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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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7:1-16)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7:1-16)
설교의 요점 (핵심 메시지)
설교의 요점 (핵심 메시지)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우리는, 결혼에서도 독신에서도 부부 관계에서도, "내 권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내어주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나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론
서론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내 몸은 내 것입니다."
내 몸은 내 것. 내 인생은 내 것. 내가 누구를 만나든, 어떻게 살든, 그건 내 자유입니다. 아무도 간섭하지 마라. 이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목소리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자기 것을 이렇게 강하게 주장하는 시대인데,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롭습니다. 관계는 깨지고, 가정은 흔들리고, 마음은 더 공허해집니다. 내 것을 꽉 쥐었는데, 손에 남은 것은 외로움입니다.
이천 년 전 고린도라는 도시가 꼭 그랬습니다. 항구 도시였고, 성적으로 문란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고린도 사람처럼 산다"는 말이 "방탕하게 산다"는 욕이었을 정도입니다. 그 도시 한복판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인들 안에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한쪽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 내 몸은 내 마음대로"라고 했습니다. 또 한쪽은 정반대였습니다. "거룩하려면 몸을 멀리해야 한다. 부부라도 잠자리를 멀리하는 게 더 영적이다." 한쪽은 방종, 한쪽은 금욕. 정반대 같지만 뿌리는 똑같습니다. 둘 다 "내 몸은 내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교회가 바울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결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부 관계는요? 독신은요? 믿지 않는 남편, 믿지 않는 아내는 어떻게 합니까? 오늘 본문이 그 답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대답은, 바로 앞 6장 마지막 한 문장 위에 서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 6:19-20).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바 되었다. 이 한 문장이, 우리의 몸과 결혼과 인생을 전부 다시 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한 마디를 붙들고 싶습니다.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이것을 세 번 말합니다. 내 몸도, 내 형편도, 내 결혼도, 내 것이 아닙니다.
대지 1. 내 몸은 내 것이 아닙니다 (1-7절)
대지 1. 내 몸은 내 것이 아닙니다 (1-7절)
[설명]
먼저 1절을 보십시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니라." 이것은 바울의 주장이 아닙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고린도 교인들이 내세우던 구호를 바울이 인용한 것으로 봅니다. "가까이하다"는 부부의 잠자리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즉 "부부라도 몸을 멀리하는 게 더 거룩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바로잡습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말을 합니다. 3절과 4절을 들어 보십시오.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들으셨습니까. 부부의 몸은 누구의 것입니까. 내 것이 아닙니다. 아내의 몸은 남편의 것이고, 남편의 몸은 아내의 것입니다. 서로의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충격적인 말이었을까요. 바울이 살던 시대는 철저히 남성 중심 사회였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소유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똑같이 말합니다. 남편의 몸도 아내의 것이라고. 완벽하게 동등하게. 이것은 그 시대를 뒤집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5절. "서로 분방하지 말라." 이 '분방하다'는 말의 원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빼앗다, 도둑질하다'**입니다. 배우자에게 마땅히 줄 것을 주지 않는 것은, 그냥 소극적인 게 아닙니다. 도둑질입니다. 상대의 것을 훔치는 것입니다.
[예증]
이것은 사실 새로운 가르침이 아닙니다. 창세기에 이미 있습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한 몸. 내 것이 따로, 네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바울은 나중에 에베소서에서 더 분명히 말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 5:28). 아내를 사랑하는 게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한 몸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묻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집중하려면, 몸의 것들은 멀리하는 게 더 영적이지 않습니까?" 고린도 교인들의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바울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아니다. 5절을 다시 보십시오. 기도하기 위해 잠시 떨어지는 것은 좋다. 그러나 합의 하에, 잠시 동안만이다. 그리고 다시 합하라. 영성을 핑계로 배우자에게서 도망치지 마라. 그것은 거룩함이 아니라 도둑질이고, 사탄에게 문을 열어 주는 일이다.
진짜 영성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람에게서 도망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람에게 나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부로 사시는 분들께 묻습니다. 우리는 결혼 생활에서 무엇을 세고 있습니까.
