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누구이고 교회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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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2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3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4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5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찬송가 : 216장 성자의 귀한몸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전형상화 (말씀 강해)
5장에서 우리는 권징에 대한 교회의 권능을 살펴 보았습니다. 교회의 표지는 3가지인데 말씀의 바른선포와 성례의 올바른 시행 그리고 신실하게 시행되는 권징입니다. 이 세가지가 종교개혁으로 새롭게 갱신된 하나님의 교회의 표지입니다. 오늘날 말씀과 성례(세례와 성찬)은 교회안에서 잘 진행되지만 권징은 (치리)는 잘 이루어 지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의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것이 오늘날 교회의 어두운 모습입니다. 사도가 교회에서 음행한자를 판단하지 않고 권징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5장에서 꾸짖었다면, 6장에서는 교회안에서 성도간의 다툼을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으로 가지고 가는 모습속에 한없이 어린아이와 같은 교회의 연약함과 부끄럼움을 지적합니다.
고린도전서 6:1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간에 다툼이 있는데 당시의 불의한 로마 법정으로 이 문제를 가지고 가는 것을 사도는 어이없어 합니다. 성도가 무엇이지? 교회가 무엇인지 너희가 도대체 알고 있는가? 제 정신인가?
고린도전서 6:2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성도는 세상에서 판단 받는 자들이 아니라 세상을 판단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과 의로움과 거룩함,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날마다 이루어 가는 존재가 성도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의미는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의 회복을 말합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가졌던 세상을 경영하는 권세입니다. 그것이 성도들에게는 회복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며 하나님의 섭리속에 함께 동참합니다. 그런데 그런 성도들이 모이는 공동체인 교회안에 다툼이 있는것도 이해 할수 없지만 그 다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 법정으로 나아가는 것은 말인 안된다는 사도의 강력한 물음 입니다.
고린도전서 6:3–4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심지어 영적 존재인 천사들도 우리의 판단을 받는데 하물며 세상일은 말할 것도 없다.그런데 세상의 일을 가지고 교회에서 어린이와 같은 사람을 세우는 것이 맞는가 스스로 생각해 보라!
고린도전서 6:5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이 말은 너희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 내게 주저할 일이 아니다. 고린도후서 7:10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우리는 항상 은혜되는 말을 하기를 힘써야 하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일을 보면서도 그것을 교회라는 이유로 덮는 것은 바른 신앙적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사도는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도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너희는 부끄러워 해야 한다. 너희는 왜 이렇게 어리석고 미련한 행동을 하는가? 도대체 언제까지 어린아이와 같이 행동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영적 권위가 필요하지 않는가?
고린도전서 6:6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성도는 세상의 기준으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법과 규정은 최소한의 선을 보장할 뿐이다. 하나님의 법은 차선이 없다. 항상 최선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이 괴롭고 힘든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과 죄를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은 항상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 즉 차선을 요구하고 그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고 합니다. 모두의 의견은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기준이 없다면 어떻게 처해진 상황속에서 차선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어떤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 우리는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상황이 변화되면 그 선택이 좌우된다면 과연 차선이든 최선이든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6:7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세상 기준으로는 불의를 당하고 차리리 속았다고 하더라도 그 동기가 사랑이라면 그것이 더 낫다는 사도의 역설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작동 원리가 ‘이익’이 아니라 ‘손해보는 것, 사랑 입니다.’ 지혜롭고 정확한 사람이라고 존중 받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서툴러도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것이 우리가 의지하는 우상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은 세상의 이익과 지혜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에 미련하고 손해보는 쪽을 선택 합니다. 고린도전서 6:8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사도는 너희옆에 있는 사람이 너희의 형제라고 말합니다. 자매라고 말합니다. 한 가족이라고 교회의 공동체성을 강조합니다.
고린도전서 6:9–11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0가지의 죄를 열거합니다. 이 안에 안걸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도가 불의한 자,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들의 죄를 열거하는 이유는 우리가 모두 이전에는 그런 자들 이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주님의 은혜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때 옛사람의 모습 가운데 무슨 열매가 있었고, 유익이 있었는지를 스스로 생각해 보라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거듭난 이후에도 죄와 타협을 합니다. 죄와 싸우기를 죽기까지 미워하면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할수 없는 일이야~ 스스로를 속이고 미혹을 받아 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죄를 즐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철저히 통회 하고 이런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네! 우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인데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하나님 안에서 회개의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자가 되었습니다. 이전에 우리의 형편을 알고 지금의 우리의 상황을 대조 하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의 호통에 성도가 어떤 자인지 정신이 번쩍 드십니까?
형상화 (현실 연관성)
오늘날 사회에 큰 문제는 기독교인을 표방한 극우 정치 세력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며 기독교안에 숙주처럼 머물며 온갖 사회적 분란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들어 보십시오! 어디에 평화를 선언하는 메시지가 있습니까? 온갖 욕설과 저주와 정죄와 거짓이 난무합니다. 교회가 사회적으로 독립되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것은 우리 개혁주의 교회의 참된 모습도 아닙니다. 교회는 사회를 비추는 빛이고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합니까?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낮아짐으로 , 손해봄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회적 분란을 선동하여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용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는 오늘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교회 안에서의 너희의 다툼에 대한 송사를 불의한 자에게 맡기는 일에 대하여 부끄러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부끄러워 해야 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안에 이들의 공간을 허용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옛사람의 구습을 쫒아 행하는 일에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에베소서 4:22–24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음행과 우상숭배, 간음과 탐색,남색,도적과 탐욕, 술취함,모욕,속이고 빼앗는 행위들은 우리 가운데 일상입니다. 이러한 행위들이 우리 가운데 여전히 남아 있다면 우리는 성경이 말씀 함과 같이 결코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쁜 소식은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우리를 빚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여전히 불경건하고 불의하며 방탕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의롭게 만드십니다. 그러니 더 두드려 맞고 비싼 댓가를 지불하시기 전에 빨리 돌이키시고 회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절대 불경건하고 불의한 상태로 놔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로마서 8:37–39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재형상화 ( 적용)
회개합시다. 회개는 거듭난 성도들이 평생을 함께 할 태도입니다. 시편 51:2–5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우리 삶을 바라 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독생자를 주셨는지?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를 가늠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 하겠습니까?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토록 우리에게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거룩함 입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성품을 닮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오늘도 우리를 그렇게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내 관점은 항상 상대적이고 내 안에서 괜찮고 선한 것을 찾고 자신을 이해하고 용납하고 변명 하기 위해서 바쁩니다. 타협합니다. 그러나 그일은 헛됩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영안이 열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한국교회 공동체 안에 건강함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지금은 교회가 광장에 나가 기도할 때가 아닙니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해야 합니다. 악하고 거짓된 목자들을 주님이 징치 하시고 주님을 양을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하시고,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교회가 흔들지 않도록 한국 교회공동체를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에 부끄러움을 아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