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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Ἰδὼν δὲ τοὺς ὄχλους ἀνέβη εἰς τὸ ὄρος,

καὶ καθίσαντος αὐτοῦ προσῆλθαν °αὐτῷ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καὶ ἀνοίξας τὸ στόμα αὐτοῦ ἐδίδασκεν αὐτοὺς λέγων·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μακάριοι οἱ πενθοῦντες , ὅτι αὐτοὶ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πραεῖς, ὅτι αὐτοὶ κληρονομήσουσιν τὴν γῆν.

μακάριοι οἱ πεινῶντες καὶ διψῶντες τὴν δικαιοσύνην,

ὅτι αὐτοὶ χορτασ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ἐλεήμονες, ὅτι αὐτοὶ ἐλε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καθαροὶ τῇ καρδίᾳ, ὅτι αὐτοὶ τὸν θεὸν ὄψ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εἰρηνοποιοί, ὅτι °αὐτοὶ υἱοὶ θεοῦ κλ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δεδιωγμένοι ἕνεκεν δικαιοσύνης,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μακάριοί ἐστε ὅταν ⸉ὀνειδίσωσιν ὑμᾶς καὶ διώξωσιν καὶ

εἴπωσιν πᾶν πονηρὸν καθʼ ὑμῶν ψευδόμενοι ἕνεκεν ἐμοῦ.

χαίρετε καὶ ἀγαλλιᾶσθε,

ὅτι ὁ μισθὸς ὑμῶν πολὺς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οὕτως γὰρ ἐδίωξαν τοὺς προφήτας τοὺς πρὸ ὑμῶν.

그리고 무리를 보시면서, 예수께서는 산속으로 올라가셨고,
앉으셨을 때 그분의 제자들이 나아왔다.
그리고 그분의 입을 열어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이르시기를
복이 있도다, 그 심령에 파산 선고 받은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애통하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온유한 자들이여.
왜나하면 그들이 그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그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긍흘히 여기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긍율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그 마음에 있어서 청결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그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평화를 만드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아 오고 있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대항하여
모든 악한 것들을 할 때 복이 있도다, 너희들이여. 기뻐하고 즐지위하라.
왜냐하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급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너회 전에 있던 그 선지자들도 그렇게 박해하였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1-12절, KNJ 사역)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05_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xjGdXJpOyAU
Transcript:
(00:01)

제 5장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복이 있도다. 그 의에 굶주이고 목마른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배불를시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6절

