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하게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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Ἰδὼν δὲ τοὺς ὄχλους ἀνέβη εἰς τὸ ὄρος,

καὶ καθίσαντος αὐτοῦ προσῆλθαν °αὐτῷ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καὶ ἀνοίξας τὸ στόμα αὐτοῦ ἐδίδασκεν αὐτοὺς λέγων·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μακάριοι οἱ πενθοῦντες , ὅτι αὐτοὶ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πραεῖς, ὅτι αὐτοὶ κληρονομήσουσιν τὴν γῆν.

μακάριοι οἱ πεινῶντες καὶ διψῶντες τὴν δικαιοσύνην,

ὅτι αὐτοὶ χορτασ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ἐλεήμονες, ὅτι αὐτοὶ ἐλε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καθαροὶ τῇ καρδίᾳ, ὅτι αὐτοὶ τὸν θεὸν ὄψ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εἰρηνοποιοί, ὅτι °αὐτοὶ υἱοὶ θεοῦ κλ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δεδιωγμένοι ἕνεκεν δικαιοσύνης,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μακάριοί ἐστε ὅταν ⸉ὀνειδίσωσιν ὑμᾶς καὶ διώξωσιν καὶ

εἴπωσιν πᾶν πονηρὸν καθʼ ὑμῶν ψευδόμενοι ἕνεκεν ἐμοῦ.

χαίρετε καὶ ἀγαλλιᾶσθε,

ὅτι ὁ μισθὸς ὑμῶν πολὺς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οὕτως γὰρ ἐδίωξαν τοὺς προφήτας τοὺς πρὸ ὑμῶν.

그리고 무리를 보시면서, 예수께서는 산속으로 올라가셨고,
앉으셨을 때 그분의 제자들이 나아왔다.
그리고 그분의 입을 열어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이르시기를
복이 있도다, 그 심령에 파산 선고 받은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애통하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온유한 자들이여.
왜나하면 그들이 그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그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긍흘히 여기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긍율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그 마음에 있어서 청결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그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평화를 만드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아 오고 있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대항하여
모든 악한 것들을 할 때 복이 있도다, 너희들이여. 기뻐하고 즐지위하라.
왜냐하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급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너회 전에 있던 그 선지자들도 그렇게 박해하였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1-12절, KNJ 사역)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08_화평하게 하는 자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PntZiGEF4i8
Transcript:
(00:01)

제 8장 화평하게 하는 자

복이 있도다. 평화를 만드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9절

들어가는 말.

인간을 향한 하나님 사랑의 극치가 긍휼이라면 하나님을 향한 인간 사랑의 극치는 청결한 마음입니다. 순결을 강조할수록 그 생각은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사욕을 버리고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는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봅니다. 신자는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압니다. 그 행복을 모든 인류가 누리기를 바랍니다.이 일을 위해 하나님과의 화목을 전합니다.
(01:04) 말로만이 아니라 삶과 인격으로 합니다. 그들은 화평케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란 하나님의 질서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실현된 상태입니다. 나아가 자연 속에서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평화는 사람들과 자연물과의 조화롭고 평안한 상태입니다. 이것을 우리말 성경에서 화평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평화는 온전한 상태입니다. 깨지거나 일그러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인간의 정신과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와 사회, 자연과의 관계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예레미야 12장 4절 3절. 평화는 인간과 만물 사이에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가 실현된 상태입니다.
(02:07) 이것은 자기에 대하여 안녕한 상태이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온전한 조화와 균형을 이룬 상태입니다. 이것을 화목이라고도 합니다. 로마서 5장 10절, 12장 18절. 화목은 모든 갈등이 소멸된 상태입니다. 사랑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며 만족을 누리는 상태입니다. 그 범위는 땅에 있는 것들로부터 하늘에 있는 것들에까지 미칩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로새서 1장 20절.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그 결과 두 가지가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적의와 소원입니다.
(03:09) 적의는 하나님을 향한 적대감인데이는 반감과 대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소원은 하나님과의 무한한 거리감입니다.이 이 때문에 하나님이 낯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죄를 지음으로 자초한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원할 수 없는 인간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구속을 통해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믿음을 통해 적용되므로 적대적이고 소원한 관계를 청산하고 다시 사랑받게 하셨습니다.이 화목에 대해 성경은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합니다. 첫째로 죄가 정죄에 이르도록 증가되지 않음으로써 화목이 이루어집니다. 로마서 3장 25절, 고린도후서 5장 19절.
(04:12) 둘째로 죄인 바깥에서 또 다른 의가 증가됨으로써 화목을 이루게 됩니다. 로마서 4장 5절, 고린도후서 5장 19절.이 이 평화는 하나님이 뜻하신 질서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질서는 사물 사이에 있는 존재와 작용의 관계입니다. 그리스도의 화목하게 하심으로 인간을 하나님의 질서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사랑받고 사랑하는 관계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그 완전한 질서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팔복은 바로 그런 질서로 돌아간 신자의 인격적 특징 곧 마음의 결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결이란 마음의 내적인 바탕이나 틀을 말하는 것입니다.

