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08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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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425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새로운 하루를 허락하시고 이 새벽에도 주님의 전으로 나아와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세상의 염려와 걱정, 분주함과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께만 시선을 고정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기도 가운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여 주셔서 우리의 믿음이 새로워지고 영혼이 회복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기도 제목을 품고 나온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병든 자에게 치유를, 낙심한 자에게 위로를, 지친 자에게 새 힘을 허락하여 주시고, 모든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주님께 예물 준비한 손길들이 있습니다. 물질보다 하나님을 먼저 고백하는 믿음을 기쁘게 받아 주시고, 드리는 손길마다 하늘의 은혜로 채워 주옵소서. 그리하여 감사의 제목은 더욱 풍성하게 하시고, 간절한 기도 제목들은 주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가장 좋은 때에 응답하여 주옵소서. 드린 예물이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귀하게 사용되게 하시고, 드리는 성도들의 가정과 생업 위에 하나님의 돌보심과 공급하심이 함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 Corinthians 10:1–6 NKRV
1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2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3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는 사도 바울을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향해 편지로는 강하게 말하면서, 실제로 만나보면 외모도 볼품없고 말도 어눌하다며 깎아 내렸습니다. 거기에 당시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거짓 사도들은 진짜 하나님의 사도라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더 능력 있고 더 화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런 평가는 당시 그리스 문화의 가치관이 지라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와 헬라 사외헤서는 수사학이라고 부르는 웅변술이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그래서 말을 유창하게 잘하고, 외모가 뛰어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당시 세상의 기준과는 달랐습니다. 바울은 육체적으로는 질병이 있어 약했고, 수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았습니다. 겉모습으로는 전혀 화려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바울을 깎아 내렸고 그 과정에서 바울이 전한 십자가 복음을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바울이 한 말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증명” 하려고 노력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2 Corinthians 10:1 NKRV
1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그들이 약함이라고 비숫은 그 부드러움을 바울은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이라고 부릅니다. 그 온유함은 무능이 아니었습니다. 오리혀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었습니다. 바울은 세상의 방법으로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들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본문 3-4절에서 싸움의 본질을 선언합니다.
2 Corinthians 10:3–4 NKRV
3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우리가 이 몸을 입고 현실의 무게를 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방식은 세상과 같지만, 우리가 싸우는 방식은 세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힘으로, 말로, 화려함으로, 자기 자랑으로 싸웁니다. 그러나 성도의 무기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린다고 바울은 선포합니다. 견고한 진이라는 것은 적군이 숨어 있는 군사 요새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말해 아무리 공격해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방어벽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하는 이 성벽은 눈에 보이는 실제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고 단단하게 세워진 ‘잘못된 사고방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당시 고린도 교회를 흔들던 생각들이었습니다. “강해야 인정받고, 고난은 실패의 증거이고, 눈에 보이는 능력이 전부다”라는 그런 생각들을 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을 보면 바울은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이론으로 번역된 원어의 의미는 단순한 생각이나 의견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와 논리로 치밀하게 세워진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세상의 가치관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고린도 교회를 흔들어 놓았던 바로 그 생각들이 오늘날 우리 안에서도 여전히 똑같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공해야 복 받은 사람이고, 강해야 인정받는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고난은 실패의 증거가 되고, 결국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의 가장 깊은 곳에는 "내 인생은 결국 내가 책임지고 내가 이끌어 가야 한다"는 자기중심적인 믿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우리 마음속에 견고한 요새처럼 자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경험과 계산을 따라 결정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의 싸움을 세상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뜻대로 되지 않는 환경, 눈 앞에 닥친 문제와 어려움이 우리의 적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성경은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영적 세력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싸움이 결국 지나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전쟁터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같은 상황을 만나도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반응하고, 어떤 사람은 원망과 불신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같은 고난을 겪어도 누군가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누군가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그 이유는 승패가 환경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결국 신앙의 싸움은 상황과의 싸움 이전에 생각과의 싸움이며, 세상과의 싸움 이전에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불신앙과의 싸움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은 세상 사람들과 싸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비판하는 교회 안의 반대자들을 공격하라고 선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바울은 “복음을 거부하는 우리 안의 생각들과 싸워야 한다” 말하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군대가 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또 가나안에 살고 있던 아낙 자손이 너무 강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실패는 전쟁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수없이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후, 그들의 시선은 하나님이 아니라 현실에 머물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보다 눈앞에 보이는 거인들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3).