많은 부부가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나는 이만큼 받았는데. 손해 보는 것 같은데." 마음속에 장부를 펴 놓고, 주고받은 것을 적습니다. 받은 게 적으면, 나도 안 줍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말을 끊고, 침묵으로 벌을 줍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것을 뭐라고 부릅니까. 도둑질입니다. 내가 줄 것을 주지 않고 쥐고 있는 것, 그것이 빼앗는 것입니다.
오늘 집에 돌아가시거든, 계산기를 내려놓으십시오. "내가 무엇을 받을까"를 묻지 말고, "내가 무엇을 줄까"를 물으십시오. 따뜻한 말 한마디, 먼저 건네는 손길,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여는 일. 아주 구체적으로, 오늘 저녁에 하십시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내 배우자가 그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값으로 사신 바 되었고, 그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나는 이제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연결) 그런데 이렇게 물으실 분이 계실 겁니다. "저는 결혼하지 않았는데요. 이 말씀이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본문은 바로 그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대지 2. 내 형편은 내 것이 아닙니다 (7-9절)
대지 2. 내 형편은 내 것이 아닙니다 (7-9절)
[설명]
7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모두가 자기처럼 독신으로 지내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여기서 '은사'라는 단어를 잘 보십시오. 헬라어로 카리스마(χάρισμα),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무엇이 선물입니까. 독신도, 결혼도, 둘 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바울은 둘 사이에 등급을 매기지 않습니다. "독신이 더 영적이다" 하지 않습니다. "결혼이 더 정상이다"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 은사가 있다.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다.
그리고 8-9절에서 결혼하지 않은 자와 과부에게 말합니다.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바울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독신을 미화하지도 않고, 결혼을 깎아내리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주신 자리입니다.
[예증]
예수님도 같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서,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독신으로 사는 자들에 대해 말씀하시며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마 19:12). 받을 만한 자는 받으라. 모두에게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독신이셨고, 바울도, 예레미야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혼을 하나님이 세우신 복으로 한결같이 높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독신을 이류 신자로, 결혼을 세속적인 삶으로 나누는 곳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 마음속 솔직한 질문을 다뤄 봅시다. 결혼하지 않은 분들은 종종 교회 안에서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 같다. 결혼하면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고, 진짜 인생이 시작될 것 같다." 마치 대합실에 앉아, 인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요.
본문은 그 생각을 정면으로 깨뜨립니다. 당신의 지금 형편은 대합실이 아닙니다. 선물입니다. 결혼이 시작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가 하나님이 주신 자리입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어디에서도 "결혼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독신이라는 자리에서, 온 세계를 누비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음이 나뉘지 않은 자로서, 오직 주께 헌신했습니다(고전 7:32-35 참고).
[적용]
그러니 결혼하지 않은 성도 여러분, 오늘 한 가지를 결단하십시오. 인생을 멈춰 세우지 마십시오. "결혼하면 그때부터"라고 미루지 마십시오. 지금 가진 자유를, 지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십시오. 섬길 수 있는 시간, 헌신할 수 있는 에너지, 마음이 나뉘지 않은 그 집중력. 그것이 선물입니다. 지금 사용하십시오.
그리고 결혼하신 성도 여러분, 결혼이 영적 자유를 잃은 자리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그 가정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그것도 똑같이 거룩한 선물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비교를 멈추는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은 독신을 부러워하고, 독신은 결혼한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불만이 우리 마음을 갉아먹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 4:11).
내 형편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받은 선물입니다. 그러니 옆 사람의 손을 보지 말고, 내 손에 쥐어 주신 선물을 감사함으로 펴 보십시오.
대지 3. 내 결혼은 내 것이 아닙니다 (10-16절)
대지 3. 내 결혼은 내 것이 아닙니다 (10-16절)
[설명]
이제 가장 어려운 대목입니다. 10절부터 바울은 이혼 문제를 다룹니다. 그리고 결혼한 자들에게 명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특별히 보십시오. 바울은 이것이 자기 의견이 아니라 "주께서 명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 결혼은 사람이 끊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더 어려운 경우가 12절부터 나옵니다. 한쪽은 믿고, 한쪽은 믿지 않는 가정. 회심한 후에 한 사람만 신자가 된 경우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믿지 않는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원하거든, 믿는 사람이 먼저 버리지 말라.