들어가는 말

온유한 사람은 부드럽고 친절합니다. 유약하거나 결단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마음속에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너무 강렬해서 거친 성품을 변화시켜 버린 것입니다. 바로 의를 향한 열망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절실한지 배고픔과 목마음이라는 본능적 욕구에 비유되었습니다. 양끝 먹으면 줄이지 않습니다. 제때 마시면 갈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자에게는 음식으로 채울 수 없는 배고픔과 음료로 해결할 수 없는 갈증이 있어야 합니다.
(00:58) 요한복음 4장 32, 34. 그것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세상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뜨거운 여름 긴 행군 끝에 마시는 한사발의 차가운 슬물과 같습니다.
의란 무엇인가?
욕망의 만족을 위해 사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발망을 가진 자가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6절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가 복되복되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여기서 의란 무엇일까요? 의에 해당하는 헬라어디카의 오시네그는 기본적으로 책망받을 것 없는 무제한 상태 허물 없음 등을 의미합니다.
(01:59) 여기서 말하는 의에 두 가지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 첫째로 율법에 부합한 상태입니다. 의가 옳음이라면 무엇에 대해 옳다는 것일까요? 그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율법과 복음으로 그것을 보이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율법을 통해 복음을 보여주시고 신약에서는 복음을 통해 율법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지혜와 사랑으로 목적을 가지고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사람들 그리고 자연 만물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할지를 정하셨습니다. >> 네. 그 뜻을 그 뜻을 율법에 새기셨습니다. 시내산의 돌판과 사람의 마음에 새겨 주셔서 양심의 증거가 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2장 14절
(03:02) 16절. 넓은 의미의 율법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의지를 흠없이 알려주신 계시의 총체입니다. 이것은 신구약 성경 전체입니다. 좁은 의미의 율법은 둘로 복구됩니다. 에덴에서 주신 율법과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입니다. 십계명은 모든 율법의 핵심입니다. 그것은인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도덕적 질서를 규정합니다. 그것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신앙과 생활의 규범입니다.이 규범을 실천하는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함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6장 5절. 그 사랑으로 또한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03:55) 누가복음 10장 27절. 율법은 두 관계 두 개의 관계를 규율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입니다. 종교적 관계입니다. 먼저 종교적 관계입니다.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규정합니다. 율법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창세기 2장 17절. 거기에 부합하면 의로운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불리한 것입니다. 그다음 사회적 관계입니다. 그 이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율법은 하나님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사회의 성격을 규정짓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각각 개별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04:44)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셨습니다. 사랑은 관계입니다. 율법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면 이루어질 사회를 가르쳐 줍니다. 율법은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너희의 10장 31절. 땅에 대한 배려인데이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를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가 외면해 오던 율법의 요구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줍니다. 인간은 오직 임금이 백성을 사랑으로대 다스리듯 듯이 자연 세계를 돌보야 했고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더욱 아름답게 만들도록 노동으로 봉사해야 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 이를 사람으로 지음받은 사람으로 지음받은 사명의자 보람으로 여겨야 했습니다.
(05:41) 의로운 자로 살아감으로 세상이 하나님과 사람들 자연 만물의 완전한 관계 속에서 평화를 누리게 하심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합치된 상태가 의입니다. 그러나 타락하여 죄인이 된 인간은 그 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된다라는 말 자체가 모순입니다. 죄인이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고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으면 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타락고 주어진 율법은 그것을 지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3장 20절.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다른 방식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바라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06:41) 로마서 3장 21 22절. 둘째로 은총에 덕은 상태입니다. 인간의 모든 본성은 죄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두 죄에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장 10절 누구도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의인 혹은 의로운 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출굽기 23장 8절 마태복음 5장 45절 히브리서 11장 4절 이것이 노아의 조건이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 창세기 6장 9절 그러나 노아가 절대적인 의미에서 완전한 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그가 그렇게 완전한 자였다면 왜 술의 취에서 벌거벗었을까요? 왜 그 일로 작은 아들을 저주했을까요? 창세기 9장 21절부터 25절.
(07:41) 당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의인이라는 뜻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덕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세기 6장 8절. 따라서 노아에 대한 과분한 평가는 노아의 의로움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홍수의 심판으로부터 살아남은 것도 하나님의 은총 때문이었고 의인이요 당대 완전한 자라는 인정을 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것도 은총 때문이었습니다. 시인은 이한 의에 대해 말합니다. 허물의 사을 받고 자신의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32편 1절. 이것은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의와는 다른 것입니다.
(08:30) 하나님의 은총으로 얻는 의입니다. 용서하시는 사랑으로 얻는 의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떻게 획득될까요? 율법에 부합한 상태가 의라면 그렇지 못한 상태는 불의입니다. 그런데 만약 불의가 징벌받지 않고 방치된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믿을 것입니다. 따라서 의인은 그런 불리를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실상 하나님 없는 세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의를 지지하시면 용서할 용서가 설자리가 없고 용서하는 사랑을 지지하시면 의가 설자리가 없습니다. 이에 대해 아우고스티누스는 자신의 명쾌하게 말합니다.
(09:28) 하나님은 인간의 지성이 그분께 참여하여 지혜로워지듯이 당신의 지혜에 참여하여 지혜로워지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정의에 관하여 말할 때는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의로우신 그 정의뿐만 아니라 불경견한 인간을 의롭다고 해 주실 때에 그에게 부여하신 정의도 하나님의 정의라고 한다. 위대한 교부가 말하고자 한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스스로 의로우신 것뿐만 아니라 죄인을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도 포함한다. 왜냐하면 둘 다 하나님의 단일한 의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행하시는 일들 중 의롭지 않은 일이 있다면 하나님 스스로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것입니다.
(10:18) 의롭지 않은 일을 행가하면 의로운 하나님이 의로운 하나님이실 수 없고 의로우시다면 의롭지 않은 일을 행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은총의 덕은 의는 인간이 타락하자마자 계시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21절 4장 4절 은통의 은총에 더 입은 일시적인 의입니다. 그것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이 제사 제도입니다. 제사를 통해 한시적으로 남아 의롭다 인정받아 교재할 길이 열어주신 교재할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믿는 자에게 주시려고 했던 영원한 의의 의의 애고편이었습니다. 시편 119편 142절 고린도후서 5장 21절. 이제는 율법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로마서 3장 21절.
(11:11) 구약의 제사 제도가 그것입니다. 죄가 재물에 전가됨으로써 재물은 죽고 헌제자는 죄사함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뇌기 4장 14절부터 20절. 잠시 의롭게 되는 제사의 경험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에서 의미가 찬란하게 드러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아들을 화목을 삼아 우리의 불류에 대한 갑을 치르게 하셨습니다.이는 하나님이 우리 죄를 간과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내는 또 다른 방법이었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 우리는 죄를 지울 수는 있었지만 그 대가를 치를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
(11:59) 친히 율법의 요구를 요구를 모두 이루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로마서 1장 4절. 십자가로 획득하신 의를 믿는 자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완전하고 영원한 의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4절.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라고도 하며 로마서 3장 22절 그리스도가 얻으셨고 처분할 수 있 처분하실 수 있기에 그리스도의 의라고도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1절 믿는 사람이 그 의를 받아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받습니다. 페이지 118페이지 중간 정도입니다. 의롭게 된 사람들은 하늘 자원을 공급받습니다. 신령한 은혜입니다. 그것으로 정의롭게 살아갑니다.
(12:45) 사랑으로 정의를 완성하며 살게 됩니다. 아모스서 5장 24절. 이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덕 입음으로 완전한 의가 되었습니다. 단번에 영혼이 의롭게 된 상태인데 이것이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로마서 3장 21절.이의 이의 때문에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의로운 삶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 것입니다. 은혜에 의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장 8절. >> 네. 김종금 목사님 읽을까요? 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두 방향에서의 의의 실현)

