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ntity -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나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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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새 학기 첫날, 처음 보는 친구들 앞에서 "자기소개 한번 해볼까?"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경험, 다들 한 번씩 있죠? 그 짧은 1분 동안 우리는 별걸 다 끌어모읍니다. 이름, 사는 동네, 좋아하는 아이돌, MBTI, 게임 닉네임… 어떻게든 "나는 이런 사람이야"를 보여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한번 솔직하게 생각해 볼까요? 그것들이 정말 '나'일까요? 좋아하는 아이돌은 1년 뒤에 바뀔 수도 있어요. 성적은 시험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죠. SNS의 '좋아요' 숫자는 어떤 날은 나를 띄워 주다가, 어떤 날은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듭니다. 친구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내가 진짜 별로인가' 싶어 하루 종일 마음이 무너진 적, 없었나요?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를 내 힘으로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남보다 더 잘해서, 더 많이 가져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줘서 '괜찮은 나'를 스스로 증명하려고 애써요. 마치 내가 무언가를 잘 해내야만, 어떤 기준을 채워야만 비로소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내가 만들고 내가 채워서 세운 나는, 너무나 쉽게 흔들립니다.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무너지고, 남보다 못해 보이면 금세 초라해지죠. 내가 세운 거라서, 그 기준이 흔들리면 나도 같이 흔들리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전혀 다른 답을 주십니다. 내가 만들지도, 내가 채우지도 않은, 그래서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답을요. 광야 한복판, 시내산 앞에 선 한 백성에게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세요. "너는 이런 사람이다." 그리고 그 선언은 3,500년의 시간을 건너서 오늘 이 자리, 바로 여러분에게까지 그대로 도착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의 확신이 여러분 마음에 단단히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
본론 1 — 하나님이 먼저 너를 업어 오셨다 (4절)
본론 1 — 하나님이 먼저 너를 업어 오셨다 (4절)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지난 주 내용을 살짝 되짚어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난주에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나죠? 바로 '유월절'이었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그 피 덕분에 죽음이 그 집을 넘어갔던 그 밤 말이에요. 바로 그날 밤, 사백 년이 넘도록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은 마침내 애굽을 빠져나옵니다. 뒤쫓아 온 애굽 군대 앞에서 홍해가 쫙 갈라지고, 그들은 마른 땅을 밟고 바다를 건넜죠. 그리고 광야를 걷고 또 걸어요.
그렇게 애굽을 나온 지 석 달째 되던 날, 이스라엘 백성은 마침내 시내 광야에 도착해 산 앞에 장막을 칩니다. 모세가 산에 오르자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몇 장에 걸쳐 길고 긴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말씀 가운데, 하나님이 가장 먼저 꺼내신 한마디가 무엇인지 보십시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출 19:4)
하나님은 "이야! 너희 대단해! 어린 양의 피도 발랐고, 홍해도 건너 오다니! 너희가 대단히 잘했다!”라고 시작하지 않으세요. 뭐라고 시작하십니까? “너희가 너희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업어서 데려왔다"로 시작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에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 하나 숨어 있는 걸 꼭 보셔야 합니다. 바로 '독수리 날개로 업었다'는 표현이에요.
독수리가 어떤 새인지 한번 떠올려 보세요. 하늘 가장 높은 곳을 가르며 나는, 새 중에서도 가장 힘세고 위엄 있는 새잖아요. 그런데 그 강하고 당당한 독수리가, 가장 연약한 자기 새끼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지 신명기 32장 11절이 자세히 그려 줍니다.
