아파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애통하게 됩니다. 받은 은혜에 가슴 아파하고 지은 죄에 슬퍼하게 되니이 둘을 겹친 비해에 우리 마음은 야위어 갑니다. 자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권난 받으셨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에 올 때 가지고 온 기도 제목은 잊어버립니다. 애통합니다. 자신의 죄와이 세상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 나라 때문에 옵니다. 비탄의 눈물로 앉았던 자리가 흠뻑쳤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누가복음 15장 31절. 같이 있어 주신다는 사실만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19:24) 하나님의 통하는 마음을 얼루만져 주십니다. 눈물 속에서 새 힘이 생깁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 18편 1절. 슬피 울어도 상황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감당할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위로 때문입니다. 애통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당신의 품 안에서 오는 사람들 마음 안에서 함께 울어 주십니다. 그들을 위로하시며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 찢어진 마음으로 통곡한 것이 언제입니까? 우리게 통함이 있습니까? 교회를 위한 흔느낌이 있습니까?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눈물 보다리가 있습니까? 마음을 탁 풀어서 한껏 울게 할 슬픔이 있습니까? 천국에서도 그 이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20:20)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단장의 경험이었다.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마음이 미워진다. 1893년 3월일밤 연약한 한 인간으로서의 내 삶이 산산이 부서져 다시는 고침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분으로 좋겠다. 일평생 인도 선교를 위해 헌신한 북 아일랜드의 선교사 에이미 카마이클이 남긴 그림.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첫 선교지 중국으로 떠나던 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약 없는 이별은 52년에 세월이 지난 후에도 큰 아픔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 그러나 그녀는 보이지 않는 영혼을 누렸습니다. 84세의 일기로 인도 땅에 잠들 때까지 그녀는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와 세심한 돌보심 가운데 살았습니다.

맺는 말.

(21:20)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은 철가슴 돌마음 경연 대회를 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 오래 다닌 사람들이 입상권에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우리를 보며 그리스도께서는 애통하셨는데 말입니다. 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언제부턴가 마음이 부요해졌습니다. 은혜에서 멀어지자 죄와 가까워졌습니다. 경건한 슬픔은 사라지고 새속의 기쁨이 마음을 차지했습니다. 옛날처럼 세상의 성공에 웃고 실패에 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자기 위로를 받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두 번씩 펑펑 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고 울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통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영혼은 얼마나 아름다워질까요? 하나님 앞에서 울지 않기에 세상 앞에서 오는 것입니다.
(22:19) 눈물이 없는 신앙생활은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해 애통해야 할까요?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에 있는 것들을 갖지 못해서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들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빌립보서 3장 8절.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죄 때문에 울고 하나님 나라 때문에 애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첫 회심의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마음이 가난했습니다. 죄 때문에 울었고 하나님 나라 때문에 통하였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드리는 심한 통곡과 눈물의 기도는 교회를 덮고 있는 어두운 영의 장막을 찢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비처럼 내리고 우리 마음은 하늘 행복으로 가득 찾습니다.
(23:10) 약속한 적 없었지만 우리는 토요일밤마다 모였습니다. 함께 섬기는 선생님들은 나와 같이 아이들의 이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죄와 회심하지 않은 영혼들을 위해 울었습니다. 울음소리는 예배당에 가득해 애통한 마음에 피멍들도록 가슴을 쳤습니다. 그때 우리 마음 모두에게 말씀하시는 듯하였습니다.우지 마라.우지 마라. 내가 너희의 마음을 안다. 긴 세월이 흘렀는데 그때 통하던 기억은 지금도 눈물이 샘솟듯하게 합니다. 아 조국 교회가 다시 그 눈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애통하는 자 한 눈에 보는 3장
1. 들어가는 말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 뵙기를 사모한다.
그때 하나님과의 관계를 맡고 있는 죄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은 죄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러기에 애통하지 않을 수 없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4절.
2. 애통하는 이유.
팔복의 사람들이 애통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로 자신의 죄와 이웃의 죄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이웃의 죄는 나뉘지 않는다.
자신의 불결과 주님의 거룩함 앞에서 무한한 격차를 느끼게 된다.
그러면 마음이 물같이 쏟아져 애통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과의 화목을 돌이키는 길은 회개밖에 없다.
당신에게는 회개의 눈물이 있는지 살펴보라.
둘째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통치를 그리워한다.
그분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갈망한다.
그렇지 못한 현실을 마주할 때 애통할 수밖에 없다.
3. 애통하는 자의 행복.
애통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며 마태복음 5장 4절
위로를 받다라는 말은 옆에서 부르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들과 함께하심으로 위로하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그분의 사랑을 맛본다.
사랑은 하늘의 힘이다.
그것으로 현실을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더욱이 예수 재림의 날 온전한 위로가 주어질 것이다.
더는 아프지 않을 것이며 눈물은 흐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니라.
4. 맺는 말.
우리 안팎에 애통할 거리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 앞에서 통하는 신앙을 회복하라.
눈물 없는 신앙 생활은 영적으로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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