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해야 할 것을 슬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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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이 시간 주님 앞에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고백하며 정결한 마음을 얻기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느린 찬양
빠른 찬양 - 다 함께 박수치시며 찬양하겠습니다.
오늘은 세계와 나라와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특별히 의정부지방 미얀마선교 일정 중에 있는 담임목사님을 위해서도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다 함께 중보기도 제목을 보시며,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 우리의 기도가 우리 자신을 넘어 세계와 나라와 교회를 향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혼란과 불안이 깊어지는 세상 가운데 주님의 평화가 흐르게 하시고, 전쟁과 갈등, 미움과 분열로 신음하는 곳마다 화해와 생명의 길을 열어 주옵소서.
이 나라를 붙들어 주옵소서. 서로의 목소리는 커지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은 점점 작아지는 시대 속에서, 진실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시고, 이 땅을 긍휼로 다스려 주옵소서.
주님,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세상의 빛으로 부름받았으나 때로는 세상 속에서 길을 잃곤 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교회가 사람을 드러내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곳이 되게 하시고, 성공보다 순종을, 화려함보다 거룩함을 붙들게 하옵소서.
상한 마음에는 위로를, 지친 영혼에는 새 힘을 더하여 주시고, 다시 복음 앞에 무릎 꿇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5장 1-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먼저 교독하시고, 마지막 절은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고전5:1-13]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한 번 더, 합독하시겠습니다.
(한 번 더 합독한다.)
말씀을 묵상하시겠습니다.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상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금방 해결될 줄 알았고,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그 문제는 점점 커져 갑니다.
벽 한쪽에 생긴 작은 금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어느 날 보니 벽 전체로 번져 있습니다.
작은 불씨 하나를 방치했는데,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불길이 되어 버립니다.
문제는 언제나 갑자기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조용히 자라기 시작합니다.
오늘 바울이 바라보는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교회 안에 분명한 죄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세상 사람들조차 놀랄 만큼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은 그 죄 자체만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 일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성도들은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애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집 안에 불이 났는데도 따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처럼, 교회는 자신들의 상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매우 강한 어조로 이야기합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밖에서 오는 핍박만이 아니라, 안에서 죄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이 화를 내는 이유는 사람을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을 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에 마음 아파하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슬퍼하시는 것을 나도 슬퍼하고 있는가.
바울의 마음으로 고린도 교회를 바라보며, 우리 자신의 신앙과 교회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1포인트

죄보다 더 큰 문제는 죄를 슬퍼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전해 듣고 놀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먼저 죄의 내용 자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바울의 시선은 죄를 지은 한 사람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 전체를 바라봅니다.
교회가 아파해야 할 일 앞에서 아파하지 않고, 슬퍼해야 할 일 앞에서 슬퍼하지 않고, 깨어 있어야 할 자리에서 무감각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합니다.
처음에는 죄를 두려워합니다.
처음에는 양심이 불편합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놀랐던 일도 반복되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처음에는 아팠던 일도 계속 보면 무뎌집니다.
죄가 가장 무서운 이유는 사람의 양심을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랬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애통함보다 자부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슬픔보다 교만이 더 컸습니다.
영적인 민감함보다 자신들에 대한 만족감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죄보다도 그 죄를 대하는 교회의 태도를 더 심각하게 바라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죄가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죄를 죄로 알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거룩함은 완벽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할 줄 아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아파해야 할 것을 아파하고, 슬퍼해야 할 것을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줄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다윗이 위대한 이유는 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죄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 앞에서 무너질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왕의 체면을 붙들지 않습니다.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울었습니다.
그래서 회개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기대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정죄가 아니라 애통함.
비난이 아니라 회개.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슬픔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회복은 죄를 가볍게 여길 때가 아니라
죄를 슬퍼하며 하나님께 돌아올 때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2포인트

거룩함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조금 낯선 비유를 사용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 말의 의미를 바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누룩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반죽 한쪽에 조금 들어갈 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영향은 반죽 전체로 퍼집니다.
처음에는 작은 부분처럼 보였던 것이 결국 전체를 변화시킵니다.
바울은 죄를 바로 그렇게 설명합니다.
죄는 혼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저 사람의 문제일 뿐입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한 지체의 아픔이 전체의 아픔이 되고,
한 지체의 병이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바울은 죄를 방치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보다
죄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공동체를 더 걱정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용납하는 순간부터
교회는 죄인을 사랑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죄를 당연하게 여기는 공동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이 말씀을 조심스럽게 들어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죄를 침묵할 수 있고,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거룩함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울은 사람을 정죄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내쫓는 즐거움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바울은 공동체가 그 영혼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 죄를 외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아픈 곳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술이 아프다고 해서 병을 그대로 두지 않는 것처럼,
복음의 사랑은 회복을 위해 진실을 말할 줄 압니다.
그래서 바울은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중심에는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단순히 “깨끗하게 살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구별된 백성이다.”
그러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결국 거룩함은 교회의 체면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거룩함은 복음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도 교회를 향해 말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죄인을 포기하지도 말라.
복음의 사랑으로 회복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하라.
그것이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길이라고 말입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5장은 읽기에 부담스러운 본문입니다.
바울의 말은 강하고, 내용은 무겁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칫 이 말씀을 정죄의 말씀으로만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는 분노보다 사랑이 있습니다.
교회를 향한 사랑, 복음을 향한 사랑, 그리고 죄 가운데 있는 한 영혼을 향한 사랑입니다.
만일 바울이 교회를 포기했다면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관심이 없다면 침묵했을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외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를 사랑했기에 울고, 교회를 사랑했기에 아파하며, 교회를 사랑했기에 강하게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죄를 괜찮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죄를 덮어 두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죄의 심각함을 보여 주셨고,
동시에 그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허락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랑이 아닙니다.
죄를 직면하면서도 죄인을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거룩함도 정죄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복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죄를 죄로 알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줄 알고,
다시 십자가 앞으로 돌아올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아파하시는 것을 함께 아파하고 있는가.
나는 죄에 대해 여전히 민감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복음의 은혜를 붙들며 거룩함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정죄하는 마음이 아니라 애통하는 마음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남을 판단하는 마음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살피는 마음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죄를 덮어 두는 공동체가 아니라,
죄인을 사랑하기에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회복을 기다리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십자가 앞에 서서
복음의 은혜를 붙들고, 거룩함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죄를 쉽게 여기고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다면 깨워 주시고, 하나님께서 아파하시는 것을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영적 민감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살피게 하시고, 정죄하는 마음보다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하시고, 복음의 은혜 위에 굳게 서는 공동체 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봉헌을 올려드립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붙드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드리오니,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귀하게 사용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십자가 앞에 겸손히 서서 회개와 감사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함을 닮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제 주신 말씀과 개인의 기도, 공동체의 기도 제목을 붙잡고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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