어미 독수리는 먼저 둥지를 흔들어 새끼를 둥지 밖으로 내보내요. 그리고 새끼 위를 빙빙 맴돌며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봅니다. 그러다 아직 날갯짓이 서툰 새끼가 그만 균형을 잃고 아래로 뚝 떨어지려는 순간, 쏜살같이 날아 내려가 자기 날개를 쫙 펴서, 떨어지는 새끼를 받아 자기 등에 업어요. 땅에 닿기 직전에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지 않나요? 그렇게 받아 줄 거면, 애초에 왜 둥지에서 내보내는 걸까요? 그냥 따뜻한 둥지 안에 가만히 두면 안전할 텐데요. 그런데 바로 거기에 어미의 사랑이 있어요. 새끼를 둥지 안에만 두면, 그 새끼는 평생 날지 못하거든요. 좁은 둥지 안에서 그저 작은 새로 머물고 말죠. 어미는 자기 새끼가 저 넓은 하늘을 마음껏 나는, 자기처럼 당당한 독수리로 자라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래서 떨어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새끼를 기어이 둥지 밖으로 내보냅니다.
대신 어미는 그 새끼를 결코 혼자 두지 않아요. 떨어지는 순간마다 어김없이 자기 등으로 받아 냅니다. 그런데 새끼를 자기 등에 업는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그건, 앞으로 무슨 위험이 닥치든 어미가 그걸 먼저 다 맞겠다는 거예요. 화살이 날아와도, 매서운 바람이 몰아쳐도, 등에 업힌 새끼에게 닿으려면 어미를 먼저 뚫어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새끼에게는,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저 하늘 한복판이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리인 거예요. 바로 어미의 등 위, 어미의 날개 위니까요.
이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끌어내신 방식이에요. 열 가지 재앙도, 갈라진 홍해도, 광야의 만나도, 전부 이스라엘이 잘나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한 거라곤 노예로 신음한 것밖에 없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날개를 펴서 업고 오신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절대 놓치면 안 되는 단어가 하나 있어요. 하나님이 "업어" 어디로 데려왔다고 하시죠? "내게로"예요.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 잘 보세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꺼내신 목적이 단지 좋은 땅 가나안에 데려다 놓으시려는 게 아니었어요. 목적지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진짜 원하신 건, 좋은 선물을 손에 쥐여 주는 게 아니라 너를 당신 곁에, 당신 품에 두시는 거였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주시기 전에, 먼저 여러분 자신을 원하세요.
여러분, 그래서 이 모든 게 우리한테 왜 중요할까요? 바로 우리의 정체성 때문이에요. 정체성은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게 아니라, 나를 데려오신 분이 정해 주신다는 거예요. 노예가 스스로 자유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 그를 사서, 풀어 주고, 데려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내가 너를 업어 왔다"고 못을 박으세요. 은혜가 먼저입니다. 자격이 아니라 은혜가요.
혹시 오늘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 같아'라는 생각에 눌려 있는 친구가 있다면 기억하세요.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예배드리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여러분을 날개로 업어 여기까지 데려오셨다는 증거입니다.
본론 2 — 그래서 너는 이런 사람이다 (5-6절)
본론 2 — 그래서 너는 이런 사람이다 (5-6절)
업어서 데려오신 하나님이, 이제 광야에 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말이에요. 세 가지인데, 하나하나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어마어마합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 19:5-6)
첫째, '내 소유' — 하나님의 보물입니다.
5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소유'라고 부르세요. 이 '소유'라는 말, 히브리어로 '세굴라'라고 하는데, 그냥 "내 거"가 아니에요. 왕이 온 나라의 금은보화를 다 가지고 있어도, 그중에서 딱 하나, 가장 아끼는 것만 따로 떼어 자기 금고에 넣어 두는 게 있죠. 그게 '세굴라'예요. '보물 1호'라는 뜻입니다. 바로 앞에서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죠?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 온 우주가 다 하나님 거예요. 그런데 그 모든 것 중에서, 하나님은 노예살이하다 갓 빠져나온 이 작고 보잘것없는 민족을 콕 집어 "이건 내 보물이야"라고 하신 거예요.
둘째, '제사장 나라' — 세상을 향한 통로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잇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몇몇 사람만 제사장 삼은 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제사장 나라"라고 부르세요. 무슨 뜻일까요? 이 백성이 세상 모든 민족을 향해 하나님을 보여 주는 통로, 하나님의 대표선수가 된다는 거예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보고 "저 민족은 좀 다르네, 저들이 믿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지?"라고 궁금해하게 만드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물로 삼으신 건, 그들만 예뻐하고 끝내시려는 게 아니에요. 그들을 통해서,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온 세상에 그 사랑을 흘려보내시려는 거였어요.