그 이유가 14절에 나옵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너희 자녀도… 거룩하니라." 여기서 '거룩하게 된다'는 말은 자동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가정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향 아래 놓인다는 뜻입니다. 신자인 당신은, 그 집을 더럽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집을 거룩하게 하는 통로입니다.
그러나 15절. 믿지 않는 사람이 끝내 떠나려 하거든, 떠나게 하라. 그런 경우에는 "얽매일 것이 없느니라." 그리고 이 단락 전체를 묶는 한 마디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예증]
초대 교회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2세기에 쓰인 한 글이 있습니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문서인데, 거기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은 다른 모든 사람처럼 결혼하고, 다른 모든 사람처럼 식탁을 나눈다. 그러나 그들은 잠자리를 함께 나누지 않는다."
무슨 뜻일까요. 당시 로마 사회는 부부의 정조가 무너진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음식은 이웃과 나누어도, 부부의 신실함만큼은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 신실함 자체가 세상을 향한 증거였습니다. 깨어지는 세상 한복판에서, 흔들리지 않는 가정. 그것이 복음의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마음의 무거운 질문을 정직하게 다뤄 봅시다. 믿지 않는 배우자와 사는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사람과 살면 내 신앙이 더러워지는 것 아닐까. 차라리 떠나는 게 거룩하지 않을까."
본문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당신은 더럽혀지는 사람이 아니라, 거룩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16절에서 바울은 소망의 문을 활짝 엽니다. "네가 네 남편을 구원할는지…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베드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말없이도, 행실로 남편을 얻을 수 있다고(벧전 3:1-2).
[적용]
그러니 어려운 결혼 속에 계신 성도 여러분, 또 믿지 않는 배우자와 함께 사는 성도 여러분, 두 가지를 마음에 새기십시오.
첫째, 도망치려는 마음을 먼저 내려놓으십시오. 당신의 자리는 더러운 자리가 아니라, 거룩하게 하는 자리입니다. 오늘부터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인내하십시오. 말이 아니라 행실로, 그 집 안에서 복음을 살아 내십시오. 당신을 통해 그 영혼이 구원받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둘째, 그러나 당신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상대가 끝내 떠나기로 한다면, 모든 것을 당신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묶지 마십시오.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얽매일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내 결혼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해 있습니다. 신실함으로 부르셨고, 소망으로 부르셨고, 마침내 평화로 부르셨습니다.
전환
전환
지금까지 우리는 한 가지 진리를, 세 번 들었습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줍니다. 내 형편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독신도 결혼도 하나님의 선물로 감사히 받습니다. 내 결혼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실함과 평화로 부르신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세 가지가 다른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하나입니다.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결론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인생 전체를 한눈에 봅시다.
우리 시대는 외칩니다. "내 몸은 내 것이다." 그런데 내 것을 꽉 쥔 손에는, 외로움만 남았습니다.
복음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20절.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비싼 값으로 사신 바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 그분의 생명. 그 값으로 우리는 그분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자유롭게 내어줄 수 있습니다. 내 몸을 배우자에게, 내 형편을 하나님께, 내 결혼을 하나님의 손에.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은 자로서 기쁘게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시거든, 한 가지만 붙드십시오. 결혼하신 분은 오늘 저녁, 계산기를 내려놓고 먼저 내어주십시오. 혼자이신 분은 인생을 미루지 말고, 지금 가진 그 자리를 선물로 받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어려운 가정 속에 계신 분은, 도망치지 말고 거룩하게 하는 자로 서서, 그 집을 위해 무릎 꿇으십시오.
왜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한 문장 때문입니다. 오늘 이 한 문장을 가슴에 새기고 돌아가십시오.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나는 값으로 사신 바 된,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이제, 사랑하며 내어주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