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의(義)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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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로운 의(義)의 얼굴
제목: 새로운 의(義)의 얼굴
본문: 로마서 3장 21-31절
본문: 로마서 3장 21-31절
찬송: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찬송: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말씀의 문을 여며: 절망에 찌든 죄의 얼굴
말씀의 문을 여며: 절망에 찌든 죄의 얼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타인에게 들을 때 가장 불쾌해하고 본능적으로 방어벽을 세우게 만드는 말이 한 마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은 죄인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마주할 때 우리의 자존심은 격렬하게 요동칩니다.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치며 산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법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나를 죄인 취급하느냐"며 분노가 차오릅니다. 이러한 분노와 거부감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죄의 정체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동의 실수나 흠집 정도로만 좁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쳐 주는 진짜 죄의 깊이는 결코 도덕적인 수준에 머물지 않습니다. 죄란,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지 못하도록 내 마음의 보좌에서 밀어내고 가로막는 본질적인 영적 반역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내 삶의 중심에 계셔야 마땅함에도, 그분을 인생의 변두리로 밀어내고 내 자아를 우주의 중심에 올려놓은 채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려 했던 거대한 영적인 불순종,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입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모가 결국 시들어 죽을 수 밖에 없듯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했던 인간은 죄의 지배 아래 철저히 파산하여 영원한 진노와 정죄의 어둠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 절망적인 영적 파산의 법정 한복판에, 오늘 사도 바울은 온 우주를 흔드는 놀라운 소식을 선포를 합니다. 본문 21절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개역개정 성경에는 이제는 이라고 시작하지만, 헬라어 성경에서는 “그러나 이제는”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문법적 접속사가 아닙니다. 길고 어두웠던 정죄와 율법의 밤이 완전히 끝나고,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가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가 밝아왔음을 알리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기적과도 같은 은혜의 선포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보여주신 찬란한 “새로운 의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십자가 새긴 의의 얼굴
십자가 새긴 의의 얼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새로운 의는 내 힘으로 채우려던 인생 성적표를 다 지워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 24절과 25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임하기 전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증명해 보이기 위한 화려한 ‘인생 성적표’를 쓰기 위해 몸부림치던 존재들이었습니다. 예배 출석의 횟수, 헌금의 액수, 교회의 직분, 그리고 세상에서 행한 크고 작은 도덕적 선행들을 성적표 칸칸마다 빼곡하게 채워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당당히 들이밀며 "하나님, 제 성적표가 이만하면 합격증을 주실 만하지 않습니까?"라며 스스로를 구원해 보려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공로를 의지하던 비참한 율법의 시대, 행위의 시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눈부신 거울 앞에 서는 순간,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붙들고 있던 인생의 성적표는 온갖 위선과 이기심, 자기 자랑으로 얼룩덜룩해진 누더기 낙제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폭로될 뿐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그 성적표의 단 한 줄도 깨끗하게 채울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우리의 이 초라한 성적표를 가차 없이 찢어버리며, 우리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던 행위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자비하심에만 기대어 살아가는 은혜의 시대, 즉 선물의 시대로의 위대한 대전환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이 파격적인 은혜의 시대에 살게 된 원리를 바울은 노예가 해방되는 과정을 빌려 설명합니다. 24절에 나온 ‘속량’이란 말은 노예가 자유롭게 풀려날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바울이 살았던 당시 로마에서 노예들은 스스로 몸값을 지불하고 사슬을 풀 능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가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떤 부유하고 자비로운 대속자가 나타나 엄청난 양의 은을 몸값으로 노예를 관리하는 법정에 완전히 지불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대가가 완전히 치뤄졌을 때 그 노예의 소유권은 전 주인에게서 자비로운 대속자에게 이전되었고, 노예는 비로소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속량이라 합니다. 값을 그대신 갚아준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바로 죄와 사망의 사슬에 묶여 영원히 죽을 날만 기다리던 처참한 노예였습니다. 단 1원의 빚도 스스로 갚을 수 없던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라는 우주보다 무겁고 완전한 속량의 값을을 십자가 위에서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이 아들의 피 묻은 속전이 골고다 법정 위에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지불되었기에,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추악한 죄악을 법적으로 완벽하게 '간과', 즉 심판하지 않고 길이 참으시며 덮어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대충 타협하여 죄를 눈감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독생자에게 그 모든 죄의 진노를 완전히 쏟아부으심으로 성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확증하시는 동시에, 우리를 향한 완전한 무죄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나의 더러운 손으로 쓰던 인생의 성적표를 미련 없이 던져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적표를 보고 합격 여부를 결정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절망적인 손에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100점짜리 성적표가 담긴 ‘선물 증서’를 쥐여주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감격과 눈물로 그 은혜의 선물 증서를 가슴에 품고 기쁨으로 수령하면 됩니다. 이 값없는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아 누리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새로운 의의 얼굴입니다.