셋째, '거룩한 백성' — 따로 구별된 자입니다.
'거룩'이라고 하면 뭔가 엄숙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죠? 그런데 '거룩'의 원래 뜻은 '따로 구별되었다'는 거예요. 백화점에 똑같은 인형 백 개가 진열돼 있는데, 그중 하나를 누가 사서 "이건 내 거야" 하고 데려가면, 그 인형은 더 이상 진열대의 인형이 아니에요. 주인이 정해진, 구별된 인형이 되는 거죠. 이스라엘도 그래요. 세상 수많은 민족 속에 섞여 살지만, 세상에 속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 따로 구별된 백성인 거예요.
보물이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라니. 광야에서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은 정말 어마어마한 존재였네요. 그런데 여기까지 들으면 여러분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슬며시 들 수 있어요. "좋네요. 근데 그거 다 3,500년 전, 저 멀리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얘기잖아요.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들어 보세요.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로부터 1,500년이 흐른 뒤에,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바로 그 말씀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는 거예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보이세요? 보물, 제사장, 거룩한 백성.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붙여 주셨던 바로 그 이름표를, 베드로가 지금 누구에게 붙여 주고 있나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바로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이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빠져나왔듯이, 우리는 더 깊은 어둠인 죄에서 빠져나왔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업어, 어둠에서 그분의 빛으로 데려오셨거든요. 그러니 이 어마어마한 선언은, 옛날 옛적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 여기 있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본론 3 — 그 조건, 예수님이 다 지키셨다 (5절)
본론 3 — 그 조건, 예수님이 다 지키셨다 (5절)
자,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정직하게 마주해야 할 게 하나 있어요. 5절을 다시 보면 분명히 조건이 붙어 있죠.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보물이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데에 "~하면"이라는 조건이 달려 있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의 약속이 거의 그래요. 과거 강도사님이 어릴 적에 어머니하고 약속했던 것이 있었는데, “새벽기도 나가면 용돈 줄게"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이 약속에는 '새벽기도 참석’이라는 조건이 붙고, "시험 잘 보면 핸드폰 바꿔 줄게"라는 약속에는 '성적'이라는 조건이 붙죠. 하나님의 약속에도 조건이 붙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
그런데 오해하면 안 돼요. 이 "듣고 지키라"는 게 무슨 복잡한 규칙을 백 개쯤 외워서 하나도 안 틀리고 다 해내라는 게 아니었어요. 이 말씀을 주실 때는 아직 십계명도 주어지기 전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규칙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어요. 너를 업어서 여기까지 데려온 이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신뢰하며 따라오라는 거였죠. 그런데 한번 물어볼게요. 이스라엘은 그 신뢰를 끝까지 지켰을까요?
놀랍게도 그들은 자신만만했어요. 바로 몇 절 뒤, 출애굽기 19장 8절에서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외칩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우리가 다 지키겠습니다! 그런데 그 다짐이 얼마나 갔을까요? 두 달도 못 갔어요. 모세가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동안, 산 아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럼 이스라엘이 유난히 한심했던 걸까요? 아니에요. 솔직하게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는 하나님 한 분만 끝까지 믿고,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따라갈 수 있나요? 한 주는커녕 하루도 어렵습니다. 정직하게 인정해야 해요. 우리도 그 신뢰를, 그 충성을 끝까지 못 지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영 보물이 될 수 없는 걸까요?
바로 여기서 복음이 터집니다. 들어 보세요. 우리가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그 조건을, 예수님이 우리 대신 다 채우셨어요.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죠?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5:17)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가 평생 단 하루도 못 지킨 그 조건을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완벽하게 지키셨어요.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치십니다.
