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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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경배와 찬양(20분): 브리스가 찬양팀
예배를 위한 통송기도:
대표기도: OOO 권사님
(※ 반주 잠잠 멘트X 기도시작)
찬양: (※ 짧으면서도 깊은 임재 찬양)
①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환영: 수요예배에 나오신 성도님 한 분, 한 분을 축복합니다.
광고:
① 믿음 한 상(셀연합기도회): 6/5(금), 비전홀
② 나머지 주보 참고
③ (헌금이 있을 시 기도)
성경봉독: 다같이 일어나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교독하겠습니다.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설교(30분):
할렐루야! 수요예배 오신 여러분을 예수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들어가며
들어가며
우리는 지난 8주 동안 하나님 나라를 함께 걸어왔습니다.
1주차부터 3주차까지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를 배웠죠. 천국은 그저 죽어서만 가는 장소가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라 했습니다. 그 통치에 순종하며 사는 내가 선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 나라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전부를 팔아도 아깝지 않은 보화라 했어요.
그다음 다섯 주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언약의 길을 따라 걸었어요. 에덴에서 아담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죠.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내가 네 하나님이 되겠다” 하셨습니다. 시내산에서는 "너희는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 하셨어요. 다윗에게는 "네 왕위가 영원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예레미야를 통해 "내가 네 마음에 직접 새기겠다”는 새 언약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어요. 이 모든 언약이 한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씨’,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왕’, 예레미야가 바라본 '새 언약’… 이 모든 언약이 아직 오지 않은 한 분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 이후, 하늘이 닫힌 듯한 사백 년의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 침묵을 깨고, 마침내 한 아기가 이 땅에 오시는데요.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처럼 제한된 시간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오신 거예요.
그런데 그 아기에게 천사가 일러준 이름과 사명이, 사람들이 기다리던 것과 묘하게 어긋납니다. 사람들은 로마라는 원수를 무찌를 분을 기다렸는데, 천사는 그 아기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분”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 이름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해요. 그 이름은… 바로 예수입니다.
1. 그 이름, 모든 언약의 약속이었습니다
1. 그 이름, 모든 언약의 약속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어떻게 시작되나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길고 긴 족보로 시작합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또 누구를 낳고… 우리가 읽다가 자주 건너뛰는 그 부분이죠.
그런데 그 족보가 그냥 이름 나열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포로에서 그리스도까지. 마태는 지금 수천 년 언약의 역사를 한 줄로 꿰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긴 족보의 맨 끝, 절정에서 한 아기가 태어나요.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말합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텐데,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요.
그럼 ‘예수’라는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히브리어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흔한 이름이었어요.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도 같은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부모가 지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지으셨어요. 이름 안에 사명을 담아 지으신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게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사람을 그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뿐이에요. 시편 기자가 이렇게 노래했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라고요. 죄에서 건지는 건 오직 여호와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뭐라고 해요? 이 아기가 바로 그 일을 하실 거라고.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거라고요.
그러니까 이 이름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 아기가 바로 그 여호와시라는 걸 말입니다.
아담에게서 시작된 언약,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레미야로 이어진 그 모든 약속의 실타래가, 이 한 이름에서 매듭지어집니다. 사백 년 침묵 끝에 오신 분, 그분이 모든 언약의 약속이셨던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똑똑해서, 우리가 찾아내서 믿게 된 게 아니에요.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는 다 내 힘으로 살았습니다. 내가 쌓고, 내가 지키고, 내 손으로 안전을 만들려 했죠. 그런데 그 모든 언약의 약속이 우리를 먼저 찾아온 겁니다. 거저 받은 은혜인 겁니다.
2. 그 이름, 우리 생각과 다른 구원이었습니다
2. 그 이름, 우리 생각과 다른 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오래 기다린 약속이 마침내 이뤄졌을 때, 정작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천사가 일러준 구원이, 자기들이 기다리던 구원과 달랐거든요.
천사가 뭐라고 해요? 이 아기가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거라고요.
