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편애하시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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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

출애굽기 23:1–9 NKRV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자.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그건 좀 불공평한데?”라고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어떤 친구가 잘못했는데 반에서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고, 또 다른 친구는 같은 잘못을 했는데 더 크게 혼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속으로 “왜 저렇게 편파적으로 하지?”라고 생각한다. 또 SNS나 단톡방에서는 어떤가? 누군가에 대한 소문이 올라오면 사실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사람들이 한쪽 편에 서서 비난하기도 한다. 반대로 유명하거나 인기가 많은 사람은 잘못을 해도 많은 사람들이 감싸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종종 진실보다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고 싶어 한다. 게임이나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축구 경기에서 심판이 자기 친구가 있는 팀만 편들어 판정한다면 어떨까? 게임에서 운영자가 특정 사람에게만 유리한 혜택을 준다면 어떨까? 아마 모두가 화를 내며 “공평하게 해야죠!”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공평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 친구도 공평하게 대해주길 원하고, 선생님도 공평하게 판단해주길 원하며, 사회도 공평하길 바란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불공평한 것은 금방 알아차리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하는 것은 잘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인 출애굽기 23장 1-9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공평하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공평은 단순히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힘 있는 사람 편을 드는 것도 아니며, 불쌍해 보인다고 무조건 그 사람 편을 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공평은 사람의 편이 아니라 진실의 편에 서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짜 공평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크게 두 가지 생각해 볼 주제를 말하고 있다. 첫째로 사법 재판의 순서와 절차에 대한 경고들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어떤 민족이 가졌던 것보다도 더 나은 율법을 가졌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율법에 따라 정당하고 올바른 공의를 판결하고 집행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져야만 했던 것이다. 먼저, 증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증인들은 죄가 없는 무죄한 사람에 대해서 가짜 증언을 하거나 그 사람에 대한 거짓 소문을 내버려서 고발을 당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죄 없는 무죄한 사람을 고소하는 것을 도와주거나 또는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증인으로서 맹세하며 자신들이 손을 가슴에 얹음으로써 죄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누군가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 있어서 그 사람에 대한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은 그 거짓 증언 안에 있는 거짓말, 가짜 증거, 악의, 도둑질, 그리고 살인과 같은 죄를 모두 짓는 것이다. 또한 거짓 증언은 모든 것을 정의로운 척하면서 모든 사람을 같은 죄에 빠지게 만든다. 사람이 범할 수 있는 죄 중에 이 거짓 증언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악한 죄의 항목들을 가지고 있는 어떠한 사악한 행위도 없다. 그러나 이 경고의 단순히 재판의 절차뿐만 아니라 평소에 일상적인 우리의 대화에까지도 적용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남을 뒷담하거나 헐뜯는 것도 거짓 증언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재산이나 생명이 재판관이나 배심원에 의해서 재판의 결과가 정해지듯이, 한 사람의 평판은 주변에 모든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주변 사람에 대해 거짓 소문을 퍼트리는 것은 큰 잘못이다. 특히 모두가 믿고 존경하는 좋은 사람을 거짓말로 모함하는 행동은, 진실을 망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의와 따뜻한 마음까지 통째로 무너뜨리는 최악의 행동이다. 이런 이유로, 좋은 사람에 대해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것은, 단순히 거짓말을 한 죄를 넘어 사회의 진실과 정의, 그리고 인간미를 모두 파괴하는 무서운 죄다. 이러한 죄와 더불어 더 악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짓이 있다. 그 나쁜 짓은, 누군가에 대해 나쁜 거짓말을 해놓고, 그 피해자가 스스로 상황을 바로잡거나 해결할 방법조차 없도록 꽁꽁 숨어버리는 행동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짓이다. 쉽게 말해, 거짓말로 남을 망쳐놓고, 피해자에게 회복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 최악의 범죄다.