평화에 대한 오해.

(05:11) 팔복 중에서 가장 많이 오해를 받은 행복이 평화입니다. 우리가 세상이 가르쳐 준 평화의 개념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화평이란 무엇일까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9절. 당시 대제국이었던 로마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여겼습니다. 강력한 힘으로 주변 나라를 정복해서 누리는 평화의 상태를 파스 로마나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평화의 개념은 자기 중심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조국을 잃어버리고 로마의 식민죄가 된 나라들도 과연 그것을 평화라고 생각했을까요? 유대인들도 평화에 관해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꿈꾼 것은 다윗 왕복 시절에 신적 질서가 재건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처럼
(06:15) 부강하게 된 이스라엘이 이웃 나라를 다스려 전쟁이 없는 상태가 평화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왕가 영원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사무엘하 7장 16절. 그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이며 자손들의 통치는 영원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왕인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경고의 사리라 하고 열왕기상 2장 45절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파괴되었고 왕국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평화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도 수정되어야 했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다툼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했을 때 인간들끼리 사이 좋게 사는 평화를 떠올립니다.
(07:19)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평화의 한 국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화평은 그런 인도주의적 평화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가르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피로 이루어지는 평화입니다.

깨어진 평화.

원래 평화는 삼일체 하나님 안에 있었습니다. 창조된 세계 만물이 그 평화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당신과의 교재 속에서 사람이 평화를 누리고 이로서 자연 만물이 선한 상태에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 세계는 평화로웠습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고백했습니다.이는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창세기 2장 23절. 두 사람이 함께이 고백에 참여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최고의 사랑이었습니다.
(08:21) 완전한 평화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다툼없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모든 인류가 서로에게이 고백을 하였을 것입니다. 평화는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설량하게 돌보았을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 그런데 인간의 범죄로 죄가 들어왔습니다.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렸고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저기를 품게 되었습니다. 자기 영혼의 생명이신 하나님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1절.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지자 사람 사이의 평화도 깨졌습니다. 자연과의 평화도 잃어버렸습니다.
(09:17) 가인이 아벨를 죽인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 4장 8절. 죄 때문에 땅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인류 최초의 도시 에녹성은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중심으로 살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4장 17절. 라멕이 살인과 폭행을 서슴은 것도 평화가 사라진 비극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4장 23절부터 24절. 세상 나라는 각 사람이 자기를 주인삼은 나라입니다. 각 사람은 깃발을 세우고 자기 왕국을 건설하고자 합니다. 각 사람이 주장하는 질서들은 서로 충돌합니다. 그때 힘이 많은 사람이 약한 사람의 깃발을 꺾습니다. 힘이 없는 사람은 굴복하거나 파멸당하게 됩니다.
(10:15) 모든 사람이 평화를 원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평화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나라 사이의 전쟁과 민족들 간의 충돌를 보십시오. 사회 계층 간의 대립과 반목이 폭력을 부르는 것을 보십시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더욱 강포해질 것입니다. 베드로서 3장 3절. 인간은 화목할 수 없도록 태어난 존재처럼 보입니다. 관계를 세우기보다는 깨뜨리는 일에 익숙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진 인간들이 서로 불화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첫 조상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선악가를 따먹고 범죄하기 전까지는 어떤 갈등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후에는 서로에게 괴로운 전제가 되었습니다.
(11:08)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으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세기 3장 12절 평화를 잃어버린 결과는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다스려야 할 자연과 투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창조 세계에 설량한 관리자로 부름받았것만. 창세기 1장 16절. 타락한 인간은 환경의 파괴자가 되었습니다.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돌보야 할 자연을 망가뜨리다. 폐해는 고스란이 인간에게 되돌아왔습니다. 오늘날 지구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를 보십시오. 허염과 대규모의 산불 허구와 홍수 온나라와 특심한 감뭄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자연과의 평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12:02) 이러한 상황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 곧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이는 평화를 위한 인간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세상의 평화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믿고 살아가느냐에 달렸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평화는 단지 불화를 폐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흘러넘쳐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이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 에베소서 2장 16절. 그리고 우리를 통해 그 평화를 세상에서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세상의 평화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룬 사람들에 의해 추구됩니다.
(13:00) 그 평화가 가정과 교회, 사회와 자연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길 갈망합니다. 신자는 평화를 이루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고린도서 5장 18절부터 19절. 마음으로 삶으로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자기 안에서 이루어진 평화가 밖으로 나아가 실현되어야 할 영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가정입니다. 가족들과의 관계 안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위해 썩는 미랄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 연약한 자를 돕고 믿음이 없는 가족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가족들이 하나님을 알고 평화를 이루도록 섬기십시오. 하나님과 화목한 당신의 삶을 가족들이 먼저 보게 하십시오.
(13:59) 세상의 자원은 부족해도 하늘 자원이 넉넉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이 신자의 소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장 1절. 둘째로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체들 간에도 평화가 깨어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영혼에 대한 무관심, 교만, 그리고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영원한 것들에 대해 관심을 잃어버리고 세상 사랑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일치는 깨어지고 개인의 욕심 때문에 분열합니다. 겉으로는 진리를 내세우지만 욕심 때문에 답힙니다.
(14:59) 이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깨어진 평화는 그리스도를 욕되게 합니다. 왜냐면 그것은 교회로 부르신 목적을 거스르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자신의 평화로운 상태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셋째로 사회입니다. 이웃가의 관계입니다.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기적을 자랑했고 이들은 지식을 앞세웠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2절.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었으며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3절.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자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미워하던 사람들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15:48)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였습니다. 종과 자유인이 하나가 되었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 그들 안에서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평화가 사라진 사회에서 분열과 갈등, 무관심과 차별이 답안사입니다. 신자는 이런 현실에서 평화를 이루도록 부름받았습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까? 그것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까? 평화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천국에 속한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재물로 드리심으로써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으니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16:38) 요한일서 2장 2절. 그 은혜를 잊지 마십시오. 사회 속에서 평화를 이루며 살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로마서 12장 18절. 다툼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평화를 만드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화목하게 하는 직분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 그 평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화목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9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사람과 화목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웃을 향한 최고의 봉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17:29) 이로써 하나님과의 화목을 누리게 하는 것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욥기 22장 21절. 그 화목의 힘으로 인간의 죄 때문에 함께 탄식하며 고통을 겪는 피조 세계를 보듬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1절부터 22절.

