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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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
오늘은 주기도문 강해 세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듣는 분이 누구이신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분은 충분히 우리의 기도에 응답할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그 능력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의 삶을 선하게 다스리시는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배웠어요.
(슬라이드1) 오늘은 그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에 대해서, 말씀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보려고 합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슬라이드2) 오늘 본문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십시오.”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이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우리는 모두 이름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요?(질문) 우리 모두는 이름에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름을 지어준 존재는, ‘이 이름처럼 살거라.’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저의 자녀를 예로 들어볼까요? 지아의 이름은 한자로 ‘알 지’, ‘언덕 아’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지우는 ‘알 지’, ‘벗 우’를 사용해요. 제가 아이들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빠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이름을 어떻게 지어주면 좋을까 묵상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모던워십곡 말고, 제가 옛날부터 즐겨부르던 CCM이 하나 생각났습니다. 한웅재 목사님의 ‘소원’이라는 곡이에요. 그 곡의 후렴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 길만 비추기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면.”
그래서 저는, 누구나 편안하게 다가와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알 수 있는 통로가 되기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큰 아이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알려주는 언덕이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세상과 친구가 되어서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알려주라는 마음으로 둘째 아이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유대인들, 히브리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이름’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슬라이드3)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에요. 아담과 하와는 그 이름 자체로 ‘사람’, ‘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언약을 갱신하면서, 이제는 그가 모든 나라의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세요. 하나님도 마리아에게 아들의 탄생을 말씀하실 때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지정해주시죠.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히브리어로 ‘구원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여호수아와 예수는 같은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를 규정하고, 그 사람이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는지,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등을 알려줍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에요. 하나님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슬라이드4)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염소를 발견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도나이 이레(יְהוָ֣ה׀ יִרְאֶ֑ה). 아브라함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주께서 준비하셨다!
(슬라이드5) 모세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도나이 닛시(יְהוָ֥ה׀ נִסִּֽי). 주께서 깃발이시다. 전쟁할 때 가장 앞서는 게 깃발이잖아요? 주께서 앞장 서서 전쟁을 이끌고 승리하게 하신다는 고백입니다. 모세에게는 그것이 그가 경험한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삶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때, 하나님을 지식으로 아는 것을 넘어 경험적으로 알게 되고, 하나님이 ‘정말로’ 어떤 분인지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가 알기 위해서는, 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삭에게 하나님은 아빠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개인적으로 자기 삶에 역사하는 하나님을 경험했을 때,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으로 고백되었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었어요. 그런데 그 역시 개인적으로 자기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고,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고백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슬라이드6)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입니까? 엄마의 하나님인가요? 아빠의 하나님, 할아버지 할머니의 하나님인가요? 부모님의 신앙이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조부모의 신앙이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어요. 교역자의 신앙이 여러분을 당연히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 예배의 자리에 나와있다는 것도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각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나와 상관이 있는 하나님’으로 고백되는 순간이고, 그것이 바로 ‘나의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모두가 ‘나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존재로 세워져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거룩히 여김 받다?
거룩히 여김 받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는 고백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십계명의 제 3계명을 알아야 합니다.(슬라이드7)
너는 네 하나님 야웨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야웨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쉽게 풀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쉽게 말해서, 원어의 의미를 살리면,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십시오.”라는 기도를 우리의 언어로 풀어서 기도하면,
(슬라이드8)“하나님의 이름이 존중 받으십시오.”라는 말과 같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할 수 있을까요?
(슬라이드9) 첫 번째는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가 있겠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너무 그 사람이랑 사귀고 싶어. 그래서 그를, 또는 그녀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너랑 교제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예를 들어 봅시다. 시험이 다가오면 이렇게 기도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나님, 제가 찍기를 할 때 정답을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같은 기도를 부모님들이 하는 경우도 있죠?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시고, 뿌린대로 거두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이에요. 차라리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하십시오. 그것이 성경적인 기도입니다.
(슬라이드10)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는 두 번째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도나이 이레,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는 고백은, 하나님이 나의 필요에 대해 권위를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죠. 아도나이 닛시, 하나님께서 깃발이시라는 고백은, 나의 삶에 닥쳐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재정의 주인이라고 고백해요. 그런데 정작 돈을 쓸 때는 내가 쓰고 싶은 곳에 쓰고, 정직하게 돈을 관리하지 않아요.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 간다고 입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정작 진로를 정하고 학교를 결정할 때는 하나님을 배제하고 결정해요.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존중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부모님, 교회의 어른들,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존중하잖아요. 그렇다면 그분들보다 더 완전하신 분을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머리로 하나님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과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도하십시오. 저는 그것이 수련회 같은 특정한 시간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읽는 말씀을 통해, 매주 있는 중고등부 예배를 통해, 부모님과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나에게’ 하나님이 정말로 어떤 분인지 알게 되고,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또 하나, 하나님을 존중하십시오. 주께서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고, 때로는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말은 아니에요. 친구 같이 허물 없이 지내는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선’이라는 것이 있죠?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좋은 아버지이시지만,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우리와는 급이 다른 존재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는 목자와 같은 분이시지만, 또한 그분은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을 다스리기 원하시는 주권자가 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투표해서 뽑은 시장이나 국회의원, 대통령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나의 하나님’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김으로, 선하신 왕의 다스림 안에서 참 평안이 있는 삶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