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2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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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546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오늘도 새 새명을 허락하시고 이 새벽 저희를 주님의 전으로, 기도의 자리로 불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주님게 올려 드리는 것, 세상의 분주함보다 먼저 주님을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 저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저희의 힘과 지혜만으로는 하루를 살아 갈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가 저희에게 족함을 믿으며 나아가오니, 말씀으로 저희를 새복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하늘의 힘을 공급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약함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주님께 예물드린 손길들 있습니다. 이 예물 기쁘게 받아주시고 이 예물이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데 귀하고 복되게 사용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이들의 간절한 기도제목도 기억하여 주셔서, 주님의 때에 주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당시 고린도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신비한 환상과 영적 체험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뛰어난 웅변술과 화려한 외적인 모습을 앞세웠고, 자신들의 영적인 능력을 과시하며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큰 능력을 행했는지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많이 매를 맞았는지, 얼마나 자주 감옥에 갇혔는지, 얼마나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파선을 당했는지, 그리고 교회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얼마나 깊은 염려와 아픔을 품고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고린도후서 11장 30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그런데 사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은 드러내고 싶어 하지만, 약점과 부족함은 감추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약함은 숨겨야 할 부끄러움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자신의 약함을 자랑 할 수 있었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함께 나누겠습니다.
가시가 주어진 자리 (7절)
가시가 주어진 자리 (7절)
노른 본문 바로 앞에서 바울은 자신이 14년 전에 셋째 하늘, 곧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당시 거짓 사도들이 자랑하더 그 어떤 신비한 환상이나 영적 체험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세상의 방식대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다면, 이 경험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체험을 자시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놀라운 체험 위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한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바로 육체의 가시였습니다.
여기서 "가시"로 번역된 말은 본래 살을 파고드는 뾰족한 나무 조각이나 땅에 박는 날카로운 말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장미 가시처럼 스치면 따끔한 정도가 아니라, 몸에 깊이 박혀서 움직일 때마다 아프고, 뽑으려 해도 뽑히지 않고, 한순간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고통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바로 그런 것이 자신의 삶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며,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아픔과 연약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가시가 무엇이었는지 성경은 밝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바울이 평생 앓았던 고질적인 눈병이었다는 견해도 있고, 바울을 괴롭히던 대적자들이나 박해를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7절에서 중요한 것은 가시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그 가시를 허락하셨느냐는 것 입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는데 바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입니다.
바울이 받은 계시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셋째 하늘, 곧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을 들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체험을 했다면 누구라도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그 위험으로부터 지키시기 위해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그 가시는 바울을 넘어뜨리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붙들어 주시는 울타리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가시'를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삶 속에 고통과 연약함이 찾아오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나를 외면하시거나 미워하신 증거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정반대로 말씀하십니다.
바울의 가시는 하나님께 버림받았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극히 큰 은혜를 맡기셨기 때문에, 그 은혜를 끝까지 잃지 않도록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동행하도록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가시와 은혜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에게 가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더 큰 은혜를 지키기 위한 또 하나의 은혜인 것입니다.
세 번의 간구 (8절)
세 번의 간구 (8절)
그러나 바울은 이 가시를 처음부터 기쁘게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본문 8절을 보면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바울은 이 가시가 떠나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간구하였다"로 번역된 원어는 단순히 한 번 부탁하거나 소원을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곁에 가까이 나아가 매달리듯 간절히 호소하고 애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힘으로 견딜 수 없는 이 고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절박하게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또한 바울이 "세 번" 간구했다는 것은 단순히 세 차례 기도하고 포기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세 번'이라는 표현은 어떤 일을 충분하고도 진지하게 반복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며, 한두 번이 아니라 작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거듭거듭 매달리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가벼운 마음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이 가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오랜 시간 씨름했던 것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바울 같은 사람도 자기 삶의 가시 앞에서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 병든 자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도 정작 자신의 가시를 놓고는 하나님께 "이것을 내게서 떠나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그러므로 가시가 제거되기를 구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기도가 아닙니다.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문제가 해결되기를 간구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정당한 기도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 눈물로 부르짖는 그 기도를, 바울도 똑같이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간절히 드린 바울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시를 뽑아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여기서 "나에게 이르시기를"에 사용된 동사는 완료 시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헬라어에서 완료 시제는 단순히 과거에 어떤 일이 한 번 일어나고 끝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지금까지도 그 효력과 결과를 계속해서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 주는 시제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사용한 이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그때 나에게 말씀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고, 그 말씀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살아서 나를 붙들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오래전에 한 번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을 추억하며 살아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날 주셨던 말씀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삶을 붙들고 있다고 믿으며 살았습니다.