사랑이 피운 삶의 얼굴
사랑이 피운 삶의 얼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진정으로 통과한 성도는 방종의 유혹을 깨뜨립니다. 그리고 오직 사랑의 빚진 자로서 말씀 앞에 기쁘게 자발적 순종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 31절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로만 의롭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어리석고 영적으로 어두운 인간의 본성은 즉각적으로 율법이 필요 없고 도덕적 흠이 있어도 무방하다는 유혹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나님이 어차피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하시고 다 간과해 주셨는데, 이제는 내 욕심대로 대충 죄를 지으며 편하게 살아도 은혜로 구원받는 것 아닌가?"라는 악한 생각을 품는 것입니다. 이 생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구원파의 논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것은 골고다를 오르신 예수님의 보혈을 싸구려 면죄부로 전락시키는 가장 참담한 영적 타락입니다. 참된 십자가의 은혜를 통과한 성도는 결코 자신의 불의한 행실과 옛 자아의 죄악을 은혜라는 고귀한 이름 뒤에 숨겨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나를 영원한 죄악의 사슬 사슬에서 건져내기 위해 내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을 찢고 흘리신 그 뜨겁고 붉은 피가 지금 내 영혼의 이마에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 은혜를 발판 삼아 다시 더럽고 악취 나는 죄의 수렁으로 내 발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단 말입니까?
은혜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부추기는 방종의 허가증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생명을 던지신 그 엄청난 사랑에 가슴이 미어지고 압도당하는 사건입니다. 그 거대한 사랑의 사슬에 묶여, 감히 다시는 죄의 길로 발을 내딛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하고 거룩한 사랑의 결박입니다. 그래서 진짜 은혜를 경험한 영혼은 은혜를 알기 전보다 훨씬 더 거룩하고 흠 없는 삶을 열망하게 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믿음으로 율법을 파기하는 자들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온전히 굳게 세우는 자들입니다.
이 놀라운 순종의 비밀을 우리는 노예와 자녀의 비유를 통해 선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등 뒤에서 무서운 채찍을 들고 서 있는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억지로 밭을 가는 노예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 노예가 땀 흘려 일하는 유일한 이유는 매를 맞지 않기 위해서이고, 그 집에서 쫓겨나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행동은 철저히 두려움과 의무에 기반을 둔 종교적 행위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받아내기 위해 벌벌 떨며 종교적 형식을 지켜가던 옛 율법의 시대의 처참한 영적 초상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온 맘 다해 사랑하는 자녀는 완전히 다릅니다. 아버지가 등 뒤에서 채찍을 휘두르지 않아도, 어떠한 벌이나 정죄의 위협이 없어도, 자녀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순수한 사랑의 마음으로 스스로 집안일을 돕고 기쁜 얼굴로 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 드립니다.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흘러나오는 행위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며 억지로 복종하던 종교의 노예에서, 아버지의 거대한 사랑에 감격하여 기쁨으로 그분의 기쁨이 되기를 자처하는 자발적 순종의 자녀로 변화시켰습니다.
은혜는 결코 율법의 테두리를 무너뜨리는 무법함이 아닙니다. 도리어 율법의 자잘한 조항들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뜻을 더 깊고 풍성하게 이루어 냅니다. 우리 삶에 자발적이고 참된 순종의 꽃을 피워내는 것, 우리를 성화로 인도하는 그것이 바로 은혜라는 가장 강력한 뿌리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세상을 비출 참된 얼굴
말씀의 문을 닫으며: 세상을 비출 참된 얼굴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 찾아온 “새로운 의의 얼굴”은 내 행위의 완벽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를 죄의 노예 시장에서 사서 해방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얼굴이며, 우리의 더러운 이력서 대신 거저 쥐여주신 눈물의 선물 증서입니다.
그 파격적인 선물을 받아 은혜의 시대를 호흡하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자기 공로을 자랑하는 영적 교만을 멈추어야 합니다. 동시에 그 은혜를 값싼 면죄부로 삼아 방종하는 게으름과 거짓을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나를 자유케 하신 그 거룩하고 무거운 사랑의 사슬에 기꺼이 매여, 날마다 자발적인 사랑으로 주의 말씀을 온전히 세워가는 거룩한 자녀가 되기를 결단하십시오.
그리하여 두려움의 법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의 믿음의 법을 따라,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향기를 드러내며 온전한 순종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 스스로는 단 1원의 죄의 빚도 갚을 능력이 없어 사단의 쇠사슬 아래 영원한 파멸의 날만 기다리고 있을 때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시고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쏟아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완불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평생 동안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붙들고 있던 초라하고 거짓된 자기 공로의 성적표와 인생 이력서를 이 시간 주님의 십자가 발 앞에 완전히 내려놓게 하여 주옵소서. 내 의를 자랑하려던 모든 교만을 찢어버리시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 묻은 대속만을 의지하며 우리에게 값없이 쥐여주신 은혜의 선물 증서만을 가슴에 품고 감격하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님, 바라옵기는 우리가 값없이 받은 이 구원의 은혜를 방종과 게으름의 핑계로 삼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나를 살리시기 위해 찢기신 주님의 살과 흘리신 피의 무게를 날마다 기억하게 하시고, 그 거대하고 숭고한 사랑에 영혼이 압도되어 차마 죄의 길로 걸어가지 못하는 거룩한 사랑의 결박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형벌이 두려워 억지로 일하는 율법의 노예가 아니라,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참된 자녀가 되게 하셔서, 매일의 삶 속에서 자발적인 순종으로 주님의 말씀을 굳게 세워가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중앙교회의 모든 권속들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새로운 의의 얼굴을 비추는 영광스러운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여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