그래서 우리가 읽었던 출애굽기 23장 1절에서 “너는 거짓된 풍설(소문)을 퍼뜨리지 말며…”라는 말씀은 단순히 퍼뜨리지 말라는 것 뿐만 아니라, “너는 거짓된 풍설(소문)을 듣지 말라”라는 의미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그러한 거짓된 소문을 듣는 것은 어쩌면 도둑과 같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이다. 뒤에서 몰래 나쁜 말을 하는 혀는 만약에 뒷담하는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곳에서 그 자리를 피하고 멀리한다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일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쁜 소문이 귀에 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소문을 내 마음에 싹틔우지 않는 것이다. 친한 친구들과 모여서 ‘재미 삼아’ 남의 소문을 즐기듯 들으면 안 된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도 안 된 이야기를 진짜처럼 믿어버려서도 안 된다. 내가 존중받고 싶은 대로 친구를 똑같이 존중해 주는 것, 그리고 사실이 아닌 말로부터 친구를 지켜주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짜 이웃 사랑이다.
다음으로는 재판관들은 편파적인 재판을 하지 않도록 경고를 받는다. 2절을 보게 되면 재판관들은 판결을 내리는데 있어서 권력이나 다수의 생각을 따라 자신들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옛날 유대인 사회에서는 재판을 할 때 여러 판사가 모여 다수결로 판결을 내렸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원칙은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오직 ‘진실’이었다. 유대인들은 나이가 어린 초임 판사가 경력이 많은 선배 판사의 눈치를 보거나 분위기에 휩쓸려 잘못된 투표를 하지 않도록, 나이가 어린 판사부터 먼저 투표하게 했다. 친한 동료 판사나 아는 사람의 편을 들어주는 편파적인 판결을 철저히 막기 위해서였다. 성경이 말하는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는 법은 판사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이다. 많은 사람이 당연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그 행동이 무조건 옳거나 안전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유행이나 행동이라고 해서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내 친구들도 다 그렇게 해”라는 말은 내가 나쁜 짓을 저지른 것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올바른 선택인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우리는 주변 친구들에게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혹은 의리를 지킨답시고 같이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은 결국 내 인생을 망치는 너무나 어리석은 행동이다.
출애굽기 23장 3절에서 재판관들은 판결을 내릴 때 절대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심지어 상대방이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재판을 공정하지 않게 진행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건은 오직 사실과 진실에 따라서만 바르게 판단되어야 하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예외 없이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진짜 공정함이란 눈앞에 보이는 사정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짠하고 동정심이 든다는 이유로 잘못된 행동을 눈감아주거나 법을 어기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만약 가난하고 약한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고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가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면죄부를 받거나 부당한 이익을 얻게 해서는 안 된다. 공의는 사람의 형편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한 행동의 옳고 그름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친한 친구나 평소에 기가 죽어 있는 불쌍한 친구가 숙제를 베끼거나 교칙을 어겼을 때, “안쓰러우니까 그냥 넘어가 주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성경은 아무리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일지라도 잘못을 구부려 공정하지 않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선을 긋는다. 동정심은 아름다운 마음이지만, 옳고 그름을 가리는 규칙을 파괴하면서까지 발휘되어서는 안 된다. 사정이 딱하다고 해서 반칙을 쓴 친구에게 점수를 더 주거나 처벌을 면제해 준다면, 규칙을 성실히 지킨 다른 아이들이 역차별을 받게 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약자라는 이유로 대충 덮고 넘어가는 것은 진정한 정의가 아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정함은 사람의 형편을 보고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누구든 똑같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재판관들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봐주는 편파적인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 가난한 사람이 비싼 돈을 들여 자신을 지켜줄 변호사를 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잘못된 판결을 받아 고통스럽게 만들어서도 절대 안 된다.만약 가난한 사람의 주장이 진실하고 정직한 것이라면, 재판관들은 오히려 힘없는 그들의 편에 서서 든든한 변호사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성경이 6절에서 “너는 가난한 자의 재판이라고 해서 정의를 공정하지 않게 하지 말라”고 명령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 가난한 사람들은 결국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며, 우리의 소중한 이웃이자 한 가족인 형제들이기 때문이다.따라서 돈이 없고 약하다는 이유로 법 앞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처지가 더 비참해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와 우리 모두가 철저히 지켜주어야 한다. 학교에서 돈이 많거나 목소리가 큰 아이들은 잘못을 해도 쉽게 빠져나가고, 평소 성격이 소심하거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작은 일에도 더 크게 오해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성경은 힘없는 친구가 단지 스스로를 변호할 말재주나 힘이 없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마녀사냥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보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한다. 만약 그 친구의 행동이 옳고 떳떳하다면, 주변에 있는 우리가 기꺼이 그 친구의 편이 되어주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변호사가 되어주어야 한다.그 친구 역시 우리 반의 소중한 일원이자 친구이기 때문이다. 돈이 없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생활에서 더 서럽고 억울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서로를 지켜주는 것이 진정한 정의이자 사랑이다.