의롭게 된 신자가 불리한 현실을 만날 때 의해 줄이고 목마르게 됩니다.
(13:43) 이것을 크게 두 방향에서 일어납니다. 첫째 자신 안에서입니다. 거듭나는 순간 신자는 의로운 상태에 있고 하는 경향성을 부여받습니다. 그것은 약화될 수도 있 있어도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많이 느낄 때는 은혜 안에 있을 때이고 적게 느낄 때는 죄 가운데 있을 때입니다. 신자 안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거역하고자 하는 욕망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그런 자신을 발견할 때 애통합니다. 자기의 안에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는 자신 안에서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가 됩니다.
(14:38) 로마서 7장 21에서 24. 이런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둘째 사회 안에서입니다.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은혜는 주어진 것이지만 목적이 있습니다. 은혜받은 자뿐 아니라 모든 이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게 하심은 세상이 그리스도를 믿어 의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 하나님과 상관이 어 상관없이 살아가는 이웃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 때는 주님을 만났으나 지금은 멀리 떠난 지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혼자 믿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15:36) 가족이 지체가 이웃들이 모두 의에 이르기를 사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도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 갈망으로 애통하게 됩니다. 우리는 두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지만 육신으로는 세상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날마다 불리한 현실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세상을 매일 봅니다. 인간의 존음성이 짓밟히고 불리와 부패가치는 세상을 봅니다. 이런 세상에서 의에 대해 줄이고 목마르지 않다면 어찌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만큼만 자기 밖에 이루어지지 못한 의에 대해 아파 할 수 있습니다.
(16:30) 자기 때문에 세상이 티끌만큼이라도 의로워지기를 사모합니다.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찾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당신의 영광으로 가득차게 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우셨습니다. 그 안에 행복하게 하셨습니다.이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자연 만물을 선하게 돌보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과 사회 국가가 모두이 한 가지 목적을 향해야 합니다. 지금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17:22)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지만 여전히 창조의 창조 목적을 그스르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 세상을 향한 사탄의 지배력을 결정적인 타결받았습니다. 율법의 죄와 사탄의 세력을 무력게 우리를 거스리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물으로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하여 이기셨습니다. 골로서 2장 14에서 15절. 그러나 사탄은 영향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죄 짓고 불순종하는 신자들을 얼마든지 어둠속에 머물게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지배를 받는 세상은 하나님을 대항합니다. 그래서 발복음의 사람은 세상에 수능하며 살 수 없습니다.
(18:15) 완전히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억압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거슬려 살도록 강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불법과 불리에 한거할 것입니다. 모순을 고쳐 나갈 것입니다. 살아 있는 이유가 정의로운 세상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깨닫고 은혜를 받게 하시는 것은 그것을 저렇게 하심은 아닙니다. 세상 나라의 불리의 질서의 한가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 불리를 욕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의롭게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세상이 불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것은 입술에 침만 바리면 되지만 진리대로 살려면 때로는 피를 흘려하기 때문입니다.
(19:10) 편안하기를 포기하고 소회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비판받고 멸시 당하기를 각오해야 합니다.이 이 의가 세상에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영원히 변화되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은척으로 하나님의 의를 덮게 어 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자신처럼 하나님의 의를 의해 줄이고 목마른 자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 네. 목사님 >> 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만족.

