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완성된 참된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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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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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허락해 주시고, 하루의 첫 시간, 이 고요한 새벽에 우리를 주의 제단으로 불러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육신은 때로 연약하고 발걸음은 무거울지라도, 주님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이 새벽을 깨우며 은혜의 자리로 나아왔습니다. 평생을 눈물과 기도로 주님의 교회를 섬겨오신 우리의 이 아름다운 헌신을 주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생명의 말씀을 나누기 전, 우리의 지난 삶과 신앙의 여정을 십자가 앞에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우리가 평생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주님, 때로는 "내가 살아봐서 안다", "내 오랜 경험이 정답이다"라는 굳은 생각에 빠져,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혹은 교회의 몸된 지체들에게 내 고집만을 내세우지는 않았는지, 또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은 없었는지 이 새벽에 돌아봅니다.
내가 아는 것이 맞다는 이유로, 정작 내 곁에 있는 연약하고 서툰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던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이 시간 부드럽게 녹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는 우리가 가진 삶의 지혜와 신앙의 연륜이 누군가를 판단하고 찌르는 차가운 잣대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오히려 십자가의 사랑을 통과하여, 흔들리고 방황하는 연약한 영혼들을 너그럽게 품어주는 넉넉하고 따뜻한 성품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 영혼을 실족하지 않게 하려고 기꺼이 자신의 당연한 권리마저 내려놓았던 바울처럼, 우리도 남은 여생 동안 내 고집을 내려놓고 사랑으로 교회의 덕을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이 새벽, 주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옵고,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간구하며 결단하는 복된 새벽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안아주시는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본문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1. 서론: 지식과 사랑의 괴리
1. 서론: 지식과 사랑의 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을 향해, 혹은 언론을 통해 종종 이런 뼈아픈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교회는 자기들밖에 모른다. 이기적이고 사랑이 없다.”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십자가에서 목숨까지 내어주신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어떻게 세상으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게 된 것일까요?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성경을 깊이 배우고, 훌륭한 설교를 매일같이 접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그 지식의 무게에 걸맞은 사랑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8장은 이 뼈아픈 모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결코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 지식’을 맹신한 것이 그들의 치명적인 문제였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사랑 없는 지식은 우리에게 덕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과 형제를 향한 사랑이 어떻게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메마른 일상과 공동체를 어떻게 다시 살려내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 본론: 참된 지식의 세 가지 원리
2. 본론: 참된 지식의 세 가지 원리
첫째, 사랑이 빠진 지식은 영적 교만을 낳습니다 (1-3절)
첫째, 사랑이 빠진 지식은 영적 교만을 낳습니다 (1-3절)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사 먹는 문제로 극심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신앙이 성숙하다고 여겼던 성도들은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그러니 우상 신전을 거쳐 나온 고기라 할지라도 그것을 먹는 것은 영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이들의 신학적 지식은 백 번 옳았습니다. 영적인 원리를 정확히 꿰뚫어 본 정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1절에서 정답을 외치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경고합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우리의 일상을 가만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가정에서 배우자나 자녀와 대화를 나눌 때, 혹은 직장이나 교회에서 사람들과 의견을 맞추며 일을 해야 할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는 종종 ‘내 생각과 내 경험이 완벽한 정답’이라는 굳은 확신에 빠지곤 합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정확한 사실과 논리만을 앞세워 상대방을 가르치려 들거나,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일의 효율성과 나의 옳음만을 앞세우다 보면, 일은 내 뜻대로 완벽하게 처리될지 몰라도, 정작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소중한 관계가 깨어지는 것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옳은 진리와 정확한 논리라 할지라도, 타인을 향한 배려와 사랑이 결여되면 그것은 형제를 찌르는 날카로운 흉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내가 남들보다 얼마나 더 정확히 아는가’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그 지식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과 내 곁의 사람을 얼마나 따뜻하게 품어내는가’로 증명됩니다.