"다 이루었다" (요 19:30)
다 이루었다. 너희가 채워야 할 조건을 내가 다 채웠다는 선언이에요. 그래서 조건이 뒤바뀝니다. 예전에는 "내가 다 지켜야" 보물이 되는 거였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다 지키셨으니" 그분을 믿는 우리가 보물이 되는 거예요. 무거운 짐이 우리 어깨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옮겨진 겁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 이야기를, 우리가 앞에서 본 그 편지에서 이렇게 이어 갑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4-5)
보세요. 우리가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길은 우리가 완벽해져서가 아니라,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서"예요. 그러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완벽해지려고 발버둥 치며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랑에 감사하며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겁니다.
그러면 "내 말을 듣고 지키라"는 말씀은 더 이상 무거운 짐이 아니에요. 보물이 되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이미 보물이 된 사람이 사랑에 응답하며 사는 길이죠.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아 보려 애쓰는 거예요. 물론 우리는 또 넘어질 겁니다. 그런데 기억하세요. 넘어진다고 신분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떨어지는 새끼를 다시 날개로 받아 올리는 어미 독수리처럼,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다시 업어 올리시니까요. 우리가 잘나서 보물인 게 아니라, 우리를 업어 오시고 그 조건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님 때문에 보물인 겁니다.
결론 — 이제 대답할 수 있다
결론 — 이제 대답할 수 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처음에 제가 던졌던 질문, 기억나세요? "넌 누구야?" 자기소개 시간에, SNS 앞에서, 친구의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흔들리던 그 질문 말이에요.
이제 우리는 그 질문 앞에 당당히 대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성적표로 여러분을 평가하려고 합니다. '좋아요' 숫자로 여러분의 값어치를 매기려 하고, 외모로, 친구가 몇 명인지로 여러분의 등급을 나누려고 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떤 것으로도 여러분을 저울에 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을 향해 "너는 내 보물이다"라고 선언하셨어요. 성적이 바닥을 쳐도, '좋아요'가 단 하나도 없어도, 온 세상이 다 등을 돌려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 이름입니다. 내가 잘나서 얻어 낸 게 아니라, 예수님이 내가 도저히 못 채운 그 조건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거저 주어진 이름이니까요.
그러니 여러분, 이제 세상이 다가와 "넌 별 볼 일 없어, 넌 부족해, 넌 안 돼"라고 속삭일 때마다, 절대 주눅 들지 마세요. 그 거짓말 앞에서 고개를 들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이 독수리 날개로 업어 데려오신 사람이야. 나는 온 우주에서 하나님이 따로 떼어 두신 보물 1호야. 나는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 주는 제사장이고, 하나님께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야. 이건 내가 만든 게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붙여 주신 이름이야. 그러니까 나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아!"
여러분, 이 고백은 그냥 기분 좋으라고 외워 두는 주문이 아니에요. 삼천오백 년 전 시내산에서, 그리고 이천 년 전 그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이 친히 피로 증명하신 진짜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가지만 더 기억하세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물 삼으신 건, 그저 안전하게 곁에 두고 예뻐하시려는 것만이 아니었어요. 오늘 우리가 봤듯이, 여러분은 보물인 동시에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 주는 '제사장'이고,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잖아요. 그러니 이 흔들리지 않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제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인정받으려고 더는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하나님께 보물로 인정받았으니까요. 오히려 그 받은 사랑이 흘러넘쳐서, 아직 그 사랑을 모르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고, 세상 모두가 휩쓸리는 미움이나 따돌림이나 거짓말에 똑같이 휩쓸리지 않고, 조금 다르게 살아갈 힘이 생기는 거예요. 그게 바로 보물답게, 제사장답게, 거룩한 백성답게 사는 거죠.
이번 한 주, 거울 앞에 설 때, 시험 점수에 마음이 무너질 때, 친구 때문에 속상해 잠 못 드는 밤에, 이 이름을 꼭 꺼내 보길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의 보물이다." 그리고 그 이름값을 하며, 받은 사랑을 주변에 흘려보내며, 흔들리는 세상 한복판을 누구보다 당당하게 걸어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