육체의 가시는 여전히 바울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을 끝까지 버티게 하고 다시 일어서게 한 것은 가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하신 그 말씀은 그 순간에만 필요한 말씀이 아니라, 바울의 삶 속에서 날마다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응답의 내용인 "족하도다"라는 말은 충분하다, 모자라지 않다, 넉넉하다는 뜻인데, 이 말 역시 원문에서 지속되는 현재의 상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혜가 한 번 충분했던 것이 아니라, 날마다 계속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게 필요한 것은 가시 없는 인생이 아니라 내 은혜이고, 그 은혜는 어제도 충분했고 오늘도 충분하고 내일도 충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바울의 기도에 그렇게 응답하신 이유입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여기서 "온전하여진다"로 번역된 말은 원어로 어떤 목표에 이르다, 목적한 바를 완전히 이루다, 완성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능력은 사람의 약함이 다 사라진 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약함 한가운데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고, 그 뜻을 온전히 이루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내 힘이 충분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때는, 나도 모르게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기도는 점점 짧아지고, 예배도 습관처럼 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내 손에 붙잡고 있는 것이 많을 때는 그 손으로 하나님을 붙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 힘이 바닥나고, 내가 의지하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질 때, 비로소 우리는 두 손을 들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때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내 것으로 가득 차 있던 자리가 비워질 때, 그 빈자리를 예수님의 능력이 채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약함을 실패나 저주의 자리로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와 역사하시는 문입니다.
바로 그 약함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지금도 응답되지 않은 기도 제목을 붙들고 계신다면, 하나님께서 가시를 빼 주지 않으시는 것은 우리를 잊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시를 없애 주시는 것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가시가 박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붙드시고 주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리고 14년 전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셨던 말씀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바울을 붙들어 주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셨던 위로와 약속도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 번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아직 그대로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오늘도 이 새벽에 주님 앞에 나와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붙들고 앉아 있는 이유는 바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도 우리를 붙들고 계신 것입니다.
자랑이 바뀐 사람 (9절 하반절-10절)
자랑이 바뀐 사람 (9절 하반절-10절)
이 음성을 들은 바울은 9절 하반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12:9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가시를 빼 달라고 세 번이나 매달리던 사람이, 이제는 그 약함을 크게 기뻐하며 자랑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가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가시는 여전히 박혀 있습니다. 변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바울입니다.
가시를 보는 눈이 달라졌고, 그래서 자랑의 방향이 달라진 것입니다.
여기서 9절의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라는 원어로 '장막을 치다', '천막을 펴고 그 위에 거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 위에 임하여 머물렀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울은 지금 주님의 능력이 자신의 약함 위에 장막을 치고 머물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광야의 성막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천막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임하자, 그 천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거룩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약함도 이와 같습니다. 세상은 약함을 감추어야 할 부족함으로 여기지만, 주님의 능력이 그 위에 머무는 순간 그 약함은 더 이상 부끄러움의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자리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10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라."
바울은 더 이상 가시가 없는 삶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함 위에 주님의 능력이 머물고 있음을 알았기에, 그 약함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자리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맺는 말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저마다 삶에 박혀 있는 가시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아직도 떠나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마음을 아프게 하는 가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그 가시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가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셨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붙드시고 지키시며, 우리의 약함 가운데 주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시가 여전히 남아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하셨던 말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약속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오늘도 살아서 우리를 위로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소망은 가시가 없는 삶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가시가 남아 있는 그 자리에서도 변함없이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의 약함 위에 주님의 능력을 머물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내 힘과 내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가지 마시고, 우리에게 족하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직 가시가 남아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고 우리의 약함이 끝이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의 능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기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약할 때마다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주님을 더욱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가시가 사라져서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시가 있는 자리에서도 함께하시는 그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 삶에 박혀 있는 가시 때문에 때로는 아파하고 낙심하며, 왜 이런 고통을 허락하셨는지 묻곤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그 가시가 형벌이 아니라, 우리를 붙드시고 지키시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가시를 빼 달라고만 간구하던 우리의 기도를 넓혀 주셔서, 문제의 해결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시 위에 머무시는 주님의 능력과 은혜를 더욱 사모하게 하옵소서. 바울에게 들려주셨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말씀이 십사 년이 지나도 그의 삶을 붙들어 주었던 것처럼, 그 약속의 말씀이 오늘도 우리를 위로하고 붙들고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우리도 연약함 속에서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내 힘과 내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시는 족한 은혜를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라" 고백하며 믿음으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