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자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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Ἰδὼν δὲ τοὺς ὄχλους ἀνέβη εἰς τὸ ὄρος,

καὶ καθίσαντος αὐτοῦ προσῆλθαν °αὐτῷ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καὶ ἀνοίξας τὸ στόμα αὐτοῦ ἐδίδασκεν αὐτοὺς λέγων·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μακάριοι οἱ πενθοῦντες , ὅτι αὐτοὶ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πραεῖς, ὅτι αὐτοὶ κληρονομήσουσιν τὴν γῆν.

μακάριοι οἱ πεινῶντες καὶ διψῶντες τὴν δικαιοσύνην,

ὅτι αὐτοὶ χορτασ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ἐλεήμονες, ὅτι αὐτοὶ ἐλε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καθαροὶ τῇ καρδίᾳ, ὅτι αὐτοὶ τὸν θεὸν ὄψ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εἰρηνοποιοί, ὅτι °αὐτοὶ υἱοὶ θεοῦ κλ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δεδιωγμένοι ἕνεκεν δικαιοσύνης,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μακάριοί ἐστε ὅταν ⸉ὀνειδίσωσιν ὑμᾶς καὶ διώξωσιν καὶ

εἴπωσιν πᾶν πονηρὸν καθʼ ὑμῶν ψευδόμενοι ἕνεκεν ἐμοῦ.

χαίρετε καὶ ἀγαλλιᾶσθε,

ὅτι ὁ μισθὸς ὑμῶν πολὺς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οὕτως γὰρ ἐδίωξαν τοὺς προφήτας τοὺς πρὸ ὑμῶν.

그리고 무리를 보시면서, 예수께서는 산속으로 올라가셨고,
앉으셨을 때 그분의 제자들이 나아왔다.
그리고 그분의 입을 열어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이르시기를
복이 있도다, 그 심령에 파산 선고 받은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애통하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온유한 자들이여.
왜나하면 그들이 그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그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긍흘히 여기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긍율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그 마음에 있어서 청결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그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평화를 만드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아 오고 있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대항하여
모든 악한 것들을 할 때 복이 있도다, 너희들이여. 기뻐하고 즐지위하라.
왜냐하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급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너회 전에 있던 그 선지자들도 그렇게 박해하였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1-12절, KNJ 사역)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04_온유한 자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9fFgjNcbI6g
Transcript:
(00:03) 보기도 아 제 사장 온유한자이 바로 앞에 부분도 읽어야 되나요? 발복은 >> 어 아 거기는 요약되는 내용이라서 그냥 읽으셔도 괜찮 저기 4장부터 읽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아 4장부터요? 네. >> 예.

4장 온유한 자.

복이 있도다. 온유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그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멘.

들어가는 말.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우는 자들을 위로하십니다. 그들과 함께 있어 주셔서 마음을 얼루만져 주십니다. 그들은 영혼의 만족을 얻습니다. 사람들을 향해 너그럽고 친절하게 됩니다. 그것이 온유함입니다.
(01:01)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비롯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3절. 온 신자의 인격 안에서 맺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소유하거나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됨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온유함으로 사람 참사람의 본보기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분 담게 하시려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온유함이란 무엇인가?