어떤 물건을 어떤 물건을 갖고 싶었는데 좋은 경치를 감상하면 그 욕망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놀이에 빠지게 되면 울적했던 마음이 괜찮아지기도 합니다.
(20:10) 이처럼 어떤 욕망은 다른 즐김으로 대체됩니다. 그러나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배고 배고픔과 목마음입니다. 음식이 아니면 굶주임을 해소할 수 없고 물이 아니면 목마음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배부르기까지는 먹고 싶고 해결하기까지는 해갈하기까지는 마시고 싶은 욕구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의를 향한 신자의 갈망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배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그분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들이 배불를 끄심이요. 마태복음 5장 6절이 말씀은 모순처럼 들립니다. 줄이고 목마른 자가 어찌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한 사람 안에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이 배고프면서 배부르고 배부르면서도 배고픈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많이 먹었지만 배부르지 않고 가득차 있지만 비어 있고 만족하지만 늘
(21:16) 불만족스럽다는 말인데 이것이 그것이 가능할까요? 세상 사람들은 감각적 만족을 추구하며 늘 배고프고 목말라합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행복은 육체만을 사랑해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복된 자에게는 더 좋은 배고픔과 목마음이 있습니다. 의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을 추구하게 배우고 푸고 목마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영혼은 하나님 때문에 만족합니다.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배부름과 해갈람이 있습니다. 그는 의에 줄이고 목마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 때문에 만족을 누립니다.이 만족을 얻는 것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22:09) 첫째로 종말론적 만족입니다. 이것은 세상 끝날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질 때 누리게 될 만족입니다. 이것은 우주적으로 실현될 것입니다. 타락한 이후로 세상은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마귀의 지배는 불법입니다. 그것은 반역이고 죄는 그 죄를 따르는 그 반역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반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3장 8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마음에 적대감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7절.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의에 반역하는 감정입니다.
(23:00) 이것은 죄인의 감정과 의지입니다. 죄인은 의의 주 못말라 하지 않으니 오직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만 그러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의를 위해 싸우는 군대입니다. 전선은 세상과 하늘에 걸쳐 있습니다. 사령관은 그리스도이시니 그 싸움은 승리로 끝날 것입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의 의는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인간과 만물의 하나님 영광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0절. 그때 성도들은 최고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완전한 만족을 얻을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의인은 종의 빛같이 비치고 모든 피조물은 회복될 것입니다. 시편 37편 6절.
(23:48) 찬란한 영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더 이상 의에 줄이고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둘째로 현재적 만족입니다. 이것은 지금 여기에 실현됩니다. 아직 그 의인은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의를 추구하는 자에게는 영혼의 만족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이 땅에 의가 확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마음은 배부니다. 의를 추구하는 자에게 신령한 만족을 주십니다.이 만족은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연합에서 오는 평화의 기쁨입니다. 자신과 세상 안에 이록되는의 때문에 누리는 만족입니다. 시편 17편 15절. 확장되는 하나님의 통치 때문에 느끼는 행복입니다.
(24:35) 이것은 행복 자체이신 하나님으로 인해 누리는 행복입니다.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았을 때 왜 그토록 기뻐합니까? 자녀들이 회심했을 때 왜 그렇게 행복해 합니까? 이제는 그들이 의롭게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의 때문에 행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엉망금의 재산을 물려준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어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주기도문은 그리스도가 세상에 이루고 싶으셨던 초기 공동체의 이상을 보여줍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이 일치된 소원을 갖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25:23) 이것이 바로 의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장 9절에서 10절. 의에 줄이고 목마른 것은 세상이 아직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세상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세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쁨 의지 그리고 목적대로 된 세상입니다. 데살로니카전서 5장 18절. 골로새서 1장 1절. 사도행전 4장 28절.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렇게 살아갈 힘을 주십니다. 위로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신령한 방식으로 배부르고 해갈되게 하십니다.
(26:10) 이들은 자기 깨어짐으로 추루한 자기 사랑을 버립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깨어지는 것은 아프지만 거기서 다시 사는 것은 기쁨입니다. 기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그들은 이처럼 신령한 배부름을 경험합니다. 그들에게 슬픈 것은 사람들이 불리한 불리한 사랑하는 것이고 불리를 사랑하는 것이고 기쁜 것은 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신부를 믿습니다. 잠시 불리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이 특세하지만 하나님은 진노를 통해서라도 바로 잡으십니다. 로마서 1장 18절. 결국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26:53) 의에 줄이고 목말러하던 자들은 최고의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계시록 2장 26절 12장 5절. 이런 승리를 확신한 자들에게는 현재적인 위로가 있습니다. 그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봅니다. 거기서 예통하는 마음은 유로를 얻고 굶주인 마음은 배부르게 됩니다. 번역하는 태평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때도 의에 줄이고 목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세상을 그려워하였습니다.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단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런 갈망이 있습니까? 세상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열망이 있습니까? 불리한 세상을 보며 가슴 아파합니까? 그 일을 위해 피묻은 복음을 전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없이 여김을 받는 현실을 보며 의에 줄입니까? 인간의 존놈성이 집밟히는 현실을 바라보며 정의에 목마릅니까? 처음 회심했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27:53) 의를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불순종하는 자신이 미웠습니다. 그때는 남이 모르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습니다.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라. 시편 119편 50절.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바로 그것을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때처럼 갈망합니까? 의에 줄이고 목마릅니까? 불리를 미워하고 정의를 간구합니까? 여전히 죄를 버리고 은혜를 받고 싶어합니까? 처음 회심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십시오.
(28:36)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사십시오. 먼저 자신 안에 그 나라가 이루어지길 바라십시오. 온 세상이 의가 온 세상이 의를 바라게 되기를 사모하십시오. 아무도 알 수 없는 평화 만족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는 >> 말네 >> 김 목사님 >>