화평케 하는 자의 행복.

세상에 완전한 평화는 없습니다. 우리 안에서도 그러합니다. 원리적으로는 이미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지만 실제적으로는 불하게 하는 죄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기를 주인 삼선 옛생활로 돌아가게 합니다. 은혜가 풍성해지면 하나님 나라의 깃발을 세우지만 죄가 용성해지면 자기의 깃발을 흔듭니다. 우리는 평화를 만드는 자로 부름받았습니다.
(18:23)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며 마태복음 5장 9절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구약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소유인 아들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더 풍부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에는 형용사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명사, 추상 명사의 형태로 형용사의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 방식이 발달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에가에는 시온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예레미야가 4장 2절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시온이라는 지역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이 표현에는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19:23) 이곳은 예루살렘 남단에 위치한 높은 산지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경배할 거룩한 장사로 지정되었습니다. 그 예루살렘을 감싸고 있는 지역이 시온입니다. 언약을 따라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선택된 백성의 땅이라는 신학적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단순히 하나님의 소유된 아들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구약에서이 표현은 크게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킵니다. 천상에 있는 자들과 이스라엘은 집합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불렸습니다. 욥기 1장 6절. 이들은 장자로 불리기도 하였는데이는 유산을 상속받는 지위를 암시합니다.
(20:21) 여기서 아들을 가리키는 헬라와 휘오스는 법적 상속권을 가진 아들을 뜻합니다. 특별한 지위와 특권을 가진 아들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이사야 63장 16절. 둘째로 이스라엘의 왕들을 가리킵니다. 다윗으로부터 시작되는 왕들에 관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다윗은 장자였으며 시편 89편 27절 그를 뒤어 왕이 된 솔로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사무엘하 7장 14절 신약에서이 표현은 그리스도를 가르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은 구원을 받는 신자들의 아들됨과는 구별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21:17) 이제 구원받는 신자들의 아들 때문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부여받는 지위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절부터 7절 로마서 8장 14절부터 17절.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을 상속받을 자들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정치적인 함의를 가졌는지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화를 만드는 자라는 표현은 헬레니즘 시대 헬라어의 전형적인 동형용사로서 고대의 통치자들의 명칭이라고 주장합니다. 당시 이상적 통치자상은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 진의 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의 질서를 정립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째 복을 이런 정치적 맥락에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2:14)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을 초월한 나라였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6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의에 줄이고 목마르면서도 평화를 만드는 자들이라는 사실이이를 입증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평화의 왕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인도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하늘 평화를 누리며 세상 평화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속고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