이게 사람들의 기대와 완전히 다른 겁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어요. 무거운 세금에 짓눌리고, 군화에 짓밟혔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기다린 메시아가 어떤 분이었겠어요? 로마를 쓸어버릴 강한 왕이었습니다. 원수에게서 우리를 건져줄 분. 그게 그들이 바란 구원이었어요.
그런데 천사는 "원수에게서”라고 하지 않습니다. "죄에서”라고 해요. 하나님이 보신 진짜 원수는 로마가 아니었던 겁니다. 우리 안의 죄였던 것이죠.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배부르게 해주는 왕, 먹을 걱정 없게 해주는 왕. 딱 그만큼을 원한 거예요. 예수님은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그들이 바란 건 참된 구원이 아니라 더 편한 형편이었으니까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솔직히 우리도 비슷하지 않나요?
요즘 통계를 하나 보면요. 지난해 우리나라 로또 판매액이 사상 처음으로 6조 원을 넘었답니다. 6조 2천억 원, 역대 최대예요. 그런데 재밌는 게 있어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사니까, 1등 당첨금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평균 20억 원대로, 역대 최저랍니다. 어떤 신문은 이런 제목을 달았어요. "1등 돼도 서울 아파트 사기 힘들다."
'한 방이면 인생이 바뀔 텐데.’ 그 마음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매달리는데, 정작 그 한 방은 점점 작아지는 거예요. 형편만 바뀌면 다 해결될 것 같은데, 그 형편은 자꾸만 손에서 빠져나갑니다.
이게 우리 마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자꾸 기도가 이렇게 흘러가요. "이 문제만 풀리면, 이 집만 마련되면, 이 사람만 바뀌면 행복할 텐데.” 그런데 가만 보세요. 형편이 나아져도 마음의 불안은 그대로이지 않습니까? 돈이 생겨도, 자리가 올라가도, 내 안의 그 깊은 문제는 따라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진짜 문제는 형편이 아니라 죄이기 때문이에요. 죄는 내가 어디로 이사를 가도 따라옵니다. 통장의 ‘0’이라는 숫자가 엄청 많아도 그대로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형편을 손보러 오신 게 아니라, 죄에서 우리를 건지러 오신 겁니다.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곳까지 내려오신 거예요.
3. 그 이름, 우리와 함께 계신 구원이었습니다
3. 그 이름, 우리와 함께 계신 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말씀에는 이름이 하나 더 나옵니다. 마태는 이렇게 덧붙여요. 이 아기를 사람들이 ‘임마누엘'이라 부르리라고.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볼 게 있어요. 예수, 그리고 임마누엘. 이 두 이름은 따로 노는 게 아닙니다. 하나는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이름이고, 하나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이름이에요. 그런데 이 둘은 결국 한 가지를 말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려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멀리서 명령만 내리신 게 아니에요. 직접 우리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고, 우리와 똑같은 시간 속으로 오셨어요. 죄에서 건지시는 그 방식이 바로 '함께 계심’이었던 것이죠.
생각해보면 놀랍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하늘에서 말씀 한마디 하시면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러지 않으셨어요. 직접 오셨습니다. 우리 곁에 계시려고요.
그래서 마태복음은 이 임마누엘로 시작해서, 맨 마지막도 같은 약속으로 끝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뭔지 아세요?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요. 처음도 함께, 끝도 함께. 이를 수미상관이라고 하죠. 마태복음 전체가 이 '함께 계심'으로 묶여 있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가오십니까? 큰 위로되시나요? 특히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이 깊어질 때가 있죠. 자녀들은 제 갈 길을 가고, 몸은 약해지고, 함께하던 이들도 하나둘 곁을 떠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누가 계세요?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이세요. 일터에서 막막할 때도, 가정에서 마음이 무너질 때도, 그분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바로 곁에 계신데요.
마치며
마치며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이름 속에서 세 가지를 보았어요. 예수, 그 이름은 아담부터 예레미야까지 모든 언약이 약속한 이름이었습니다. 예수, 그 이름은 우리 기대를 훌쩍 넘어, 형편이 아니라 죄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이름이었어요. 예수, 그 이름은 멀리서가 아니라 우리 곁에서, 함께 계심으로 구원하시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럼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죄는 그냥 없던 일로 덮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그 값이 치러져야 해요. 우리가 지은 죄의 값은 우리가 치르는 게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아기가, 그 값을 대신 치르시려고 오셨다는 겁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 자기 죄를 대신하게 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실 어린 양으로 오신 겁니다. 그리고 정말로 십자가에서 우리 죗값을 다 치르셨어요.