맺는말

세상 사람들도 목마르고 배고파합니다. 만족을이 세상에서 찾기에 영혼의 만족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기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줄임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가람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아모서 8장 11절 세상 것들로 줄인 배를 채우려 합니다. 그러나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차지 않습니다. 전도서 1장 8절.
(29:34) 믿음으로 의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불신앙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 한 때는 우리도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셨습니다. 의를 위해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던 나그네 같던 우리를 돌이키셨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 은혜를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한 자들의 악한 행실로 고통하던을 건져주셨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7절. 하나님의 의를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 길의 끝이 너무 멀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에 줄이고 목말라 하는 우리와 같이 계실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한눈에 보는 5장
1 들어가는 말
온 사람의 부드러운 것은 연약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 안에 의를 향한 열망이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열망이 거칠고 포악한 성품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의에 줄이고 복 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6절
2. 의의 개념
의롭다는 것은 다음 개념이다.
첫째로 율법에 부합한 상태이다.
하나님의 뜻은 율법 복음을 통해 드러났다.
그것을 온전히 준수할 때 의롭게 된다.
둘째, 은총에 덕은 상태이다.
죄로 인해 온전히 율법을 실천할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죄와 허물을 가려 주신다.
그때 인간은 의롭게 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를 온전히 이루셨다.
그 의를 당신이 믿는 자에게 나눠 주신다.
이것이 궁극적인 의에 나타납니다.
3. 두 방향에서의 의의 실현.
첫째로 자기 안에서이다.
신자에게서 하나님을 거치려는 성향이 있다.
그것을 발견할 때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가 된다.
둘째로 사회 안에서다.
신자는 이 사회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 기억하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게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발견할 때 애통하지 않을 수 없다.
4. 의를 추구하는 자의 만족.
의에 갈급한 사람은 만족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배부릴 것이요. 마태복음 5장 6절.
이 만족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우유적으로 실현된 종말론적 만족이다.
재림의 날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을 사라질 것이다.
둘째로 지금 이곳에 실현될 현재적 만족이다.
신자는이 땅에서 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5. 맺는 말.
삶의 방향이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삶은 허무하게 될 것이다.
의를 추고함으로 영혼의 참된 배분을 경험하게 하길 바란다. 아멘.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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