첫째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구원받음으로 단번의 영원히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합니다.
(23:09) 그러나 끊임없이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말과 인격, 행동과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이로서 그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서 1장 4절. 유능한 사람에게서 겸손을 발견하는 것은 비굴한 사람에게서 자존감을 찾는 것만큼 힘듭니다. 몸에 벤 교만은 타인에 대한 존중심을 갖지 못하게 하고 사소한 일로 다툼을 일삼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0절.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칭찬하기보다는 흠을 찾아내서 헐 뜯는 일이 낯설지 않습니다.
(24:09)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면서 공감하기보다는 시종일관 자기 말만 늘어넣는 사람들은 평화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그를 칭송하는 사람으로 만들거나 하차는 자로 만들어 만들고 싶어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친구가 많지만 불라하게 하는 자에게는 똘만이나 적들만 있습니다. 평화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한 것입니다. 사소한 이견에 쉽게 등집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받는 것보다는 자기 이름을 높여주는 주지 않는 것에 그 마음이 상해합니다.이는 이는 그가 하나님과의 평화 깨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평화를 만드는 것은 단지 싸움질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25:06) 모든 다툼은 자기를 남보다 낫게 여기는 교만에서 옵니다. 거칠고 야비한 어 말투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무래한 태도는 그가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며 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자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박수 받을지 몰라도 친구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평화를 만드는 기쁨을 모릅니다. 자존심은 높지만 자존감은 낮은 사람입니다. 대게 그런 사람들은 어두운 성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나 가족, 친구들로부터 한 인간으로서 소중히 여김을 받은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로 가슴 벅차 본 적이 없기에 자기 중심적이고 남에 대한 괴려심이 없습니다.
(25:58) 다른 사람과 참된 평화를 이루어 가는 행복을 누려 본 적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여럿시 함께 있을 때는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무도 그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누군가를 친구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그를 친구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거칠고 저잡한 죄인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는 믿을지 모르지만 팔복의 사람이 되어 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그런 사람이 꿈꾸는 것은 그리스도 닮은 사람이 사람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사람을 겸손하게 하며 무래히 행치 않게 합니다. 상남자는 남남의 남자지 자기 친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26:51) 사랑 없기에 교만하고 질서를 모르기에 무래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관계 맺으며 이미 맺은 관계는 사랑으로 심화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를 통해 그 나라를 봅니다. 우리를 통해 평화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의 아들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음으로 이미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였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리스도께 젖붙여져 생명을 누리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27:40)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 어찌 영광스럽지 않습니까? 일컬음을 받을 것이며이요. 마태복음 5장 9절.이는 이는 평화를 만들며 살아가는 자들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평화를 이루기를 바라십니다. 죄인들을 돌이켜 평화를 누리게 하는 일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우둔한 인생을 돌이키게 하는 지혜이며 그릇 행하는 자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섬김입니다. 지에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다니엘서 12장 3절.
(28:31)

맺는 말.

세상 나라가 자기 사랑의 질서를 반영하고 있다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사랑의 질서를 보여줍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질서 안에서 안식을 누립니다. 그것이 평화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사랑 안에서 평화를 누립니다.이 평화를 주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거룩한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 사이에서 화목 재물이 되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 신자는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세상 안에 그 평화가 이루어지길 추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최고의 성김은 평화를 만드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29:22)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그 평화를 먼저 자신이 누리고 또한 이웃에게 전하십시오. 그 평화를 누리며 사는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어디 있든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 한 눈에 보는 8장
1. 들어가는 말
하나님을 뵌 사람은 모든 사람이 그러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한다.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 힘쓴다.
그들은 화평케 하는 자이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9절.
2. 평화의 의미.
처음 창조되었을 때 세상은 평화의 상태였다.
인간은 하나님과 사람들 자연 만물과도 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자연과의 관계도 깨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는 평화를 만드는 자로 부름받았다.
3.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평화가 실현되어야 할 영역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가정이다.
신자는 가정의 평화를 위한 밀알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교회다.
교회가 영혼에 대해 무관심해지면 세상 가치를 따르게 된다.
이때 교회에 다툼과 분쟁이 생긴다.이는 부끄러운 일이다.
셋째로 사회다.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
그 속에서 무관심과 차별, 폭력과 투쟁이 일어난다.
신자는 이러한 사회에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다.
이를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
4. 화평케 하는 자의 행복.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5장 9절.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게 된다는 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알게 된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 아들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다.
구원받음으로 새 피조물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니 어찌 영광스럽지 않겠는가?
5. 맺는 말
신자는 평화를 위해 부름받았다.
그 평화를 자신도 누리고 이웃에게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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