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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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예화>
핸드폰 사진기능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제 핸드폰에는 ‘인물사진’모드가 있습니다. 내가 찍고자 하는 인물이나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면 주변의 배경은 희뿌옇게 날려버립니다.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드는 참 좋은 기능입니다. 그런데 찍는 중에 핸드폰이 흔들리면 무엇을 찍었는지 모르는 희뿌연 사진만 남는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과 신앙도 그렇습니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는지, 내가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초점이 확실하면 주변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점이 흔들리면 내가 어디로 가고있는지 모르는 희뿌연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느껴지고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살아가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 초점이 흔들리는 상태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본문설명>
<본문설명>
목사님과 주일에 함께 나누고있다시피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대략 삼 주 동안 머물면서 세운 교회입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하는 그 때에 바울의 교회개척사역을 못마땅히 여긴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해서 바울은 급히 베뢰아로 피신하게 됩니다.
남겨진 데살로니가의 교회에도 당연히 핍박과 환난이 심했습니다. 그렇기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강력하게 붙들 수밖에 없었던 한 가지 소망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곧 오셔서 우리 눈물을 닦아주시고 상처를 싸매시며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날이 지나도 상황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핍박과 환난은 계속되는데 속히 올 것이라 믿었던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은 생각처럼 빨리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들의 믿음에 초점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벌어진 마음의 틈으로 이미 종말이 왔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주장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말과 능력으로 마음을 흔드는 자들이 생깁니다. 바울의 편지에 자신의 말과 거짓을 덧붙여 속이는 자들도 생기게 됩니다.
여러 상황 속에 믿음의 초점이 흐려진 교회를 위하여 바울은 다시 한 번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그 편지가 데살로니가 후서입니다.
<13-14절 강해>
<13-14절 강해>
바울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고백하는 것이 있습니다. ‘감사’입니다.
13-14절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재림의 때와 시를 궁금해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속 바울이 말하는 것은 정체성이었습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소망하던 재림이 오지 않자 ’예수님께서 안 오시면 어쩌지?’,
‘내가 구원받은 것이 맞나?’, ‘우리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들의 마음 속 틈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럴 때일수록 흔들리지 말고 너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며,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이며, 진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이 일에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한 것은 그 어느 것 하나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아닌 하나님께 감사했고 이것이 성도들에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모든 구원의 주체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자꾸만 현재의 어려운 상황만이 보입니다. 기도하고 소망하는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우리는 초점을 잃어버리고 흔들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여전히 너희를 사랑하시며,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미 너희를 택하셨고 선하신 계획으로 일하고 계시며 신실하심으로 이루실 것이다.
사람과 상황은 쉽게 흔들리지만 복음은, 우리를 향한 삼위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 담은 구원의 작정은 결코 흔들릴 수 없습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이 시간만큼 말씀을 뜯어보고 또 묵상하면서 나를 돌아보는 은혜의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초점을 잃고 방향없이 걸어가곤 합니다. 내가 기다린 하나님의 역사가 자꾸만 늦어져서 마음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주변의 유혹이나 스스로 깊어지는 생각들에 마음이 붕 뜨거나 흔들리기도 합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제게 필요한 것은 해결될 날이 언제인가가 아니라 누가 나를 붙들고 있는가인 것을 깨닫고 위로를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과 참 많이 닮아있습니다.
환난의 때가 끝나고 우리의 구원과 공의로운 심판이 속히 오길 기다립니다. 어서 나그네길을 청산하고 본향으로 돌아가길 소망합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며 살아가다 보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의 무게가 참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의 믿음의 초점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확신이 의심이 되고 소망이 낙심이 되고 기도가 염려가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때에 오늘 바울의 편지가 제게 위로가 되었듯, 여러분과 교회에도 위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핍박과 환난이, 인내의 시간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삶을 붙들고 인도하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은 우리의 상황으로 우리를 해석하지만, 복음은 우리의 상황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바라보게 합니다.
어려움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흔들립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가, 일하고 계시는가, 선한 일을 이루시는가’
그러나 바울의 위로는 우리의 초점을 붙잡아 하나님께로 고정시켜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며, 그 사랑으로 창세 전에 선택하셨고, 부르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고 그분의 영광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오늘이 여전히 쉽지 않을지라도, 거짓된 말들이 우리를 어지럽게 흔들 때에도 낙심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신실하게 그분의 백성인 우리를 영광의 길로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복음이요, 우리가 붙잡아야 할 복음이요, 우리가 전달해야 하는 복음인 줄로 믿습니다.
<15절 강해>
<15절 강해>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굳건히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청년부와 대화를 하다보면 아 이제 따라가기 버거운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히 저도 저 나름대로 이것저것 문화에 뒤쳐지지 않고있다 생각했는데 저번 주와 이번 주의 유행이 다릅니다. 이제 세상은 제가 따라가기에는 너무 빠릅니다.
