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 - 거라사 광인 - 새벽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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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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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24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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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마가복음 5:1–20
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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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워 나와 예배하는 한분 한분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새벽에 나와 예배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신앙의 고백인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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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의 제목은"거라사 광인”라는 제목으로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살펴볼 본문은 ‘거라사 광인’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거라사 광인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과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굉장히 심오한 영적 진실을 대면하면서,
우리의 영적 주소를 돌아보면서 이 본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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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마가복음에서 가장 긴 치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방금 전, 갈릴리 바다 위의 폭풍을 잔잔하게 하셨습니다(막 4:35–41).
오늘 본문 1절은 ‘그들이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왜 굳이 그 험한 바다를 건너셨을까요?
예수님이 목적지로 정하신 곳은 유대인이 발을 들이지 않는 이방 땅이었습니다.
그 땅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무덤과 돼지와 귀신뿐이었습니다.
율법에 근거해서 보면, 거라사는 삼중(三重) 부정(不淨)의 땅입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그 땅을, 그 사람을 찾아 폭풍을 뚫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명확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깨끗한 곳에만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가장 더럽고, 가장 버림받고, 가장 희망이 없어 보이는 그 자리로 건너오시는 분입니다.
새소망과 새 삶을 주시러 오신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 안에 있는
가장 더럽고, 가장 버림받고, 가장 희망이 없어 보이는 그 마음의 자리에 한 편에
예수님은 그 마음의 자리로 오셔서
새 소망과 새 삶을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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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따르면, 이 거라사 광인에 대해 5가지로 묘사합니다.
무덤 사이에 거처함, 쇠사슬도 끊어버리는 힘,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음,
밤낮 소리를 지름, 돌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함.
이 다섯 가지는 단순한 정신 병리가 아닙니다.
이 기록은 “귀신 들린 사람”의 실체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무덤(μνημεῖον)은 죽음의 영역입니다.
산 사람이 죽음의 공간에 거하는 것 — 이것이 귀신 들림의 본질적 상태입니다.
살아있으나 죽어있고, 이름은 있으나 존재는 지워진 삶. 쇠사슬도 그를 묶지 못했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그 어떤 인간적 방법도 그를 구할 수 없었다”는 절망의 선언입니다.
한 마디로, 이 사람의 상태를 요약하면,
“아무도 도울 수 없고,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파괴하는 사람.”
율법도, 도덕도, 쇠사슬도, 사회적 통제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건너오실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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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은 매우 이상합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였다”고 합니다.
귀신이 예수를 알아본 것입니까, 사람이 예수를 알아본 것입니까?
마가는 이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립니다.
분명한 것은 — 그 안에서 두 가지 반응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귀신은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부르짖었고, 사람은 달려왔습니다.
귀신은 “괴롭히지 마소서”라고 저항했지만, 두 발은 이미 예수를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 억눌린 갈망이 있었습니다 — 구원을 향한 인간 영혼의 본능적 움직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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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묵상하는데,
우리도 예배를 향한 두 가지 반응이 동시에 일어날 때가 참 많습니다.
예배와 기도와 봉사와 헌신에 대해 상관이 없게 만들 때가 있다.
예배가 거라사 광인처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는 것처럼,
정말 가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피곤해서 뭐해서 일이 생겨서...
그런데, 본능적으로 우리 마음에서는 예배의 자리를 향하고 싶은
움직임이 항상 동시에 포착되어집니다.
예배를 오늘 하루 빠져야지 하는 마음과
동시에, 예배 자리에 가려는 본능적 움직임이 함께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 본능적인 움직임이 포착된다면, 주저 하지 말고 나오시길 축언드립니다.
그게 예수님의 면전 앞에 나오는 길이고,
예수님이 치유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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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이 거라사 광인에게 정체를 밝히라고 물으십니다.
고대 문화에서 이름을 묻는 것은, 권위와 통제의 행위입니다.
-> 예수님이 거라사 광인에게 이름을 묻고 있는 그 자체가,
권위를 가지고 통제를 하겠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 예수님은 앞에서 언급된 큰 광풍도,(자연도!)
귀신도(흑암과 어둠도) 통제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분이심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광인은 자신의 이름을 “군대라고 우리가 많음이니다”라고 정체를 밝힌다.
“레기온”(로마 군단 약 6,000명의 단위)
이 이미지는 점령군의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실제로, 로마 군단의 깃발에는 “멧돼지형상”이 그려져 있다. - 그림 있음.
이방 땅에서 로마적 이름을 가진 귀신으로 정치, 신학적으로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레기온이라는 군대 귀신이 들린 거라사 광인은
이중적으로,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근데요. 아무리 큰 제국이라도...거대한 권력중심이 있더라도...
