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가 번제를 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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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지난 주에는 노아의 인내를 살펴보았습니다. 그의 인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인내는 손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내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인내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섬기는 일을 힘겹고 고난이 다가와도 계속 하는 인내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렇게 인내함으로써, 하나님은 노아를 통하여 새로운 인류와 새로운 세상을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하나님은 노아의 마음에 하나님께 예배할 마음을 주셨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또 하나님이 천지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순종하겠다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 우리의 예배를 다시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예배는 우리가 할 일을 다한 후에 남은 시간에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예배는 새로운 삶의 시작에 있어서 가장 먼저 드려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그도 삶의 자리가 옮겨질 때마다 거기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는 일주일의 마무리가 아니라, 일주일의 시작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주일예배는 참 중요합니다. 단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간이라서라기 보다는 한 주의 시작을 하나님께 경배함으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지요.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얼마나 소망없는 존재였으며 비참한 존재였는지를 그 날 다시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 1부를 “인간의 비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자신의 비참한 과거를 잊지말라는 것이지요. 그것을 기억했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다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일 예배가 그 은혜를 다시 기억하는 예배가 되지 못하고, 종종은 자신의 능력이나 자격을 자랑하는 육적인 예배로 전락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예배는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자기를 예배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예배하도록 강요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상한 심령, 통회하고 자복하는 마음으로 준비되지 않은 예배는 참된 감사를 잃어버리고 종교적인 형식만 남는 예배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또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지난 한 주간 세상 속에서 진리를 알고 진리에 순종하는 복된 삶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또 다시 실패하고 죄 가운데 걸었던 나의 못말리는 죄성을 깨닫는 것이지요. 그래서, 회개와 감사가 교차하는 그 지점이 참된 예배의 자리가 되고, 그 예배가 우리 삶을 새롭게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일예배만 중요한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일예배가 가장 중요하다면, 나머지는 더 드릴 수록 좋은 것이지요.
노아는 제사를 드릴 때에 아무 동물이나 잡아서 제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했다고 합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듯이 아직 율법이 이르지 않았을 때이므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구별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암수 쌍을 일곱쌍으로 정하시고, 일곱쌍 씩 보내주셨으므로, 노아는 무엇이 정결한 지 무엇이 부정한 지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제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별하여, 번제로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모두 태웠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완전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물론, 아직 율법이 주어지기 전이므로, 다른 제사법이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도 등장했지만, 처음부터 사람들은 번제라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왔습니다. 나중에 율법이 그 제사법을 율법으로서 설명한 것이지요.
성경의 정경화 과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미 성경은 두루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경의 목록을 주요한 성경으로서 사용하고 있었지요.
구약성경은 최종적으로는 AD 90년 유대인 랍비들의 모임인 얌니아(Jamnia) 공의회에서 총 39권을 구약의 정경으로 최종 확정했습니다. 구약성경은 이미 유대인들 사이에서 성경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BC 3세기에는 그리스어로 번역됐는데요. 이를 ‘70인역’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채택할 때에는 이미 교회에서 27권을 정경처럼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의 과정에 있었던 것이지, 교회가 선택하여 27권을 정한 것이 아닌 것이지요. 그래서, 개혁 교회는 성경의 정경화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카톨릭은 교회가 정경을 정하였으므로, 무엇이 정경이 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권한이 교회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사제들이지요.
어쨌든, 번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처음부터 하나님께 드리던 제사법이었습니다. 그 제사법은 완전한 헌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물을 완전히 태움으로서 나는 그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낮아지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고백으로 그분께 완전히 헌신하는 예식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예배가 이런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분을 믿고, 그분이 하신일에 감격하고, 또 그분이 하실 을을 기대하며 내 삶을 완전히 그분께 헌신하는 예배. 얼마나 위대하고 감격스러운 예배입니까?
그런, 참된 예배를 하나님은 기쁘시게 받으신다고 합니다. 그 거룩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은 진노와 심판의 눈을 거두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비와 사랑을 내려주십니다.
창세기 8장 22절은 저주의 선언이 아니라, 저주받은 땅 위에 주어진 하나님의 보존의 은혜입니다. 인간의 죄는 여전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질서를 거두지 않으시고 다시 씨를 뿌리고 거둘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그의 일반은총, 일반은혜를 거두시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홍수와 같은 일반적이지 않은 대재앙이 자주 일어난다면, 예측이 불가하다면 우리의 삶은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도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찬양: 하나님의 부르심 (진정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우리의 예배가 예배되게 하옵시고, 예배를 통해 감사와 헌신이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말씀사역자를 위한 기도
개인과 가정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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