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07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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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들어가며
들어가며
청년의 시간은 끊임없이 평가받는 시간입니다. 학점과 자격증, 취업 준비, 외모, 팔로워 수까지. 우리는 무언가를 더 갖추고 더 잘해 낼수록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고 은연중에 믿으며 살아갑니다. 가진 것이 많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결국 "대단한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쩐지 "별것 아닌 사람"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한 교회를 향해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어도 한 가지가 빠지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능력의 크기가 아니라 전혀 다른 기준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 본문을 따라가 봅니다.
본문이 쓰인 자리
본문이 쓰인 자리
고린도는 1세기 지중해 세계에서 손꼽히는 항구 도시였습니다. 무역으로 돈이 흐르고, 사람들이 몰려들고, 성공과 명예를 향한 경쟁이 치열한 곳이었습니다. 그 도시에 세워진 교회 역시 도시의 공기를 그대로 마시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풍성하게 나타나던 공동체였습니다. 방언, 예언, 지식 같은 은사들이 활발했습니다. 문제는 그 은사를 자랑과 서열의 도구로 삼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특히 방언처럼 눈에 띄고 신비로워 보이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를 더 영적이고 더 우월한 신자로 여겼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갈라졌고, 서로를 무시하고 시기했습니다.
바울은 12장에서 이 문제를 한 몸의 비유로 다룬 뒤, 그 장 끝에서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12:31)고 말합니다. 그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지를 풀어낸 것이 13장입니다. 그러니까 13장은 은사를 제대로 쓰는 유일한 통로가 무엇인지를 짚는 본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1-3절)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1-3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던 것들을 일부러 하나씩 끌어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1절).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2절).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3절).
방언, 예언, 모든 지식, 산을 옮길 믿음, 전 재산을 내놓는 구제, 목숨을 내놓는 순교까지. 누가 봐도 대단한 일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하나하나에 똑같은 결론을 답니다. 사랑이 없으면 시끄러운 소음이 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라는 표현은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 믿기 전 우상 앞에서 듣던 그 공허한 소음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능력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랑이 빠지면 아무리 화려한 능력도 알맹이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더 깊은 진실이 드러납니다. 사랑이 없어도 방언을 할 수 있고, 예언을 할 수 있고, 전 재산을 내놓아 구제할 수 있으며, 심지어 목숨을 내놓아 순교까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절정이라 여기는 모든 은사와 사역이 사랑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두려운 말입니다.
두려운 이유는 우리가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지고, 구제하고 선교하는 그 모습만 보고서 우리는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눈에 드러나는 사역의 분량으로 내 믿음을 가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화려한 목록 위에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질문을 세워 둡니다. 그 모든 것을 하면서도 사랑이 없을 수 있고, 그러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 그 동기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방언을 하는 이유, 예언을 하는 이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구하는 이유, 구제하는 이유, 복음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랑입니다. 사랑하기에 하는 것입니다. 동기가 사랑일 때 비로소 그 모든 것이 알맹이를 갖습니다. 사랑이 빠지면, 가장 헌신적으로 보이는 일조차 소음이 되고 맙니다.
사랑은 이런 것이다 (4-7절)
사랑은 이런 것이다 (4-7절)
그렇다면 그 사랑이 무엇인지, 바울은 4절부터 보여 줍니다. 흥미롭게도 사랑을 감정으로 설명하지 않고 거의 전부를 행동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행동의 목록을 가만히 보면, 대부분이 고린도 교회의 죄를 그대로 뒤집어 놓은 거울입니다.
먼저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말합니다. 여기 쓰인 단어는 "길다"는 말과 "분노"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분노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환경을 견디는 인내가 아니라, 사람 때문에 생기는 상처와 실망을 길게 참는 것입니다. 청년의 자리에서 우리는 관계 속에서 쉽게 지칩니다. 연락을 잘 받지 않는 친구, 말이 통하지 않는 부모, 답답한 직장 동료, 실망을 안기는 교회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금세 "왜 저럴까" 하며 마음을 닫습니다. 사랑은 그런 사람을 향해 곧장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어 "사랑은 온유하며"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착하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에게 친절을 베풀고 실제로 유익을 끼친다는 뜻입니다. 인터넷 댓글창만 봐도 사람을 공격하는 말은 넘치지만 살리는 말은 드뭅니다. 사랑은 "내가 옳은 말을 하는 것"보다 "상대를 살리는 말을 하는 것"을 택합니다.