온유함은 사람의 표정이나 성질이 온하고 부드러운 것입니다. 오늘날이 성품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오늘날 같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는 패배와 낙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온유함이 우유부단하고 용기 없는 것으로 오해됩니다. 그러나 온유함은 연약한 것도 아니고 주대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01: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5절 본성적으로 유순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팔복에서 말하는 온유함이 아닙니다. 팔복의 인격은 타고난 성품이 아닙니다. 신령한 은혜로 변화된 성품입니다. 온유함은 선천적인 온유함이 아닙니다. 선에 대한 열정도 악에 대한 분노도 없는 무정의 상태는 더욱 아닙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해 이타적이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것을 뜻합니다. 또한 온유함은 점자는 겸손한 사력깊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고전 헬라에서는 말과 같은 동물이 사람에게 길들려 길들어온 온순하게 된 상태를 뜻하기도 하였습니다.이 단어의 구약적 배경도 비슷합니다.
(02:47) 이는 이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순종적 태도를 가르키지 않습니다. 인격적 성품을 뜻합니다. 타인에 대해 자신의 고난을 남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태도가 오만하거나 억압적이지 않음을 뜻합니다.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본성적으로는 온유함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혈기로 애굽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출애굽기 2장 14절. 그러나 미디안에서 약 40년 광야에서 약 40 40년간 연단받으면서 점차로 변해 갔습니다. 출애굽기 16장 35절 사도행전 7장 30절 36절 온유한 사람으로 다듬어져 갔습니다.이 >>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03:42) 민수기 12장 3절. 팔복은 그리스도 자신의 성품에 대한 체험을 담고 있습니다. 그분은 성화를 통해 순결해지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원 팔복의 사람이시면서도 더욱 완전한 팔복의 사람이 되어 가셨습니다. 하나님으로서는 모르시는 것이 없었지만 사람으로서는 배워 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히브리서 5장 8절에서 9절 발복은 마땅히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의 인격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자기 성품에 대한 여덟 개의 선언입니다. 이에 대교구 오리게네스는 누가복음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04:41) 그러므로 주님이이 모든 팔복을 당신 자신 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그것을 담기 위하여 우셨으니이는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애통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라고 하셨음이며 또한 팔복의 기초들을 놓으시기 위함이었다. 팔복의 온유함은 그리스도에게서 봅니다. 십자가를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 그러나 하나님께 맡히셨습니다. 자기를 죽음에서 건지실 하나님을 의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 운명하시는 순간에도 당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 마치 털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어린 양과 같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7절. 한때 우리는 공중 근세 잡은 자를 따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05:38) 에베소서 2장 2절. 세상 욕심에 휘둘려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타고난 그친 성품이 거룩하게 길드려지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성품으로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자신을 반성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 우리를 십자가 은혜로 살리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말씀과 은혜로 성숙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셨습니다. 그 길이 행복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착한 마음을 주셔서 흐르는 물에 돌멩이 다듬어지듯 온유한 성품이 되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보며 자기의 무난 성품에 아파하게 하셨습니다.
(06:29) 성품이 변하여 선한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너그럽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쁜성의 개선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입니다. 은혜로 주신 새 본성입니다. 말씀과 신령한 은혜로 변화된 거룩한 인격입니다. >>