다음으로 7절은 재판관들은 악하고 거짓된 음모를 돕거나, 은근히 부추기는 생각 자체를 무섭게 여겨야 한다. 성경 7절을 보면 “거짓 일을 멀리하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단순히 나 혼자 거짓말을 안 하는 것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난 직접 참여 안 했으니까 상관없어”라고 핑계를 대며 방관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우리는 정직하지 못한 모든 일을 독을 품은 위험한 뱀처럼 무서워하고 멀리 피해야 한다. 내 손과 입으로 무고한 사람을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빠뜨리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거짓이 섞인 일이라면 아예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서 당장 내가 한 짓을 아무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온 세상을 정의롭게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한 행동을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으신다. 그래서 성경은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신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나쁜 사람으로 몰아세운 자를 반드시 찾아내어 엄하게 벌하시겠다는 뜻이다. 재판관들은 자신들 역시 진짜 최고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책임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학교에서 누군가를 골탕 먹이거나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아세우는 나쁜 모의가 일어날 때가 있다. 이때 “난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고 옆에서 보기만 했으니까 무죄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경은 그런 거짓되고 악한 분위기가 감지되면, 마치 독사 한 마리가 교실에 나타난 것처럼 무서워하며 그 자리에서 멀리 도망치라고 경고한다. 내 방관이나 침묵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는 친구가 억울하게 오해를 받고 상처를 입는다면, 그것은 내 손으로 그 친구를 공격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은 누가 이 일을 주도했는지, 누가 방조했는지 정확히 모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기에, 거짓말로 남을 괴롭힌 사람과 동조한 사람을 절대로 '착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으신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거나 주도권을 잡으려고 거짓된 흐름에 가담하지 않는 것,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진짜 용기이다.
다음으로 8절을 보면 재판관들은 절대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 뇌물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죄 없는 사람에게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정작 벌을 받아야 할 범죄자는 풀어주게 만든다. 아무리 평소에 똑똑하고 일을 잘 처리하던 사람이라도, 눈앞에 이익이나 대가가 주어지면 이상하게 눈이 멀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어떠한 검은 유혹도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또한 9절에서 재판관들은 이방인(외국인 나그네)들을 무시하거나 괴롭혀서는 안 된다. 비록 그들이 그 나라의 땅이나 권리를 물려받지 못한 소수일지라도, 법 앞에서는 똑같이 공정하게 대접받아야 하고 자신의 소유를 평화롭게 누릴 권리가 있다. 옛날 영국 법에서 외국인이 재판받을 때 억울하지 않도록 배심원의 절반을 외국인으로 채워주었던 것처럼, 약자가 억울하지 않게 배심원을 구성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성경은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과거에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며 서럽고 두려운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나그네의 슬픈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과거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면, 지금 외롭고 낯선 환경에 처한 다른 이들의 마음을 더 쉽게 공감하고 품어주어야 한다.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지금까지 살펴본 출애굽기 23장 1~9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정직함’과 ‘공정함’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가이드라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학교와 일상에는 수많은 유혹과 분위기가 존재한다. 단톡방에서 시작된 재미 섞인 뒷담화와 소문(1절), "남들도 다 하니까 괜찮다"라며 몰려가는 잘못된 군중심리(2절), 불쌍하다는 감정에 치우쳐 규칙을 어기는 행동(3절)은 모두 진실을 왜곡하는 일이다. 반대로 힘없고 소외된 친구라고 해서 억울하게 몰아가거나(6절),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마음으로 악한 상황을 방관하는 것(7절)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이 무서운 죄가 된다. 마지막으로 내 이익을 위해 눈을 감아버리는 이기심(8절)과 나보다 약하고 낯선 친구를 차별하는 태도(9절)도 버려야 한다.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짜 이웃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억울한 소문의 피해자가 되기 싫은 것처럼 친구의 명예를 지켜주고, 내가 힘들고 외로웠을 때 도움받고 싶었던 것처럼 소외된 친구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는 것”이다.주변 친구들의 평판이나 눈치를 보기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도 내 중심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해야 한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는 주체적인 신앙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학교와 세상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진짜 멋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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