"시기하지 아니하며"는 질투를 가리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를 두고 서로 경쟁하며 "왜 저 사람은 저런 은사를 받았고 나는 이것밖에 없는가" 하는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이것은 청년들이 가장 많이 싸우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SNS를 열면 취업한 친구, 결혼한 친구, 잘 풀린 친구가 보이고, 자신도 모르게 비교하게 됩니다. 사랑은 상대의 잘됨을 불편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는 한 쌍입니다. 자랑은 자기를 밖으로 과시하는 것이고, 교만의 원어는 "부풀어 오른다"는 그림으로, 실제보다 자신을 크게 여기는 속마음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전체에서 가장 자주 지적한 죄가 바로 이 교만입니다. 오늘은 SNS 자체가 자랑의 유혹이 되기 쉽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성공했는지 끊임없이 보여 주고 싶어집니다. 사랑은 나를 드러내는 대신 하나님과 이웃을 드러냅니다.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는 품위 없이 행동하지 않는 것, 곧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종종 친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합니다. 가족이니까, 친구니까, 교회 식구니까 막 대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가까울수록 오히려 더 존중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는 글자 그대로 "자기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입니다. 바울이 같은 편지 10장에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한 원리와 곧장 이어집니다. 그래서 사랑은 늘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무엇을 얻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유익이 될까"입니다. 교회를 향해서도 마찬가지여서, "내가 은혜 받을 교회"를 찾기 전에 "내가 섬길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내지 아니하며"는 쉽게 폭발하지 않는다는 뜻, 곧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오늘은 모든 것이 빠릅니다. 문자도 즉시 보내고 댓글도 즉시 답니다. 그래서 분노도 즉시 터집니다. 그러나 사랑은 반응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합니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의 원어는 회계 장부에 적어 넣는다는 상업 용어입니다. 직역하면 상대의 잘못을 장부에 기록해 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종종 마음속에 장부를 만듭니다. 그때 나에게 그렇게 말했지, 그때 나를 무시했지, 그때 상처를 줬지. 그리고 잊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받은 상처를 일일이 적어 두었다가 꺼내 들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모든 것"은 무엇이든 무조건 참으라는 뜻이 아니라, 사랑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상대를 쉽게 의심하기보다 좋은 쪽으로 믿어 주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향해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며, 압박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한 가지 마음이 듭니다. 이 사랑은 아름답지만, 솔직히 우리 힘으로는 며칠을 가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시기와 자랑과 성냄이 너무 가까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할 사람이 우리 가운데 과연 있는지 막막해집니다.
나오며
나오며
그런데 한 걸음 물러나 이 초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바라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가 드러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목록을 우리가 지켜야 할 사랑의 기준으로 읽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모습은 사실 한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오래 참으신 분, 친절을 베푸신 분, 자랑하지도 교만하지도 않으신 분,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신 분, 우리의 잘못을 장부에 적는 대신 덮으신 분, 그리고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 분. 4절부터 7절은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이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를 닮으려 했지만, 바울이 정작 닮으라고 한 분은 이분이었습니다.
여기서 복음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먼저 해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이 사랑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었을 때, 내세울 능력이라곤 없었을 때, 시기하고 자랑하고 쉽게 성내던 그 모습 그대로일 때, 그분은 우리를 오래 참으셨고 우리의 잘못을 계산하지 않으셨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쌓아 올린 능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이미 이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얻어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받은 사람이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막연한 다짐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손에 잡히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SNS에서 잘된 친구의 소식을 볼 때 비교에 마음을 빼앗기는 대신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는 것, 가까운 사람에게 오래 품어 온 서운함의 장부를 한 줄 지워 내는 것, 욱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 답장을 보내기 전에 한 박자 멈추는 것, 공동체에서 내 편함을 앞세우기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는 것, 그리고 거듭 실망을 안긴 한 사람을 향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 1장에서 본 그 질문이 늘 함께 갑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가 사랑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동기일 때 우리의 작은 섬김 하나도 알맹이를 갖습니다. 이번 한 주, 우리는 가장 사랑하기 어려운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4절부터 7절 가운데 한 가지를 실제로 행하는 것으로 받은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능력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쓰던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사랑받은 사람으로서 한 사람을 향해 그 사랑을 살아 내는 것 — 그것이 본문이 우리에게 여는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