둘째, 우리의 존재 목적은 ‘나의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4-6절)
둘째, 우리의 존재 목적은 ‘나의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4-6절)
바울은 이어서 참된 지식의 근원이자 우리의 존재 기반이 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6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바울은 그저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마느냐'의 표면적인 문제를 다루다가, 돌연 우리의 존재에 대한 고백을 터뜨립니다.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났고, 우리 역시 "하나님을 위하여(for Him)" 존재합니다. 또한 우리는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 서 있는 자들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through Him)" 호흡하며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닫는 것이야말로 성도가 가져야 할 '진짜 지식'입니다. 우리는 내가 가진 알량한 지식을 무기 삼아 나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생명을 얻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존재들입니다. 내 삶의 중심이 '나의 자유'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동하는 것,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참된 지식의 기초입니다.
셋째, 참된 지식은 연약한 형제를 살리는 ‘사랑의 포기’로 완성됩니다 (7-13절)
셋째, 참된 지식은 연약한 형제를 살리는 ‘사랑의 포기’로 완성됩니다 (7-13절)
하지만 교회 안에는 아직 이 확고한 지식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이방 신전에 제사하던 과거의 습관 때문에, 고기를 입에 댈 때마다 우상 숭배에 동참하는 것 같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믿음이 약한 자들’이 있었습니다(7절).
만약 지식이 있다는 성도가 자신의 정당한 자유를 내세워, 그들에게 보란 듯이 신전에 앉아 고기를 썰어 먹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연약한 자들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억지로 고기를 먹게 되어 양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영적으로 실족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11절에서, 내 눈에 그저 답답해 보이고 신학적 지식이 한참 부족해 보이는 그 연약한 지체를 향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 부릅니다. 6절의 고백처럼 나의 존재가 그리스도의 은혜에 빚지고 있듯, 지금 내 곁에 있는 저 형제 역시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내어주실 만큼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 자유와 지식을 함부로 휘둘러 형제를 멸망으로 이끄는 것은, 단순한 무례함이나 말실수가 아니라 곧 그를 구원하신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엄중한 범죄(12절)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13절과 같이 형제들을 위해 결단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성도의 참된 자유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형제를 살리기 위해, 내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정당한 권리조차 기꺼이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랑의 능력’입니다.
3. 결론: 십자가의 사랑을 통과한 지식
3. 결론: 십자가의 사랑을 통과한 지식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바른 ‘지식’은 우리를 얽매는 율법과 거짓에서 벗어나게 하는 참된 자유를 줍니다. 그러나 형제를 향한 ‘사랑’은 그 강력한 자유가 폭력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단단히 붙잡아 줍니다. 이 지식과 사랑의 아름다운 균형이 바로 성도의 삶을 완성하는 핵심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의 삶의 자리를 정직하게 돌아보길 원합니다. 나는 가정에서, 치열한 일터와 학업의 현장에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또 나에게는 바울처럼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 기꺼이 나의 고기(권리)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함게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과 자유가, 십자가의 사랑을 통과하여, 형제를 살리고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생명의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차가운 지식의 칼을 내려놓고, 따뜻한 사랑의 앞치마를 두르는 성숙하고도 아름다운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기도제목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시다.
먼저 기도하실 때, 참된 지식과 이를 완성시키는 사랑이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합시다. 나의 지식로 상처를 입히지 않게 하시고, 사랑으로 그들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세상에게 핍박과 비난을 받는 이 땅의 모든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더이상 사랑없는 교만한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열방을 섬기며 치유하는, 사랑 가득한 교회의 모습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절별 직역 및 주해
절별 직역 및 주해
1절 :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지식이 있는 줄 안다. 지식은 자랑하나, 사랑은 세운다.
2절 : 만일 그가 어떤 것을 아는 줄로 생각한다면, 아직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3절 : 그러나 만일 그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그(하나님)에게 알려진다.
4절 :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 우리가 '우상이 세상 안에서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이 한 분밖에 없으신 줄' 안다.
5절 : 비록 하늘이나 땅에서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고,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절 :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나왔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한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를 통하여 그리고 우리도 그를 통하여 (있다).
7절 : 그러나 이 지식이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풍습이 있어서, 우상의 제물을 그들이 먹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졌다.
8절 :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가 먹지 못한다고 해서 궁핍한 것이 아니요, 먹는다고 해서 넉넉한 것이 아니다.
9절 : 너희는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삼가라.
10절 : 만일 지식이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서 먹는 것을 그가 본다면,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강하게 되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실족하지 않게 먹지 말라는 말)
11절 :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게 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살리기) 위해 죽으신 형제다.
12절 : 이와 같이 (너희가) 형제들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다.
13절 :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