사실 아낙 자손이 그들을 향해 메뚜기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미 마음속에서 패배하고 있었습니다. 현실보다 더 큰 문제는 현실을 바라보는 왜곡된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광야에 머물게 한 것은 거인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문제를 더 크게 보는 불신앙의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삶에도 동일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단순히 환경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내 생각이 충돌하는 싸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말씀하시지만, 우리는 현실을 바라보며 “나는 아무것도 안될거야, 이번데는 끝났다”고 여깁니다.
또 하나님은 “내일 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그래도 내가 다 책임져야 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은 다 용서 할 수 있어도, 저 사람은 용서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내 생각이 충돌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것인가, 아니면 내 판단과 감정을 붙들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사실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상황 자체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 상황을 해석하는 우리의 생각때문에 힘들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문제를 더 크게 보고, 하나님의 약속보다 현실을 더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경험을 더 의지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는 또 하나의 견고한 진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그 견고한 진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승리는 환경이 바뀌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을 다스리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2 Corinthians 10:5 NKRV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여기서 ‘사로잡는다’는 말은 전쟁에서 적군을 포로로 붙잡아 끌고 가는 모습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은 단지 좋은 생각을 몇 가지 더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 앞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이 예수님 앞에 무릎 꿇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내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을 판단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내 감정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기준이 되시는 것 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내 생각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생각이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삶입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생각, 내가 붙들고 있는 고집, 내가 당연하다고 믿는 가치관까지도 예수님 앞에 가져가 전검받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이란 하나님을 내 생각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하나님말씀 아래 두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것이 전쟁의 승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핵심은 내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내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 복종시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은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내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내 생각이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암호우리는 날마다 환경과 싸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말씀보다 내 생각을 더 신뢰하려는 마음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의 승패는 밖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내 판단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 것인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붙들 것인가. 그 싸움에서 말씀 편에 서는 것이 믿음이며, 내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것이 신앙의 성숙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싸움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오늘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 능력이 우리 안에 세워진 불신앙의 요새를 무너뜨리고, 우리의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여 믿음의 길을 걷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 힘과 내 지혜로 살아가려 했던 교만한 마음,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판단을 더 신뢰했던 생각,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심지어 나 자신까지 정죄했던 잘못된 생각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기 위함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그 견고한 진들을 오늘 십자가 앞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항복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무기는 세상의 지혜가 아닙니다. 더 강한 의지나 더 뛰어난 능력도 아닙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무기는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약함처럼 보입니다. 패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강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없는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통로가 됩니다.
세상은 우리의 약함을 보며 실패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약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강하심을 나타내십니다. 세상은 고난을 패배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 고난 속에서도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강해지려고 애쓰기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 생각을 붙들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 버티려 하기보다 십자가의 은혜 앞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세워진 모든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시고, 우리의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시며,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이 새벽 우리 마음속에 높이 쌓아 올렸던 불신앙과 교만의 성벽이 무너지기를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 하루를 우리 안의 견고한 진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 가운데 온전히 드러나는 은혜를 누리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주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진짜 싸움이 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전쟁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 안에 높아진 모든 생각과 견고한 진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하나님보다 현실을 더 크게 보고, 말씀보다 내 판단을 더 신뢰했던 불신앙과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안 될 것이다"라는 생각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게 하시고, 염려와 두려움보다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시며, 우리의 모든 생각이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믿음의 승리를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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