온유한 자의 특성

온유한 자의 심령의 가난함과 애통함은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그러나 온유함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한 것입니다. 온유한 자의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향해서입니다. 온유함은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은 영혼의 표지입니다. 그분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 데서 오는 평안함입니다. 그분의 뜻을 받아들인 마음입니다. 그는 겸비한 사람입니다.
(07:24)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진 사람입니다. 옷을 찍고 통곡하여도 자기가 겪는 고난을 부당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열왕기하 22장 19절. 그는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은 바꾸시지만 당신의 뜻은 변경하지 않으신다고 확신합니다.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믿으며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분의 뜻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원하는 바가 있다면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참된 믿음은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08:15) 그 희망으로 자신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시편 42편 11절 43편 5절. 절망은 희망으로 설득되지 않는 마음의 막다른 골목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희망을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뜻을 믿기 때문입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슬픈 일을 만날 때 하나님 앞에서 웁니다. 연약한 자로니다. 강하나 부드럽고 단호하지만 따뜻한 사람입니다. 둘째로 사람을 향해서입니다. 온유함은 겁먹어 기죽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아부하거나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꿋꿋함과 연속된 성숙함을 가진 성품입니다. 사람에게 부드럽고 친절합니다.
(09:20) 너그럽고 관대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기가 죄인임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신 것을 잊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 그 사랑의 마음이 온유하게 합니다. 과분한 은혜를 받았기에 구워준 것 구워준이 없이 빚진 자로 삽니다. 로마서 1장 14절 온유함과 겸손함 늘 어깨동무하고 다닙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 하나님 사랑은 반드시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게 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40절. 이것은 아갑의 사랑에 대한 반응입니다. 이것을 까리따스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삶의 질서는 새롭게 재편됩니다. 이것을 지순혜라고도 하는데 오직 하나님 사랑이 동기가 되어 하나님과 이웃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10:16)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의 사랑은 하나의 지평으로 통합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하는 자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아버지 야곱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이었습니다. 악한 형들 때문에 애굽에 팔려갔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지냈습니다. 나선 땅으로 산전 수전을 모두 겪으며 긴 세월을 보내야 하였습니다. 자기가 왜 그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때마다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든 주어진 본분에 충실하였습니다. 창세기 39장 6절. >>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치기까지 했습니다.
(11:04) 창세기 39장 20절. 그러나 낭망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겪는 고난의 의미를 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기에 온한 자로 악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주신 계시의 비전을 믿었고 창세기 37장 9절 하나님을 하나님은 동행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39장 2절 3절 21절 23절 자기에게 악을 행했던 형들도 용서했습니다. 선을 믿었기에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복수하는 대신 사랑했습니다. 그는 온유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11:57)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을 나를 해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은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의 자녀들을 기리리다 하고 그들을 간고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세기 50장 19절 21절. 5년사는 무골 호인이 아닙니다. 우념은 악한 길에 분노하고 불리와는 싸웁니다. 악에 굴복하지 않는 꿋꿋함과 불리와 탈하지 않는 기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니 온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 그리스도의 자기 소개를 보십시오.
(12:5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이를 매고 내게 배우라. 마태복음 11장 29절. 그러나 그분이 나약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잘못된 일에 침묵지 않으셨습니다. 성전에서 돈을 바꾸는 자들의 상을 뒤엎셨습니다. 녹근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를 내쫓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4에서 16절. 자신을 죽이려는 헤롯 왕을 저 여우라고 질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3장 32절. 스데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나쁜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진리를 말한다는 이유로 이유만으로 돌로 처 죽임을 당했습니다. 숨을 거두면서 하나님께 드린 그의 기도는 그리스도의 온유함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13:53) 그들이 돌러 스데말을 치니 스데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장 59에서 60절 스는 자기를 돌러치는 자들을 용서했습니다. 마음이 온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십자가에 기도하시던 그리스도의 마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 사랑 때문에 온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팔복을 말씀하신 후 선언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10 5장 13에서 14절. 그것은 현재적 어 사실의 선언이었습니다.
(14:48) 앞으로 그런 사람이 되라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유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세상이 소금이며 비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은혜 안에 살지 않는다면 어찌 온전로 남아 있겠습니까? 매일 말씀과 성령으로 은혜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은 죽고 그리스도가 다시 사셔야 합니다. 은혜 안에서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지속적인 자기 깨어짐 속에서 온 인격의 꽃으로 피어나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온유한 자의 행복