먹을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라탕이 유행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탕후루로 바뀌고 이제는 두바이를 지나쳐 버터떡까지 와 있습니다.
유행을 따라가고 트렌드를 읽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했는데 한 청소년이 제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목사님, 요즘 유행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아니예요. 그저 생각을 비우고 따라가는 거예요.’
이 말이 제게는 참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이것이 옳은지, 왜 이것이 좋은지, 어떤 의미이고 내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고민할 새도 없이 일단 눈과 귀에 좋고, 인기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을 따라 휩쓸리기 쉬워보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너무 막혀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또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주의 날이 왔다고 말하고 그럴듯한 말과 능력으로 성도의 마음을 흔들고 바울의 편지라 거짓말하며 다른 내용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초점을 잃어버린 성도들은 이러한 것에 쉽게 휩쓸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흔들리지 말고 굳건히 서라. 그리고,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성도들이 가르침을 받은 전통이 무엇입니까? 다른 관습이나 형식이 아닌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셨으며 약속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그 복음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또한 끊임없이 세상의 가치관과 유행의 도전을 받는 것을 봅니다.
더 세련된 교회, 합리적인 교회, 자유롭고 새로운 교회가 SNS에 소개되고 많은 교회가 그것을 보고 벤치마킹을 시도합니다.
또 유행하는 챌린지를 따라서 활용하는 교회들도 보입니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잘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다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작정 그것만 따라가다 보면 본질보다 껍데기가, 목적보다 수단이 앞서게 되는 위험한 경우도 있음을 봅니다.
세상 속에서 교회가 기억해야 할 것은 능력은 유행을 누가 더 빨리 따라가는가, 누가 제일 세련되고 합리적인 프로그램을 가졌는가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방법과 시대에 맞는 언어, 새로운 사역들을 시도할 수 있고, 할 수 있으면 열심을 내서 하는 것 또한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복음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굳건히 서서 붙들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복음은 달라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릴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심과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확증하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심으로 우리가 살아갈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여러 장점들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달란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우리 교회의 무기가, 저와 여러분의 삶의 능력의 원천이 다른 어떠한 것이 아닌 이 ‘복음’이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섬기고 세워가며 굳건히 서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올바르게 증거하고 살아감으로,
변하는 것들과 세상의 가치관들에 초점이 흐려지지 않고 또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초점도 굳건히 붙들어주는 역할을 감당하는 우리 교회가
또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16-17절 강해>
<16-17절 강해>
이제 바울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한다는 기도로 마무리합니다.
바울이 주는 위로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택하시고, 구별하시고, 믿게 하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으로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께 환경을 바꿔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환난이 끝나거나 속히 예수님께서 재림하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환경의 변화가 아닌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삶은 사진처럼 멈춰있지 않습니다. 동영상입니다. 끊임없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관계의 문제, 건강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들이 우리 초점을 흐리려 합니다.
사진 한 장을 찍을 때에도 손이 흔들리면 초점이 나가는데,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영상은 본래 초점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동영상을 찍을 때에는 몇 가지 장비들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믿음의 초점을 지키기 위해서 은혜의 도구들을 주십니다.
첫 번째는 말씀입니다.
영상을 촬영할 때 흔들리지 않도록 카메라를 고정하는 삼각대, 짐벌이 필요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믿음을 굳게 붙들어 줍니다.
두 번째는 기도입니다.
고급 카메라에는 손떨림 방지기능이 있습니다. 조금 흔들리는 정도는 자동으로 보정해서 초점을 유지시켜 줍니다.
기도가 우리 신앙에서 바로 그런 역할을 합니다. 기도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흔들리는 초점을 다시 하나님께 맞추는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세 번째는 성도의 교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촬영하는 동료입니다. 초점이 잘 맞는지, 결과물이 괜찮은지 옆에서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촬영의 방향을 잃을 일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교회가 바로 그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다. 함께 울고 웃고 기도하고 권면하고 천국을 세워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세 가지 은혜의 도구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주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연약함에 흔들릴수도 있지만 결국 초점을 잃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두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의 계략은 끊임없이 우리의 초점을 흐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 상황들로 그리고 세상의 가치관과 변하는 비본질적인 것들로 우리를 흔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은 그러한 것들에 쉽게 흔들립니다.
‘아 하나님께서 왜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지?’, ‘지금 내가 잘 가고 있는 것일까?’, ‘하나님의 뜻이 이게 맞나?’
그러나 오늘 본문 속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위로가 우리에게도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함으로 흔들리는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택하시고 거룩케 하시고 믿음을 주셔서 구원을 받게 하셨으며 반드시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삶 속에서 늦어지는 구원과 심판으로 인해 흔들리는 초점을 말씀과 기도, 공동체를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들릴 수는 있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낙심할 수는 있어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이 믿음으로 흔들릴 때 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함께 성령 안에서 교제함으로 다시 굳건히 서서 흔들리는 초점을 다잡고 우리가 받은 전통인 복음을 지키는 저와 여러분이,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