이게 왜 그토록 기쁜 소식인지 이제 보이십니까? 내가 갚을 수 없는 빚을, 그분이 대신 갚으신 겁니다. 내가 끊을 수 없는 죄의 사슬을, 그분이 끊으셨어요. 우리가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분이 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선 곳이 어디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자리,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자리, 거기가 거룩한 땅이에요. 죄에서 건짐받은 우리가 사는 모든 자리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이런 질문으로 적용해 보는 건 어떠셔요?
"나는 예수님께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을 구하고 있는가? 내 형편인가, 아니면 내 죄인가?"
일터에서 일이 막힐 때, 나는 '이 일만 풀리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합니까? 아니면 그 일 앞에서 흔들리는 내 마음까지 주님께 맡기십니까? 자녀를 대할 때, '성적이 오르게 해주세요'만 구합니까? 아니면 자녀를 향한 내 불안까지도 구하십니까?
아픈 자리에 파스 한 장 붙이는 것과, 그 통증의 뿌리를 찾아 치료받는 것은 삶의 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우린 지금 당장의 통증만 해결하려고 합니다. 파스는 잠깐 시원하지만, 뿌리가 그대로면 통증은 또 올라오죠.
우리가 자꾸 구하는 게 그 파스 같은 겁니다. 이 상황만 바뀌게 해주세요, 이 형편만 풀리게 해주세요. 그런데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올라오는 불안한 마음, 거기서 터져 나오는 불평과 불만, 남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마음… 하나님은 그 파스만 붙여주러 오신 게 아니에요. 통증의 뿌리, 곧 우리의 죄를 치료하시려고 오신 겁니다. 환경과 상황만 바꿔달라는 게 복음이 아니라, 그 근원을 치료하신 사건이 복음인 것이죠.
지난 4월 24일 금요기도회 때 전했던 말씀입니다. 스바냐 1장 12절에 하나님이 등불을 들고 예루살렘을 두루 살피신다는 장면이 나와요. 찾는 사람이 있으신 거죠. 어떤 사람이에요?
12 그 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포도주 찌꺼기 위에 가라앉은 자들"입니다.
찌꺼기란? 항아리 바닥에 오랫동안 흔들림 없이 가라앉은 걸 말해요. 흔들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 그것은 안정이 아니었어요. 움직임이 없었다는 것, 갈망이 없었다는 것, 하나님도 찾지 않고 하나님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형식적인 종교는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방향 자체가 꺼져 있었던 것이죠.
하나님 나라는 그 동안 우리 신앙생활에 찌꺼기처럼 가라앉아 있던 것을 흔듭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성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왜 예수님이 필요한지… 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생각할 시간 드리기)
이렇게 그 이름, 예수님의 이름을 붙드는 사람은 달라요. 죄에서 건짐받은 우리가 사는 삶의 자리에, 그리고 우리가 보내는 선교지에… 그 왕의 다스림이 흘러갑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로 사는 거예요.
그 이름, 예수… 모든 언약의 약속이셨고, 우리 죄에서 우리를 건지시며,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신 그분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김찬양: 찬송가 268장
새김기도: 주님, 제 마음을 열어 주셔서 말씀을 따를 수 있도록 성령님 역사해 달라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성경 속에 말씀된 언약의 종착지는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말씀대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우리의 상황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오신 게 아니라,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럼 우린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까? 분명한 것은 통증이 있다고, 그 통증만 해결하려고 파스만 붙인다고 되지 않습니다. 뭐해야 해요? 통증의 뿌리를 해결해야 해요. 그 통증의 뿌리가 죄의 문제입니다.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 우린 그 예수님을 붙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예수님으로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구요.
개인기도하시다가 자유롭게 귀가하시겠습니다.
우리 주의 이름 크게 한 번 부르시고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