온유한 사람이 복되다고 선언하십니다. 왜냐면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며 마태복음 5장 5절 기업이란 말이 풍부한 의미를 가지고 등장한 것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입니다.
(15:46)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땅과 자손을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4절에서 17절. 이것은 당대 이루어질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자손은 점차 번성했지만 땅은 미래에 주어질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후손들에게이 약속을 바라보며 살게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 10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실행은 애굽으로부터의 탈출로 구체화되었습니다. 가나안에 도착한 이스라엘은 전쟁을 앞두고 지파별로 땅을 제비뽑았습니다. 여호수아 18장 10절. 각 지파의 할당된 땅은 다시 족속별로 분할되고 다시 감별로 가족별로 나뉘어졌습니다. 여호수아 19장 1절.
(16:36) 그렇게 해서 받은 땅이 기업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광야의 방향을 방 방황을 끝내고 그곳에서 정착하였습니다.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단순히 재산에 대한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애굽의 종서와의 광야의 방황을 끝내고 안식을 누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땅은 선물인 동시에 심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때문에 누리는 평화였습니다. 레위기 25장 2절. 심령적 평화일뿐 아니라 육체적 평화였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으므로 대적으로부터 불씨에 공격받을 위험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내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어버려라.
(17:39) 너는 잊지 말지니라. 신명기 25장 19절 말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은 이스라엘에는 새로운 방식의 삶이 요구되었습니다. 땅을 선물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이 출애굽기와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주요 내용입니다. 더 이상 땅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착취 당하지 않아야 했으며 신명기 15장 2절 음행과 탐욕으로 땅을 더럽히지 말아야 했습니다. 레위기 18장 25절. 왜냐하면 그 땅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백성들이 행복을 누리는 나라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3장 43절. 신명기 16장 11절 14절.
(18:36) 세월질 이스라엘은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누리는 평화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간 질서였습니다. 그 질서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어야 했으니 정인은 그 사랑으로 실현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목적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누리는 평화는 인류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안식의 예표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리라는 언약이었습니다. 땅은 곧 그리스도였습니다. 온한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을지합니다.
(19:31) 이것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인의 사유에서는 땅과 거기 사는 사람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둘은 운명 공동체처럼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의 육체를 땅의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2장 7절 둘째 사람은 그 사람의 몸의 일부로 지우셨습니다. 하늘과 땅, 땅과 사람은 불과분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땅과 인간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었습니다. 땅을 보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악을 행하면 땅도 더러워졌습니다. 악이 한계치에 도달하면 땅은 사람들을 토해버립니다. 레위기 18장 28절.
(20:25) 이와 반대로 죄에서 돌이키면 땅도 고침을 받습니다. >> 내 이름으로 읽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역대아 7장 14절. 온유한 사람이 반드시 물리적인 땅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복해 갑니다. 그들 사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합니다.이는 온유한 사람이 세상에 미치는 감화력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사셨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에게는 단 한평의 땅도 없었습니다. 머리 둘 곳 없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20절.
(21:19) 어느 땅에도 소유의 깃발을 꽂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나라는 지금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땅을 정복해 나가시는 방식입니다. 온유한 자는 이런 방식으로 땅을 유으로 습니다. 복음을 전하던 사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들은 지상의 땅을 갖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 것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들이 행복하게 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진 것을 버리고 목숨까지 바치길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22:10) 하나님의 계획은 어 땅의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서 3장 9절.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전쟁으로 빼앗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으로 땅을 정복합니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 사람들이 진리를 따라 살아서 하나님 나라의 번을 번영에 이바이지합니다. 또한 온유한 자는 다른다른 방식으로도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그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세상 것들에 부당하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이 땅 위에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때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복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그것은 작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이는 하나님이 더해 주신 복입니다.
(23:06) 그 복이 다른 모든 것보다 더 크지 않겠습니까? 온유한 자는 세상 사람들에게 다른 삶을 보여줍니다. 복음으로 감마를 끼칩니다. 그리스도께로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한 온유함으로 땅을 정복해 가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온유한 사람을 통해 복음이 전파됩니다. 거기서 하나님 이름은 높아지고 그 땅은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맺는 말

우리의 의무는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참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인격의 안에서 기시된 성품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큰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예수님을는 것입니다.
(23:57) 그런 사람은 세상에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처럼 온유함으로 세상을 정복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평화에서 오는 일체 온유함으로 가를 끼침으로써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세상은 하고 거칠러질 것입니다. 온 그리스도인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그를 통해 온의 모보이신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도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예.
온유한자 한 눈에 보는 4장
1.들어가는 말.
하나님의 위로는 영혼의 만족을 준다.
그 만족 안에서 온유함이 흘러나온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5절.
2.온유함의 의미.
(24:58) 온유함은 부드러움, 존자음, 겸손함, 사료깊음을 뜻한다.
그러나 본성적으로 온유한 것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선악에 대한 열정도 분노도 없는 것이 아니다.
온유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고 성화된 선품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향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첫째로 하나님을 향해서향에서다.
온유함은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을 맡기는 태도로 나타난다.
온유한 자들은 겸손하여 만나는 고난을 부당하게 여기지 않는다.
주님의 선하심과 자비하로우심을 신뢰하며 잠잠히 그분을 바라본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되든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다.
둘째로 사람들을 향해서다.
온유함은 부드러움과 친절함, 너그러움과 용서로 나타난다.
하나님께 큰 사랑을 받았으니 그것을 이웃에게 흘러보낸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향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도 사랑한다. >>
3.땅을 누리는 복.
예수께서는 온유한 사람이 복되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5장 5절.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기업으로 상속받았다.
모든 방황을 거치고 가나안에서 안식과 평화를 누렸다.
이는 인류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안식의 예표다.
그래서 땅을 주리라는 약속은 그리스도를 주신 언약이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사람들은 세상에 영향력을 미친다.
그 땅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영향력을 미친다.
사람들의 마음에 가를 끼쳐 그들도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한다.
이것이 온유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방법이다.
또 온유한 사람들이 땅을 정복해 가는 방법이다.
4. 맺은 말.
온유하신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는가?
땅이신 그리스도를 누리고 살아가는가?
그분을 누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있는지 살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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