진짜 왕 앞에서는 굴복한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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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제국을 통제할 수 있는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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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기온”(6,000명의 군단의 단위)인 이 군단이 한 사람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면,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 의해서 점령당하고 있는가?
(돈, 두려움, 분노, 탐욕, 수치심, 중독, 비교, 자존감 등등)
혹시 이런 것들이 내 이름 대신 나를 정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마치 예수님이 우리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무엇에 점령되어 있는지, 물으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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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군대 귀신에 점령된 거라사 광인 한 사람을 해방시켜줍니다.
돼지 떼에 몰아 이천 마리가 마다에 뛰어들어 몰사하게 하십니다.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통해서,
귀신의 실체를 가시화하셨고, 그 사람의 완전한 해방을 주셨고,
이제 그 광인은 그것들과(군대)와 연결될 수 없게 되었음을 선언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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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돼지 이천 마리를 잃은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보고 두려워하면서,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였다고(17절) 기록합니다.
17절에 사용되는 “간구”라는 단어가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가 “위로자”와 같은 어근입니다.
위로자의 언어로 구원자를 내쫓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위로는 예수님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게 그들에 유일한 위로이었던 것입니다.
돼지를 되돌려 놓을 수는 없지만, 더 이상의 손실을 막을 수는 있다는 계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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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명의 군단이 한 사람을 점령했다면,
경제적 계산과 안전에 대한 집착이 한 공동체를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돼지 이천 마리가 한 영혼보다 더 소중한 셰계관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거라사 지방의 마을 사람들은 경제적 가치라는 레기온에 점령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쫓는 그 행위 안에서 마을 사람들의 레기온이 정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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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누가 봐도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귀신들린 광인과
경제적 손실에 의해 예수님을 그 땅에서 내쫓고 있는 거라사 마을 주민들중에
이 둘 중에 누가 진짜 귀신들린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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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요.
멀쩡히 온전히 신앙생활하면서,
우리 안에 어떤 무언가에 “레기온”(돈, 명예, 뭐 어떤 것이든)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을 우리 안에서 내 쫓고 있다면,
그게 귀신들린 것입니다. 그게 광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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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 오신 후에,
귀신에서 해방된 거라사 광인과 마을 사람들은 완전히 상반된 결과를 초래합니다.
광인은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간구합니다”(18절)
-> 예수님을 만난 사람에 정상적인 올바른 태도입니다.
함께 있기를 간구했다는 것에 원어적 뜻은,
제자되기를 원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 예수님은 거절하시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그 온전한 한 사람을 거라사 지방에 남겨두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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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그거 아세요.
누가복음 8:39절은 이 광인에 마지막을 구체적으로 기록합니다.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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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가볼리(Decapolis)는 열 개 도시로 이루어진 헬레니즘 도시 연합체입니다.
예수님은 거기서 직접 사역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쫓겨나셨으니까요.
대신 이 한 사람을 통해 데가볼리 전체에 복음의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얼마 후, 예수님은 다시 이 지방에 오십니다(막 7:31). 그때는 큰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왜입니까? 이 한 사람이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쫓겨나신 자리에서 남기신 한 사람이 — 그분이 돌아오실 길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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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준비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수만 가지에 “레기온”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을 내 쫓고 있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는지,
이 거라사 광인은 온 성내에 자신이 만난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파하며,
그 광인에 증언이 예수님이 다시 그(데가볼리) 땅에 다시 오실 때에
큰 무리가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있도록 거룩한 다리를 건설했던,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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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아침에 거라사 광인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레기온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삶에 반응은,
예수님 앞에 달려가는지, 예수님을 내쫒는지,
나의 사명의 자리, 데가볼리는 어디인지?
그 예수님에 증인이 되어 살아가는지?
큰 무리를 예수님 앞에 나오게 했던 것이 아니라,
나 조차도 예수님 앞에 나아가지 못했던 인생은 아닌지,
우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며,
예수님 앞에 큰 무리가 나와오게 했던 거라사 광인처럼,
이 땅에서 거룩한 다리를 건설하는 귀한 삶 되시길 간절히 축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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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마음속에 있는 “돼지 떼”를 과감히 버리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을 내 삶의 영역에서 밀어내는 영적 거라사의 주민들 처럼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내 물질적 가치관과 안일함을 깨뜨리시는 주님의 일하심을 기쁨으로 수용하며,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하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시고,
한 영혼 한 영혼을 주님께 나아와게 하는 거룩한 다리를 건설하는 우리의 일생에 삶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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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